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병식 rbs1144@hanmail.net
내 주변 친구들은 그리 너그럽지 못하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친구를 보라’는 말을 대입해 보면 착각 속에 사는 나도 오십 보 백 보일 지 모른다. 죽이 맞아서 함께 어울려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한데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상대방이 자랑이 심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데, 그것도 한두번이지 땅 사고 집을 한 이야기를 틈만 나면 되풀이 한다.
임의럽다는 이유로 예사로 하는 것이지만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들었지?” 하고 집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녹음기 틀듯이 어제 들은 이야기의 반복이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일제 강점기시절 장흥읍내에 입담이 좋아 이야기를 잘한 노인이 있었단다.
하도 이야기를 잘하여 가서 들은 건 좋은데, 그는 항상 자기 앞에 사탕을 담아두고 혼자만 집어 먹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나누어 주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을 생각하면 참 꼴불견이 따로 없지 싶다.
그러면서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한 것은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아예 남을 무시한 처사가 아닌가 한다.
나는 한 친구의 부동산으로 돈 번 자랑을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반복해 들으며 그 일본인을 떠올릴 때가 있다. 자기도취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한번은 이 사안을 두고 다른 지인에게 하소연삼아 이야기를 했다. 그의 처방은 명료했다.
“이젠 그 이야기는 많이 들었으니 내 앞에서는 그만 하세요.”
라고말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바로 난색을 표하였다. 짐작컨대, 아니 장담하건대 그에게 씨알이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공연히 그리 말했다가는 속 좁은 그가 삽중팔구 삐지거나 단교를 선언할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잣말로 “참 거시기 하다”하고 구시렁거린다. 옛날 신라 경문왕 때 어느 복두쟁이가 임금님 귀가 당나귀인걸 알고서 바람결에 혼잣말로 외치니 대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더라는 격이다. 이렇듯 혼자서 하는 말은 속절없이 바람결에 날아간다.(2020)
첫댓글 그러셨군요..요즘엔 자랑하려면 돈내고 자랑하라고 한다는데 그분이 연세도 들만큼 드셔서 겸손함이나 배려가 없네요. 그러러니 하세요..
오늘도 그 팀들과 점심약속이 있습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자못 궁금하군요. 아마도 그애기밖에는 할 얘기가 없으니 하는 것이겠지 하고 넘아갈 수 밖에요.
오죽하면 팔불출이라는 말이 생겼겠어요
매양 같은 자랑을 억지로 들어주며 냉가슴을 앓아오신 선생님의 딱한 상황이 그려지는군요 어차피 소문은 나기 마련이니 자랑거리가 있어도 자랑하지 않는 겸손함이야말로 가장 큰 자랑일 텐데 그걸 참지 못하니 참 거시기하지요 누가 사실을 묻거든 그때 자랑하면 족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것도 한두번이지 매양 무한반복을 하니 지겹기도 합니다.
좋은 말도 자주 들으면 식상하고 짜증나는데 자기자랑을 시도때도없이 해대니 참 거시기 하겠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나이 먹으면 양기가 입으로 온다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