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기분좋아 보이는 엄마 얼굴보고 출근하면서 이재환 교수님이 생각났습니다. 이분 제 평생의 은인입니다.
몇년전인가 모 경제지에서 뜬금없이 (여성지도 아니고) 전국의 유명한 점쟁이들을 집중 인터뷰해서 기사화한적이 있었습니다. 신들린 쪽은 빼고, 공부해서 국내 열손가락에 낄 정도라고 알려진 분들을 인터뷰했는데, 담당 기자하고 친분이 있어서 그중 강추한다는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문둔갑인가...점치는 분들한테도 몹시 어려운 분야를 통달한 분이라는데 복채를 몇백만원 들고와도 문지방 넘어 들어오는 품새가 맘에 안들면 안봐준답니다. (문지방 얌전하게 넘어 들어가서) 복채 한푼 안내고 부산에서 올린 생굴 한상자 풀어놓고 같이 소주마시면서 점을 봤었어요. 2000년도였던 것 같은데...2005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좋지 않을 꺼니까 그냥 엎드려있으라고 했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 연을 날리려고 하면 어떻게 돼죠?" 실제로 이 기간동안 작고 크게 신경쓸 일, 재수없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곤 했습니다. 심지어 - 저는 웬만해서 넘어지고 하지 않는데 - 회사 모퉁이에서 넘어져서 얼굴을 다친적도 있습니다. 그 덕분에 오른쪽얼굴이 지금도 꺼져있어요 ㅋㅋㅋ. 암튼 새까맣게 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2005년도 1월말...구정까지 한 일주일 남았는데 이 양반 이야기가 불현듯 생각이 났습니다. 직원들하고 회식자리에서 "....갑자기 불안한데 이제 거의 구정이 다되어가니 별일 없겠지?" 했더니 직원들도 "아유 2004년 다 지나갔는데 무슨일이 있겠어요."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하죠. 그리고는 구정까지 단 3일 남겨두고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이땐 독립해서 나와 살 땐데, 엄마집에 가는 요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집으로 몰고 가던 차를 획 돌려서 엄마집에 잠깐 들른거였습니다. 이때 이미 뇌출혈이 된 지 몇시간 지난 후였고 우선 동네 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갔는데, 큰 병원으로 빨리 옮겨야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나이들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지만 생전 처음 닥친 일이고 남동생들도 당황해서 허둥지둥하고 있었지요. 시간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인데 큰병원 어디로 가야되는 건지...그래서 선배 두분한테 물어봤습니다. 그후부터는 완전 감동의 드라마예요. 선배왈, 반드시 신촌 세브란스 이재환교수님을 담당의사로 해야 한다. 무조건 응급실로 가서, 침대 여유가 없다고 해도 절대 물러서지 마라...시키는 데로 했는데 (누구든 건드리면 죽일 기세로...ㅋㅋㅋ) 당시 신관이 지어지기 전이라 대기 환자수가 187명이나 되었고, 추운 겨울에 속 태워가며, 응급실 문앞에서 기다렸던 그 한시간은 아마 평생 못잊을 겁니다. 그러는 동안, 선배 두분이 사방천지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신촌 세브란스의 다른과 교수님들이 이재환 교수님을 호출하고 난리치고 해서 이 교수님이 눈앞에 나타나신거죠. 종일 뇌수술 집도하셨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생각외로 너무 젊은 분이었는데, 환자하고 반 정신이 나간 가족들을 보더니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내...오밤중이라도 수술팀 꾸릴테니 진정하세요." 아마 이재환교수님이 아니었다면 고비넘기기 힘들었을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웬만한 신경외과의가 수술 엄두도 못낸다는 깊숙이 숨골 부위의 혈관이 터졌으니, 수술을 한 다해도 다른 부위를 건드릴 수밖에 없어 후유증이 심각할 수 있을꺼라는 예상이었고 무엇보다 너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근데 이재환교수님이 열시간도 넘는 수술끝에 마비하나 없이 엄마를 살려내셨습니다. 한 4개월 병원 엄마옆에서 자고 낮에는 가족들이 교대하고 회사와서 일하고 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이 교수님의 아버님이 Who's Who세계 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있는 신경외과의사셨답니다. 뇌수술 임상경험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사로 등록되어 있다고 해요. 그 아버지가 아들한테만 스파르타식으로 노하우를 전수해왔던 터라 주위에서 말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이 단지 그 이유만으로 현재의 위치에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맨날 보는 게 위급한 환자들이고 끝도 없는 격무에 무디어질만도 한데...환자와 가족들의 절박한 그 모습에 등을 보이지 않았거든요. 지금도, "내, 오밤중이라도 수술팀 꾸릴테니..."라고 했던 의사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뇌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밑의 의사선생님들이 다 힘들다고 계속 이야기 하는 와중에 그 힘든 뇌수술 완벽하게 해내신것도...그리고 밤새 전화통 붙들고 병실을 몇개씩이나 빼놓고 (제가 원무과 불려가서 주의들었습니다.) 제가 얼굴도 모르는 같은 병원 교수님들이 뛰쳐내려오게 한 두분의 선배님들을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지요. 그리고 2005년이 시작되었고, 희한한게 예전만큼 자꾸 신경쓸 일이 연이어 생기는 싸이클에서는 벗어난 듯도합니다 (입초사 안 할려고 조심 조심....) 그렇게 믿고 있어서 그런건지...일련의 경험을 통해 오히려 느긋해졌습니다. 만일 모든 게 이미 어느정도 정해져 있는 거라면, 안달복달 하고 살 필요없겠다...올 것은 기어이 올 것이고 안 올 것은 또 오지 않을 테니....그렇게 생각하니 맘이 턱하니 편안해지더라구요.
첫댓글 목계님 제가 평생 신수 봐드릴께요!! 근데 그 점쟁이 오떻게 연락하죠??/
ㅎㅎㅎㅎ....그분 연락처는 잃어버렸는데 사시는 곳은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살아계신지 모르겠어요. 꽤 연세가 많으셨거든요. 제 신수 꼭 봐주세요. 근데 복채는 뭐로 하죠???
천운이네요 고마우신분들 참많아요 그래서 어머님한테 잘하시는군요 효녀예요
저도 막내지만 형편상 친정엄마하고 같이 살고 있어서 언제나 걱정이 많지요. 제가 언제나 도움만 받고 있는 샘이라서 돌아가심 제일 많이 생각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