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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의 이곳] ⑥ 시인 강영환 산으로 가는 문, 원동역 | ||||
쓸쓸할 때 비춰보는 거울 같은 위안 | ||||
물금과 삼랑진 사이 강과 어울리는 고운 풍경 | ||||
부산일보 2007/08/09일자 035면 서비스시간: 09:03:48 | ||||
지리산 시집 두 권 낸 덕으로 내게는 산악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내 시에 기를 넣는 일은 바로 산을 타며 시상을 가다듬는 일이다. 어느 산인들 내 마음에 남아 있지 않으리요만 그 중에서도 나의 지리산 시를 열어 준 곳이 있으니 바로 원동역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번은 꼭 들러야 하는 그 곳 원동역은 물금과 삼랑진 사이에 있다. 경부선을 타고 가다 보면 물금에서부터 왼편으로 낙동강을 끼고 올라가는데 강과 접점을 이루는 역이 원동역이다. 간이역으로 만들어진 원동역은 비둘기라 이름하는 완행열차 이외에 통일호가 서 주었지만 이제는 무궁화호도 가끔 찾아 주는 제법 큰 역이 되었다.
'때 묻은 발자국으로 수없이 밟아 가도 지워지지 않는 문이 있다/ 사람들이 그 문을 지나 산으로 간다'(강영환 '원동역' 앞부분)
원동에서 갈 수 있는 산은 많다. 가장 가까운 산이 토곡산이다. 경남의 3대 악산으로도 불린다. 이유는 지세가 험하고 산중에 물이 없기 때문이다. 계곡이라야 함포골짜기와 원동초등학교 뒤편인데 짧은 계곡으로 평상시 물이 흐르지 않거나 흘러도 졸졸졸이다. 가을 단풍이나 겨울 산행이 좋은 산이다. 특히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서 바라다보는 산과 산 사이를 S자 형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고수부지 파란 농작물의 조화, 그리고 기차가 가는 풍경은 가슴을 한없이 따뜻하게 해 준다.
가까운 산으로는 천태산이 있다. 요즘은 양수발전소가 들어서는 바람에 계곡에 물이 말라 천태폭포가 제 구실을 못하고 그저 실오라기 같은 물줄기가 흐르는 폭포 아닌 바위 절벽이 되어 옛 풍경을 많이도 잃어 안타깝지만 그래도 아기자기한 코스가 많아 여전히 찾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정상에서 바라보는 천태호의 푸름은 그 깊이를 짐작할 수가 없다. 산에 갇힌 물이 다시 그 산을 담고 있다.
천태산에서 역으로 돌아오는 길, 당곡마을에서 강둑길로 접어들면 습지가 있다. 그 습지에는 갈대와 억새가 펼쳐져 있어 저녁 공기의 아련한 맛을 느끼게 한다.
원동에는 가야진이라는 오래된 나루터가 있다. 신라가 가야를 정벌할 때 건너던 곳으로 지금도 제를 올리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예전에는 원리에서 강을 건너는 나루가 있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김해 무척산을 갈 수 있다. 배를 타고 가노라면 강안으로 퍼져나가는 파문에 마음을 실어 보내며 잔잔한 호수를 가르고 지나가는 느낌은 형언할 수 없는 오르가슴을 주었다.
역에서 기다려 주는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는 곳이 많다. 신라의 고찰 신흥사도 있고, 도득골이나 매봉, 금오산, 안정산이 있고, 배내골로 들어가서 신불산, 영취산, 시살등, 염수봉, 오룡산, 향로산, 재약산, 백마산, 향로봉, 간월산 등 이루 셀 수 없는 산과 산행 코스를 입맛에 맞게 골라잡을 수가 있다.
비둘기호 시절에는 산에서 내려와 지친 몸으로 열차를 기다릴 때 역 광장에 둘러 모여 오락회를 가지던 낭만도 있었다. 소주잔 돌려가며 '아침이슬'을 목 높여 부르거나 서로 손을 잡고 '모닥불 피워 놓고'나 '산아가씨'를 부를라치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서 허겁지겁 열차를 타고는 했다. 유흥은 열차를 타서도 이어지게 마련이었고 양쪽으로 길게 늘어진 완행열차 객차 바닥에 주저앉아 고성방가를 하던 때도 있었다. 차장도 옆을 지나가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어 주기도 했다. 그때는 젊은이들에게 그런 것이 다 용서되던 때였다. 독재 권력에 찌든 가슴에 맺혀 있는 응어리를 토해내는 일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 도회로 접어든다면 며칠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도 가지면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까/ 서로의 산을 나누어 가지며 사람들은 지나온 길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때 원동은 속세로 통하는 산문이다/ 산으로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 驛舍(역사) 밖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못 다한 아쉬움을 토해내는 노래 오손도손 멈춰 서지 않고 흘러갈 때 건너 강기슭이 저녁 운무에 쌓인다'('원동역' 끝부분)
산과 산 사이에 강이 있고 그 낙동강 옆에 조그마한 역이 자리한다. 먼 길을 달려 온 강이 이 산에 부딪히면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저 산에 맞닥뜨려지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 자연의 순리에 젖은 심성을 십분 내비치는 그런 곳에 원동역이 있다.
원동역은 원리라고 하는 마을에 있고 그곳에는 추어탕집, 낙동강에서 잡은 잉어, 붕어를 이용한 민물고기 매운탕집, 집에서 손수 만든 두부와 묵을 파는 집, 도로변에 밤, 대추, 배, 단감 등을 내어놓고 팔고 있는 늙수그레한 할머니들, 이젠 노래연습장도 들어서고 다방도 생겼다. 그러나 여관이나 민박집은 없어서 열차를 놓치면 식당에 찾아가 하소연하고서는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다.
세월은 흘렀다. 많은 것들이 변하였고 낭만적인 풍경도 사라졌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역과 낙동강이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그저 경부선 하행을 타고 삼랑진 역 이후에 서쪽 차창으로 흘러드는 우윳빛 어스름과 어울린 강은 특히 아름답다. 멀리 겹겹이 이어지는 산의 어스름한 마루금이 지워주는 부드러운 곡선은 천천히 멈춰 선 듯 흐르는 강물에 투영되어 신비한 풍경을 만든다. 그것이 아주 짧은 순간 지나쳐 버린다는 아쉬움 때문에 더욱 안타깝게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달이 있는 저녁이라면 역의 서쪽에서 철로를 끼고 흐르는 유유한 낙동강 물에 어리는 달빛도 볼 수 있다. 가을날 황혼 무렵 붉은 색으로 짙어 가는 나뭇잎 사이로 노을이 담긴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박재삼 시인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절로 소리 높여 읊조리게 된다. 소리 죽여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바다에 다와 가는 그 엄숙한 광경 앞에서 삶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강물의 흐름과 삶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이 시의 배경이 어딘지 궁금하다. 그곳은 알 수 없지만 바다에 다 와 가는 아직 갯물과 섞이기 전의 강물 그것은 물금이나 구포는 분명 아닐 테고 아마도 강물과 가장 가까운 나루터 마을인 원동역에서 바라보는 저물녘 낙동강이야말로 이 시의 배경으로 딱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시가 있기에 원동의 정취가 아름답게 느껴지고, 원동이 있기에 그 시는 내 가슴속에 살아 있을 수가 있다.
강물은 흐르고 있지만 없는 것 같이 조용한 정물처럼 그 자리에 놓여 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강을 볼 수가 없다. 깨달음에 이른 성자의 모습으로 강은 소리하지 않고 나뭇가지 사이로 유유히 흘러간다. 건너편 마을이나 들판에서 짚불을 놓는 저녁이면 하늘로 오르는 하얀 연기가 강물의 영혼처럼 숭고한 모습이 된다.
봄이면 역은 더욱 장관이다. 역내에는 온통 벚나무뿐이다. 원동역에 내려서면 봄바람을 타고 눈처럼 쏟아져 날리는 벚꽃들의 모습에 탄성을 발하면서 마음은 흠뻑 원동역의 정취에 빠져들곤 한다. 가을이면 그 벚나무 잎이 물들어 지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가서 느껴볼 일이다. 그리고 마음속에 담아 두고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어 거울에 비춰 볼 일이다. 지나온 일들이 위안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풍경 하나가 튼튼하게 있음을 느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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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즘은 주변 마을에 매화가 만발하지요...멀리 섬진강변의 매화마을 못지 않은 규모의 매화마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