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만원씩 지급됐던 참전명예수당이 2만원 인상된 월 22만원으로 책정됐다. 지난 24일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2017년도 예산안 최종 당정협의가 끝난 뒤 브리핑을 통해 이날 당정협의 결과를 전했다.
이날 김 정책위의장은 정부 측은 2017년까지 월 19만원 증액이 대선공약이었고 이미 올해 20만원으로 인상해 난감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새누리당의 요청이 받아들여졌다며 참전명예 수당이 월 22만원으로 올랐다고 밝혔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에 참전했던 수당 지급대상자는 250만명 규모로 명예수당은 월 1만원 인상하는데 300여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이어 김 정책위의장은 경찰, 해경, 행정공무원 포함 공공부문 일자리를 3400개 가깝게 증원토록 했다며 어르신 일자리도 올해(약 3907억원)보다 500억원 가까이 증액해 5만개의 일자리를 추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2017년도 예산안 최종 당정협의에서는 내년도 예산을 올해 예산 대비 3% 후반대로 증액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에 따라 예산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대를 넘어서게 됐다.
그리고 참전명예수당이 인상되고 진료비 감면 기준이 75세에서 65세로 하향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찬열 의원은 지난 24일, 6·25 전쟁 발발 66주년을 맞아 한국전쟁 및 월남전 참전유공자들에 대한 지원 강화를 담은 이른바 참전유공자 예우법(참전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참전유공자 예우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참전명예수당은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으로 인상되며, 참전유공자 본인이 사망한 경우 그 배우자에게도 수당이 지급된다.
또한 위탁 의료시설에서의 진료비용 감면 대상자 기준 연령이 75세에서 65세로 낮아져 보상 및 지원 기준이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의원은 참전유공자 상당수가 빈곤과 병마로 고통 받고 있다. 무늬만 보훈 혜택이 아닌 실질적인 예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훈은 곧 보은이라는 말처럼 나라를 위해 헌신한 참전유공자를 이제는 국가가 나서 지켜줘야 한다고 발의 취지를 밝혔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보훈교육연구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6·25참전 유공자의 87%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고 건강상태가 나쁘다는 응답도 48.3%에 달했다.
현행 매월 20만원인 참전명예수당은 1인 가구 최저생계비(64만 9932원)원에 비해 턱없이 낮다.
올해 5월 기준 생존자는 11만 1024명으로 고령으로 인한 사망자도 급격히 늘고 있다. 게다가 이 중 65세 미만은 20명에 불과해 경제활동이 쉽지 않은 만큼 참전명예수당 인상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또한 현재 국가유공자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유공자 본인 이외에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까지 폭넓게 보상하고 있지만 참전유공자는 오직 본인에게만 보상을 한정하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한국전쟁 참전자 90만명 중 42만명이 국가유공자에서 누락됐다고 밝힌 만큼, 참전유공자에 대한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문제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을 하다 만기 전역한 사람들과 베트남 참전 용사들에게 지금 되는 돈이 겨우 19만원에서 22만 원으로 3만원 인상 되었다고 대폭 인상이니 뭐니 하는 그 자체가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화가 치밀고 분톤이 터지는 것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했던 조국을 수호한 대가가 겨우 전쟁발발 66년만에 22만원 준다고 생색내는 자체가 역겹다.
수학여행가다 선박 침몰로 희생당한 유가족에게는 8억-12억원, 광주 5,18 관련자 보상금 6억-8억원, 인혁당, 민청학련 등 국가전복 및 간첩사건 연루자 무죄석방에 따른 국가 배상금 1인당 6억원-25억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제 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금 단 돈 3100만원-6500만원, 천안함 폭침사고 전사자 보상금(소급적용해서) 약 7-8억원, 그런데 6,25참전 용사와 베트남 참전용사 명예수당은 22만원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귀신 떡 나눠 주는 것도 아니고 배고픈 사람 동냥 주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올려 달라고 구걸해서 22만원이라니 이것이 바르게 된 정부이고 바르게 된 나라인가? 그래놓고 민주와 인권을 입에 달고 살고 복지비 타령을 하면서 나라를 위해 희생된 사람이거나 참전 용사들에게 이렇게 박절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지금 누구 덕택으로 나라를 보전하고 사는지도 모르는 것이 정치인이고 관료들이니 그럴 수밖에 더 있겠는가?
호주에서는 전쟁에 참전하여 임무를 수행한 참전용사들의 충절을 기리는 날이 4월25일은 안작데이(Anzac Day)이다.
호주사람 치고 친가이던 외가이던 자기 할아버지가 옛날 전쟁에 참가한 참전용사라는 것은 굉장한 가문의 자랑거리라고 생각되어지고 있다.
현충일 안작데이는 호주에서는 가장 중요한 국가적 기념일이며
호주 인들에게 국가관 외에 전쟁이 주는 다양한 의미를 상기시키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는 잊지 않는다,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LEST WE FORGET
안작데이엔 할아버지들이 반짝반짝하게 닦은 훈장을 가슴에 가득 달고 새벽부터 집을 나간다.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억하는 한 안작데이 전설은 세대가 바뀌어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추모행사가 끝나면 오전 9시부터 가슴에 훈장을 단 나이든 참전용사들이 손자, 증손자들의 손을 잡고 안작데이 하이라이트인 시가행진 퍼레이드에 참석한다.
퇴역 참전용사들이 각기 자기가 참전 했던 전투의 부대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을 하는 것을 보면 현대사의 다큐멘타리를 보는 것 같다.
TV는 행진을 생중계하고 시가에는 시민들이 환호를 보내고 국기를 흔들어 축하 한다.
참전군인 등 국가를 위해 희생한 시민을 우대하는 제도는 호주에서 배워야 할 장점이다.
손자들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주요 격전지였던 곳 말레이시아, 퓨니아뉴기니, 싱가폴, 태국, 같은 태평양 전쟁터나 갈리폴리, 베트남 같은 곳에 많이 다녀온다.
호주국가보훈처는 호주로 이민 온 한국의 월남전참전용사 일부를 참전용사 수당 수혜자로 인정, 사망 시까지 연금을 지급하는 상당한 예우를 하고 있다.(사망 시에는 배우자에게 일부지급)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간 참전용사를 배려하지 않는 나라치고 잘 되는 나라가 없다는 역사의 교훈이 세삼 떠오른다.
호주 학교에서는 역사교육을 위한 민속촌 캠프에서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선조들의 참전한 역사와 활약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참전 용사에 대한 예우, 그리고 예우를 구걸하는 한국의 참전 용사 라는 특파원 칼럼을 인용해보자(10,3월 임민혁 특파원)특파원 칼럼. - 어느 참전용사의 마지막길-
임민혁 워싱턴특파원 15일 출근길의 워싱턴 시내에는 일제히 조기(弔旗)가 나부끼고 있었다. 정식 기념일도 아닌 이날 조기가 걸린 것은 지난지난 2010,2,27일 세상을 떠난 한 노병(老兵)의 장례식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라디오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위해 특별지시를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프랭크 버클스(Buckles)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110세를 일기로 사망하기 전까지 1차 세계대전(1914~18년)에 참전했던 미군 중 최후의 생존용사였다.
하지만 그는 흔히 말하는 전쟁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1917년 16세의 나이로 입대, 프랑스 서부전선 후방 배치, 1년 남짓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근무한 것이 전부다. 그의 군(軍) 이력은 이게 전부다. 전투 현장에는 가본 적도 없다. 당연히 부상을 당하지도 않았고, 무공훈장도 없다.
그럼에도 이날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은 여느 국가적 영웅의 그것 못지않게 성대했다. 국방부가 직접 주재하며 최고 격식을 갖췄고 수천 명의 추모 인파가 몰렸다. 장례식 시작 2시간 전에 식장에 도착한 기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못 들어간다. 는 말을 들어야 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함께 조문을 한 것은 나중에 TV를 보고 알았다. 군번 15577번, 상병 전역. 버클스는 이날 이렇게 미국 최초의 육군 대원수이자 1차 세계대전 때 유럽원정군 총지휘관이었던 존 퍼싱 장군 옆자리에 안장됐다.
고향인 웨스트버지니아의 농장에서 조용히 노년을 보내던 버클스는 부시 행정부 시절 참전용사들에 대한 재조명이 본격화되면서 명사(名士)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백악관·의회·국방부 등이 그를 초청했고, 학교에서도 살아있는 역사책의 강연을 듣기 위해 앞 다퉈 그를 모셨다.
영국의 국방장관은 농장까지 직접 찾아와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그의 집에는 각지에서 감사의 편지가 쇄도했다.
그는 108세 때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무슨 전쟁영웅도 아닌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게 고마워 손이 떨려서 더 못쓸 때까지 사인을 해서 답장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미국민들의 이런 관심과 애정을 버클스 개인에 대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470만명의 참전용사, 11만6000명의 전사자, 20만4000명의 부상자 전체, 더 나아가 미국을 위해 희생한 모든 용사에 대한 경의(敬意)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제이 록펠러 상원의원 등은 결국 무산되기는 했지만 참전용사들을 영원히 기억한다는 의미에서 버클스의 장례식을 (알링턴 국립묘지보다도 더 격이 높은) 국회의사당 로툰다(중앙홀)에서 치르자는 서명을 돌리기도 했다.
로툰다 장례식은 미국 역사상 단 32명, 그것도 대부분 전직 대통령들이 누린 최상의 영예다.
버클스의 장례식은 미국이 참전용사들의 자긍심을 살려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제대로 된 나라는 이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