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한번 해볼까 '해봄직 한 디테일'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일본약국이 더 좋다' 보다는 '일본약국에서 이 점은 우리가 참고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좋은 점만 골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연재 마지막인 이번 편에서는 '좋은 점 가운데 이런 것은 우리도 해볼 수 있겠다' 싶은 것들을 모았습니다.
앞서 소개한 대체조제 활성화나 시럽조제기는 지금 국내 도입이 되지 않아 당장 약국이 하려야 할 수 없는 것들이죠.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것들은 약국에서 바로 시도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어떤 제품을 새롭게 판매하거나 조제 약장에 변화를 줄 수 있죠. 아니면 제품 진열을 달리 해보는 것들입니다. 내 약국에 맞게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OTC설명 '자세하게, 더 자세하게'= 약국에서 밴드나 파스를 판매하시는 약사님들, 여러 제품을 진열하시죠. 요즘은 제품도 다양하고 제조사에 따라 종류별로 샘플북을 만들어 약국에 비치하기 좋게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본 약국들은 이보다 훨씬 더 자세한 OTC 정보를 제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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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 진열대 위에는 제품 별 물리적 특성을 표시한 판넬이 있다. |
기억에 남는 건 파스 정보였어요. 팜페어 전시장에서 메이지(明治) 약학대 부스에서 소개한 것인데요, 우리 약국에 응용하면 좋을 것 같아 소개합니다.
파스 제품 별 특성을 아예 표로 만든 것이었어요. 한 축엔 품목을, 다른 한 축에는 신축성, 강도, 점도, 투명도, 부착 시 촉감 등을 나열해 1부터 5까지 또는 ◎, ○, △ 등으로 정도에 따라 수치를 매겨놓았더라고요.
점비액은 뿌려지는 강도, 점도, 시원한 느낌 정도를 세세하게 표시했고요. 다른 일반의약품이나 의약외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자세한 비교표가 있어 제품을 개봉해보지 않아도 환자가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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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의약품 |
환자가 제품을 사간 후 다시 들고와 '원하던 게 아니다. 환불해달라'고 괜한 시비가 붙을 일도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요즘은 온라인쇼핑몰들이 티셔츠 한 벌도 사이즈나 색깔 뿐 아니라 원단의 비침 정도, 두께, 무게, 신축성, 촉감, 안감, 광택 여부 등 세세한 정보를 제공하잖아요.
일본 약국의 제품별 비교분석 표를 보니 파스나 밴드, 붕대, 칫솔 등 의약외품과 일반의약품에 대한 설명이 이보다 못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자세한 물리적특성의 비교표가 있으니 당연히 약사는 제품의 효과나 성분에 대해 환자분들에게 더 자세히 설명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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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의약품마다 자세한 설명을 첨부해 환자 선택에 도움을 준다. |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런 분위기는 셀프메디케이션 활성화의 영향인 듯 합니다. 이 정도로 자세한 정보를 설명서가 대신한다면, 약사 상담이 불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나올 법 한데요, 일본 약국에서 지켜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제품 두세개를 선택해 최종적으로는 약사와 상담하더라고요.
셀프메디케이션이라 해도 약사가 배제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제품이 다양해지고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해진 선택지에 환자는 전문가의 조언이 더 절실해지지 않을까요?
◆약국 밖 손님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디스플레이=우리나라도 옷가게나 헬스&뷰티숍, 마트를 보면 문 밖에 소위 '미끼상품'을 두잖아요.
세일 상품, 제철 상품 등 소비자가 '혹' 할만한 것들을 큰 POP와 함께 두어 다른 제품을 함께 구매하도록 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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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철 황사와 꽃가루 관련 제품(위 사진 세개), 여름 계절상품을 모아 진열한 모습(아래) |
약국은 그렇게 하면 안될까요? 일본 약국은 그런 디스플레이를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약국인 만큼 '미끼상품'이라 하긴 어렵지만, 황사철엔 마스크와 소독제를, 여름철엔 살충제를, 겨울에는 핫팩을 눈에 가장 잘 띄게 배치합니다.
약국 밖에서부터 이 제품이 보이도록(재미있는 POP와 가격 안내까지 한다면 더 좋겠죠) 해 약국을 지나던 사람이 '아, 저거 사려고 했었지' 하며 제품을 집어 약국에 들어오게 만들어요.
이게 꼭 계절제품에만 해당하는 건 아닙니다. 약국이 위치한 지역 특성 상, 큰 병원 앞이거나 노인 환자가 많은 지역이면 '점도 증가제'나 '노인용 기저귀'를 전면에 두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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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물의 점도를 높여주는 토로미. 일본제품(위)과 한국 제품(아래) |
'점도 증가제'는 앞서 소개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에도 출시가 돼있어 지금 약국에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본 약국에서 '점도 증가제'를 보고 누워지내는 환자를 배려한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앉지 못하는 중증환자는 누워서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데, 국물이 흐르지 않고 식도에 잘 넘길 수 있도록 국물의 점도를 높여주는 아이템이 '점도 증가제'입니다.
일본에서는 이걸 '토로미'라고 해서 다양한 제품이 출시돼있는데요, 한 국 기업이 일본제품을 수입, 판매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제품 중 하나로 '오부라이트'가 있어요, 약을 잘 삼키지 못하는 어린이나 노인이 쉽게 복용할 수 있게 돕는 것인데, 오부라이트에 약을 넣고 젤리처럼 굳어지면 쉽게 떠먹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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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젤리 안에 가루약이나 알약을 섞어 떠먹기 좋게 만들어주는 오부라이트 |
정제, 산제 모두 사용 가능하고, 일본에는 과일맛 등 여러가지 맛이 출시돼 특히 아이들도 거부감 없이 약을 먹을 수 있게 해줍니다.
'토로미'같은 경우 저희 약국도 찾는 분들이 많아 인터넷에서 구매해 갖춰놓으려고 합니다. 문전약국이나 노인 환자가 많은 약국이라면 이런 품목도 좋은 아이템이 될 것 같습니다.
노인환자가 많은 지역 약국이라면 이런 제품을 잘 보이게 배치하는 거죠. 환자들은 실생활에 꼭 필요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어 좋고 약국은 매출을 올려 좋은, 윈윈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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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코스약국 |
◆문전 파코스약국 조제약장 엿보니...=지금까지 예시가 '제품 판매'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제 '조제'에 도움이 될 약국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일본은 대부분 PTP 포장을 그대로 조제하기 때문에 조제기나 투약 시스템을 우리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우리처럼 한 포에 모든 약을 포장하는 경우는 전체의 1%정도밖에 되지 않고, 이 경우도 의사가 복약순응도를 판단해 결정할 때만 해당됩니다. 환자가 원할 때는 한 포 포장에 대한 조제수수료 전액을 환자가 부담하고요.
다만 전문약을 관리하는 조제실에 도입해봄직한 점이 있는데요, 파코스약국을 참고하면 좋을 듯 합니다.
도쿄에 위치한 파코스약국은 쇼와대학병원 문전에 위치한 조제전문약국입니다. 처방전은 주로 부인과, 소아과, 내과, 정형외과, 비뇨기과 위주로 OTC 판매는 활발하지 않은 편이지요.
다양한 처방전이 유입되는 만큼, 조제실에도 매우 많은 약들이 있습니다. 1300개 가까운 전문의약품을 관리하는 파코스약국의 특별환 관리법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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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깔별 라벨로 전문약을 구분해놓은 모습 |
이 약국은 약화 사고를 줄이기 위해 여러 용량이 있는 품목은 주의 표시를 따로 해두고, 제형을 구분하는 표시도 따로 두어 약병마다 부착했습니다.
예를 들어 '임부 금기약'은 빨간 라벨, '녹내장 금기약'은 초록 라벨, '천식환자 주의약'은 파란 라벨, '전립선환자 주의약'은 노란 라벨을 붙이는 거죠.
약사들은 약병에 붙여둔 라벨만으로도 조제 전 한 번 더 환자 이력과 약력카드를 체크하게 됩니다.
소아용 약처럼 주의가 필요한 약들은 빨간 테두리를 두른 칸에 보관합니다.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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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테두리를 두른 찬장은 소아용 의약품 진용 공간(노란 박스) |
이뿐만 아닙니다. '소아약 용량 가이드'를 책으로 만들어 조제실에 비치해 조제 약사들이 수시로 참고하고 있었습니다.
'소아 연령에 따른 신장과 체중 계산법'을 조제실 한편에 부착해놓고 소아 처방전 검토할 때 과투약된 건 아닌지, 용량이 위험하지 않은지 한번 더 체크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 하나, 위생 관리를 위한 노력도 엿보였는데, 여자 약사가 약국장이라 그런지 약국 관리가 아주 꼼꼼하고 철저하단 인상을 받았습니다.
소아과 액상제제 약병 세척은 세척 기구를 따로 구비해 이용하고, 전기코드는 바닥이 아닌 벽 윗부분에 설치해 먼지가 쌓이지 않게 했어요. 작은 차이인데도 위생을 위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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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제실에 비치된 자료들. 왼쪽부터 소아약조제가이드, 소아연령별 체중계산법, 액상조제 지침서. |
일본약국에 대해 이것저것 말씀드리다보니 어느새 기사 네편이 모두 끝났습니다.
일본약국 탐방이나 전시회는 저도 올해 처음 가본 것이라 일본약국의 모든 것을 다 기사에 소개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지금 우리나라 약사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일본은 정서적으로 우리와 먼 나라입니다. 하지만 제품 트렌드나 히트 상품이 바로 우리나라에 전해져 문화적으로 우리와 가까운 나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몇몇 독자분들이 지적하신 대로, 일본약국의 모든 것이 우리보다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환자에 대한 배려와 섬세함, 환자가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세세한 불편을 포착해 적절한 제품을 고안하고 개발하는 점은 배워야겠다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약국에서 느끼는 작은 불편을 의약품 공급사인 제약사가 더 관심있게 보고 제품 개발에 반영해주면 좋겠습니다. 약국이 편리하면 환자도 편리해집니다. 약사와 환자를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그 제품을 선호하게 되고, 제약사도 제품 판매가 늘어나고 매출 증대 효과가 있겠죠. 제가 설명한 것들이 약국의 일방적인 요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제약사는 약국과 환자를 배려하는 방향을 고민해주길 바랍니다. 긴 연재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좋은 기회에, 좋은 이야기거리가 있다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