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박스 안에 포장돼 있지 않은 사랑도 있었네!
솔향 남상선/수필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물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선물에는 주고받는 기쁨이 있다. mbc 드라마‘연인’의 주인공‘이장현’,‘길채’를 비롯해서 대개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주는 즐거움보다는 받는 기쁨을 우선시하고 있다. 하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마음을 비우고 사는 사람들은‘주는 기쁨’이 희열이 되고 있다. 성경 구절의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를 제대로 터득한 사람이리라.
지난 14일에 귤 한 박스가 우리 집에 배달되었다. 마침‘귤’이 제철이라 그런지‘하선동력(夏扇冬曆)’이란 말이 떠올랐다. <여름의 부채와 겨울의 새해 책력>이라는 뜻으로, 선사하는 물품이 철에 맞음을 이르는 말이라 하겠다. 제철을 놓치지 않고 상대를 챙기는 센스 있는 분이니 이 얼마나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겠는기!
고맙게 받았다는 감사 전화를 하기 위해 귤 박스의 발신인 이름과 연락처를 살폈다. 보낸 분은 임형종이라고 씌어 있었다. 귀에 익은 이름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봐도 서산여고 재직시 같이 근무한 선생님밖에는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20년 전 모임을 같이 했던 분이기에 입력된 연락처가 있나 해서 핸드폰을 샅샅이 뒤졌다. 허사였다. 생각다 못해 옛날 서산여고 총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헛수고였다.
발신인도 모르고 받은 귤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고민하다가 택배 회사로 전화를 했다. 퇴근 시간이 지난 시각이었는지 통화가 안 되었다. 다음날 택배 회사로 재차 전화를 걸었다. 임형종 씨의 전화번호를 어렵게 알아냈다. 바로 연락을 취했다. 목소리가 내가 알고 있는 지인이 아니었다. 임형종 씨는 귤 농장 주인이었다.
보내온 귤은 임형종 씨 부인이 그녀의 친구로부터 부탁받은 것을 남편을 시켜 발송한 거였다. 말하자면 임형종 씨는 아내의 친구가 부인한테 부탁한 귤 한 박스를 보내준 셈이었다. 귤을 보낸 사람이 누구며 연락처를 알려 달라 해도 자신은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내 신분을 밝히고 간절하게 귤을 보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 달라 간청했다. 마음을 움직였던지 부인한테 얘기해서 아내의 친구가 나에게 전화를 하게 한다며 통화를 마쳤다.
이틀을 기다려도 전화벨 신호는 없었다. 더 이상 기다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형종 씨와 다시 통화를 했다. 임형종 씨 하는 말이 <귤을 보낸 사람 연락처는 모르는데 그 이름은 안다.>고 했다. 누구냐고 물었다. 들어보니 초임지 70년대 덕산고등학교 졸업생이었다. 그것도 내가 담임한 여자 제자였다.
풋풋하고 청순했던 여고생 때 헤어져 지금은 손주들로부터 할머니 소리를 듣는 이순(耳順) 중반의 나이에 들어선 원숙미 넘치는 여인이었다.
제자는 5년도 10년도 아닌, 50년 세월 속에서도 잊지 않고 날 기억해 주고 있었다. 게다가 귤 박스까지 보내왔다. 박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보이는 귤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소중한 정성과 사랑도 숨 쉬고 있었다. 감기에 좋다는 귤 얘기는 어디서 모셔다 들었는지 그걸 먹고 창궐하는 독감 걸리지 말라고 천사의 마음까지 담아 보냈다.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었다. 요즘처럼 삭막한 세상에 자기 가족이나 자식 챙기기도 어려운데 골동품 같은 옛 시절 선생님까지 챙기는 마음이 가상했다.
따뜻한 가슴이, 사랑이, 세상 어떤 희귀보석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포장되지 않은 사랑으로 날 행복감에 빠지게 하고 있었다. 제자가 자랑스러웠다. 그저 느꺼운 감사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당 현종은 총애하던 천하일색 양귀비를‘해어화(解語花)’라 했다. 말을 알아듣는 미인이라 해서 그리 말한 것이다. 양귀비는 얼굴이 예쁜 미인이라 해어화라 했지만 제자는 심신이 모두 아름다운 여인이니‘현대판 해어화’라 해도 되지 않겠는가!.
보통 사람들은 선물 같은 걸 보내면 으레껏 자기 생색내기에 골똘한데 제자는 자기 이름조차 밝히는 걸 꺼려했다. 그 심성이 천연기념물 급이요 훈장감이라 하겠다.
‘귤 박스 안에 포장돼 있지 않은 사랑 있었네!’
제자가 보낸 귤 박스
올망졸망 크고 작은 덩이는
옛 담임 잊지 못하는 감사와 사랑이었고 .
달콤한 향과 내음은
독감 주의하라는 사랑의 메시지였네
포장돼 있지 않은 감사와 사랑!
제자의 깨우침이었네.
거기엔 포장돼 있지 않은
하늘의 사랑도 부처님의 자비도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