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과 섬진강 자락 삶의 숨결을 찾아
(1)
구례군 답사자료
지리산을 뒷동산 삼고 섬진강을 앞 개울 삼아 자리한
곳. 구례. 현재 구례의 마을들은 이산의 계곡 사이사이에 만들어진 개울과 농토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삼한의 한 소국으로 이야기 되긴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구차례현 일명 구차지현이라 불리었으며, 삼국 통일 후 구차현으로 부르다 경덕왕 16(757년)에 전국의
지명을 한식으로 바꾸면서 구례현으로 고치고 곡성에 속하게 하였다. 후삼국때는 견훤을 지지하였던 곳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고려초(1018년)에는 남원부로 이속시키고 인종때 처음으로 감무를 두었다. 고려말 왜구의 침범으로 접전이 있어 석주관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조선 건국 후 현감으로 올렸으나, 세조때 순천부로 이속되었다가 연산군때 연산군의 학정에 대한 비판과 반대에 역모 고을로
지목되어 현을 폐지하고 유곡부곡이 되어 남원에 속하게 되었다. 1507년 다시 구례군으로 복호되었다. 선조 때 남원부에 귀속되었다가
숙종때에 진이 운봉으로 옮겨졌고, 전라 좌우도 분할로 좌도에 포함되었고 고종 때 다시 구례군으로 남원에 속하다가 1897년에 남원의 4개지역을
포함한 구례군으로 원상되었다. 1961년 구례읍으로 승격되면서 현재 행정구역상 1읍 7개면으로 조직되어 있다.
비교적 험한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타 지역과의 교류가 쉽지 않고 이런 지세는 역사적으로 어려울 때 사람들이 숨어드는 곳으로 위치하게 되었다. 전남의
적은 군에 속하며 인구밀도도 낮은 편이다. 2.
지리산
신라 5악의 남악으로‘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하여 지리산(地理山)이라 불렀고, 또‘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며, 옛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 신비함만큼이나 많은 이름으로 남아 있는 어머니품 같은 곳이다. 지리산에 올라서서 내려보며 이야기를 해야
쉽겠지만......
1만 5천봉의 우리나라 제일의 명산으로 이야기되며, 백두대간의 남쪽 끝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단일 산악으로
품이 너른 영산이다. 큰 산은 15개의 큰 골짜기 사이로 들과 마을과 사람과 사연을 모듬고 있다. 산의 형세가 누운 소와 같은데 구례쪽으로
머리를 하고 있어 구례쪽을 '내지리' 경상도쪽을 '외지리'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높이 1915m의 천왕봉을 주봉으로 반야봉과
노고단이 지리산 3봉으로 꼽힌다. 그런 산은 영, 호남의 경계상에 자리해 남부지역의 지붕과 같으며 3도 5시·군, 15읍·면에 걸친 대략
320㎞, 800리에 이르는 산이다. 대부분이 산악으로 계곡 주변에 만들어 진 농지는 겨우0.3%에 불과하다. 기온의 일교차와 한서차, 표고차가
큰 편이고, 강수량도 많은 편이다. 얼음은 10월 중순 쯤 얼고 4월말 경에 녹으며, 단풍은 9월말부터 들기
시작한다.
야생동식물의 서식에 맞는 환경으로 1,300여종의 식물과 421종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세석고원의 철쭉군락,
반야봉의 구상나무군락, 천연기념물인 사향노루, 하늘다람쥐, 반달가슴곰, 수달 등이 관심을 갖게 한다.
현재의 지리산은 과거의
땔감과 전쟁의 피해에서 회복되어 숲을 이루고 있지만, 아직도 몰래 희귀나무나, 분재를 캐가거나 수액 채취로 몸살을 앓고 있기도 하다. 국립공원에
맞는 대책의 강구가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산 골 깊은 곳에 도를 닦는 그들은 답을 알지도 모르겠다. 1967년에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어
관리되어 오고 있다.
지리산 10경 ①
노고운해(老姑雲海):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구름 바다 주변의 철쭉, 진달래와 콤비 ② 직전단풍(稷田丹楓): 피아골 단풍이 10월 중순이
절정으로 은근함이 멋, 삼홍의 명소 ③ 반야낙조(般若落照): 반야봉에 앉아 서북병풍이 황금빛 그림자 드리우면 호접한
사념의 세계 맛봄 ④ 섬진청류(蟾津淸流): 300리 물줄기의 지리산 푸른빛이 어울어지고
은빛백사장의 거룻배 ⑤ 벽소명월(碧沼明月): 벽소령의 한(恨) 머금은 듯 적막한 밝은 달빛 ⑥ 불일현폭(佛日懸瀑): 쌍계사 뒷 계곡의
동양화 같은 포말 날리는 2단 폭포와 주변 절경 ⑦ 세석철쭉(細石정 ): 오뉴월의 연분홍 철쭉 바다의 낭만적 세석고원 ⑧
연하선경(烟霞仙景): 연하봉의 이끼 드리운 기암괴석과 꽃, 그리고 트인 전망 ⑨ 천왕일출(天王日出): 천지개벽 같은 오색빛의
회색구름바다를 연출하는 동틀녘 ⑩ 칠선계곡(七仙溪谷): 흰 바위 위로 시퍼런 계류가 흐르고 떨어지는 지리산 최고의
계곡
3.
섬진강
다른 강들과는 달리 남류하여 배역의 강으로 찍힌 섬진강은 원래는 사수강, 사천, 두치강으로
불렀다. 지금의 이름은 고려 우왕 11년에 왜구들이 경남 하동 쪽에서 강을 건너 광양 쪽으로 침입했을 때의 일화로부터 기인한다. 즉 이때 진상면
섬거에 살던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8킬로미터나 떨어진 지금의 다압면 섬진마을 나루터로 떼를 지어 몰려와 진을 치고 울부짖어 왜구들이 놀라 도망쳐
광양을 피해갔다는 것이다. 해서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을 붙여 섬진강이 되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두꺼비 강이 되었다.
이런
지리적 상황은 이후에도 이곳은 왜구의 주요 침입로가 되었고 정유재란시 왜구의 전라도 공략으로 많은 피해를 본 곳이다. 이는 섬진강변이 남원
전주를 거치는 유일한 길이란 말이고 강 좌우 연안 산에는 산성들이 만들어 지고 여러 곳에 포구와 진이 자리하고 있다. 옛길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용되는 것이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에서 발원(약간의 이견은 있음)하여 섬진강댐에 이르게 되며, 남동류하여
순창에서 오수천, 곡성읍 경계에서 요천, 압록에서 보성강 등의 지류와 합류하여 광양시와 하동군에서 남해와 만나는데 68개의 물줄기가 모이는데
희고 고운 모래가 유명하다. 마지막 화개천의 물이 합하는 곳에 산의 물산과 수산물이 만나는 큰장 화개장이 들어서기도 했다. 이곳 아래가
섬진나루로 1932년 다리가 건설되기 전까지 영·호남의 주요 교통로였다.
섬진강은 동쪽에는 낙동강, 서쪽에는 영산강과 동진강,
북쪽에는 금강과 만경강유역이 접하고 있다.(문화의 교류와 밀접) 유역면적(4,897㎢)과 본류의 길이(225km)로 볼 때 남한에서는 한강과
낙동강, 금강에 이어 4번째로 크고 긴 강이다. 하지만 서울과 반대로 흐르는 강이라 밉살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
댐인 섬진강댐이 1929년 건설되어 운암호(옥정호)가 만들어졌으며, 섬진강 지류인 보성강에 주암댐, 동복댐, 보성강댐, 상사댐이 건설되 주암호,
동복호, 보성호, 상사호가, 섬진강 하류인 광양에 수어호가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섬진강은 먹어도 제대로 위장에 오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물은
줄고 오염물질은 늘어 예전의 섬진 청류는 지금 상상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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