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 김만중 선생의 유배지인 남해의 노도를 찾았는데
이효준의 수필집 <나비타고 청산가세>를 다시 읽으면서 책 속에 소개된 노도에 가고 싶어서였다
남해군은 지금 노도를 문학의 섬으로 만들려는 공사를 수년 전부터 하고 있는데 금년중에는 마무리가 된다고 한다
남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상주/미조 행 군내버스를 타고 벽련마을에서 하차를 한다
오늘이 남해장날(2.7장)이라 장을보고 돌아가는 많은 노인들이 타고 내렸지만 2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리니 저기 바다 건너 노도가 모습을 보인다
노도는 원래 이름이 삿갓섬이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이 섬의 나무로 노를 많이 만들었다고 해서 노도(櫓島)로 불리고 있다
버스정류장 옆 카페 옆으로 벽련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벽련마을
碧蓮, 말 그대로 짙고 푸른 연꽃, 3천년마다 핀다는 우담바라의 마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마을이 점점 가까워지는데 마을을 지키고 서 있는 저기 저 커다란 나무들이 인상적이다
마을 입구의 식당
마을에는 펜션 하나와 여관 한 곳, 몇몇 민박집 외에 식당은 이 집 말고는 눈에 보이지를 않는데
식당의 홍보 간판이 재미있다
마을 선착장 앞에는 팽나무 한 그루와 느티나무 두 그루의 노거수들이 마을의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 있는데
그 옛날 마을 방풍림으로 심었던 나무들을 이제는 사람들이 이 나무들을 보호하고 있다
선착장에서 보이는 바로 앞의 노도
<구운몽>의 작가 서포 김만중 선생이 3년간 유배 생활을 하던 중 56세의 일기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한 곳이다
저기가 바로 <사씨남정기>와 <서포만필>의 산실이다
마을 바로 앞에 있는 선착장은 작년 여름 태풍 피해로 보수공사 중이라
건너편 선착장을 이용해야 한다
12시가 조금 넘자 정기 도선인 노도호가 들어 온다
노도호는 2013년 8월에 취항하여 하루 네 차례 벽련과 노도 사이를 운항하고 있는데
저 배가 없던 예전에는 어선이나 낚싯배를 타고 들어갔다고 한다
선착장에서 바라 본 벽련마을
저기 보이는 저 선착장이 보수공사 중인 노도호 전용 선착장이다
12시30분에 벽련선착장을 출발한 노도호는 5분여 걸려 노도에 도착을 한다
배로 불과 5분 밖에 걸리지 않지만 역사 속에서는 산술적으로 잴 수 없는 하염없는 거리였다
승객은 남해장을 보고 오는 할머니 몇 분과 공사관계자 한두 명 등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노도 선착장에 내리면 제일 먼저 반기는 조형물
서포는 그의 저서들을 모두 한글로 썼는데
조선의 3대 고전문학가라 하면 송강 정철과 고산 윤선도, 서포 김만중인데
세 사람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사대부 층에 있으면서 한글로 작품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선착장에는 노도 마을회관과 노도항 대합실이 있고, 마을은 조금 더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회관 옆의 유허비
유적지로 가는 길은 노도항 대합실 바로 옆으로 올라가도 되고
그 옆의 완만한 길로 가도 된다
마을 초입의 무더위쉼터와 팽나무 고목
그 옆의 옛 분교터에는 지금 공사현장 사무실로 쓰고 있는 건물이 있는데
공사가 모두 끝나면 노도민속체험관으로 사용 할 것이라고 한다
유허지로 가는 길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전경
2013년 9월 당시엔 13가구 18명이 거주하고 있었다는데
오늘 섬으로 들어오면서 배 안의 주민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11가구만 살고있다고 한다
공사가 아직 한창인 듯 공사자재를 실은 트럭이 오가는 길은
배관공사 후 포장도 아직 마무리가 되질 않았다
갈림길
왼쪽 아래길은 초옥터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윗길은 허묘터로 가는 길인데
먼저 허묘터로 간다
여기에서는 오른쪽 계단길로 간다
(평탄한 길은 상수도시설 집수탱크로 가는 길이다)
계단을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꺾이는 지점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서포가 허구한 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바라보았을 뭍의 풍경이 펼쳐 진다
바다 건너 오른쪽의 조그만 산은 천황산인데, 그 뒤로 보이는 큰 산은 금산인지 확실하지 않다
줌으로 당겨 본 산 정상
금산의 상사바위를 닮았지만 어딘가 다른 모습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않는 듯 잡초가 무성한 긴 계단길 끝에
서포의 허묘터가 있다
선생이 죽기 전에 직접 묏자리를 정해둔 곳이라고 한다
서포 선생이 돌아가신 후 숙종 18년(1692년) 4월부터 9월까지 묻혔던 곳이다
서포는 숙종의 정비인 인경왕후의 작은 아버지로서 장희빈과 관련된 두 번의 상소로
처음에는 평안도 선천으로 유배를 갔다가 불후의 명작 한글소설인 <구운몽>을 집필하였고
그 다음 왕세자 책봉과 관련된 상소 끝에는 절해고도인 노도에 위리안치된다
위리안치 중에서도 그 고통이 극심한 가극안치(가시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는 형벌)에 처해 진다
허묘터를 둘러보고 다시 긴 계단길을 내려가서 초옥터로 향한다
초옥터까지의 거리가 200m라 멀지 않는 거리다
첫댓글 남해 호구산 산행 할 때 서포 문학공원이 있던데
이제 유래를 알겠네요~~...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봄 날의 섬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