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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꼬의 집에 있는 베드로는 눈물을 머금고 있다
-* 톨레도 대성당Catedral 聖物室 *-
톨레도 대성당 성물실
수수하던 액자가 바뀌었네!
대성당 성물실에 소장되어 있는 '베드로의 눈물' 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정한 후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엘 그레코
성 베드로Saint Peter 1610 - 1613
Painting, Oil on canvas / 209 x 106 cm
참회하는 베드로The Repentant Peter 1600
Oil on canvas / 93.6 x 75.2 cm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Oil on canvas 102 x 84 cm
스페인 최초의 르네상스 양식 건물로 알려진 따베라 미술관은,
따베라 추기경에 의해 설립된 과거 병원 건물로, 원래 따베라 병원(Hospital de Tavera)
또는 산후안 바우띠스따 병원이라 불리우던 곳으로 지금은 미술관으로 되어있다.그레꼬, 리베라, 띤똘레도, 띠치아노 등의 작품은 물론 16-17세기의 타피스트리와 가구도 볼만하다.
-* 엘 그레코의 집. 2층 화실*-
엘 그레꼬의 집에 있는 베드로는 눈물을 머금고 있다
-* 톨레도 대성당Catedral 聖物室 *-
톨레도 대성당 성물실
수수하던 액자가 바뀌었네!
대성당 성물실에 소장되어 있는 '베드로의 눈물' 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정한 후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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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도 레니, <참회하는 베드로>, 1637년경
작가 귀도 레니(Guido Reni, 1675-1642)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10여년의 도제 과정을 거쳐 1595년 무렴 카라치 아카데미 (Carracci Academy)에 가입하였다.
여기서 카라치(1560-1609)와 라파엘(1483-1520)의 영향을 받았다. 그 점에서 그의 그림의 토대는
고전주의에 있었으나 바로크적인 선구적 역동성을 열어가고 있음도 사실이다. 어느 경우이건
그는 균형과 비율에 맞추는 이상미를 추구하고 있고 그의 선과 색은 부드러우나 행동은 깊이를 담았다.
이 그림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다음의 견딜 수 없는 회개와 비통의 무게를 담고 있다.
얼마나 괴로운지 몸은 수척한 듯하고 눈은 깊숙이 패여 있다. 자세히 보면 주님에게 용서를 비는
그 우러름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얼굴의 형태까지 일그러져 가고, 얼굴에는 어부의 노래,
갈릴리 바닷가의 거친 바람, 그동안 살아온 삶의 회한들이 모두 얽혀있다.
한 손은 오른쪽 목덜미를 괴고 또 한손은 가슴을 안으면서 주님께 용서를 비는 자세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이 그를 사랑하고 계심을 잘 알고 있다. 베드로는 아마
내가 너를 몇 번이나 사랑해 왔더냐라는 음성을 곧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고야 Peter Goya <베드로의 참회> 1825.
29X25.5cm 워싱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
세속화될 때마다 교회는 본능적으로 이곳으로 회귀하려 했다.
사실 베드로가 이런 엄청난 고백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은 뜻밖이다.
그리 영민한 제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알려주신 것이다.
전체적으로 짧은 체형, 굵고 거친 손길, 그리 세련되지 않은 베드로…
그러나 훨씬 친근하다.
바위(베드로) 위에 주님이 주신 천국의 열쇠를 놓고 하늘을 우러러 손을 모았다.
큰 눈에는 눈물 한주먹 들어 있으리라.
확신과 의혹, 용기와 두려움이 때때로 교차하는 신앙의 삶에서
베드로는 우리에게 새 힘을 준다, 그도 연약했었기에!
루드비코 카라치 Ludovico Carracci (1555~1619)
<베드로의 울음>1613~15
캔버스에 유채 / 153X112cm / 프린스턴, 바르바라 존슨 컬렉션
루두비코 카라치가 그린 '베드르의 울음'은 닭이 옆에 그려져서 지금 막 그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닭이 울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슬피 우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허공에 내민 손가락과 간절한 눈빛에서 그가 온몸으로 후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화면 아래 쪽 투박한 어부의 발 옆에는 베드로를 상징하는 천국의 열쇠가 어렴풋이 보인다.
화가는 화면의 시선을 베드로에게만 집중시키기 위해 배경은 아예 새까맣게 처리해 버렸다.
루드비코는 볼로냐의 유명한 카라치 가문이 배출한 3명의 걸출한 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이들은 트렌트 공의회 이후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항하기 위해 가톨릭의 새로 정립된
교리와 이념을 그림으로 그려낸 대표적인 가톨릭 개혁 화가들에 속한다.
자칫 이념을 대변하는 작가들의 그림들이 설득력에 치중하다 보면 예술성에서
뒤질 수도 있지만 루드비코의 이 작품은 성 베드로의 본질을 참으로 인가적이고, 절실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베드로의 후회는 인간의 나약한 속성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베드로의 눈물>The Tears of St. Peter, also called Repenting of St. Peter.
조르쥬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Tour / c. 1645-50.
Oil on canvas. The Cleveland Museum of Art, Cleveland, USA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는데, 바로
이 그림에서 베드로의 동그랗게 떠진 눈은 그 기억으로 인해 소스라침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수탉은 자신의 일을 다 한 듯이 베드로와 달리 흐트러짐 없이 당당하게 앉아 있다.
수탉이 앉아 있는 밑으로 촛불이 켜진 등이 놓여 있다.
라 투르의 다른 작품들에서 촛불이 노출돼 있는데 비해, 여기서 촛불은 가려져 있고
또 등 안에 들어 있다. 촛불이 등경 위에 놓여 세상을 비추지 못하고
등 안에 가려져 놓여 있는 것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붙잡히심을 의미한다.
이 등은 중세의 성화들에서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의 손에 들려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는데,
이는 그의 배신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셨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빛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촛불은 여전히 어둔 밤을 밝히는 빛이 되는데,
여기서는 무엇보다 베드로의 발과 다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베드로의 발은 맑고 깨끗하다.
이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요 13:10).
발만 씻으면 온몸이 깨끗하다는 주님의 말씀에서 이제 그의 전부가 정결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용서하신다는 의미이고, 그가 변화되어 세상에 나가
주님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전도의 발이 될 것을 뜻한다.
베드로의 왼쪽에 그의 어깨에서부터 바닥까지 재를 치우는 긴 삽이 놓여 있다.
그것은 회개 이후 베드로가 해야 할 과제를 말해 준다. 청소 삽은 촛불이신 주님께서 세상을 밝히고
복음으로 불태우고 나면 베드로가 그 남은 재들을 쓸어 담는 역할을 한다는 뜻으로서
주님의 사역에 대한 베드로의 보조적 역할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것보다
복음 전도에서 주님의 역할이 주도적임을 보여준다.
삽이 두 개 있는 것은 다른 사도들보다 베드로의 몫이 배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그림에 묘사된 베드로의 모습은 중세 천주교회가 흔히 그려온
황금으로 된 천국 문의 열쇠를 손에 쥔 위풍당당한 모습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
여기서 베드로는 한낱 배신자요 죄인이며, 회개자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하지만 그런 베드로의 모습은 권위로 포장된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귀하게 보인다.
베드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이제 회개와 눈물로 복음 전도자와 순교자의 길을 걷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된 것이다.
베드로의 눈물Tears of St. Peter. (Copy of the lost original).
Georges de La Tour(조르쥬 드 라 투르) 1646-1648.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램브란트 <회개하는 베드로> 1631.
캠버스에 유화 / 59 X49cm
이 그림의 특색은 무엇보다도 땅에 떨어진 열쇠다.
이것은 20여년 전 렘브란트가 의식적으로 경쟁하고자 한 루벤스의 그림과 사뭇 대조된다.
루벤스는 베드로의 오른손엔 하늘을 향한 열쇠를, 왼손엔 땅을 향한 열쇠를 들고 있게 했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베드로는 열쇠를 차마 손에 들고 있지 못한다.
그는 지금 회개하는 중이다. 열쇠를 쥐었던 손은 마주잡고 있다.
그는 지금 위대한 사도 베드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몸에 비해 크게 그려진 두 손은 회개의 크기를 보여준다.
루벤스Rubens Pedro Pablo(Peter Paul)플랑드르 화가
성 베드로 Saint Peter/ ca,1611/ 107X82cm
딕 / 참회하는 베드로
구에르치노Guercino/ 성모 마리아 앞에서 눈물 흘리는 베드로
St Peter Weeping before the Virgin , 1647, Oil on canvas, 122 x 159 cm,
르브르미술관 Musée du Louvre, Paris ,

첫댓글 상상력을 키우는 작품입니다! 그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고.........
권신자님 감사합니다. 몇 년 전에 여행기를 올릴 때는 포토샵을 할 줄 모를 때였지요. 이제 사진의 명암조절과 트리밍을 거치고 빠졌던 것을 보태어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것인데도 관심을 가져주시니 정리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추신) 베드로의 눈물은 3개가 있는데 어느 사진이 어느 곳에 있는지 혼동하여 올리시는 분들이 눈에 띄더군요.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스페인 사람으로 가우디의 성모자 성당 옆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틀고 싶습니다.
그 성당의 청소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문화의 충격에 깊이 빠졌던 보름간의 여행,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베드로의 눈물을 보여주신 님의 친절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