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2011년 <조선>의 봉산탈춤과 남북한의 봉산탈춤 자료 최근 발간된 북한의 월간 화보 <조선>은 다음의 ‘봉산탈춤’이라는 글을 실었다. -오늘 조선인민들속에서 널리 장려되고 있는 봉산탈춤은 선조들이 남긴 민족문화유산의 하나이다. 옛날부터 해서(황해도 일대) 지방의 장터들에서 1년에 한번씩 탈춤놀이가 벌어졌는데 그중에서도 봉산은 탈놀이가 제일 성행한 곳이었다. 그래서 봉산탈춤이라고 부르게 되였다. 19세기 말부터 봉산탈춤은 해서의 대표적인 탈놀이로 발전하였다. 봉산탈춤은 12개장면으로 구성된것이 알려지고있다. 사용되는 가면은 각이한 신분과 개성을 가진 사람, 짐승 등을 형상한것이다. 의상은 흰바지에 저고리는 붉은색, 푸른색이며 남색으로 된 등거리, 전복 등으로 화려하다. 여기에 쓰이는 악기는 피리, 대금, 해금, 장고, 북 등이고 음악은 굿거리, 타령곡, 념불곡 등을 연주한다. 탈춤의 배역을 선정하는 일은 모갑이 직접적으로 담당하였다. 모갑은 탈춤놀이를 감독연출하는 총책임자, 제일가는 기량자로서 그 자신이 나이가 먹은 총각으로서 인민을 대표하는 취발이와 같은 가장 어려운 역들을 맡아수행하면서도 개별적인 탈군들의 능력과 수준을 가늠하고 그에 따라 배역을 분담하였다. 봉산탈춤은 대사와 춤, 그리고 노래가 결합된 놀이로서 매 장면마다에서의 춤 종목들과 재담들은 다채롭고 개성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민들의 행복에 대한 지향과 봉건통치배들의 부패타락한 생활을 풍자하고 그에 대한 항거의 정신을 반영한 진보적인 내용과 함께 인민적인 춤동작도 들어있다. 봉산탈놀이는 오늘 명절들에 즐겨 진행되는데 약동적이면서도 활달한 춤동작과 경쾌한 선율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랑만을 안겨준다. - 여기서 ‘봉산탈춤’에 대한 과거의 자료들과 남한의 자료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 북한에서 발간된<우리 나라 민속무용>은 중부지방 민속무용으로 황해도의 고창춤, 활춤, 손맵씨춤, 박판춤, 강원도의 회양닐리리춤, 어랑타령춤 등이 있고, “우리 나라 탈춤의 3대기둥”(59쪽)은 ‘황해도의 탈춤, 경기도 산대놀이춤, 남해안지방의 오광대놀이’이며 황해도 탈춤은 봉산탈춤, 강령탈춤, 해주탈춤, 사리원탈춤, 재령탈춤, 기린탈춤, 서흥탈춤 등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 봉산탈춤은 ‘황해도 봉산지방’을 중심으로 연희되었던 민속무용으로, “황해도의 장수산, 정방산, 경암산과 기름진 재령벌이 펼쳐진 넓은 땅에 오랜 뿌리를 내리고 추어온것으로서 19세기말 20세기초 이래로는 황해도의 탈춤의 최고봉을 이루었다.”(위의 책, 60쪽)고 했다. 북한은 황해도를 1954년 10월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분리했는데, 봉산군은 황해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봉산탈춤놀이’의 “탈춤부분에서는 상좌 춤, 팔목춤, 법고춤, 사당춤 등이 있고 가면극부분에는 로승, 량반, 미알 등 독자성을 띠는 과장이 있다. 또한 때에 따 라 사자춤이 과장들사이에 막간격으로 삽입되기도 한다. 봉산탈춤에 나오는 탈 인물은 말뚝이, 상좌, 먹중들(8명), 가사 당(녀자사당), 거사, 로승, 소무들(2명), 신장사, 취발이, 맏량반, 둘째 량반, 종가집도련님, 포도비장, 미알할멈, 미알령감, 남극로인, 룡산삼개집 기타 원숭이이다. 봉산탈춤도 황해도지방의 다른 일반 탈춤과 같이 량반계급에 대한 신랄한 조소와 풍자 그리고 부패한 봉건사회에서 불행과 고통을 겪는 하층인민들에 대한 지지와 동정을 반영하고있다. 특히 탈춤에 나오는 사회의 여러 계층의 인물탈과 대사들은 무너져가는 낡은 봉건제도의 부패상과 착취계급에 대한 당시 인민들의 증오심과 그들과의 대립에서 승리하는 인민들의 슬기로운 모습을 해학적으로 잘 보여주고있다. 봉산탈춤의 률동에서는 활달한 팔놀림과 높은 조약, 여러가지 성격적인 동작으로 탈춤을 아주 기백있고 흥겨운것으로 엮어나가는것이 특징으로 되고있다. 봉산탈춤은 음력 4월 8일과 5월 5일의 민속명절날에 크게 진행하군하였다.”(위의 책, 61쪽)고 한다. <우리 나라 민속무용>은 봉산탈춤 놀이가 “11과장으로 구성(61쪽)”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화보 <조선>(주체90(2001)년 3호)에는 “12개 장면으로 구성된것이 많이 알려지고 있다.”고 했다. 이는 북한이 야외에서 연희되는 봉산탈춤놀이(《조선》, 35쪽, “봉산탈놀이”)가 무대에서 공연되는 “민속무용 봉산탈춤”으로 탈바꿈하면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1958년 6월 25일에 발간된 <조선 민속 탈놀이 연구>(저자 김일출, 과학원출판사)는 ‘봉산탈놀이’의 대본이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1)봉산 탈 보존위원회 리 동벽의 대본 : 11과장. 일제 시대인 1940년대의 대본이지만 8.15 이후에 정리된 것. (2)리 장산의 대본 : 7과장 (3)박 성찬, 김수정의 대본 : 12과장’(151쪽)이다. 다음은 <우리 나라 민속무용>의 ‘11과장’(61~69쪽)이다. “제1과장. 상좌춤 : 상좌춤은 흰 장삼에 붉은 가사를 어깨로부터 반대쪽허리에 사선으로 드리워 매고 흰 고깔을 깊숙이 쓴 상좌 4명이 먹중(먹으로 그린 가면을 쓰고 등거리만 입은 중)에게 업히여 탈판으로 나오는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탈판으로 나온 상좌들은 먼저 잡이(악공)들에게 인사하고 이어 관중들에게 인사한다. 악공들이 느린 령산회상을 주악한다. 4명의 상좌는 그 음악에 맞추어 느린 동작으로 춤을 춘다. 반주음악이 타령장단으로 넘어가면서 춤은 점차로 활기를 띤다. 굽혔던 팔을 뻗치면서 장삼을 휘뿌리기도 하고 넓은 소매를 너울거리면서 탈판을 빙빙 돌아가기도 한다. 봉산탈춤에서의 상좌춤은 경기도 산대놀이에서처럼 등장인물전체가 나와서 복을 비는 고사(미신적인 관념에서 신령에게 음식을 차려놓고 일이 잘되게 해달라고 비는것)를 하는것과 같은 종교적인 장면은 없고 처음부터 춤을 추는것으로서 그 어느 탈춤보다 춤가락이 다양한것이 특징이다. 제2과장. 팔목춤(8명의 먹중춤) : 팔목춤은 봉산탈춤에서 가장 특기가 있는 춤장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에서는 8명의 먹중들의 춤이 차례차례로 진행되면서 자기의 특기를 시위하는데 어떻게 보면 탈춤의 개인경연과 같은 인상을 준다. 팔목춤의 춤가락들을 보면 탈을 가리웠다 내미는 동작, 팔 흔드는 동작, 뿌리치는 동작, 뛰는 동작, 장삼휘돌리는 동작으로 되여있다. 탈을 가리웠다 내미는 동작은 두팔 또는 한팔로 탈을 가리웠다 내밀기를 하며 팔흔드는 동작은 앞, 뒤, 옆, 머리우에서 진행된다. 장삼뿌리치기는 옆으로 한손 또는 두손으로 뿌리치기도 하고 뿌리치며 돌기도 한다.(이때 몸을 180도로 돌린다.) 다음 장삼휘돌리기는 앞, 옆, 아래자리에서 반굽이치기, 휘굽이치기로 보다 경쾌한 률동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동작들은 가볍게 뒤발 차며 걷기와 앞으로 굽혀들며 걷기, 두발모아걷기 또한 거퍼달리기나 엇뛰기, 한무릎굽혀들고 공중회오리 등 여러가지 하체동작과 결합됨으로써 률동이 보다 풍부하고 씩씩하고 활달한 감을 자아낸다. 특히 팔목춤의 첫 목춤에서 그러한 특징이 잘 표현되고있다. 제3과장~제7과장 : 제2과장 팔목춤에 이어 제3과장 법고춤이 벌어진다. 이 춤장면에는 8명의 목춤군들이 법고, 장고, 꽹과리를 들고 저마끔 자기의 재능에 따라 한바탕 즉흥무를 춘다. 제3과장 법고춤은 제2과장 팔목춤에 종속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빼기도 하였다. 제4과장 사당춤도 제3과장 법고춤과 같이 봉산탈춤 전과장에 삽입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였다. 녀사당은 붉은 치마에 풀색저고리를 입고 머리는 낭자를 틀고 가마에 실려나온다. 탈을 쓴우에 패랭이를 쓰고 등거리만 입은 먹중 하나가 시대기짐(사당의 행장)을 짊어지고 나온다. 나머지 3명의 먹중은 교군군(지난날 가마를 메는 사람)으로서 탈판가운데 나와서있는다. 먼저 3명의 거사가 장고, 쇠, 태종을 들고 소고장단을 칠 때 4명의 거사가 교자(사람이 타는 가마)를 메고 춤을 추면서 나온다. 여기에서 시대기짐을 진 거사(녀사당의 남편)와 다른 거사들사이에 녀사당을 놓고 서로 시기하고 경계하는 대사와 행동이 벌어진다. 6명의 거사가 거짓으로 시대기짐을 진 거사를 내쫓아버리자 녀사당은 그들과 어울려 악기를 타면서 《놀량사거리》를 부르며 막춤을 춘다음 퇴장한다. 제5과장 로승춤(늙은 중춤)과 제6과장 신장사춤, 제7과장 취발이춤, 이 세과장에서는 봉건사회의 특권계급의 하나인 이른바 승려의 위선적인 내면생활과 하층계급인 신장사와 취발이의 생활, 로승과 신장사, 취발이와의 대결을 보여준다. 제8과장. 량반춤 : 량반춤에서는 세 량반과 머슴군인 말뚝이와의 대립관계를 통하여 착취계급의 부패성과 그들의 몰락의 불가피성을 폭로하고있다. 우선 머슴군인 말뚝이의 형상에서 착취계급에 대한 당시 인민들의 증오사상과 반항정신이 력력히 표현되고있다. 또한 더러운 《창병》에 걸려 쌍언청이가 된 입술과 문드러져 떨어진 코, 미구에 썩어없어질 몰골로 형상된 량반들의 탈분장이 그들의 타락한 생활과 몰락과정을 잘 보여주고있다. 보기만해도 징글스럽고 흉물스러운 얼굴을 하고서도 거만하게 부채질을 하면서 말뚝이를 구박하고 천대하는 량반들의 언행은 참으로 증오스럽기 이를데 없다. 그러나 량반춤장면에서 주인공으로 되고있는 말뚝이는 세 량반놈이 그처럼 학대하고 구박하여도 오히려 그놈들을 골려주고 부아를 돋구어주어 그들이 어쩔수 없이 곤경에 빠지도록 한다. 또한 말뚝이는 량반의 명색에 대하여 조롱하는가 하면 세 량반놈을 향하여 식혜먹은 고양이대가리 때리듯, 제사법먹은 개대가리 때리듯, 서푼짜리 낫벼리듯 했으면 좋겠다는 증오에 찬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사람들에게 통쾌감을 금할수 없게 한다. 이처럼 말뚝은 세 량반놈들에게서 구박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신랄히 조소하고 질책한다. 말뚝이와 량반과의 대립은 춤동작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이때 포도비장이 등장하여 웬놈이 소무하고 춤을 추는가 하고보니 그것이 곧 량반이다. 또 포도비장을 발견한 량반은 창피하지만 소무에 대한 욕심으로 한번 더 소무를 싸고돌며 춤을 추다가 포도비장에게 한대 얻어맞아 큰 창피를 당하고 량반은 퇴장한다. 이것으로써 제8과장 량반춤은 끝난다. 제9과장. 포도비장춤 : 여기에서는 재담은 없이 포도비장과 소무의 춤으로만 끝난다. 제10과장. 미알춤 : 미알춤은 빈궁하고 가난에 쪼들린 령감과 할멈이 겪은 불행과 그들의 가정불화를 주제로 하고있다. 두 늙은이는 가난으로 헤여졌다가 3년만에 만났지만 그들부부의 생활은 좋아진것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서로 불행만 덧쌓이게 된다. 할멈은 아들 3형제를 가난때문에 굶어죽였고 딸은 집을 버리고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령감은 망돌을 쪼으며 사방 돌아다녔지만 입에는 풀칠조차 할수 없었고 온갖 천대와 멸시만을 받았다는 가슴아픈 이야기를 서로 눈물을 흘리며 나눈다. 드디여 늙은이의 부부싸움이 일어난다. 그것은 할멈이 령감이 데리고 온 작은댁(룡산삼개집)을 발견하고 령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살림을 가르자고 선언하는데서 일어난다. 두 늙은이의 싸움은 할멈이 기절하는데서 끝난다. 가정불화는 시종 희극적인 대사와 률동으로써 관중의 웃음을 자아낸다. 제11과장. : 제10과장 미알춤장면이 끝나면 제11과장에서 마지막장을 장식하는 남극로인장면이 진행된다. 남극로인은 기절한 할멈을 살려내는 역할도 하고 탈놀이의 종막에서 새벽이 온다는 노래를 불러 탈춤의 종막을 예언하는데 때마침 동녘하늘이 훤하게 밝아온다. 탈군들은 모두 탈을 벗어 모닥불속에 집어던져 불사른다. 밤이 지새도록 놀던 탈놀이는 이것으로 끝난다.” ★남한의 ‘봉산탈춤’ : 1967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봉산탈춤은 7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과장은 4상좌춤, 제2과장은 8목중춤, 제3과장은 사당춤, 제4과장은 노장춤(제1경 노장춤, 제2경 신장수춤, 제3경 취발이춤), 제5과장은 사자춤, 제6과장은 양반춤, 제7과장은 미얄춤으로 되어 있고, 채록본은 “송석하채록본(1946)․임석재채록본(1975)․이두현채록본(1966)․최상수채록본(1967)”(《세계대백과사전》, 6886쪽) 등이 있다. 남한의 봉산탈춤보존회의 자료에 따르면 봉산탈춤은 “원래 봉산구읍 경수대에서 연희되었으나 1915년경 군청 기타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옮기고 경의선도 개통하게 되어 이 놀이도 그후 사리원 경암산 아래에서 놀아왔다. 해방후 월남한 몇 분의 연희자들에 의해” 1958년 복원되었다. 다음은 봉산탈춤보존회에서 제공한 각 과장의 해설 자료이다. 제1과장 사상좌춤 : 탈춤놀이의 시작 시간 을 알리고 구경 온 관객의 안녕과 복을 빌 고 놀이판을 정화시키고 연희자가 공연을 잘 마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원으로 동서 남북 사방신에게 제를 올리는 의식무이다. 상좌 넷이 등장, 모두 흰 장삼을 입고 붉은 가사를 메고 고깔을 썼다. 등장의 절차는 목중 하나가 상좌를 업고 달음질하여 등장, 불림으로 타령곡을 청하여 장내를 한 바퀴 돌고 새면(악사석)앞에 상좌를 내려놓고 퇴장한다. 다음 상좌들도 같은 방법으로 넷째 상좌까지 차례로 등장하여 일렬로 선다. 상좌들은 재비(악사)들이 연주하는 느린 영산회상곡(靈山會上曲)에 맞추어 춤추다가 도드리곡으로 바뀌면 두 사람씩 동서로 갈라져서 대무(對舞)한다. 다시 타령곡으로 바뀌면 첫째목이 등장하여 쓰러지고 상좌들은 타령곡으로 계속 춤추면서 퇴장한다. 제2과장 팔목중춤 : 여덟사람의 목중이 승려의 신분을 파계하여 음주가무를 즐기며 흥에 겨워 풍류소리에 맞추어 차례로 나와 춤 자랑을 한다. 마지막 여덟째목중이 나와 먼저 춤을 추고나간 목중들을 불러내여 합동춤을 춘다. 제1경 팔목중춤 : 쓰러진 첫째 목중이 얼굴을 두 소매로 가리고 누운채로 타령곡에 맞추어 발끝부터 움직이는 동작을 시작한다. 겨우 전신이 움직이면 좌우로 삼전삼복(三轉三伏)하고 네번만에 간신히 일어서다가 쓰러지나 끝내 일어서서는 두 팔로 얼굴을 가린채 오른편을 살피고 왼편을 살핀다. 턱 앞에 모은 두 소매를 머리 위에서 만사위로 휘저으면서 전신을 결렬하게 부르르 떤다. 그리고 비로소 얼굴을 가린 소매를 떼고 붉은 가면을 고나중에서 처음 보인다. 재비의 타령곡이 한층 더 빨라지면 팔을 휘저으며 한쪽 다리를 쳐드는가 하면 한편 소매를 외사위로 휘저으면서 매우 쾌활한 깨끼춤을 추면서 탈판을 휘돈다. 둘째 목중이 달음질로 등장하여 첫목중의 면상을 한삼자락으로 탁 치면 첫목중은 힐긋 돌아다보고 퇴장한다. 둘째 목중이 달음질하여 탈판을 한바퀴 돌고 탈판 가운데 서서 좌우로 돌아보고 “쉬이이! 아앗쉬! 아앗쉬!”하면 반주음악이 멈춘다. (이하 팔목의 등․퇴장 방식은 같다) “산중에 무역일(無曆日)하여 철 가는 줄 몰랐더니…” 대사를 외우고 ‘백수한산(白首寒山)에 심불노’라는 불림으로 타령곡을 청하여 한참 춤을 추다가 다시 반주를 멈추게 하고 대사를 계속한다. 다시 불림으로 타령곡을 청하여 한창 춤을 출 때 셋째 목중이 등장하여 면상을 치면 놀라서 퇴장한다. 이렇게 셋째 목중․넷째 목중․다섯째목중․여섯째목중․일곱째 목중․여덟째 목중까지 차례로 등장하여 제각기의 춤과 대사를 하고 나서 여덟째 목중이 나머지 목중들을 불러 들여 일제히 장단에 맞추어 뭇동춤을 추면서 놀이판을 한 바퀴 돌고 퇴장한다. 제2경 법고놀이 : 두 목중들이 등장하여 법고놀이를 청하여 법고놀이를 하자는 말을 벗구놀이를 하자는 말로 알아듣는 등 말장난을 하다가, 법고를 치면서 춤추며 논다. 제3과장 사당춤 : 사당이 거사의 등에 업혀 등장하자 홀애비거사가 사당을 뒤따르며 희롱한다. 이때 거사들이 홀아비거사를 내어쫓고 모두 서서 서도소리를 부른다. 놀량사거리, 앞산타령, 뒤산타령, 경발림을 부르는데 작은 공연 때는 주로 놀량가를 부르며 장고, 북, 소고를 친다. 제4과장 노장춤(신장수, 취발이춤 포함) : 파계승놀이로 불도에 정진하던 노장스님을 꾀어 소무로 하여금 노장스님 앞에서 교태스럽고 요염한 춤을 추어 노장스님을 파계시킨다. 이에 노장스님은 숭려의 신분을 벗어나 파계하고 소무와 어울려 춤을 춘다. 이에 신장수와 원숭이가 등장하여 노장스님과 대무대적을 하여 노장스님을 내어 쫓고 소무를 차지하여 함께 춤을 춘다. 제1경 노장춤 : 목중들이 노장의 육환장을 어깨에 메고 노장을 끌고 개복청으로부터 타령곡에 맞춰 탈판으로 들어온다. 노장은 어느 정도 끌려오다가 지팡이를 슬며시 놓고 멈추어 선다. 목중들은 그것도 모르고 그대로 지팡이를 메고 가다가 노장이 없는 것을 알고 차례로 노장을 찾아 나선다. 그러면서 노장이 있는데를 다녀와서는 날이 흐렸다느니, 옹기짐을 벗어 놓았다느니, 숯짐을 벗어 놓았다느니, 대망이 나왔다느니 하다가, 여덟째 목중이 자세히 본즉 노장님이시더라고 하며 함께 백구타령과 오도독이타령을 불러준다. 이어 목중들이 다시 노장을 모시나 노장이 탈판 가운데쯤에서 쓰러진다. 목중들이 노장을 찾다가 노장이 죽었다고 하여 염불을 외면서 재를 올리자 노장이 다시 살아난다. 그러면 목중들이 퇴장하고 소무가 남녀를 타고 들어온다. 남녀에서 내린 소무가 도드리곡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하면 생불(生佛)이라는 칭송을 받던 노장이 소무의 요염한 교태와 능란한 유혹에 빠져, 드디어는 자기의 염주까지 걸어주는 파계 과정을 대사 한마디 없이 춤과 무언극만으로 표현한다. 이 노장춤은 봉산탈춤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제2경 신장수춤 : 노장과 소무가 한참 맞춤을 추고 있을 때 신장수가 등장한다. 노장이 신장수를 불러 소무의 신을 사는데, 신짐 속에서 원숭이가 튀어나와 신장수와 수작을 하다가 신 값을 받아오라는 말에 노장에게 가서 소무 뒤에 붙어 외설스런 짓을 한다. 원숭이가 신값 대신 ‘신값을 받으려면 장작전 뒷골목으로 오너라’는 편지를 갖다 보이자 장작찜을 당하겠다고 신장수는 도망간다. 제3경 취발이춤 : 두 손에 푸른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한쪽 무릎에 큰 방울을 달고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등장한 취발이가 노장에게 면상을 얻어맞고 정신차려 보니 중이 소무를 데리고 노는지라 꾸짖는다. 취발이가 춤으로 내기를 하여 이기면 소무를 뺏기로 작정을 하고 노장과 춤을 겨루지만 이기지 못하고 끝내는 때려서 내쫓는다. 토라진 소무를 돈으로 환심을 사서 사랑춤을 추고, 그 결과 소무는 취발이의 아이를 낳는다. 취발이는 아이에게 마당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천자문(千字文)과 언문을 가르쳐 준다. 제5과장 사자춤 : 여덟목중과 취발이, 노장스님 모두가 승려의 신분을 파계하고 세상사 즐거운 일에 전념하니 부처님이 노하여 이들에게 사자를 보내어 벌을 준다. 이에 모두 회개하여 잘못을 빌고 용서를 청한다. 사자는 이를 용서하고 화해의 춤을 춘다. 목중 하나가 마부가 되어 사자를 따라 나온다. 놀아난 목중들을 벌하러 나온 사자에게 용서를 빌고 사자와 함께 타령곡과 굿거리곡에 맞춰 한참 춤을 추다가 퇴장한다. 제6과장 양반춤 : 여기에 등장하는 양반은 정통성 있는 양반이 아닌 양반계급을 돈으로 사서 얻은 양반이다. 무식한 사람이면서 유식한 양반의 흉내를 내는 모양을 풍자한 내용이다. 양반들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비리와 몰락한 양반들의 부패한 생활상을 말뚝이가 등장하여 해학과 풍자로 고발한다. 벙거지 쓰고 채찍을 든 양반의 하인 말뚝이가 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가운데 쯤에 나와서 “쉬이!”하고 음악과 춤을 멈추게 한 다음, “양반 나오신다아! 양반이라고 하니까 노론(老論), 소론(少論), 호조(戶曹), 옥당(玉堂)을 다 지내고 삼정승(三政丞), 육판서(六判書)를 다 지낸 퇴로재상(退老宰相)으로 계신 양반인줄 알지 마시오. 개잘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반자 쓰시는 양반들이 나오신단 말이오.”라고 외친다. 그러자 양반들이 “야야, 이놈, 뭐야아!”하고 소리치고, 말뚝이는 “이 양반들 어찌 듣는지 모르갔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를 다 지내고 퇴로재상으로 계신 이생원네 삼형제분이 나오신다고 그리하였소.”라고 얼버무린다. 양반들은 자기네 종인 말뚝이에게 조롱을 당하면서도 조롱당하는 줄 모르고 넘어간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새처(숙소)를 정하는데 돼지우리에 몰아넣는다. 양반들이 시조를 부르고, 운자(韻字)를 내어 시를 읊으나 역시 말뚝이에게 조롱당한다. 말뚝이를 시켜 나랏돈 잘라먹는 취발이를 잡아 오는데 결국 돈을 받고 풀어준다. 양반의 무능과 부패가 여지없이 폭로되고 조롱당하는 것이다. 제7과장 미얄춤 :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그린 일부 대처첩의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난리통에 영감을 찾아나선 할멈은 갖은 고생을 하다가 영감을 만났으나 영감의 애첩인 용산삼개덜머리집과의 삼각관계에 얽혀 사랑싸움으로 영감에게 맞아 죽는다. 영감은 애첩을 데리고 산다. 이어 무당이 등장하여 죽은 미얄할미의 혼을 달래주기 위하여 지노귀굿을 한다. 이는 미얄할미의 혼을 달래는 의미와 놀이판의 끝맺음을 알리는 의미와 놀이판의 마지막 정화를 위하여 잡귀를 쫓는 의식으로 탈을 태우는 의식을 겸하여 끝을 맺는다. 미얄할멈이 난리통에 헤어진 영감을 찾아나서 만난 정회를 나누자 영감에게는 이미 돌머리집에라는 소첩이 있어 싸움이 벌어지고 살림을 가리자고 하다가 미얄이 영감의 실수로 맞아죽고 만다. 남강노인(南江老人)이 무당을 불러 죽은 넋이나마 극락으로 가라고 지노귀굿을 해 준다. 뒤풀이 : 이렇게 하여 사상좌춤으로 시작된 봉산탈춤은 미얄할멈의 넋을 위로하는 굿으로 끝난다. 연희자 일동은 제상(祭床)을 차려놓고 탈을 모닥불에 던져 태우며 절을 하면서 대단원을 이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