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타가 사라지다
기원전 1400년 경부터 크레타의 쇠락이 나타나고. 기원전 700년 경이면 역사의 뒤안길로 숨어버린다. 크레타의 지리적 위치가 말하듯이 언어와 문화가 인도-유럽어계인 소아시아(중동)를, 남쪽의 이짐트 문화와도 닮은 점이 있다. 두 문화의 복합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크레타 예술은 섬세하고 세련미가 돋보인다
크레타는 자체의 생산 기반이 없다. 상업에 주력했고, 상업이 주업임으로 시장을 찾아야 했다. 때문에 항해술이 발달하였다. 부(富)가 축적되면서 근면하던 크레타 인이 쾌락을 쫓기 시작했다.
BC1450년 경이 되면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BC1400년 경이면 크레타 궁전이 불길 속에 사라진다. (유적 발굴에서 불탄 흔적이 나온다.) 지진일까? 그러나 학자들은 침략을 받고 파괴 당했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둔다. 왜냐면 크레타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노스 왕이 그리스 민간설화에 수없이 등장한다. 왜 일까?
미노스 왕은 왕비 파디파와 사이에 여러 명의 자녀를 둔다. 그 중의 한 명이 공주 아드리아네 이다. 테세우스기 미로 속의 괴물 황소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할 때 도와준다(실꾸리를 건네준다. 풀어진 실을 따라 미로를 빠젼져나오라고.)
미로를 만든 장인은 다이달로스이다. 그는 미로에 구멍을 뚫렸다는 죄목으로 그의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미로에 갇히자 이카루스의 탈출을 도우려 날개를 달아준 일화는 유명하다. 실패하여 이카루스는 추락하여 죽는다. 비극이다. 공주 아드리아네와 테세우스의 관계는 더더욱 비극적이다.
크레타는 기원전 7세기 경이면 그리스 인 리쿠르고스에 의하여 역사에서 사라진다. Bc2000년 경이면 도리안이 이곳에 와서 정착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