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두칠성(北斗七星)
松鶴 金 時 宗
먼동이 트기 전이다. 가을 하늘처럼 맑은 밤 하늘에 별들의 향연이 있는 듯 총총하게 빛난다. 나는 식구들이 깊이 잠든 틈에 대문을 나섰다. 적막같은 이른 새벽이다. 스산한 바람이 대지를 적시니 몸과 마음이 상쾌하기도 했다.
칠월칠석이면 견우성이 은하수 서쪽에 있는 직녀성과 오작교에서 서로 만난다는 전설이 있다. 어둠살이 낀 새벽녘에 별을 보며 골목길을 걷는다. 수 많은 소혹성의 별은 제 자리를 지키며 반짝 반짝 빛을 발한다.
태양계의 신비한 자태를 자랑이라도 하듯 별똥이 혜성처럼 떨어지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였다. 북쪽 가장 가까운 북극성은 어둠 침침한 대지를 밝게 비추는 듯했다.
대웅좌(大熊座)의 가장 뚜렸한 일곱 개의 북두칠성은 주걱 형상을 하며, 발길을 비추어 주는 듯하다. 북두성은 북극 둘레의 원형을 그리면서 유난히 밝고 주걱같은 모양이 하늘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 아직 통금 해제까지는 한 시간이나 지나야 된다. 나는 울퉁불퉁한 골목길을 걷다보면 돌맹이를 걷어 찰 때가 있었다. 달성공원 모퉁이를 돌아 원화여중고 정문을 지나면 동아일보 대구 서부지국이 있었다. 그때는 자유당 시절이라 동아일보가 가장 인기 있는 조간신문이었다. 내가 맡은 배달 지역은 매우 광활했다. 달성동, 인동촌시장, 조야동, 노곡동, 원대동, 비산동 등지에 구독자가 산재해 있었다. 나의 독자는 300여 호가 되었다. 애독자가 출근하기 전에 신문 배달을 마쳐야 했다. 가가호호 찾아 다니며 구독자 한 사람이라도 신문을 빠뜨리지 않을려고 골목길마다 혼자만 알 수 있는 표시를 해 두었다. 그리고 애독자 집 대문에 일련 번호를 부여했다. 배달 중 신문 1부라도 남으면 어느 독자 집을 빠트렸는지 알 수 있었다. 신문을 기다리는 독자를 생각하며 빠뜨린 집을 찿아가곤 했다.
신문 배달을 마칠 때가 되면 동쪽 하늘에 먼동이 트며 햇살을 받은 하늘에 노을이 생긴다. 솜털같은 뭉개 구름이 높은 하늘을 덮고 있는 듯하다. 나는 날마다 30리 이상 길을 걷는다. 경우에 따라 몸과 마음이 피곤할 때가 있었다. 한숨을 자고나면 피로가 풀린다. 오후에는 아버님이 하시는 일을 도우려 브랙스미스로 간다. 풀무를 밀고 한마로 석탄 불에 달구어진 쇠덩어리를 치며 농기계 제작에 일 손을 도왔다. 해질 무렵이면 책 가방을 챙켜 학교로 등교하였다.
남녀 학생들이 귀가하는 시간에 책 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 등교하는 모습이 쑥스럽기도 했다. 대구상고는 명문 상업 고교로 대부분의 학생이 직장 생활을 하며 야간부에 다니는 학생이 대 다수였다. 3학년이되자 나는 어쩔수없이 문예반장을 맡게 되었다. 학창 생활은 몹시 분주했다.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전통을 이어받고, 그 맥을 끊지 않기 위해 문예반 일에 심혈을 쏟았다. 시인이신 청마(靑馬) 유치환 선생님께 시(詩)를 청탁하였고, 경북대 문리대학장이신 한솔 이효상 선생님께 수필을 청탁한 적이 있었다. 저명한 선생님의 글을 받아 “開拓 9호”에 실을 수 있는 영광도 있었다. 대구상고에는 야간부에서 발행하는 순수 종합 문예지 “개척”과 학교 교우지인 “상혼” 등 두가지가 있었다. 훌륭한 문예지를 만들기 위해 문예반원들과 수차 토론도 하고 원고 독촉을 한 기억이 주마등처럼 생각난다. 어떻게 해서라도 “개척”지와 “상혼”교우지를 졸업하기 전 전교생에게 배부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었다.
지나간 나의 고교생활을 도리켜 생각해 보면 질곡도 많은 듯하다. 학비를 벌기 위해 신문 배달을 해야만 했고, 가사 일이며, 학교 일 등으로 새벽 별을 보고 나가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갈 때는 밤 하늘의 별을 보는 것이 나의 하루 일과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오래된 이야기다. 1950년대의 학창시절 이야기다. 그 시절은 6 .25 동란으로 모든 도시가 폐허가 되었고, 미국의 잉여 농산물 원조로 밀가루 죽(수제비)으로 연명 할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 먹고 살기 위해 새벽 잠을 설치며 지게 등짐이 유일한 물품 운반 수단이기도 하였다.
오늘 날 대한민국이 풍요롭게 잘 살수 있는 것도 산업전선에서 불철주야 열심히 노력한 산업역군들의 덕분이 아닌가 싶다. 헐 벗고 굶주리면서 잘 살아 보겠다는 열정 하나 만으로 땀 흘린 산업전사가 이제는 황혼기를 맞이하는 듯하다. 젊어서 처 자식을 부양하고 막상 늙고 병들고 보면 노후 대책을 세우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고 한편으로 서글픈 마음이 앞선다고 한다. 벌써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시기가 닥치니 무정한 세월은 허망스럽다고 한탄 하기도 한다. 요사이 젊은 세대는 늙은 부모를 모시기 싫어 병들면 노인 요양 병원으로 보내 임종 때 까지 방치하는 세태를 생각하면 가슴을 치는 듯 아파 온다.
우리 정치도 저 북두칠성처럼 국민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감을 누릴 수 있는 해 맑은 풍토가 조성되는 것이 간절한 바램이 아니겠는가. (2012년 8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