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서 만나는 예수님 : 마태오 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죽음(마태 27장)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지 한 의인의 무죄한 죽음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 구원을 위한 대속의 죽음입니다. 수난사화(마태 26-27장)의 절정인 마태오복음 27장은 빌라도 총독에게 넘겨져 신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전합니다.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러 오신 예수님께서는(1,21) 최후 만찬에서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한 계약의 잔을 들어 을리시고(26,28) 이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수난하시고 죽으심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십니다.
앞서 예수님은 유다의 배반으로 붙잡히시고 최고 의회에서 카야파 대사제로부터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인지 밝히시오.”(26,63)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이에 대한 그분의 응답은 십자가상 죽음으로 완전히 드러납니다. 마태오복음 27장의 전반부에서 예수님의 정체는 빌라도와 수석 사제들, 군중, 군사들과 같은 다양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서 ‘유다인들의 임금’(27,11.29.37.42),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27,17.22) 등으로 표현되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다음 ‘하느님의 아들’(27,40.43)로서 그분의 정체가 더욱 부각됩니다.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27,40)
지나가던 이들조차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모독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표현은 광야에서 악마가 예수님을 유혹할 때 사용했던 말과 같은 것입니다.(4,3.6)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도 마지막 유혹을 받으셨지만 아버지의 뜻을 끝까지 따르며 십자가를 지십니다. 처절한 죽음에 직면하여 예수님은 아버지께 큰소리로 부르짖으십니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27,46)
예수님의 이 마지막 비통의 부르짖음은 구약 성경의 시편(22,2)에서 온 것인데, 시편 22편은 의인이 지극한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를 고백하며 하느님의 구원과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바치는 노래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마지막 외침은 절망의 절규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신실한 믿음과 간절한 희망의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자, 마태오 복음사가는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지고 지진이 일어났으며 바위가 부서지고 무덤이 열려 죽은 이들의 몸이 되살아났고 그들이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 많은 이들에게 나타났다고 보도합니다.(27,51-53) 성소와 하느님 현존의 거처인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탈출 26,31-35)이 찢어졌음은 예수님의 속죄 죽음으로 옛 계약이 완성되었고 거룩하신 하느님께로 가는 영원한 생명의 문이 새롭게 열리게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또한 지진과 죽은 이들의 부활과 같은 묵시문학적인 문체를 통해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죽음이 종말과 심판, 그리고 구원의 결정적 사건임을 전해 줍니다.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27,54)
예수님의 죽음 직후 이방인 백인대장의 고백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신원은 온 천하에 선포됩니다. 세례와 거룩한 변모 때에 하늘에서 들려왔던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3,17; 17,5)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목격한 백인대장의 고백으로 확증됩니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고 마음에 들어하시는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오시어 풍랑에 시달리는 당신 제자들을 죽음에서 구해 주셨고, 이에 그들은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14,33)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분은 우리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마저 바치신 십자가의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십자가에서 두 팔을 벌려 우리를 맞이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11,28)
아버지를 끝까지 신뢰하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필리 2,8)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는 몸소 희생 제물이 되시어 죽음으로 죄의 용서를 완전히 이루시고, 마침내 부활하시어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한없는 사랑에 깊이 감사드리며,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서 죽음으로 생명을 얻는 이 구원의 신비에 동참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이웃과 하느님께 사랑을 실천하는 십자가의 삶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8)
[월간빛, 2023년 2월호,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