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신나게 집에 왔다가 부랴부랴 다시 이수역까지 갔다 왔습니다. 울딸이 퇴원 기념으로 아뜨끄리무께끄를 먹고 싶어했는데 그제 퇴원하는 날 깜빡하고 집에 왔었거든요. 근데 이 나이 되면 한 번 지적받았다고 해서 뭐 크게 달라지지 않죠. 또 까먹었습니다. 건망증이 도진거죠.
본죽에서 쇠고기 죽을 주문해 놓고, 바로 앞에 있는 베스킨 라빈스 31에서 젤 이쁜 걸 산 다음, 죽을 찾아서 돌아왔습니다. 번개돌이가 따로 없습니다. 덕분에 BMW를 4번이나 이용하면서도 돈은 한 번만 냈습니다. 우리나라 대중교통 환승제도 정말 좋네요. 집에 오니 대환영입니다. 깜빡증 때문에 바쁜 퇴근길이었지만 해피한 금요일이었습니다. ~^.^~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
1971년 3월, 한 기업의 설립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공개된 유언장. 기업을 설립하여 큰 부를 축적한 그였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유언장으로 쏠렸습니다.
유언은 편지지 한 장에 또박또박 큰 글씨로 적혀있었습니다. 손녀에게는 대학 졸업까지 학자금 1만 달러를 준다. 딸에게는 학교 안에 있는 묘소와 주변 땅 5천 평을 물려준다. 그 땅을 동산으로 꾸며서 결코 울타리를 치지 말고 중•고교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여 그 어린 학생들이 티없이 맑은 정신에 깃든 젊은 의지를 지하에서나마 더불어 느끼게 해달라. 내 소유 주식은 전부 사회에 기증한다. 아내는 딸이 그 노후를 잘 돌보아 주기 바란다. 아들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유언장은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그의 삶을 돌아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바로 일제 강점기에,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며 제약회사를 설립한 유일한 박사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숭고한 뜻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아왔던 딸 유재라씨도 지난 1991년 세상을 떠나며 힘들게 모아 두었던 전 재산을 사회를 위해 쓰도록 기증하였습니다.
첫댓글 유일한 박사의
유한양행
그래서 더 좋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