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50,5-9ㄴ; 야고 2,14-18; 마르 8,27-35
+ 오소서, 성령님
때아닌 폭염으로 한 주간 지내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7, 8월보다도 지난주가 더 더웠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신데요, 이것이 지구가 우리에게 보내는 싸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몸살에 걸리지 않으면 죽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몸이 너무 무리하니까, 강제로 쉬게 하기 위해 몸살에 걸리는 거라고 합니다. 몸살이 나지 않으면 더 무리하다가 정말 큰 병이 날 수도 있다고 하는데요, 그러니 몸살이 나면 쉬라는 신호로 알아듣고 쉬어줘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계속되는 폭염은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우리에게 보내고 있는 신호로 여겨지는데요, 지구를 쉬게 할 수 있는 길은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입니다. 탄소중립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사항입니다. 지난주 발표된 우리 본당에 대한 에너지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을 함께 논의해 나가겠습니다.
이제 수능이 두 달 남았는데요, 한 수험생이 큰 시험을 앞두고 긴장돼서 엄마한테 얘기했답니다. “엄마, 나 너무 긴장돼서 공부가 안돼.” 엄마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해 봐.” 그러자 이 학생이 소리쳤습니다. “싫어! 그러다가 진짜로 자기 뜻대로 하면 어떡해?”
저는 이 학생의 말이, 우리 내면 안에 감추어둔 속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기도합니다. 그러나 가슴 한켠에는, ‘하지만 제 뜻도 좀 감안해 주세요. 너무 당신 뜻대로만은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마음이 있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도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베드로는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완전한 대답입니다. “당신은 메시아입니다.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이래로 우리가 천 년을 기다려온 바로 그 메시아입니다.”
그런데 이 메시아께서는, 당신이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펄쩍 뛰며 말립니다. 베드로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조금 전에 ‘당신은 메시아’라고 고백해 놓고, ‘메시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기가 더 잘 아는 듯이 말합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보다 높아졌습니다. 메시아의 운명을 자기가 정하려 하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호통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예수님은 광야에서 자신을 유혹하던 사탄이 어느새 제자에게 들러붙어 있음을 보신 것일까요? 이어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해서는 제1독서인 이사야서에 나오는 야훼의 종의 노래에서 이미 예고되고 있습니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예수님의 수난 안에서 이루어진 이 예고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순교자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졌습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아 오늘은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오는 10월 20일, 본당의 날을 맞아 솔뫼성지와 신리성지로 전신자 성지순례를 계획하고 있는데요, 솔뫼는 김대건 신부님의 탄생지로서, 신부님의 가족을 비롯한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곳입니다. 한편 신리는, 한때 마을 사람 전체가 천주교 신자로 이루어진 교우촌이었는데요, 역시 수많은 순교자를 냈고, 제5대 조선교구장이신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도 이곳에 머무셨습니다.
다블뤼 성인은 1818년 프랑스 아미앵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셨고, 스물세 살에 사제 서품을 받으셨습니다. 20개월 동안 본당에서 보좌 신부로 생활하신 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하셨고, 스물여섯 살인 1844년에 마카오에 도착하셨습니다. 조선에 함께 입국할 선교사를 찾고 있던 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님의 청을 받아들여, 조선 선교를 자원하셨습니다.
페레올 주교님과 다블뤼 신부님은 중국 상하이에서 봉헌된 김대건 신부님의 서품미사에 참례하신 후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조선에 입국하십니다. 그러나 1846년 김대건 신부님이 순교하시자, 두 분은 여러 곳으로 피신하며 갖은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평소 몸이 약했던 다블뤼 성인은 최양업 신부님으로부터 병자성사를 받으시기도 했습니다.
1857년, 주교로 서품되신 다블뤼 성인은 조선 교회사와 순교자들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셨는데, 이것이 후에 달레 신부가 쓴 책 ‘한국천주교회사’의 바탕이 됩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제4대 교구장 성 베르뇌 주교님이 새남터에서 순교하시자, 다블뤼 주교님은 제5대 조선교구장이 되시지만, 베르뇌 주교님이 순교하신지 4일만에 다블뤼 주교님도 체포되십니다.
1866년 3월 30일로 처형 일자가 정해졌습니다. 이날은 마침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처형일이 연기될 기미가 보이자, 다블뤼 성인은 성금요일에 죽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결국 보령 갈매못 성지에서 오메트르 신부님, 위앵 신부님,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과 함께 처형되셨고, 다섯 분은 1984년에 103위 시성식을 통해 성인품에 오르셨습니다.
프랑스 선교사로서는 매우 오랫동안, 2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조선에서 사목하시면서 다블뤼 주교님은 많은 저서를 남기셨는데, 그중에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69통 있습니다. 일 년에 평균 3~4통을 쓰셨는데요, 많은 편지가 “예수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Qui a Jésus a tout)이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1845년 10월 12일, 조선에 입국하신 후 10월 말에 부모님께 처음으로 편지를 쓰셨는데, 조선에 입국하여 매우 기쁘다는 말씀과 함께, 당신이 건강하므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스물일곱 살 청년이 애교스런 표현을 많이 하고 계시다는 느낌이 드는 편지입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미처 못다 드린 말씀이 있다는 듯, 두 번째 편지를 쓰셨습니다.
“이제 제 목숨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부모님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만일 부모님께서 제 사망 소식을 들으시면, 제 몫의 유산은 조선 선교지를 위해 쓰도록 파리 신학교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하느님께서 제게 순교의 은총을 베풀어주셔서 부모님께서 그 은혜에 감사드리고자 감사 헌금을 보내고 싶으시다면, 중국 쓰촨 지방에 있는 비신자 집안 어린이들의 세례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유익할 것 같습니다. 조선에서는 박해 때문에 많은 아이들에게 세례를 줄 수 없지만, 쓰촨에서는 아이들에게 세례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또다시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 성모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항상 행복할 것이고 또 어느 날엔가 한데 모일 수 있을 터이니 그때에는 더 이상 이별이 없겠지요. 저는 이 세상에서나 저세상에서나 부모님을 지극히 공경하며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이 편지를 읽고, 예수님의 수난 예고가 떠 올랐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르신 순교자들 역시 당신들의 수난을 각오하고, 언젠가 될지 모르는 순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천주교회는 다른 종교에 비해 기복신앙이 덜한 편이라고들 말합니다. 순교자들 덕분입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목숨으로 증거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참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그 자체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보상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소유한 사람이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라는 진리를, 삶과 죽음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대전교구는 다블뤼 주교님께서 한국 교회를 위해 헌신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그 답례로 다블뤼 주교님의 고향인 프랑스 아미앵 교구에 사제를 파견하고 있습니다. 젊은 신부님들이 프랑스에 가셔서 10년을 봉사하고 오시는 모습은 제게 큰 가르침을 줍니다.
우리는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순교자들을 본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제2독서의 말씀이, 마치 순교자들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다가옵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
https://youtu.be/IqWEqFL2Haw?si=o0dw3cSvrofdQUL4
가톨릭성가 289 "병인 순교자 노래"
1.
피어라 순교자의 꽃들아 무궁화야
부르자 알렐루야 서럽던 이 강산아
한 목숨 내어던진 신앙의 용사들이
끝없는 영광 속에 하늘에 살아있다
2.
병인년 그 옛날에 구름재 서릿발에
팔도는 오가작통 피바다 이뤘을 제
묻노니 말하여라 한강아 대동강아
순한 양 사학죄인 얼마나 죽었더냐
3.
어지신 주교신부 웃으며 칼을 받고
겨레의 선열들이 기꺼이 쓰러졌다
피꽃을 몸에 피워 천당에 올랐어라
찰나의 죽음으로 영생을 얻었어라
4.
척화비 파묻히고 승리가 우뚝한 날
예수님 그 진리를 피로써 알았노라
후손된 우리들도 진리의 사도되어
죽도록 겨레에게 전하게 하옵소서
성 다블뤼 주교님
출처: Mgr Daveluy - Marie-Nicolas-Antoine Daveluy - Wikipedia
성 다블뤼 주교님 순교 기념 미사 (프랑스 아미앵 주교좌 성당 1867년 2월 28일)
출처: 천주교 대전교구 신리성지 (sinr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