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6] 강정자 (姜禎資) - 말씀따라 모든 사연 뒤로하고
1. 출생과 가정환경
1 나는 1938년 음력 9월 18일 경북 영덕군(盈德郡) 영덕면(盈德面) 창포리(菖浦里) 639번지에서 부친 강석현씨와 모친 김해석씨(金海釋氏) 사이의 2남 5녀 중 셋째 딸(세 번째)로 태어났다.
2 당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6.25사변을 겪는 사회적으로 불안한 시대였다. 그런 중에도 나의 조부모님과 부모님은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삶을 사셨다. 시골이었지만 우리 집은 부유한 편이어서 나는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3 아버지는 외동아들로 태어나 집안의 기대와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자랐다. 어릴 적부터 교육에 대한 열의가 남달랐다고 한다. 와세다 대학을 가고 싶어 했지만, 학도병으로 끌려갈 것이 염려가 되어 할아버지의 반대로 진학의 꿈을 이루지 못하셨다.
4 훗날, 자신이 더 배우지 못한 것 때문에 자식들은 물론이고 사촌과 고종사촌들의 학비까지 대주셨다. 신학기가 되면 사촌들이 줄을 서서 등록금을 받아 가던 모습이 기억난다.
5 아버지는 여자라 하더라도 지방문 하나는 쓸 줄 알아야 한다면서 서예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클래식 레코드판도 사다가 틀어주고, 책들을 사다 주시면서 독서를 권하셨다.
6 반면에 엄격하고 호랑이같이 무서운 면도 있으셨다. 내가 중학교 때까지는 오후 다섯 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야 할 정도였다. 한번은 동생과 그림을 그리러 밖으로 나갔는데, 잠자리를 쫓아다니다 해가 지는 것을 몰랐다.
7 오후 다섯 시가 조금 지나서 집에 들어갔는데 벌을 서야 했다. 어머니는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씨를 가지신 분이었다. 항상 가족들의 건강과 집안 살림을 챙기셨다. 가족을 정성으로 보살피는 것이 어머니의 삶이었으며 항상 우리를 따스하게 감싸 주셨다. 8 할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에 불공 들이러 온 스님이 “이 아이는 운이 세서 부처님께 바쳐야 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불공을 드리러 갈 때나 시주하러 갈 때 나를 자주 데리고 가셨다.
9 그리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분이셨다. 크리스마스 때 집 앞에서 캐럴송을 부르면 그분들에게도 할머니는 시주를 하셨다. 종교가 다른데도 그렇게 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