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매 맞고 살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을 돕는 이모가 한 말이다. 드라마에선 강현남이라 불렸고 실제 이름은 염혜란이다. 강현남은 남편에게 맞고 살았다. 얼굴과 온몸은 피멍이 들고 눈물 마를 날이 없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도 이모의 명랑함은 지울 수가 없었다. 이모는 울면서도 웃었다. 매를 맞고 살지만 명랑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웃어도 안 될 일이 인상 쓴다고 될까? 절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인상 쓴 얼굴은 절대에 가깝게 안 되는 일이 많다. 중국 속담에는 “웃는 얼굴이 아니면 가게 문을 열지 마라.”는 말이 있다. 오늘 점심은 설렁탕을 먹었다. 집사님 심방을 갔는데 집사님이 밥을 사주셨다. 송구하고 미안한 일이다. 음식은 맛나고 식당도 깨끗했다. 좋은 사람과 먹으니 밥이 더 맛났다.
그런데 그 식당은 오늘 손님을 잃었다. 주인의 얼굴 때문이다. 오늘따라 무슨 일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러시는지 나는 모르지만, 주인의 얼굴은 냉랭하게 주눅 들게 했다. 평소에 주인은 잘 웃고 친절한 분이었지만, 오늘만 무슨 일로 인해 굳었을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잘못이다. 어쩌면 주인의 얼굴은 원래, 늘 그랬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더 잘못이다. 이유는 하나, 손님을 잃었기 때문이다.
나는 식당에 밥 먹으러 간다. 식당의 존재 이유는 맛있는 음식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값이면 웃는 곳으로 가고 싶다. 교회라고 다를까? 그래서 나는 웃기로 했다. 문동은을 돕던 이모의 말을 약간 비틀어서 서재에 걸어놓아야 할 것 같다. “그리스도인은 그래도 웃는 사람이다.”라고. 이유는 웃지 않으면 사람을 잃을 것 같기 때문이다. 웃음은 교회에 성도들을 더 모으기 위해서 사용하는 얄팍한 상술이 아니다. 웃음은 영성의 꽃이고 믿음의 그릇이며 성도의 일상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웃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