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로셸
구 도시에 공원 옆에 세운 차에서 내려 아스팔트의 열기를 참으며 항구로 간다. 대서양에서는 제일 크다는 요트정박지에는 매년 유럽의 요트박람회가 열리며, 2차 대전 때는 이곳을 점령한 독일이 잠수함 기지로 사용했다. 이 정박지 외도 진입 항, 옛 항과 간만의 차이로 배를 띄우는 부선(艀船)항이 따로 있다하니 그 크기가 만만치 않다. “모난 돌 징 맞는다.”고 이렇게 독일해군의 전초기지였던 라로셸은 연합군의 대량 공습으로 도시가 큰 피해를 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국과 스페인의 길목에 위치하여 두 나라가 호시탐탐 라노셸을 노려, 정박지 건너에 서있는 2개의 탑은 외적의 침범에 대비한 방어 탑으로, 프랑스기가 흩날리는 좌측의 탑인 성 니콜라스 탑이고 우측의 것이 셴 탑이다. 유사시에는 이 두 탑 사이를 굵은 쇠사슬로 연결하여 적함의 침입을 막았다 한다. 셴 탑과 성벽으로 이어지는 랑테른 탑은 높이가 70m 에 이르는 뾰족 탑으로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2유로를 내고,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오는 계단이 다른, 성 니콜라스 탑에 올라가 빙 둘러보니 높지 않아 보였는데, 항구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면서 부둣가의 집들은 작아 보이고 항구 좌측 모퉁이의 주택 사이에 낀 둥근 꼭대기의 시계탑도 보인다. 항구 중심으로 싸다니는 바람에 구시기지는 보지도 못했다. 차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무슨 축제가 열리는지 해변 가의 가설극장에는 연습을 하는 밴드 소리가 임시로 친 담 너머로 요란하게 귀를 어지럽힌다.

이 도시는 중세 때의 “라로셸 공방전”도 얘기꺼리가 되는데, 16세기 말, 당시 프랑스 제3의 도시였던 라로셸은, 프랑스 내 개신교의 최대도시로 위그노 교도의 본거지로 중앙정부의 가톨릭과 충돌이 잦자, 1598년 프랑스 왕 앙리4세는 낭트칙령으로 “파리를 제외한 프랑스 전역에 신교도의 공동예배를 허용”하였다. 그러나 앙리4세가 가톨릭에 암살당하고 이어 즉위한 루이13세는 친 가톨릭 정책으로 전환하여 신교를 탄압하자, 1621년 1차 반란을 일으켰다가 중앙정부와 협상으로 끝맺은 위그노들은, 1627년 다시 반기를 들었다.
영국과 연합한 위그노는 15개월에 걸친 공성전 끝에 백기를 들어 항복을 했고 도시의 인구가 1/5로 줄 정도의 피해를 입으면서 개신교의 정치적 기반이 무너졌으며, 승리한 프랑스 왕정은 중앙집권제로 가는 힘을 얻었다. 살아남은 위그노들은 스위스와 네덜란드를 비롯한 신교도 우세 국가들로 대거 이주하여 이후의 네덜란드 독립전쟁과 30년 전쟁에 신교도 편에서 싸웠으며, 신앙의 자유를 상실한 위그노의 일부가 미국으로 옮겨가 세운 도시가 뉴로셸이다,
12세기부터 상선과 전투함 기지로 터를 잡은 항구는 30년간의 종교전쟁 후 침체기를 맞았으나, 18세기 후반부터는 다시 어항으로 활기를 되찾다가, 1891년 서쪽에 리팔리도 신항(新港)이 개장되어 무역항 역할을 하면서부터, 구항(舊港)은 관광선과 오선의 기항지로 활용된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속을 식히고 항구와 접한 식당가를 지나 시계탑을 지나가니 옷가지를 파는 작은 싸구려 노천시장이다.
클리쏭
무안 강과 세브르 넝떼즈 강이 합류점에 위치한 클리쏭은 브르타뉴 지방 수비의 중요거점으로, 시내의 볼거리인 클리쏭 성은 13세기에 탑을 세우고 다각형 모양을 갖추었고, 14세기에 추가된 영주의 주거지와 예배당과 15세기에 감옥이 딸린 두 번째 성벽과 도개교(평소에는 사슬로 당겨 올려놓았다가 필요시에는 내려서 출입을 가능하게 만든 다리)를 설치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클리쏭은 방데 농민전쟁 때 반란군 편에 선 곳이라, 전쟁 중 혁명정부군대에 글자 그대로 박살이 난 주민 대다수가 외지로 이주하여 유령마을이 된 것을, 이곳 주민이었던 까꼬 형제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받은 영감(靈感)으로 토스카나 스타일의 건축물을 구상하자, 이에 공감한 조각가인 프랑소아 프레데릭 르모의 협조로, 토스카나 스타일을 도입하여 도시를 재건하여, 이탈리아 풍의 클리 쏭이란 별명을 얻었다.
호텔에서 내려다뵈는 세브르 넝떼즈 강의 풍경에 끌려, 바로 성으로 가는 돌다리로 가니 폭도 좁지 않은 아치형 다리를 지주하는 삼각형 기둥부분의 폭을 조금 넓혀 만든 난간은 사진을 찍기에 좋은 photo-point로, 멋 부린 여인을 찍으면 솜씨 없는 아마추어도 프로작가가 되겠다. 마침 황혼의 시간이라 지는 햇살을 받은 집들의 지붕이 모두 주황색이다. 다리를 지나가는 강은 폭이 조금 넓어지고 물 흐름도 급하지 않아 보트놀이를 해도 되겠고 카약을 타도 좋겠다.

이미 문을 닿은 성에는 들어가지 못하니, 잘 모르긴 해도 저 성의내부는 황혼 빛을 반사하는 지금 성벽의 아름다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 마음으로 우겨본다. sour grapes- 먹지 못할 포도는 원래 신맛이니까? 다리를 건너와 골목을 지나 강가로 내려가 보니 탁한 줄 알았던 강물은 무척 맑으나 강바닥의 검은 수초로 다소 검은 색을 띌 뿐이다. 뒤로 좀 더 가보니 큰 도로가 마을 뒤로 연결되어있으나 차도 없고 한적하다.
여행을 떠나온 지 18일. 몸도 마음도 여의하고 잘 먹고 잘 잔다. 작년 시월에 의사의 오판으로 먹지 않아도 될 혈압 약을 몇 개월 먹은 뒤 결과를 보자는 바람에, 계획했던 보름간의 네팔 트렉킹을 연기했지만, 약을 먹지 않아도 정상혈압이라 올해는 작년의 계획을 실행하려한다. 타고난 건강에 일생을 개을리 하지 않은 운동 덕을 보는 것 같다. 어둠이 드는 강이 보이는 호텔의 야외 라운지에서 한 잔 해야 하는데, 어쩐지 기분이 나지 않아 침대로 가서 책장을 넘기며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