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1930-1993)
일본에서 출생하여 1부모와 함께 귀국하여 경상남도 마산시(現 창원시)에 정착하였고, 마산중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 중학생 시절인 1949년, 그의 시인 〈공상(空想)〉이 《죽순(竹筍)》 11집에 추천으로 실리면서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또한 이때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그의 또다른 작품인 〈강물〉이 《문예》지에 추천되어 실리기도 하였는데, 당시 담임교사가 바로 유치환이었다.
대체로 순수한 마음으로 인생을 노래하는 시를 남겼다는 평을 듣는다. 때문에 더욱 서정적이다.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면서 수차례 전기고문을 당한 탓에 이후 30여년의 세월동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받았다.
술, 그 중에서도 특히 막걸리를 즐겨 마셨으며 문학계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대단한 주당이자 기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1971년, 천상병은 행려불자, 무연고자로 오해받아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천상병이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생존이 확인되었다. 그 당시에 천상병의 친구의 여동생이었던 목순옥(1935~2010) 여사는 수년간 천상병을 간병해 주었는데 그 것이 계기가 되어 1972년 결혼하였다. 김동리 선생이 주례를 서주었다고 한다.
1979년 시집 '주막에서', 1984년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1991년 '요놈 요놈 요 이쁜놈' 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활동하였다. 1993년 4월 28일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379번지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내인 목순옥이 천상병의 사후인 1993년 8월에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글모음집을 펴내면서, 유고시집인 《나 하늘로 돌아가네》를 함께 펴냈다. 이 날은 천상병 시인이 죽은 지 100일 째 되는 날이다.
천상병 자료를 찾으면, 그의 에피스드가 주로 적혀있다. 시인으로서의 에피소드라지만, 에피소드는 어디까지나 에피소드이다. 그의 시 세계를 소개한 권영민의 글을 가져오겠다.
“천상병의 첫 시집 ‘새’(1971)에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세속 삶의 거추장스러움이 전혀 드러나있지 않다. 이러한 경향은 후기의 시에도 지속된다. 그는 늘 모든 것에 자유롭고 막힘이 없으며 사물에 대한 자신의 느낌에 충실하다. 그의 언어는 경험의 진실을 노래하고 있지만, 목소리가 낮고, 그의 눈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만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하고 있다. 시정신의 천진성이나, 소박성이라는 것은 그의 꾸밈없는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천상병의 작품은 간결하고 압축된 표현을 통해 우주의 근원과 피안으로서의 죽음, 비참한 d인생의 현실 등을 담았다. 특히 순진무구한 시심의 한 가운데에 죽음에 대한 달관의 자세도 함께 담았다.
천상병 시 모음 20편
《1》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 하리라
《2》
★갈대
ㅡ천상병ㅡ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 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첫댓글 천병상?, 천상병?...
천상병 시인의 본명이 천병상 입니까?...
천병상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서...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제가 자료로 가져온 원본에서 천상병(1930-1993)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잘못 하였네요..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