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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공예품, 중국보다 수출 우위 효과 ‘톡톡’
종로 보석단지와 함께 한국의 주얼리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전라북도 익산은 예로부터 보석과 인연을 맺어온 지역이다.
익산과 보석의 역사는 14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백제 후기 무왕(600~641)때 조성된 왕궁면 왕궁유적에서 금도가니, 유리도가니, 철도가니 등이 발견됐다. 발굴팀은 이 유적이 궁궐에서 필요한 금동 유리 등 귀금속 세공을 전담했던 공방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익산이 보석 산업 중심지로 떠오른 것은 1970년 대 들어서다. 정부는 1975년 익산에 보석산업단지를 조성했다. 국내에서 ‘큐빅’을 처음 세공하는 등 1987년까지 보석산업 중심지의 면모를 키웠다. 6만 6116여m²(2만여 평)의 귀금속보석가공단지를 조성하고, 1989년에는 귀금속보석판매센터를 설립했다.
1970년대 초반 익산보석단지에는 일본회사들이 입주를 많이 했는데, 이들 일본 업체는 자국으로 돌아갈 때면 함께 일했던 기술자들을 데리고 갔다고 한다. 오카치마치와 고후는 현재 익산 보석공단 출신 한국인 기술자들이 장악하고 있다. 익산단지에서 뒤를 따르는 기술자들이 늘어나면서 서울과 부산 등 다른 지역에서도 일본행에 합류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인 가운데 유일하게 보석 기술자들에게만 취업비자를 내줬을 정도였는데, 기술자들은 월급이 50만엔 정도로 대통령도 부럽지 않다는 대우를 받았다.
지금은 부침이 있으나 일본 오카치마치에는 한국인 세공 기술자들이 줄잡아 약 1000명, 고후공단에 600명 정도가 일하고 있으며, 한국인이 경영하는 가공회사만 200개 이상에 달한다. 양쪽을 통틀어 80% 이상을 한국인이 점유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최고의 장인 정신을 인정받는 기술자 덕분에 익산은 한국 주얼리 산업의 모태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숙련된 보석 가공 기술자들이 대부분 빠져나간 익산은 ‘이빨 빠진 호랑이’나 다름없었다.
정부는 2000년대 들어 익산 주얼리 산업을 살리기 위해 갖가지 지원 정책을 추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90년대 익산단지 입주 기업들은 고임금으로 채산성이 맞지 않자 중국 칭다오 등으로 사업장을 이전했다. 중국에 자리 잡은 이들은 중국 보석가공업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으로 되돌아가자”
“돌아갑시다.”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회의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고국을 떠나온 지 어느덧 20여년. 돌아간다고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줄지 의문마저 들 만한 긴 시간이 지났다.
한국으로의 U턴을 결정한 한신공예품 임직원들의 마음은 두려움이 앞섰다. 이미 중국에서도 ‘제2의 고향’이라고 여길 만큼 터전을 닦았고,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가족에 버금가는 끈끈한 관계를 맺었던 터라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새롭게 찾아온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큰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다행히 혼자가 아니었다. 한미래, 하이쥬얼, 베스웰, 한성, 미노아, 보우실업, 정보, 유영, 유미체인, 공인체인, 골든벨, 미광, 진화경금속 등 중국 칭다오에 입주한 13개 주얼리 기업이 동참했다. 이들은 구본항 한신공예품 대표가 회장으로 있는 재중국한국공예품협회 회원사였다.
14개 기업은 2012년 8월 29일 전라북도청 대회의실에서 ‘국내U턴을 위한 투자협약’을 맺고 730억원을 투자해 2013년 6월까지 전북 익산시 제3 일반산업단지에 10만 7404m²(약 3만2000평) 규모의 주얼리전용단지에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공장은 2013년 문을 연다. 이들을 시작으로 오는 2015년까지 협회 소속 50여개사가 익산에 터전을 잡을 예정이다. 2012년 4월 정부가 U턴기업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후 해외 진출 국내기업의 한국 복귀 첫 사례이자 다수의 기업이 동시에 집단으로 U턴한 대규모 유치사례였다. 국내 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이들 기업의 국내 투자가 일자리 창출은 물론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들 기업이 당장 필요로 하는 고용 규모만 3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2015년까지 1만 3000명, 2016년 이후 협회 회원사를 비롯해 칭다오에 소재한 주얼리 업체 300개사가 합류할 경우 총 고용 규모는 1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U턴한 기업들은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저렴한 인건비와 공장부지를 찾아 하나 둘씩 중국에 진출했었다. 칭다오에만 한국 주얼리 기업 400여개사가 주얼리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이 현지에서 고용한 인원만 5만 명에 이른다.
왜 돌아와야 했는가?
하지만 최근 수년전부터 현지 경영사정은 급속히 악화됐다. 중국내 인건비가 매년 18% 이상 올랐고 최근 3년간 고용인원이 40% 줄어드는 등 인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위안화 절상과 중앙정부 산업구조 재편에 따라 부대비용도 10% 이상 증가했다. 전력 문제도 심각했다. 한국의 경우 Kw당 전기요금이 50원인데 반해 중국은 120원으로 2.6배나 높은데, 전력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달려 전력 공급이 끊기는 경우도 빈번해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갖가지 정책을 확대하는 한편 유럽연합(EU)·미국 등 주요 교역국가와 FTA를 체결하는 등 기업 활동 여건을 개선시키는데 주력했다. 특히 FTA는 중국과 일본보다 한 발 앞서 거대 경제권과의 체결을 성공시키는 등 경제 통상 외교를 주도하고 있다.
한신공예품의 경우 중국 현지 고용인원은 1300여 명, 연간 매출액이 300억원에 이르고, 생산 제품의 80% 이상을 미국 또는 EU로 수출하고 있다. 나머지 13개 기업들도 현지 평균 고용 인원이 평균 400여명에 연간 매출액도 약 200억원에 달한다. 수백명의 직원을 먹여 살리려면 매출이 보장돼야 한다.
쥬얼리는 레드오션 산업에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수많은 기업들이 뛰어들어, 단 1원이라도 단가를 낮춰야 생존할 수 있는 경쟁이 치열한 산업이다. 인건비 상승에 더해 세제 혜택마저 줄어든다면 당장 생산원가 상승으로 연결돼 바이어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중국에서 수출하면 관세가 11%, 한국에서 하면 0%
여기에 관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원산지를 기준으로 미국에 수출할 때 주얼리 제품의 관세율은 중국은 11%이지만 FTA 발효 이후 한국에서 수출할 경우에는 관세가 5.5%에서 ‘0%’로 바뀌게 된다. 11%와 무관세의 차이는 생산원가를 20% 절감시키는 효과를 유발해 한·중국간 2.5배의 임금격차에도 가격 경쟁 면에서 한국과 중국은 대등한 위치에 오르거나 오히려 한국이 더 유리한 조건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메이드 인 차이나’보다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선호하는 미국 바이어들의 보이지 않는 이득까지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다.
정부와 전북도는 이번에 복귀하는 14개사가 디자인개발 등 제품경쟁력을 강화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 방안에 따르면 주얼리기업은 앞으로 법인세·소득세와 관세 감면, 입지와 설비투자 보조금 지원과 함께 수출신용 보증한도와 보증료를 우대받게 된다. 법인세와 소득세는 최대 5년간 감면과 관세감면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입지와 설비투자금액의 각 40%, 10%(국비 70%, 지방비 30%)를 보조금으로 지원받을 수 있어 초기투자 부담도 덜 수 있게 됐다.
주얼리 전용 단지에 대한 ‘종합보세구역’ 지정도 추진해 외국인부품소재전용공단과 투자유치 시너지를 노리는 한편, 사업 청산에서부터 국내 공장 가동에 이르기까지 투자의 전 과정에 걸쳐 행정적·법률적 지원을 제공하는 원스톱 서비스도 실시하고, 익산시도 주얼리전용단지 조성 외에 기반시설을 구축하기로 하는 한편 인력 확보를 위한 대책도 마련키로 했다.
<주간무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