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호성•선무원종공신으로 호조판서에 추증된 위덕화 선생의 신도비는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650-3번지 방촌유물전시관 앞에 위치한다.
선생의 신도비 세우는 사업은 10대 종손 죽암공(啓文 1865~1951)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1936년 통정대부로 용인군수를 지낸 김녕한(金甯漢 안동인, 1878~1950, 청음 김상헌의 13대손)이 비문을 짓고(撰),
가선대부로 이조참판을 지낸 민병승(閔丙承 여흥인, 1866~1946)이 썼다(書). 특히 죽암공은 장흥위씨 집안과 같은 성리학의 학풍, 선대로부터 이어져 온 여흥민씨 집안과의 깊은 우애에 따라 고종의 비(妃) 명성황후(민비)의 집안 후예로 여주에서 기거중인 민병승을 직접 찾아가 비문을 받아왔었다.
신도비의 재료 청쑥색 비신(碑身)은 관산읍 죽청리 앞 득량만 바다에서 채석하였고, 용 머리(螭首)와 거북(龜趺) 좌대는 건너편 야산에 있었던 지석묘군의 고인돌을 사용 완성했었다.
<1938년 신도비 제막식 행사>
<헌성 내역>
재원 헌성은 죽암공을 비롯하여 위경규(1887~1947, 유치면 단산 출신) 등 직계 후손 91명과 9개 종•문중, 2개 계(契)에서 참여하여 1938년 5월 세웠다.
1994년 가을 장흥군에서 안내판을 장천재 묘역 위쪽에 위치한 아들 병조참판공(廷喆) 묘갈명 앞에 세웠던 것을 필자가 발견하였다. 당시 관산읍사무소에서 재직하고 있던 위철량(1946년생, 용전리 거주) 종친에게 판서할아버님(위덕화 선생) 신도비 앞으로 옮길 것을 제보하여 장흥군에서 제 위치인 방촌리 국도 도로변 신도비 앞으로 옮겨 세웠다.
1998년 방촌유물전시관 건축사업이 정부 지원으로 추진되어 13대 종손 위성렬 소유 밭 등을 장흥군에서 매입하여 공사가 진행된 후 2005년 9월 6일 방촌유물전시관이 개관되었다.
2021년 1월~2022년 12월 간 국도23호선 용산↔대덕 구간 도로시설 개량공사(확장 및 직선화)로 인해 방촌유물전시관 마당 주차장 대지가 도로쪽으로부터 2m 가량 포함되었다.
<2023년 6월 현재 신도비>
해당 구간 공사를 할 때 신도비 안내판을 뽑아 폐기처분 한 것을 필자는 장흥군에 여러번 건의와 민원을 통해 안내판 설치를 요청했었다. 최근 장흥군에서 위덕화 선생 신도비 안내판 문안을 요청해와 필자가 작성하여 장흥군에 송부하였다. 조만간 안내판이 새롭게 설치될 예정으로 위덕화 선생의 신도비는 방촌유물전시관 내 전시 소장된 선대 유물과 함께 장흥위문의 소중한 자산이다.
<위덕화 선생 신도비 안내판 문안>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화지(和之), 아버지는 성균진사(成均進士) 위곤(鯤) 어머니는 의인(宜人)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죽산안씨(竹山安氏)이며, 아들은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지낸 위정철(廷喆)과 정양재(靜養齋) 위정혁(廷赫)이다.
선생은 1551년(명종 6) 5월 13일 태생으로 학문이 뛰어나고 무예가 특출하여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義州)까지 피난을 가는 선조(宣祖)를 호종(扈從)하였다. 형 위덕의(德毅)와 함께 전장으로 보내 줄 것을 청하여 1593년 군자감정겸언양현감(軍資監正兼彦陽縣監)에 제수되어 두모포에 주둔하던 왜적이 울주군 상북면 일대를 공격해오자 앞장서 싸워 전란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1596년 훈련원정(訓鍊院正)으로 있을 때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체포됨을 크게 분개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있던 중 백의종군으로 장흥 회령포(지금의 회진면)에서 조선 수군을 재건한 이순신 장군을 지원한 후 1598년(선조 31) 11월 5일 별세하였다.
1605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과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으로 이름이 올랐고 1609년 형조참의(刑曹參議)로 1612년 형조참판(刑曹參判)에 추증되었다. 그 후 1625년 아들 위정철이 정사원종공신(靖社原從功臣)과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으로 이름이 올랐고 1626년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으로 1631년(인조 9)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증직되었다. 1806년(순조 6) 장흥 죽천사(竹川祠)에 배향되었으며, 2016년 울산 충의사(忠義祠)에 위패가 봉안되었다.
선생과 관련한 자료로는 판서공파종택(사당), 교지(敎旨), 호성공신록(扈聖功臣錄), 선무공신록(宣武功臣錄), 군패(軍牌), 분재기(分財記), 묘지(墓誌), 지석(誌石), 명기(明器) 등이 전해지고 있다.
<장흥군에서 필자에게 보낸 온 최종 문안>
첫댓글 기존 안내판
방촌유물관 앞에 있었던 판서공 신도비 안내판을 새로 제작하여 설치하겠다는 내용이다. 주체가 장흥군이니 문안을 주고 받은 모양인데, 기존 안내문과 비교하니 많이 바뀌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