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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외삼신봉 산행을 위해 한 안내산악회 낙남정맥 종주 계획에 따라 1구간인 '거림 → 세석대피소 → 영신봉 → 음양수 → 헬기장 → 삼신봉 → 갓걸이재/청학동 갈림길 → 외삼신봉 → 고운동재'의 20km 코스를 금요 무박으로 10시간 동안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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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봉[三神峰]
높이: 1,289m
위치: 경남 하동군 청암면
지리산 하동지역은 쌍계사, 칠불사 등의 절을 비롯하여 불일폭포, 화계계곡, 청학동, 도인촌 등의 볼거리도 많다. 청학동 마을에서 삼신봉을 바라보면 왼쪽부터 쇠통바위, 가운데는 내삼신봉, 오른쪽이 외삼신봉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중 내삼신봉이 해발 1,354m로 가장 높지만, 통칭 삼신봉은 이보다 해발이 낮은 1,284m의 외삼신봉을 대표해 부른다.
삼신봉은 지리산 남부능선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동으로는 묵계치를, 서쪽으로 생불재(상불재), 남으로는 청학동을, 북쪽으로는 수곡재와 세석평전을 이어주는 사통팔달 요충지 역할을 한다. 삼신봉 특히 외삼신봉을 기점으로 다양한 등산로가 열려 있다.
산행코스는 남부능선코스가 대표적이며 청학동에서 삼신봉, 상불재를 거쳐 다시 청학동으로 향하는 순환 코스, 삼신봉- 상불재- 불일 폭포, 삼신봉- 거림골 등의 코스가 있다. - 한국의 산하
이번 주 토요일인 11월 11일 지리산 외삼신봉에 오르기 위해, 가격으로 승부하는 안내산악회를 따라 금요 무박으로 낙남정맥 1구간인 영신봉에서 고운동재까지 달리기로 했다. 물론 거림에서 영신봉까지 올라가는 6km, 4시간 30분의 접속 구간 포함이다. 그동안 3번의 지리산 남부 능선 산행으로, 삼신봉, 내삼신봉, 상불재, 불일폭포, 쌍계사[산행기], 청학동[산행기] 등은 다 탐방했으나, 청학동으로 내려가는 갓걸이재 이후에 있는 외삼신봉에 오를 기회는 없었다. 꼭 올라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으나, 그래도 그 부근 산행을 할 때면 꼭 떠오르는 게 외삼신봉이다. 특히 삼신봉, 내삼신봉, 외삼신봉을 구분해야 할 때는 내삼신봉과 외삼신봉이 헷갈려, 갔었나? 착각하기도 해, 기회가 되면 외삼신봉의 실체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여느 날처럼 다음 달 산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안내산악회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는데, 몇 개 산악회가 공통으로 낙남정맥 종주 산행을 공지에 올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대간, 정맥 산행을 계속해 오고 있던 대기업 산악회야 새로울 게 없지만, 그럴 여력이 안 되는 산악회도 공지에 올리는 걸 보고, 무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낙남정맥 종주 1구간 산행의 내용을 확인했다. 다른 게 아니라, 이번에 까만 소에서 낙남정맥을 인증 대상에 추가했고, 각 구간 인증 대상을 선정했다는 소식이다. 고로 인증꾼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안내산악회로서는 새로운 상품이 생겼다[기사]. 인증이나 정맥 종주는 관심이 없는 인간이라, 그러려니 하고 끝내려는 데, 1구간 인증 대상 중 하나가 구간의 거의 끝에 있는 외삼신봉이라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달린 거림에서 영신봉 그리고 지리산 남부능선을 다시 달리는 게 내키지 않아, 관심을 끊었다.
막상 11월 11일, 즉 11월 둘째 주 토요일 적당한 산행지를 찾지 못했고, 외삼신봉을 오르긴 올라야 할 것 같아, 이미 버스 한 대를 채우고 두 번째 버스 신청을 받을 정도로 호황인 산악회에, 한 명이 취소한 1호 차의 그 자리를 신청했다. 사실 꼭 가겠다는 생각은 없었으나, 일단 자리를 확보해 두는 게 장래 후회를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공지가 올라온 열흘 후인 8월 20일 신청했다. 그리고도 참여 여부는 확정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 이 산행 신청자와 계획한 안내산악회를 위해 10월 중순에는 결정해야 했다. 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외삼신봉의 정체가 궁금하고, 2023년 여섯 번이나 오른 설악산과 달리 지리산은 10월 초의 화대종주[산행기]가 유일하고, 2020년 6월 지팡이를 찾아 남부능선을 달린[산행기] 후 3년이나 지났으니, 다시 남부능선을 달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는 판단이 들어, 바로 회비를 입금했다.
한번에 달리지는 않았지만, 거림에서 영신봉, 영신봉에서 갓걸이재까지는 각각 몇 번이나 오른 코스라 잘 알고 있으나, 갓걸이재에서 고운동재 코스는 초행이라, 앞선 산꾼의 산행기를 찾아봤다. 그런데, 까만 소 인증처로 선정되고 나서 달린 산행기에는 외삼신봉이 국립공원 비탐지역이라, 코스에서 뺐다는 내용이 있어, 까만 소 사이트에서 확인했다. 외삼신봉이 비탐이라는 얘기는 없으나, 인증대상에도 없다. 영신봉에서 고운동재 구간의 인증처는 영신봉과 갓걸이재 두 곳이다. 그럼 외삼신봉이 비탐지역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지도를 놓고 잘 살펴보니, 갓걸이재에서 거림으로 바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는 걸 발견했다. 고로 외삼신봉이 목표인 산꾼은 굳이 영신봉으로 빙돌지 않고, 거림에서 바로 갓걸이재로 오른 후 외삼신봉에서 노닥거리다, 고운동재로 하산해도 된다.
영신봉까지 올라갈지, 영신봉을 버리고 - 어차피 영신봉은 비탐구역이라, 영신봉이 아닌 그 아래 이정표가 까만 소 인증 대상이다. 해서 거기까지 올라가 봐야 인증꾼이 아니면 큰 의미도 없다. 아, 이번 산행은 인증꾼을 위한 건가? - 세석에서 음양수로 바로 갈지, 아니면 거림에서 바로 갓걸이재로 갈지는 당일 날씨와 몸 상태를 보고 결정할 예정이다. 그나마 세석과 비슷한 환경인 기상청의 뱀사골 산악날씨에 의하면 산행 당일 기온은 0~9도로 기온 차가 심하고, 바람은 2m/s, 대체로 맑은 날씨라 기온만 제외하면 산행에는 괜찮은 날씨다. 다만, 일출 시점에는 구름이 많이 끼어 영신봉이나 음양수 너럭바위에서 일출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따라서 이 날씨에 맞춰, 비상시에 대비한 패딩 조끼와 아이젠을 준비하고, 이번 종자산행에 입은[산행기] 그대로 겨울용 복장으로 간다. 눈 소식은 없으니, 아직 등산지팡이를 준비할 때는 아니다!
무박 산행이라, 아침과 점심 두 끼를 해결해야 하나, 날머리인 고운동재가 버스가 통행할 수 있는 도로지만, 차량 통행이 드물어 휴게소가 없다. 고로 하산 후 식당에서 늦은 점심은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라, 고스란히 두 끼를 준비해야 한다. 처음에는 세석대피소에 뭘 끓여 먹는 걸 생각했으나, 대피소 직전 삼거리에서 음양수로 바로 올라가는 선택을 하면, 뭘 끓이는 게 불법인 환경으로 바뀐다. 해서 한 끼는 겨울 산행답게 뜨거운 물과 컵라면을 준비하고, 물론 김치도, 다른 한 끼는 발열 도시락을 가져간다. 그리고 애초 무거운 발열 도시락은 버스에 두고 갔다가 하산 후 날머리에서 늦은 점심으로 먹을 예정이었으나, 무거워 봐야 800g에 불과해 그냥 배낭에 넣어갔다가 상황을 보고, 아침을 라면과 도시락 중 선택할 생각이다. 물론 선택받지 못한 게 점심이다.
2 – 1
신사역 5번 출구에서 23시에 출발하는 안내산악회 버스라, 평소보다 조금 늦게 수면제로 빨갱이를 반주로 저녁을 먹고, 준비해 둔 배낭을 둘러메고 22시경 집을 나섰다. 그리고 연신내역에서 22시 16분 열차 타, 22시 48분 신사역에 도착했다. 늦은 시각이라 모든 가게가 철수했을 거로 생각하고, 승차장에서 위로 올라가, 개찰구를 통과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틈새 상품으로 김밥을 파는 즉석 빵집을 비롯 모든 가게가 아직 정상 영업 중이다. 김밥이 얼음과자가 되는 놀라운 마술을 벌어지는 겨울 날씨가 아니라면, 김밥 한 줄 사서 배낭에 넣겠지만, 지리산 남부능선에서 얼음과자를 먹을 생각은 없어, 그냥 지나쳤다.
즉석 빵집을 지나쳐, 5번 출구로 나가며 보니, 버스 정류장 앞에 관광버스가 대기 중이라, 혹시 지리산 가는 차가 아닐지 가까이 다가갔다. 안내산악회 버스는 맞지만, 다른 안내산악회다. 과거 가끔 이용하던 산악회였으나, 코로나 이후 성원을 채우지 못해 버스를 출발시키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무박 산행 버스가 출발하는 걸 보니 반가웠다. 그리고 그 뒤에 버스가 하나 더 있어 저건 뭐지 하고 가까이 가자, 앞창 뒤 종이에 '낙남정맥 1'이라 쓴 게 보인다. 사당에서 22시 45분 출발이라, 23시가 다 되어 도착할 거로 예상해 추위에 떨지 말고, 역 구내에서 시간에 맞춰 나오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정도 추위는 아니라는 생각에 미리 나왔는데, 벌써 도착했나?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박 산행은 출발지가 사당이 아니라, 신사다. 어쨌든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니, 즐거운 기분으로 배낭을 짐칸에 넣고, 버스에 타, 자리를 잡고 앉아 바로 잠을 청했다.
바로 잠이 들어, 가끔 비몽사몽 했으나, 푹 자고 있는데, 실내등이 들어오며, 버스가 휴게소로 들어간다. 무박 산행에서는 휴게소고 뭐고, 무시하고 계속 잠을 청했던지라, 역시 무시하고 자려다가, 아랫배가 살살 아파져 오고, 추운 날씨에 어두운 산에서 일을 보기보다는 초행의 덕유산 휴게소에서 처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하는데,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무언가를 무시하고 자는데, 옆의 산꾼이 받아서 줘 어쩔 수 없이 눈을 뜨고 뭔지 봤다. 11월 11일 판매량이 급증하는 초콜릿 과자다. 낙남정맥 종주 시작이라, 기념 수건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니다. 낙남정맥 종주는 관심 없는 인간이라, 받지 않으려고 했던 거다. 그건 인솔 대장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싼가?
이후 산행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했다. 오늘 동행한 대부분이 인증꾼이라 먼저, 까만 소 낙남정맥 인증처가 외삼신봉에서 갓걸이재로 바뀐 사실을 언급했다. 예상대로 갓걸이재부터 고운동재까지가 비법정탐방로다. 그리고 영신봉만 비법정이 아니라, 영신봉을 대신하는 이정표부터 음양수까지의 능선 구간도 비법정이다. 고로 낙남정맥 1구간에 법 없이 사는 무법자만 들어가는 코스가 두 구간이 있다. 해서, 무법자가 아닌 등산객은 이정표에서 인증을 남긴 후 다시 청학동 갈림길로 내려와 음양수로 방향으로 가라고 했다. 그리고 어차피 외삼신봉이 인증처가 아니고 비법정이니, 그걸 건너뛰고 청학동으로 내려가 하산주를 마시고 귀경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동의자가 한 명도 없어,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혹시 하산주가 그리운 인증꾼은 청학동으로 내려가, 택시를 타고 고운동재로 오는 것도 방법이라고 농반진반으로 언급했다.
당연히 비법정에 들어갔다가, 과태료를 물어도 그건 안내산악회나 인솔 대장과는 무관하다는 걸 몇 번이나 강조했다. 끝으로 오늘 참여한 등산객의 면면을 봤을 때, 애초 책정한 10시간의 소요 시간으로는 부족할 거 같아, 11시간으로 늘리겠다며, 산꾼의 양해를 구했다. 애초, 대기업 산악회가 11시간을 책정했음에도 10시간만 책정해 그만큼 자신 있는 등산객이 참여했나, 궁금해하던 차였다. 반대하는 산꾼이 없어, 11시간으로 1시간이 늘었다. 와중에 인솔 대장이 나도 잘 아는 두 산꾼의 이름을 거론하며, 물론 두 분은 8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을 거라고 반농담을 하기도 했다. 처음 거론한 노년의 산꾼은 맞는 말이나, 두 번째 언급한 청춘은 10시간이 아니라, 1시간이 추가된 11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운 친구다. 어쨌든 잠이 들어, 버스가 힘겹게 산을 오르는 걸 느끼고 잠에서 깼다. 그리고 조금 지난 3시 23분 버스가 거림 주차장에 도착했다.
2 – 2
버스 도착 직전 슬리퍼를 벗고, 등산화로 갈아신은 후 끈을 조이는 거로 산행 준비를 마친 상태라, 다른 일행이 버스에서 내려, 등산 준비를 하는 동안,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둘러메고, 주변을 둘러봤다. 새벽이라 다 잠이 들어 조용하다. 다만, 정신 못 차리는 몇몇 등산객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을 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별이 크고 밝아, 사진을 찍었으나, 결과물은 별이 하나도 안 보여 삭제했다. 그리고 등산 앱을 기동하고 GPS를 잡을 수 있는 여유를 둔 후 고도를 확인했다. 600.2m, 거림 주차장의 해발 고도로, 오늘 오를 최고봉, 아니 그 아래 이정표의 높이인가? 어쨌든 1,635m니, 1,000m 이상을 높여야 하는 빡센 산행이 기다리고 있다. 해서 내가 청학동 갈림길에서 바로 음양수로 빠질 생각을 하는 거다. 그게 정규 탐방로다!
주변 여기저기를 둘러본 후 선두가 출발하고, 5분가량 지난 3시 31분 중간 정도에서 1차 목표인 세석평전 ‘청학동 갈림길’로 출발했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떠들기 시작한 인간들 덕분에 동네 걔가 요란하게 짖는다. 심지어 세석으로 올라가는 중간 펜션이자 식당의 마당을 가로지르는 구간에서도 입을 가만히 두지 않는 인간들 때문에 내가 괜히 초조할 지경이다. 역시 예상대로 펜션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밖으로 나와 뭐 하는 인간들인지 구경한다. 입을 꼭 다물고 있던 내 얼굴이 붉어지는 순간이다. 어쨌든 빠르게 사유지를 통과해 3시 34분 탐방센터에 도착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4시 정각에 차단기가 올라가고, 탐방센터를 통과해야 하나, 차단기 자체가 올라가 있어 아무런 방해 없이 통과해 세석으로 향했다. 와중에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인증 중인 사람은 비치된 스탬프를 찍느라 잠깐 지체하기도 했다.
탐방센터를 통과했으니, 인간 구역에서 곰을 비롯한 짐승 구역으로 들어왔다. 새벽 3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각이고, 이 지역 일출이 6시 59분, 즉 7시경이라 그때까지는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어, 전적으로 랜턴 빛에 의지해 등산로를 찾아 올라가야 한다. 고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일행과 떨어지면 안 된다. 해서 앞선 일행과 보조를 맞추며, 발뒤꿈치만 보며 위의 세석으로 향했다. 그런데, 앞에 선 여성이 너무 빠르다. 혹시 내가 뒤에서 토끼몰이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럼 길을 양보하면 되는데, 그냥 가는 거로 봐서는 아직 자기 페이스를 찾지 못한 등산객으로 보여,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갔다. 원래 땀을 쭉 빼고 1시간가량 예열해야 산행을 제대로 할 수 있는데, 땀을 쭉 뺐으니, 더울 수밖에 없어, 4시 15분경 거림에서 2.4km 거리의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잠깐 멈춰, 바람막이와 넥워머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예열도 끝났으니, 심신 모두 산행에 최적화된 상태로 세석으로 가며, 지쳐 허덕이는 일행 대부분을 추월했다. 그렇다고 속도가 빨라진 게 아니라, 페이스를 찾지 못해 속도가 떨어진 일행을 추월했을 뿐이다. 4시 27분 해발 1,008m 높이에 있어, ‘천팔교’라 이름이 붙은 거로 생각되는 다리를 건너고, 이후 몇 개의 다리를 건넌 후, 4시 44분 거림보다는 세석이 더 가까운 쉼터를 지났다. 보이는 게 없으니. 찍을 것도 없어 주위의 변화에 집중하며 가고 있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일행이 “응, 대장이 전화했네?” 하더니, 멈춰서 통화한다. 제일 뒤에서 토끼몰이하는 대장이 진행을 확인하기 위한 전화로 생각하고, 계속 가, 4시 54분 세석대피소 2.1km 이정표를 통과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대장과 통화했던 산꾼이 뛰어 올라온다. 대장의 전화를 받고 뛴다는 건 앞에 사고가 났다는 거다. 계곡 길에서 나는 사고는 골절이 대부분이라 큰 부상이 아니길 빌며 위로 갔다.
5시 17분 세석평전의 입구나 다름없는 세석교를 지나, 다 왔다는 기쁨에 신이 나서 가는데, 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부상자가 있는 곳일 확률이 높다. 5시 24분경 저 위로 많은 사람이 부상자를 사이에 두고 모여 있는 게 보인다. 당연히, 골절을 치료하고 있는 거로 생각하고 계속 전진해 도착해 보니, 골절이 아니다. 안면을 트지는 않았으나, 이 안내산악회와 산행 때는 매번 같이해, 서로 묵례는 나누는 사이인 산꾼이 하얀 얼굴로, 등산화와 양말이 누군가에 의해 벗겨지고, 허리띠 또한 풀어진 채 배를 내놓고 누워있다. 그리고 일행 중 한 명이 심장을 압박하고 있다. 심폐소생술이다. 그걸 조금 지켜보다가, 심폐소생술에 관해 아는 바가 없고, 괜히 몰려있어 봐야 소생술을 진행하는 몇 사람에게 방해만 될 거 같아, 무사하기를 빌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산행 내내 헬기 소리가 들리나 집중했다. 헬기가 뜨지 않는다는 건, 정신을 차리고 하산하거나, 위로 올라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어둠 속에서는 헬기가 떠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고로 헬기 소리 유무로 환자의 상태를 평가할 수 없었다.
다시 길을 재촉해, 5시 34분 청학동 갈림길이자, 의신마을 갈림길에 도착했다. 애초 계획은 낙남정맥 종주에는 관심이 없어 굳이 세석대피소까지 가지 않고, 여기서 좌회전해 바로 음양수로 가는 거다. 그런데, 영하 1도의 기온과 찬 바람이 부는 음양수 위 천제단이 있는 너럭바위에서 아침으로 컵라면을 먹는 게 잘하는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개방된 곳에서 컵라면을 먹다가는 저체온증 걸릴 환경이다. 그런데, 몇 사람이 좌회전해 가는 걸 랜턴 빛으로 확인해, 꺼림칙하나 좌회전하자, 뒤에서 따라오던 여성 산꾼이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코스대로 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해, 걸음을 돌려, 대피소 방향으로 직진했다. 그리고 5시 41분 대피소 아래의 비상 식수대에 도착해 시원한 물을 몇 모금 마신 후, 혈압약을 꺼내 먹었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야 세석대피소이기는 하나, 여기도 대피소 구역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라, 대피소 도착과 다름없다.
사실 이번 산행의 목적이 외삼신봉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주고, 두 번째는 2024년 1월 새해맞이 지리산 천왕봉 산행을 거림에서 시작해 대원사까지 달리는 거대종주로 할 생각으로 이미 산악회에 신청까지 했다. 그런데, 지난 10월 초 1박 화대종주[산행기]의 경험으로는 안내산악회 계획인 12시간 내 거대종주는 쉽지 않을 거 같아. 실행 여부를 고민하다가, 이번 산행에서 거림에서 세석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하고 결정하기로 했다. 거대종주의 성공 여부는 아침을 먹을 예정인 장터목대피소에 8시까지 도착할 수 있느지로 생각하고 있다. 고로 거림에서 세석까지 2시간 30분 내에 도착하면 된다. 현재 시각 5시 41분! 2시간 10분이 조금 더 걸렸다. 고로 2024년 1월 9일 무박 거대종주는 예정대로 실행한다. 다만, 변수는 눈이다! 그렇게 결심을 굳히고, 대피소로 향해, 5시 44분 대피소 건물이 보이는 곳에 도착해 건물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 바로 아래 식수대로 가 기념 영상을 찍은 후 대피소로 올라갔다.
대피소에 도착해 보니, 일행이 대피소 현판 아래에서 인증을 남기고 있다.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처 100곳 중 세석대피소가 북진 기준 천왕봉 다음 두 번째다. 인증이 목적인 인증꾼이라면 당연히 기록을 남겨야 할 장소다. 그들의 모습을 빠르게 스캔하고 기록으로도 남긴 후 일출로 유명한 촛대봉 방향에서 빛나는 랜턴 빛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그 위의 초승달, 샛별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일출을 위해 벌써 촛대봉에 오르지는 않았을 거고, 비박?! 물론 저 아래 남해안에서 빛나는 항구도시도. 삼천포? 하동? 광양? 여수? 볼 때마다 헷갈리는 도시다! 그리고 바람을 막아 그나마 따뜻한 취사장으로 가 준비한 컵라면과 뜨거운 물로 아침을 먹었다. 물론 뜨거운 물이 남은 보온병에 우엉차 몇 조각을 넣어 차를 만들어 입가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취사장에서 아침을 먹는 등산객은 다음 목적지로 빠르게 진행하려는 숙박한 사람이고, 우리 일행은 나만 있어, 왜 그런지 생각해 봤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물론 날머리에 도착할 즈음에는 그 이유를 알았지만!
컵라면으로 이른 아침을 먹고, 6시 5분 영신봉으로 향하며, 외쪽의 촛대봉 방향으로 보니, 랜턴 빛은 보이지 않으나, 초승달과 샛별은 더 뚜렷이 보여,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영신봉 방향으로 오르자, 6시 16분 등산 앱이 영신봉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그걸 캡처하고 다시 길을 재촉해, 여성 산꾼이 힘겹게 올라가고 있는 걸 이정표 직전에서 추월했다. 무법자에, 인증에는 관심 없는 인간이라, 위의 금줄을 넘어, 영신봉에 올라갔다 내려올지 잠깐 고민하다가 이 어둠 속에 올라가 봐야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래 방향의 금줄을 넘어가려는데, 여성 산꾼이 도착해 저 아래에서 들리는 사람 소리가 뭐냐고 묻는다. 해서 이장표가 까만 소 낙남정맥 인증처며, 공식적으로는 여기서부터 낙남정맥이 시작되고, 금줄을 넘어 능선을 따라가면 된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그가 이정표를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는 동안, 금줄을 넘어 음양수로 향했다. 즉 양지에서 음지로 들어갔다.
금줄을 넘는 순간부터 이제는 내리 하산이다. 물론 중간에 기복이야 셀 수 없이 많으나, 그 모두가 낙동강에 도달하기 위해 내려가는 거다. 물론 신낙남정맥 기준이고, 구 낙남정맥 또한 사라지기 위해 달리니, 하산이다. 아니 대간, 정맥, 지맥 따질 거 없이 모두 하산이다. 고로 백두대간으로 향하는 북진이 아니라, 대간에서 내려가는 남진이 조금 쉬운 경향이 있다. 여명이 밝아오는 촛대봉 방향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며, 1차 목적지인 음양수로 향하는데, 등산 앱이 반응한다. 뭔지 궁금해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창불대'란다. 몇 년 전 영신봉 방향으로 올라갈 때[산행기] 봤던 배지지만, 중요한 게 아니라 잊고 있었다. 산행이 끝날 때까지 그런 배지를 몇 개 더 확인했다. 배지를 받는 건 별 의미가 없으나, 기억을 되살린다는 점에는 아주 유용한 도구다! 바쁠 게 없어 처음 보는 고드름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며 가는데, 뒤에서 같이 가자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멈춰 여성 산꾼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새벽에 등산로도 명확하지 않은 비탐방로를 혼자 오는 게 쉽지 않을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일행이 도착하는 걸 보고, 다시 응양수로 향했다. 물론 수시로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며. 그런데, 앞서가던 너덧 일행의 인기척이 사라졌다. 분위기로 봐서는 길을 잘못 들었다. 비법정탐방로는 이정표가 없고, 산악회 리본도 자주 보이는 게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길을 잃기 쉽다. 산세와 주변의 인적을 잘 보지 않으면, 시쳇말로 알바하기 쉽다. 그렇게 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나와 내 뒤를 따라오는 일행이 선두다. 해서 길을 찾으며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 따라붙은 그 팀이 오른쪽에서 길을 찾았다고 다 끌고 간다. 분명 왼쪽인데, 그들이 가는 방향을 보니, 뚜렷이 길의 흔적이 있어 따라갔다. 그러다가 무언가 이상해, 길에서 이탈해 왼쪽의 바위로 올라가 주변 산세를 관찰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은 계곡으로 빠져 계속 가면 의신마을이고, 지리산의 남부능선이자 정맥은 왼쪽이다. 해서 그들에게 거기는 길이 아니라고 외치고, 능선을 향해 숲을 헤치고 길을 만들며 가, 6시 50분경 천제단 너럭바위 위 금줄에 도착했다. 저 줄을 넘는 순간 빛을 찾아 음지에서 양지로 탈출하는 거다.
금줄을 넘어, 천제단으로 가, 제물이든 배낭을 제단에 올려놓고, 산신에게 삼배했다. 이후 뒤를 따라오던 일행이 도착하는 걸 보고, 배낭 멜빵에 달린 소주잔을 꺼내, 음양수로 내려갔다. 음양수에 도착해 보니, 물 흐르는 소리는 들리나, 낙엽으로 덮여 솟아나는 물이 보이지 않아, 낙엽을 치웠다. 그러자 물이 뿜어나오는데, 여기에 많이 왔지만, 이렇게 분수처럼 솟구치는 건 처음 봤다. 당연히 가져간 소주잔에 그 솟아나는 약수를 연거푸 세 번 받아 마셨다. 그런데, 과거에는 잘 몰랐는데, 물이 나오는 바위의 모양새나 물의 세기나, 왜? 음양수라 부르는지 알았다. 뒤를 따라온 일행이 이게 음양수라고 떠들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바람에 보기 힘든 진정한 음양수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어쨌든, 석간수를 덮고 있던 낙엽을 내가 치웠으니, 이번 산행 팀 중 제일 먼저 여기에 도착했거나, 나보다 앞선 사람이 있더라도 음양수를 모르는 거로 봐선 남부능선이 처음일 확률이 높다. 예로 나를 따라온 대여섯 일행 모두 음양수는 처음이다.
천제단과 음양수가 있는 바위 지대는 세석평전에서 의신마을과 청학동으로 가는 길목으로 법정 탐방로다. 세석의 청학동 갈림길이 여기를 통과하는 거다. 고로 영신봉 이정표부터 여기까지의 능선을 따라오는 비법정탐방로와는 달리,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그리고 랜턴이 없어도 주변이 보일 정도로 날도 밝았다. 해서, 음양수에 떠들고 있는 일행을 뒤로하고 혹시 일출을 볼 수 있을 만한 전망대가 있을지 주변을 둘러보며 삼신봉을 향해갔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구간에는 일출을 볼 수 있는 전망대 따위는 없다. 그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일출을 감상하며, 7시 4분 청학동 8.3km 거리의 이정표를 통과하고, 50여 미터를 더 가자, 조망이 트이는 곳에 도착했다. 동남쪽의 일출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북서의 노고단부터 영신봉까지의 주 능선은 밝아오는 여명 속에 뚜렷이 보인다. 거의 중앙의 엉덩이 두 쪽이 반야봉이고, 왼쪽 끝부분의 높은 봉우리가 노고단, 오른쪽 끝이 낙남정맥의 분기점인 영신봉이다.
의신마을이 있는 대성골을 중심으로 왼쪽의 남부능선, 즉 낙남정맥과 오른쪽의 덕평봉에서 이어지는 능선도 기록으로 남기며 가자, 왼쪽 촛대봉 아래 나뭇가지로 떠오르는 해가 보여, 사진을 찍었다. 이후 남부능선 위로 난 등산로로 삼신봉을 향해 가는데, 헬기 소리가 들린다. 그 시각이 7시 12분경이다. 마침 바위 전망대를 발견하고 그 위에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다. 날이 밝아 헬기가 출동했으니, 가벼운 상황이 아니라, 주변 절경 감상을 중단하고 헬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런데 헬기가 주변을 관찰하는 듯하더니, 떠난다. 해서 앞으로 뻗은 가야 할 남부능선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데, 헬기가 돌아온다. 다시 그 모습을 지켜봤으나, 또 떠나더니, 좀 있다. 다시 나타났다. 무언가 잘 못 되는 건지, 어쨌든 가고 오기를 여러 번 반복했는데, 다른 건 다음에 올 때는 사고 현장에 더 가까이 간다는 거다.
바위 전망대 아래 등산로로 지나가는 일행을 보며 헬기가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 동안 소식이 없어 전망대를 기록으로 남기고 내려와, 삼신봉을 향해 갔다. 전망대에서 헬기를 주시하고 있는 동안, 대부분 일행이 지나가 거의 후미에서 몇 번으로 쳐졌으나, 시간에 쫓기는 건 아니라, 페이스를 유지하며 전진했다. 그리고 7시 20분경 헬기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려 가던 길을 멈추고 주변의 바위 위로 뛰어올라 다시 헬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이번에는 아주 낮게 날아, 거의 세석대피소 부근까지 날아가는데, 지나온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해서 멍청이 지켜보다가, 바위에서 내려와 다시 길을 재촉해, 7시 25분 의신마을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정표가 지시하는 의신마을이 있는 오른쪽 대성골 방향을 보니, 금줄로 막아 놨다. 봄에 의신마을 부근에 산불이 나, 복구를 위해 출입을 금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 이상할 건 없었다.
철모르는 진달래를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며, 청학동 방향으로 가는데, 뒤쪽 세석대피소 방향에서 헬기의 떠오르는 소리가 들려, 그 방향을 보니, 헬기가 날아올라 빠르게 사라진다. 정확히는 모르나 환자를 싣고 병원으로 가는 거 같다. 해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환자의 무사를 빌었다. 그리고 사고에 관한 건 잊어버리고 산행에 집중해, 길을 가는데, 등산 앱이 반응한다. '응? 뭐지?'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돌문봉'이다! 처음 듣는다. 아니, 과거 몇 번 봤을 테지만, 기억 못 할 수도 있다. 어쨌든 돌문봉이면, 바위 사이를 통과한다는 뜻이라, 주변을 둘러봤으나, 바위 자체가 안 보여, 포기하고 100여 미터를 가자, 저 앞에 바위 군락이다. 속으로 '저거다!'를 외치고 동영상을 찍으며 돌문을 통과했다. 당연히 몇 번 통과한 돌문이다. 다만, 봉우리라는 이름을 가진 건 최근일 확률이 높다. 과거 트랙을 확인한바, 마지막으로 여길 통과한 2020년 6월[산행기] 분명 '돌문봉'이라는 배지가 없다.
돌문봉을 통과해 5분 정도 가니, 저 앞으로 가야 할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뻗어나가던 능선이 좌우로 갈라지는데, 좌로 뻗는 게 낙남정맥, 우가 삼신지맥으로 쌍계사를 품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보는 게 정확한 건 아니나, 가운데 높은 봉우리가 삼신봉, 오른쪽은 내삼신봉, 왼쪽이 이번 산행의 목표인 외삼신봉이다. 와중에 거림골 밑의 저수지, 정확히는 양수발전소 하부댐에 해가 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태백은 저수지에 뜬 달을 잡기 위해 동정호로 뛰어들었는데, 저 해를 잡으러 뛰어드는 사람은 없나? 그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기가 다시 길을 재촉하는데, 햇살이 뜨거워 참을 수가 없어, 가던 길을 멈추고 음양수가 있는 천제단에서 꺼내 입었던 바람막이를 벗어 다시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가는데, 앞으로는 이번 산행의 목표인 외삼신봉이, 좌로는 영신봉과 세석대피소, 촛대봉,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나, 낙엽 져 앙상하나 울창한 숲이 방해해 제대도 보이지 않아, 전망대를 찾으며 갔다.
7시 57분 청학동 6.7km 이정표를 통과하자, 나뭇가지 사이로 바위가 보인다. 전망대로 딱 맞다. 그리고 그 밑 등산로에는 세석 청학동 갈림길에서 정규 코스로 가자고, 부추겼던 여성 산꾼이 바람막이 벗어 배낭에 넣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헬기 얘기를 꺼낸다. 분명 세석 아래에서 헬기가 떠난 후에도 보이지는 않았으나, 몇 번 헬기로 다시 돌아오는 소리를 들었고, 지금도 들려 나도 궁금해하던 차였다. 궁금증도 해결하고, 촛대봉 능선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그 바위로 갔다. 헬기는 이미 떠나 보이지 않고, 능선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과 비슷하게 나뭇가지에 가려 제대로 안 보인다. 그래도 올라온 게 아까워 기록했다. 그리고 바위에서 내려와 다시 등산로로 돌아가려고 보니, 고드름이다. 해서 그걸 사진으로 남기려다가 미끈해, 손목으로 바위를 강하게 집는 충격으로 손목시계 줄이 풀려 떨어지고, 새끼손가락에는 상처가 났다.
줄이 풀린 시계를 들고 등산로로 돌아가자, 득템했냐고 묻는다. 해서 상처 난 손가락을 보여줬다. 그리고, 다시 시곗줄을 고정하고 손목에 차는 동안, 그 산꾼이 제 갈 길을 갔다. 시계를 차고 길을 가려다, 오른쪽을 보니, 역시 바위다. 그리고 저기는 가리는 나무가 없을 거 같아. 처음 바위의 반대편 바위로 가는데 손목이 허전해 바라보니, 시계가 없다. 잘 고정한다고 했음에도, 다시 풀려 등산로에 떨어져 있다. 이건 산신이 바위에 올라가지 말라는 게시라 생각하고, 다시 시곗줄을 고정해 손목에 차고, 미련 없이 거기를 떠나, 삼신봉으로 향해, 8시 16분 청학동 6.1km 이정표를 통과하고, 8시 25분 쉼터가 있어 네 명의 일행이 쉬고 있는 한벗샘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쉬고 있는 게 아니라,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 여성 산꾼은 인절미를 먹고 있다가, 권해, 하나를 집어먹었다. 그리고 한 산꾼이 비상 구급상자의 번호 자물쇠를 여는 걸 보고, 밴드가 있으며 하나 달라고 했다.
실은 그가 그걸 열 수 있을 거라곤 생각을 안 해 농담으로 한 말이다. 그런데, 열었다. 그리고 안을 보여주는데, 텅 비었다. 국립공원에서는 구급함이 비었는지 확인을 안 하나? 어쨌든 그가 다시 그걸 원위치는 하는데, 쉼터 의자에 앉아 있던 일행이 배낭을 뒤지더니, 밴드를 하나 준다. 내 배낭에도 밴드가 있으나, 귀차니즘에 꺼내지 않을 거지만, 이미 거절할 상황이 아니라,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밴드를 받아 손가락 상처에 붙였다. 그리고 한벗샘이니, 샘이 있나 찾아봤다. 지난번에 못 찾았는데, 이번에도 실패다. 이후 아침을 먹고 있는 그들에게 먼저 가겠다고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해 8시 52시 청학동 3.8km 이정표를 통과했다. 어느 순간 남은 거리가 확 줄었다. 그리고 5분을 더 가자, 등산 앱이 바른재봉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은근히 삼신봉이기를 바랐던 봉우린데, 바른재봉으로 처음 듣는 봉우리 이름이다.
재봉이니, 고갯마루라는 얘기다. 어쨌든 삼신봉이 멀지 않았고, 앙상하나 울창한 가지 사이로 앞에 높은 봉우리가 있는 간 확인이 되나, 삼신봉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기록이 중요해 그것도 사진을 찍은 후 삼신봉으로 향해, 20분가량 가자, 오른쪽으로 삼신지맥이 보인다. 그중 가장 높은 봉우리를 보고, 바로 뒤를 따라온, 구급함을 열었던, 산꾼이 동료에게 삼신봉이라고 알려주는데, 아니다. 내삼신봉이다. 여기서는 삼신봉이 숲에 가려 안 보인다. 당연히 외삼신봉도, 원하는 건 외삼신봉, 삼신봉, 내산심봉의 삼신(三神)을 한 장의 사진에 넣고 싶으나 그걸 허락하지 않아, 보이는 것만 기록으로 남겼다. 그런데, 뒤로 돌아서니, 지리산의 주 능선 중 노고단부터 영신봉까지 한눈에 들어와 그것도 기록으로 남겼다. 한 장의 사진에 삼신을 담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며 앞에 보이는 삼신봉으로 향하는데, 왼쪽으로 바위가 있다. 당연히 내게는 전망대라 위험을 무릅쓰고 올라갔다.
막상 올라가 보니, 외삼신봉과 그 봉우리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는 거 외에는 좀 전의 조망과 다를 바가 없어, 실망이 컸다. 그나마 아래와 다른 건 외삼신봉이 보인다는 것과 삼신봉에서 내삼신봉까지 능선이 보인다는 정도. 물론 그것도 앙상한 나뭇가지가 시야를 방해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려갈 수는 없어 기록으로 남겼다. 실망하고 바위에서 내려와 삼신봉 방향으로 30m가량 전진하자, 등산 앱이 삼신봉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줘 동영상을 찍으며 갔다. 하지만, 거리가 50m치고는 너무 길어, 중간 추모 동판에서 촬영을 중단했다. 추모 동판과 암봉인 삼신봉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후 다시 동영상을 찍으며, 중간에 뒤로 돌아 지리산 주 능선을 찍기도 하며, 암봉 정상으로 향해, 예닐곱의 우리 일행이 인증을 남기느라 정신이 없는 삼신봉 정상에 9시 32분경 도착했다.
낙남정맥이 삼신지맥과 분기하는 곳이 삼신봉이니, 지맥에 있어 중요한 봉우리지만, 까만 소가 이미 낙남정맥 인증 전에 100+라는 100 명산 이후, 추가 100 산에 삼신봉을 넣어, 삼신봉은 낙남정맥 인증처는 아니나, 100+인증처 중 하나다. 고로 이번 산행이 인증꾼에게는 황금 코스다. 백두대간의 세석대피소, 100+의 삼신봉, 낙남정맥의 영신봉 이정표, 갓걸이재/청학동 갈림길 이정표 등 세 도전 프로그램에 네 개 인증처다. 이번 산행에 참여한 등산객 90% 이상이 이 코스는 초행으로 보인다. 고로 인증을 위해 동참한 거라, 정상석 부근은 정신이 없어, 그들이 인증을 찍는 동안, 주 능선을 포함, 주변의 절경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파노라마를 대신해 동영상으로도 촬영했다. 그리고 좌로 외삼신봉 능선 즉, 낙남정맥을, 우로 내삼신봉 능선 즉, 삼신지맥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좀 한가해진 정상석으로 가 일행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겼다.
끝으로 삼신봉에서 분기하는 낙남정맥의 모습을 다시 기록으로 남기고, 삼신봉에서 내려가 이번 산행의 목표인 외삼신봉으로 향했다. 그때 시각이 9시 43분경이다. 오랜만의 삼신봉에 오른 것도 있지만, 나이가 들고, 그사이 새로운 산에 많이 올라, 삼신봉에서 갓걸이재, 즉 청학동 갈림길로 가는 길의 위치가 기억나지 않아, 일행에게 물어봤다. 조용히 길을 찾으면 되나,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걸 굳이 어렵게 갈 이유가 없다. 그렇게 삼신봉에서 내삼신봉 방향으로 내려가자 못 보던 초소가 있고, 그 앞에 이정표와 안내도가 있다. 청학동은 좌회전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정표를 보니, 과거 산행이 떠오른다. 초소는 왜 만들었을까? 산불감시? 어쨌든 이정표에 의하면 청학동까지 2.4km, 정확히는 탐방지원센터까지다. 마을이 아니라, 그리고 갓걸이재까지 얼마 되지 않으니, 거기서 청학동은 2km가 넘는데, 현재는 어떤지 모르나, 2020년 6월에 왔을 때까지는 생각보다 찾는 사람이 적어, 남부능선 산행의 마지막 고비였다. 최근 낙남정맥이 인증처로 등록되면서 인증꾼이 많이 찾고, 당시 없던 초소도 있는 거로 봐선, 청학동 하산로를 갑판으로 도배했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삼신봉에서 인증을 마친 일행과 우르르 갓걸이재로 향하는 중에, 인증을 찍어준 노년의 산꾼과 그 동행 몇 사람이 앞서가며,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언급했던 청학동으로 내려가 한잔하고 택시로 고운동재로 이동하는 방안에 관해 얘기한다. 현재 시각과 남은 거리를 고려했을 때 마감 2시 반은 너무 늦다. 그렇다고 날머리인 고운동재에서 할 일도 없어, 그렇지 않아도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 중이었다. 다만, 인증꾼에게는 인증대상이 아닌 외삼신봉은 중요한 게 아니나, 나는 외삼신봉이 목적이다. 해서 외삼신봉에서 청학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 거 같아,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해 봤다. 없다! 지도를 확인하는 동안, 그들의 대화는 택시비까지 왔다. 그리고 결국 식당이 문을 열기에는 이른 시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거로 토론은 끝났다. 어쨌든 그들의 대화에 몇 마디 거들기도 하며 가자, 9시 52분 등산 앱이 반응한다. 갓걸이재 반경 50m 내다. 과거에는 없었으나, 낙남정맥 인증처가 되면서, 등산 앱도 배지 획득 지점으로 등록한 거 같다. 그리고 9시 94분 인증을 위해 일행이 줄 서서 기다리는 청학동 갈림길에 도착했다. 우회전해 내려가면 청학동이다.
갓걸이재 이정표를 배경으로 줄 서서 인증을 남기는 일행의 인물이 바뀌는 순간을 이용해 이정표를 기록으로 남긴 후 주변을 둘러봤다. 외삼신봉 방향은 금줄로 막아 놨다. 물론, 그 금줄에는 온갖 경고문이 매달려 있다. 그중에는 우리의 지리산 지킴이 반달곰 경고도 있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금줄 아래로 낙남정맥 등산로가 있는지 살펴봤다. 오른쪽 아래로 보인다. 해서 인증을 남기느라 바쁜 일행을 한번 돌아보고, 금줄을 넘어 비법정탐방로로 들어섰다. 양지에서 음지로 들어선 순간이다. 그리고 앞의 봉우리로 올라가다가 음지에 들어선 기념으로 뒤로 돌아, 갓걸이재의 모습을 다시 사진으로 남겼다. 이후 앞만 보고 전진하는데,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봉우리가 보여, 당연히 외삼신봉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다. 결과적으로 외삼신봉까지 이런 착각을 서너 번이나 했다. 그 과정에서 심신이 지친 건 말할 필요도 없고. 한마디로 갓걸이재에서 외삼신봉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다. 비법정구간이라, 이정표도 없어, 등산 앱의 지도로 남은 거리를 예측해야 한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외삼신봉이라 생각하며, 오르는데, 갑자기 허기가 진다. 6시가 조금 못 된 시각에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었으니, 배가 고플 때도 됐다. 해서 배낭 허리띠 주머니에서 에너지바를 꺼내 먹으며 가, 정상에 도착해 보니, 외삼신봉이 아니라, 앞에 봉우리가 또 있다. 그렇게 봉우리 두세 개를 넘자, 조리대 숲이 반겨준다. 산행 전 지도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산죽인지 조리대인지 구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산악회 버스에서 인솔 대장도 언급했던 거라, 새삼스러운 건 아니나, 그 시작이 외삼신봉을 지나서가 아니라, 그 전이라는 것에 약간 당황했다. 여차하면 외삼신봉에서 청학동으로 길을 만들며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조리대 숲이라면, 포기다! 대략 외삼신봉 정상 200여 미터 전부터 시작한 키를 넘기는 조리대는 고운동재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나야 갈 일이 없지만, 낙남정맥 2구간 시작부터, 즉 고운동재부터, 대략 5km 정도의 조리 대숲을 뚫어야 한다는 정보다. 지리산 조리대 지옥은 이미 왕시루봉[산행기], 불무장등[산행기] 산행에서 지겹도록 겪었기에 잘 알고 있다.
조리대 숲을 뚫어야 해 비록 덥지만, 몸을 보호하기 위해 배낭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외삼신봉으로 향하다가 그나마 앞선 두 지옥에 비하면 견딜만해 이유가 뭘지 생각해 봤다. 물! 비와 이슬이다. 당시는 비 온 후, 아니면 이슬을 잔뜩 머금어, 하체는 물살이 거천 계곡을 지나온 듯 흠뻑 젖었었는데, 지금은 조리대가 바짝 마른 상태라 젖는 건 피할 수 있어, 그나마 앞선 두 구간보다는 견딜만했다. 그렇게 가다 보니, 10시 15분 등산 앱이 외삼신봉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줘, 동영상을 촬영하며 정상으로 올라갔다. 10시 17분 정상에 도착해 보니,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고 있거나,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대부분이, 삼신봉에서 만났던 일행이다. 해서 그들이 인증을 찍는 동안, 뒤로는 지리산 주 능선을, 오른쪽으로는 왕시루봉 능선과 백운산 삼신지맥을, 왼쪽으로는 웅석봉에서 이어지는 달뜨기능선, 앞으로는 남해와 섬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일행 중 한 명과 서로의 인증을 남겼다.
끝으로 지나온, 영신봉에서 시작하는 남부능선, 즉 낙남정맥의 모습과 남은 구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길도 없는 조리대 숲을 뚫어야 하는 하산주가 기다리는 청학동은 포기하고 고운동재로 떠났다. 10시 26분 외삼신봉에서 내려와 남은 낙남정맥 구간을 달리는데, 비법정 구역답게 길 상태가 엉망으로 산행 재미가 쏠쏠하다. 와중에 바위에서 미끄러져, 1m가량 높이에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과정에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왼손을 먼저 짚었는데, 하필이면 돌 위라, 왼 손바닥이 엄청난 충격을 받아, 남은 산행 내내 왼손을 잘 쓰지 못했다. 손바닥에 멍도 들었고. 왼손의 수난 산행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는다! 와중에 추월한 한 쌍이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어, 아무 일도 없었던 거처럼 벌떡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조리대를 뚫고 계속 갔다.
이번 조리대 숲이, 앞선 두 조리대 지옥과 다른 점은 그나마 길이 명확해 길을 찾아 조리대 숲을 헤매지 않아도 됐다. 고로 얼굴을 다치지 않게 구부정한 자세로 전진하느라 허리와 어깨가 아픈 걸 빼면 페이스를 유지하며 전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체력 소모가 심했는지, 엄청나게 허기져, 조리대를 벗어난 곳에 밥을 먹을 만한 너럭바위가 있는지 살피며 가, 10시 45분 오른쪽에서 바위를 발견하고 등산로에서 벗어나, 그 바위로 올라갔다. 앉아서 밥 먹기 좋은 환경은 아니나, 찬밥 더운밥 갈릴 때가 아니라, 자리를 잡고 앉아, 발열 도시락을 꺼냈다. 그리고 15분간 음식이 데워지는 동안, 등산화와 양말에서 발을 해방했다. 15분이 지나, 설명서가 시키는 대로 덮밥을 만들어 배를 채웠다. 그러는 중,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처럼 세석대피소가 아니라, 해가 뜬 이후 쉼터나, 공터에서 아침을 먹던 일행이 더 현명하지 않았나 곰곰이 따져봤다. 일단 한 끼만 들고 왔으니, 배낭이 가볍고, 8시 이후 배를 채웠으니, 체력 소모가 심한 조리대 숲을 통과하는 것도 나처럼 힘들지 않았을 거고, 물론 점심은 버스 짐칸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하긴 동행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고운동재에서 삼겹살 하산주 판이 벌어졌다!
식당 겸 휴식처로 사용한 바위의 모든 인적을 인멸하고, 다시 등산로로 돌아가, 조리대를 뚫고, 고운동재로 향했다.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고개를 들어봐야 보이는 게 없고,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조리대 사이로 난 길을 확인하며, 전진이다. 와중에 높지는 않으나, 기복이 심해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가랑비에 속옷 젖는지 모른다고, 계속 오르내리자, 지친다. 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10여 미터를 올라가다 말고, 잠깐 멈춰 숨을 돌리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비록 기복은 있으니, 1,635m의 영신봉에서 내려오는 거라, 지속해서 고도를 낮추는 산행이다. 해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급경사 내리막이다. 물론 비법정이라, 안전시설 따위는 없다. 그런데, 손을 다친 이후 배낭에서 꺼내 낀 장갑이 급경사 조리대 숲을 통과하는 데는 아주 유용하다. 장갑 낀 손으로 조리대 여럿을 움켜쥐고 내려가면 땅속뿌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밧줄보다 더 튼튼하고 안전하다.
문명의 이기의 도움을 받으며, 조리대 숲을 통과하는 중, 그나마 바위 전망대를 하나 발견하고 그 위에 올라, 뒤로 보이는 지리산 주 능선을 감상했다. 가야 할 방향과 좌우는 조리대와 앙상하나 울창한 나뭇가지만 보인다. 많은 보고 찍은 주 능선이나 다시 기록으로 남기고 조리대 숲으로 돌아와 전진하는 중 앞에 봉우리가 보인다. 저기를 넘으면, 날머리인 고운동재가 아닐지 기대하며 위로 오르자, 조리대 숲 내의 갈림길이다. 인솔 대장이, 막판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이 능선이고, 오른쪽은 청학동으로 하산하는 길이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었다. 당연히 왼쪽으로 가며, 막판이라고 했으니, 이 봉우리만 넘으면, 고운동재라 믿고 내려갔다. 하지만, 도로가 안 보여,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하니, 고운동재는 아직 멀어, 실망하며 가는데, 등산 앱이 반응한다. ‘원목재’다. 이름은 몰랐지만, 산행 전 지도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고운동재 전에 고개가 하나 더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비록 고운동재는 아니나, 멀지 않아, 마지막 봉우리라는 기쁨을 안고, 원목재에서 급경사 봉우리에 올라가자, 다시 앞에 봉우리다. 한국 산은 끝나야 끝난 거다. 해서 얼마나 더 가야 하나, 다시 지도로 확인했다. 원목재에서 고작 1/5 정도 왔다. 실망한다고 달라질 게 없어, 마지막으로 힘을 내, 몇 개의 봉우리를 넘자, 고개로 내려가면서 조리대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내려갈 만하다. 조리대 숲이 끝난 거로 여겨 기뻐하며 가는데, 다시 조리대 숲이다. 역시 한국 산은 모른다. 그리고 한참을 가자, 그 숲이 끝나고, 개활지로 고운동재도 멀지 않아 보여, 기쁜 마음으로 조리대가 끝나는 지점과 낙엽 쌓인 개활지 시작점을 기록으로 남겼다. 신이 나서 낙엽 쌓인 개활지로 내려가다가, 체력 보충을 위해 다시 에너지바를 꺼내 먹으며 갔다.
그렇게 내려가자, 아래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오른쪽으로는 급경사를 올라오는 포장도로도 보인다. 그리고 13시 10분 등산 앱이 고운동재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해서 마지막 동영상을 찍으며 가는데, 다시 조리대 숲이다. 끝까지 안심할 수 없는 게 한국 산이라는 건 진리다! 그 조리대를 뚫고, 13시 12분 고운동재가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산을 둘러싼 멧돼지 이동을 막는 철책 문이 활짝 열려 있고, 고운동재에는 앞선 일행이 끼리끼리 모여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철책 문을 통과해 산으로 올라가는 임도 중간에 작은 계곡에는 일행 서넛이 씻고 있다. 그런데, 예상보다 먼저 도착한 일행이 적어 놀랐다. 조리대 숲에서 끼니를 때우는 20여 분 동안,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추측건대, 일행 대부분이 앞섰을 거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승합차 짐칸에 대용량의 버너와 조리도구, 그리고 음식 재료를 싣고 있는 남자다. 혹시 여기서 포장마차를 하다가, 철수하는 건가? 아니면, 야영?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철책을 통과해 고운동재에 도착하는 거로 산행을 마감했다.
3
산행은 끝났는데, 1시부터 기다린다던 버스가 안 보인다. 아마, 환자를 헬기에 태워 보내느라, 정상적으로 산행하지 못하고 거림으로 되돌아 내려간, 인솔 대장과 몇 사람을 태우고 오느라 늦는 걸 거다. 해서, 도로 난간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아, 먼저, 보온력이 탁월한 보온병에 들어있으나, 추위를 견디지 못해 식어, 뜨거운 게 아니라 따뜻한 우엉차로 조리대를 헤치며 오느라 심해진 갈증을 해소했다. 그리고 등산 앱 기록을 중단한 후, 등산화 끈을 느슨하게 풀었다. 와중에 막 도착했을 때, 승합차 짐칸에 조리도구와 음식 재료를 싣던 사람이, 이번에 '무한도전' 리본을 달고 다니던 두 여성을 지원하는 지원팀이라는 사실을 주변 이행의 대화로 알았다.
좀 전 낙남정맥 2구간 초입부에서 들리던 여성의 대화도 설명된다. 우리 일행은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 2구간을 출발하기에는 늦어, 반대로 종주하는 팀이 도착한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면, 지금 2구간을 시작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그래서 'J3'와 '무한도전'이 무서운 팀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한 순간으로, 산꾼이라면 누구나 산악회에서 꿈꾸는 그림이다. 그렇게 뒤처리하며 주변의 대화를 듣고 있는데, 1시 20분경 버스가 도착했다. 예상대로 대장을 포함 몇 사람이 버스에서 내린다. 그리고 산행을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던 일행이 버스로 우르르 몰려간다. 처음에는 배낭을 넣기 위한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다. 버스 짐칸에 있는 버너와 코펠, 하산주, 라면 등을 꺼내 판을 벌이기 위한 거다.
그들이 판을 벌이는 동안 나를 포함 몇 사람은 따뜻한 버스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좀 있으니, 기사가 차에 시동을 걸고, 차를 운전해 청학동 쪽으로 내려간다. '은, 뭐지?' 무슨 상황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버스에 타기 전 인솔 대장이 누군가와 통화하며, '택시가 없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낙오자를 태우러 가는 거다! 역시 예상대로, 청학동으로 하산한 세 여성 등산객을 태우고 다시 고운동재로 돌아왔다. 낙오한 이유를 들어보니, 알바를 심하게 하는 바람에 시간 내, 고운동재에 도착할 방법이 없어, 청학동에서 택시를 타려고 갓걸이재에서 청학동으로 하산했다고. 그런데 택시가 없어 대장에게 전화했단다! 어이가 없다. ‘청학동’을 서울의 한 동으로 생각했나? 산청 택시를 불러야지, 다른 산악회라면 상상도 못 할, 대단한 인솔 대장이다. 그래서, 이 산악회가 유지되는 걸 수도 있다. 어쨌든 그들을 태우러 청학동으로 가는 동안, 기사가 누군가와 하는 통화로 심정지 상태의 그 산꾼이 사망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통화 내용으로 인솔 대장과 기사가 산청경찰서 형사와 전화로 사건 내용에 관해 진술했고, 그걸 토대로 조서를 썼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진술서에 서명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아, 버스가 경찰서를 다녀왔기를 빌었다.
산행 마감 10여 분 전 고운동재로 돌아오면, 당연히 벌였던 판을 정리하고 버스를 기다릴 거로 생각했는데, 여전히 '부어라 마셔라.'다. 그리고 공식 마감보다 10분 늦은 2시 40분경 버스는 청학동 반대 방향으로 서울로 출발했다. 좀 전에 다녀온 길이 초면이니, 그 반대 또한 초면이라, 창밖의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데, '고운암(孤雲庵)’과 '고운동천'을 지난다. 고운동재의 고운이 한국어 ‘곱다’에서 파생된 거로 생각했는데, 암자 현판을 보니, 외로운 구름이라 기억한다. 그리고 지난 도장산행 때[산행기] '우복동천'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 여기저기 뒤졌던 기억이 있어, '동천'이라는 지명을 보자, 뇌리에 박혔다. 그리고 잠깐 잠이 들어 깨어 보니, '응?' 세 명의 여성 중탈자를 회수하러 갔던, 청학동 방향으로 다시 급경사를 내려가고 있다. 처음에는 착각하고 있는 거로 생각했는데, 삼거리 주변 건물을 보니 확실하다. 그럼, 자는 동안, 어디에선가 유턴했다는 거다. 초행의 기사라면 있을 수 있는 실수다. 어쨌든 제대로 방향을 잡아 서울로 향하는데, 3시 30분경이 되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조의를 표하며 산꾼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대장과 최초 119 신고자 두 사람이 진술서를 쓰기 위해 산청경찰서에 들러야 하니, 이해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미 전화로 다 진술한 상태라, 서명만 하면 되니, 30분 정도면 될 거라는 얘기와 함께.
산청경찰서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조서를 작성하기 위해 경찰서 내로 들어가고, 30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 상황이라, 보온병에 든 차를 다 마셔, 식혜나 생수를 사기 위해 편의점을 찾아 경찰서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없다! 와중에 고운동재 하산주 판에 참여하지 않았던 일행은 빠르게 배를 채우기 위해 분식집으로 들어간다. 사거리를 두 개가 건너며 편의점을 찾다가 할인점을 발견해,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갔으나, 거의 모든 음료가 2리터 대형 페트병이다. 다행히 500mL 생수를 발견해, 계산 후 바로 마개를 따고 거의 반을 들이켰다. 그렇게 갈증을 해소하고 경찰서로 돌아왔는데, 인솔 대장이 얘기한 30분이 지나도, 버스는 떠나지 못하다가, 거의 한 시간이 지난 4시 40분경 서울로 출발할 수 있었다. 다른 때와는 달리, 고속도로 정체가 거의 없어, 천안삼거리 휴게소에서 10분 휴식하고, 신갈, 죽전에서 승객을 내려 줬음에도, 20시 5분경 어제 심야에 떠났던 신사역에 도착하는 거로 산행을 마감했다.
이후 신사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녹번역에 내린 후, 버스로 집에 가까운 정류장이 아니라, 그 직전 정류장에서 내려, 1.8L 빨갱이 한 병을 사 들고 집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배낭을 정리한 후 깨끗이 씻고, 대피소에서 구워 먹으려고 사두었던, 스테이크를 구워, 밥과 함께 먹었다. 물론 삼다수 병에 든 빨갱이를 하산주로, 비록 작은 상처는 입었으나, 무사 산행을 할 수 있게 해준 지리 산신에게 감사하며.
안내산악회 낙남정맥 종주 계획대로 1구간인 ‘거림 → 청학동/의신마을 갈림길 → 세석대피소 → 영신봉(이정표) → 음양수 → 헬기장 → 삼신봉 → 갓걸이재/청학동 갈림길 → 외삼신봉 → 원목재 → 고운동재'의 25.6km(램블러) 코스를 금요 무박으로 9시간 55분 동안 달렸다. 이동 9시간 11분, 휴식 44분!
하지만 이번 산행에서 그동안 의심만 하고 있던 휴식 시간, 등산 앱 GPS가 튀어 거리가 무작정 늘어나는 현상을 확인했다. 특히 GPS를 수신하기 어려운 실내나, 숲속에서! 문제는 휴식은 바람을 막아주고 그늘진 곳에서 하는 거라, 거의 휴식 없는 당일 산행이 아니면, 트랙에 실제 걷지 않은 거리가 포함되는 문제는 늘 발생한다. 해서 등산 앱을 바꿔야 하는데, 마땅하게 눈에 띄는 게 없다. 어쨌든 이번 산행 실제 거리는 휴식 중 튄 4.5km 정도를 뺀, 21km가 실제에 부합하는 걸로 생각된다.
기온이 낮아, 햇빛이 닿지 않는 음지를 지날 때는 추위를 느낄 정도였으나, 10시가 지나서부터는 햇살이 비추는 곳은 눈이 부셔 앞을 잘 보지 못할 정도로 맑고 쾌청한 날씨라, 동서남북 모든 절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미지의 지리산 남부능선의 외삼신봉에 올라, 지리산 주 능선과 동쪽의 달뜨기 능선을 막힘없이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외삼신봉을 마지막으로 지리산의 주요 봉우리는 다 올랐다.
이번 산행은 2024년 1월 9일 신년 지리산 천왕봉 산행으로 달릴 예정인 거대종주가, 안내산악회 계획인 12시간 내 주파가 가능한지 확인하는 목적도 있다. 거림에서 세석까지 2시간 조금 더 걸렸으니, 거림에서 장터목까지 4시간 내 주파가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고로 예정대로 진행한다.
거림에서 세석으로 올라가는 중 안면을 트지는 않았으나, 이 안내산악회와 산행 때는 늘 같이해, 묵례는 올리는 사이였던 산꾼이 심정지로 병원으로 실려 가 사망했다. 삼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