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디 켐프가 연주하는 베토벤 소나타 8번 비창(Pathetique) 2악장, 맨 아래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1악장을 연주 합니다
[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Pathetique)" ]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 '월광' '비창'은 그의 소나타 32곡 중에서도 피아노 소나타 3대 곡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정평이 나있는 곡 입니다. '비창'은 베토벤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칼 폰 리치노프스키에게 헌정된 곡입니다.
'비창'이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직접 지었다고도 하고 악보를 발표한 출판사에서 지었다고도 하는데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족이지만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도 '비창'으로 더욱 알려져 있죠.
[ 헤르만 헤세의 자전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 ]
* 칼브의 나골트 천(川), 이곳에서 헤세의 자전소설 <수레바퀴 밑에서>의 주인공 한스가 자살합니다
헤세의 고향 칼브가 있는 남독일의 슈바벤 지방은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나와 시인의 땅이라 일컬어지는 곳입니다.
칼브로 가는 길은 인대가 온톤 슈바르츠발트(黑林)라 불리는 검푸른 전나무 숲의 연속입니다. 인구 2만의 칼브는 네카 강의 지류인 니콜트 천(川)이 이 숲 속을 숨어 흐르다가 햇빛에 반짝이기 시작하는 곳에 있습니다. 이 니콜트 천이 바로 헤세의 문학을 키운 젓줄인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칼브에서 태어나 4세 때 스위스와 바젤로 이사를 갔다가 9세 때 도로 돌아왔고 18세 때 마을을 영원히 떠났습니다.
* 칼브의 중심 광장
헤세의 작품 가운데 칼브에서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은 것으로는 <청춘은 아름다워라> 등 23편의 중,단편의 소설이 있고 <데미안>의 일부가 칼브를 무대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자전 소설인 <수레바퀴 밑에서>가 가장 고향의 거리가 생생합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州) 시험, 신학교 입학, 신학교 탈주, 견습공 생활 등은 작가 자신의 체험이요, 주인공 한스가 자살하는 대신 헤세는 자살 미수에 그친 것이 소설과 다를 뿐입니다.
* 신학교 자리의 교회당
칼브에는 헤세가 살던 집이 세 군데 있습니다.
마을의 중심지인 시장 광장 6번지, 시청 바로 남은 편에 남아있는 헤세의 생가는 목골조(木骨造) 건물의 맨 아래층이 <DAUR>라는 간판의 양장점이 되어 있습니다. 그 앞에 분수대 하나, 그리고 광장 저쪽 끝의 또 하나, 어린 헤세가 물장난을 하며 놀던 이 분수는 <수레바퀴 밑에서>에 “시장 광장에서는 두 개의 커다란 분수가 소리를 내며 번쩍였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두 번째 집은 나콜트 천에 가까운 비숍 가(街) 4번지. 9세 때 바젤에서 돌아오자 할아버지가 출판업을 하고 있던 이 집에서 살았고 마울브론의 신학교를 탈출한 뒤에도 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 칼브 광장의 분수대
<수레바퀴 밑에서>의 한스의 집이 이 집이고 헤세는 26세 때인 1903년 아직 여기 살고 있던 아버지를 찾아와 이 집에서 <수레바퀴 밑에서>의 일부를 썼습니다. 세 번째 집은 레더 가(街) 24번지에 있는 것으로 헤세가 마울브론 신학교에 가기 전에 6개월 동안 살았던 곳입니다.
칼브의 한쪽 끝에 나가 떨어져 있는 역은 소년 한스가 주 시험을 치르러 슈투트가르트르로 가면서 기차를 타던 곳. 역시 소설에 나오는 시장 광장 가의 목사관이며, 그 뒷골목의 학교 등도 건물이 아직 정정합니다.
* 칼브의 헤세 기념관
헤세가 마울브론 신학교를 탈출한 뒤 견습공으로 일하던 페로트 철물공장은 건물은 없어졌으나 그 자리에서 가까운 나골트 천변에 페로트 공장의 다른 건물이 서서 지금도 기계가 돌고 있습니다. 그 옆의 비숍 가 길가에 헤세의 흉상을 새겨 넣은 우물이 있습니다. 그를 기념하여 세운 <헤세의 우물>입니다.
나골트 천은 <수레바퀴 밑에서>에서 주인공이 빠져 죽는 냇물입니다. 이 나골트 천을 따라 나 있는 비숍 가는 헤세가 가장 좋아하던 거리이기도 하지요. 평생 비숍 가의 한 소년이고 싶어하던 헤세였습니다. 천변(川邊) 길에 있는 향토 박물관은 <헤세 기념관>이라는 간판을 나란히 붙여 기념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 이웃 건물은 <청춘은 아름다워라>에 나오는 헤세 삼촌집입니다.
* 칼브의 헤세 기념관
헤세는 칼브를 떠난 후에도 부모를 보러 이따끔 왔으나 1931년 54세 때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고향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때 헤세는 함께 데리고 온 큰아들 브루노에게 “이제는 칼브에 오지 않겠다. 옛날의 집들은 없어지고 마을은 변했다. 내 마음 속에 어릴 적 고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편이 낫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둘째 아들 하인리히는 칼브 시민들이 나치주의 자들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고향을 등졌다고 합니다.
헤세가 다니다 탈출해 나온 마울브론 신학교는 칼브에서 약 50km 북쪽에 있습니다. 이 신학교에 대해서는 <수레바퀴 밑에서>의 제3장 첫머리에 묘사가 자세합니다.
* 헤세의 친필 원고 및 직접 그린 수채화
구름의 시인 헤르만 헤세는 여러 곳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1919년 남부 스위스의 몽타뇰라 언덕에 정착을 한 뒤 거기서 여생을 마쳤습니다.
이탈리아와의 접경인 루가노에서 우편버스를 타면 20분만에 몽타뇰라 마을에 닿습니다. 헤르만 헤세 로(路)의 끝에 있는 헤세의 마지막 집은 정문에서 한참 들어가야 집이 있어 밖에서는 안보입니다.
* 칼브의 헤세 동상
아들 하인리히 헤세에 의하면 이 집에 살던 만년의 헤세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언제나 혼자 아침을 먹었고 10시가 되면 눈이 나빠 남이 읽어 주어야 하는 편지들을 뜯었습니다. 글 쓰는 것보다 정원 가꾸는 것이 눈에 좋다고 하여 아침 저녁으로 뜰에 나가 사는 시간이 많았다고 합니다.
점심은 가족과 함께 먹고 낮잠을 한 시간씩 잤습니다. 저녁 식사 전에 편지 답장들을 쓰고 식후에는 라디오로 음악을 듣다가 10시반이면 자기 방에 들어가 타이프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항상 1주일 예정표를 미리 짜놓고 살았는데 헤세는 까다로우면서도 유머가 많았다고 합니다.
* 칼브 나골트 천변의 헤세 기념동판
낮에는 자식들이 방해하는 것을 싫어하다가 저녁에는 불러서 같이 놀아주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작품 중에서는 <크눌프>와 <싯달타>를 특히 아꼈다고 하네요.
몽타뇰라의 집 앞 길가에는 하얀 석비(石碑)가 하나 서서 저 아래로 루가노의 시가지와 아름다운 루가노 호수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1977년 탄생 1백주년 때 세운 헤세 기념비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몽타뇰라에서 한참 걸어내려 가는 산 아본조 마을의 공동묘지에 이름만 적힌 담백한 묘석 아래 부인 니논과 함께 누워 있습니다.
* 몽타뇰라의 헤세 기념관
* 기념관 내부
* 손녀와 함께, 말년의 헤세
* 멀리서 바라 본 헤세 묘지
* 헤세 묘지
* 멀리 루가노 호수를 바라보는 헤세
* 몽타뇰라의 헤세가 살던 집
* 헤세의 집에서 바라본 루가노 호수
[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 ]
<수레바퀴 밑에서>는 헤르만 헤세의 젊은 시절의 자전적(自傳的) 소설입니다. 한스라는 온 마을이 기대하는 재주 있는 소년이 건강을 해치면서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여 주(州) 시험에 합격한 뒤 신학교에 들어갑니다.
신학교에서는 장래가 촉망되는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헤르만 하일너라는 친구를 사귀면서 성적이 떨어집니다. 하일너가 신학교 탈출을 시도하자 선생의 신망을 잃은 한스는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습니다. 엠마라는 소녀와의 사랑도 실패로 끝나고 기계 견습공 노릇도 쇠약해진 몸이 견뎌내지 못합니다. 어느 날 한스는 강물에 투신하여 자살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헤세는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의 하나인 이 소설에서 상처 받기 쉬운 소년의 미묘한 심리를 정교하게 그리면서 이해 없는 엄격한 교육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 다니엘 바렌보임이 연주하는 1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