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행복
사람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근심과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재산을 모으는 것도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살기 위함입니다. 명예를 높이는 것도 남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함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도 행복하게 살기 위함입니다. 아름다운 이성을 사귀고 싶은 것도 행복하게 살기 위함입니다. 자식을 열심히 공부시키는 것도 자녀를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행복하게 살기위한 처절한 노력이 어디 이 뿐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하기 위해서 눈물겹도록 열심히 살아가지만, 봄이면 보릿고개를 넘느라고 주린 배를 물로 채우던 시절에도 들판에서 참이라도 먹을 때면, 반드시 주위 사람 불러다가 나누어 먹던 정겨운 광경은 사라지고, 대문을 마주하고도 이름도 성도 모른 채 닭장 같은 집에서 살아갑니다. 갈수록 불행하다고 아우성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재물을 가져야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재물욕 財物欲)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껏 사랑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색욕 色欲)하고,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야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식욕食欲)하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위에 올라야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명예욕 名譽慾)하고, 잠을 실컷 잘 수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수면욕睡眠欲)을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지금은 비록 힘들게 살지만 노후엔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어른이 코 흘리게 아이의 과자를 뺏듯이 서민들의 상권을 마구 유린한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야단법석입니다. 그러나 물질을 채워서 행복해 지려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만들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오욕인 재물, 색色(이성 異性), 음식, 명예, 실컷 자는 잠 등은 행복을 만드는 재료는 되지만 행복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만드는 재료가 같다고 다 같은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듯이 행복의 재료를 다 갖추었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오욕五慾은 물질이고 행복은 정신의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꽃이 아무리 예쁘게 피어도 바라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미소를 보내지 않듯이, 행복도 아무리 많은 조건을 가지고 있더라도 느끼지 못하면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에는 성장하고, 가을이면 수확하고 겨울이면 찬바람이 불듯이, 사람이 살다보면 햇빛이 쨍쨍하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고, 눈비가 오기도 하고, 때로는 천둥 번개가 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흐름이고 죽지 않고 살아있기에 오는 당연한 흐름입니다. 이것을 노자는 사람이 조작하여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이루어진다 하여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하고, 물이 흘러가듯이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가라고 하여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불행한 것은 시부모가 잘못하기 때문이고, 배우자가 잘못하기 때문이고, 자식이 잘못하기 때문이고, 친구가 나에게 잘못하기 때문이고, 이웃이 나에게 잘못하기 때문이고, 사회가, 나라가 잘못하기 때문이라며, 마음 상해가며 하루하루를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갑니다. 그 뿐 아니라 지나온 과거는 후회하고, 다가올 미래는 걱정하면서 현재의 삶에 행복을 못 느끼며 아옹다옹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마주하는 대상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다고들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대상이 변하여 내가 행복하려면 행복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금년 3월에 국제연합이 세계행복의 날에 발표한 세계의 행복 순위를 보면, 한국은 조사대상 143개국 중에서 118위로 지난해 보다 24계단 떨어졌다고 합니다.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이 31,950달러인데 비해 1인당 국민소득 6,053달러인 파라과이가 1위이며, 콜롬비아, 에콰도르, 과테말라 순으로 국민 소득 3만 달러 이상인 국가는 선두그룹에는 없었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소득이 높다는 것이 행복에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하 온 나라가 경제 살리기라는 것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로 동굴의 성모, 흰 족제비를 안고 있는 여인, 음악가의 초상, 리타의 성모, 최후의 만찬, 암굴의 성모, 성 안나와 성 모자, 세례자 요한 등 수없는 명작을 남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과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예수와 그를 배반한 가롯 유다의 모델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다 빈치가 교회 합창단 중 한 명에게서 ‘예수의 얼굴을 봤다’며 그를 예수의 모델로 삼았으나, 유다의 모델을 구할 수 없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가, 몇 년 후 다 빈치는 교도소를 들락거린 부랑아에게서 유다의 얼굴을 발견하고 모델이 돼줄 것을 청했는데 부랑아가 그림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단다. ‘몇 년 전 자신이 예수의 모델이었다.’라고 하였답니다. 그러니 얼굴의 모양이 예수와 유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서 피어나는 찰색察色과 안광眼光이 같은 사람을 예수와 유다의 얼굴로 만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옛날이야기에 우산장사하는 큰아들과 짚신장사를 하는 작은 아들을 둔 어머니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날이 좋으면 큰아들 걱정을 하고, 비가 오면 작은 아들 걱정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든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하루하루를 근심으로 보내던 어머니가 도인 스님으로부터 날이 좋으면 작은 아들 장사가 잘되어 좋고, 비가 오면 큰아들이 장사가 잘되어 좋지 않으냐는 말을 듣고는 크게 깨우쳐 날마다 즐겁게 지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행복과 불행은 마음이 만든다고 하기도 하고,
세상사 모든 일이 다 마음먹기 달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라고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하는 여러 예를 보더라도 물질로서 행복을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쁜 얼굴을 가지려면 얼굴에 화장을 하듯이, 행복한 얼굴을 가지려면 마음에 화장을 해야 합니다. 마음에 화장이란 꿈과 사랑과 희망의 긍정적인 마음으로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다가올 미래를 걱정도 하지 말며,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그 대가에 대하여는 매사에 감사하는 즐거운 마음입니다. 영국 작가 찰스 H. 스파존은‘사람의 행복은 얼마나 많은 소유물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잘 즐기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행복을 위한 방법에는 동서양이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 글을 다 읽은 분이면 반드시 재앙은 멀어지고, 복은 불러들여 눈은 빛나고, 얼굴이 꽃처럼 피어나는 행복한 삶이되시기를 해산이 선신善神께 진심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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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나 잘못된 어구나 잘못된 생각이 있다면 지적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깊은 고민은 댓글로 주시면 아는 범위 내에서 원인을 정성껏 답해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에 경의를 표합니다 다만 오욕을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그래도 五.인지汚.인지를 한자로 병기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오욕락(五欲樂)은 재색식명수(財色食名壽)다.
재산이란 부(富)를 말하는 것이고
색(色)이란 이성을 그리워하는 것이고
식(食)은 맛있는 음식
명(名)에는 명예와 권리
수(壽)는 수명인데, 안락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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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일발낭 我有一鉢襄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
무구역무저 無口亦無底 입도 없고 밑도 없다
수수무불람 受受無不濫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출출이불공 出出而不空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법장)
행복한 나날이시기를 기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