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2기 310. 봉사활동
내가 수도원에서 한글 수업을 중단한 지 벌써 1년이 더 되었다.
잘 하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한 주에 두 시간씩 2년 넘게 어린 수사들과 만나 즐거운 수업을 했었다. 내가 다치기 전까지.
지금도 가끔씩 나는 그 수도원을 들르게 된다. 코리안 빌리지에 새로 이사 온 Mrs 윤, 크리스티나 때문이다.
그녀는 매주 일요일 오후에 수도원에서 미사를 참예하며 그 때 모여드는 가난한 현지인들에게 200여명의 밥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아직은 아주 작지만 행복나눔이라는 기부재단을 만들고 그 돈에서 쌀과 부식비를 충당하며 그녀는 매주 노력봉사를 하고 있다.
수도원 사제가 일일히 가구 방문을 하며 실사를 한 가난한 가정에 매 주 쌀 5kg씩도 나눠준다.
처음엔 30 가구였던 게 95가구로 늘었고 칠 팔십 명이 먹던 밥 나눔이 200명으로 늘어났다.
그녀는 수도원 주방에서 수사들과 함께 땀 범벅이 되어 가마솥에 밥을 하고 소시지를 볶는다.
몇 번인가 나도 따라가서 보며 도와주고 싶지만 몸이 안 좋으니 도움이 안 된다.
나에게 Clinic 사무실에서 수사님을 도와서 약을 좀 나눠주라고 한다. 기부받은 한국 약이다.
주로 벌레에 물렸거나 상처가 난 아이들이 온다.
부모들은 나를 무슨 의사쯤 되는 줄 알고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참 민망하다. 나는 연고를 발라주고 소독을 해 주는 게 고작이다.
아주 상냥한 소녀가 있다. 미카이다. 그녀는 볼 적마다 달려와 꼭 끌어안는다.
다른 아이에게 연고를 발라주니 미카가 수줍은 듯 나에게 말한다. "내 동생도 저렇게 발이 아파서 집에만 있어요. 그것 좀 발라주고 싶어요."
아! 문득 생각이 난다. 60년 전 내 모습이다.
그 때 내동생이 벌레 물린 곳을 긁어서 심하게 헐었다. 가난한 우리 엄마는 생각 끝에 나를 성당의 미국 신부님에게 약을 좀 얻어오라고 보냈다.
나는 부끄러워 죽겠지만 참고 그 분을 찾아갔다. 조금 덜어 준 연고를 얻어가지고 발랐는데 동생이 감쪽같이 나았다.
약이라곤 발라보지 못했으니 내성도 없고 금세 나았다. 그 때 미국 신부님이 해 주신 일을 지금 내가 그들에게 하고 있다.
비록 일회성 봉사였지만 오래 잊고 있었던 내 모습이 보였고, 한국약은 나같은 사람도 때로 필요하단 생각에 마음이 다소 따뜻해진다.
어떤 환자는 기침을 하는데 한글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게보린을 받아갔다니 그런 실수 만이라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도
첫댓글 좋은 것이고 할 수 있으면서도
쉽게 못 하는 게 좋은 일(봉사 활동)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