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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보내주신 선생님의 서찰 잘 받았습니다. 저의 “사실과 진실”이라는 강의 초록을 보셨다니 부끄럽습니다. 동양 철인들은 나누고 쪼개고 분석 구별하여 설명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보면 [사실과 진실]이 나뉘기 전 하나(一)로 있는 참존재(眞有)를 생각하게 되고, 禪이라는 것도 그 나뉘기 전 하나(一)를 말하고 太極이 그 하나를 말하고, 樸(無名)이 그러한 나뉘기 전의 하나를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셨다는 말씀에 제 나름으로 음미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저는 무엇이건 너무 나누고 쪼개고 분석하여 구별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았는데 오늘 선생님의 [老子가 부른 노래]를 보다가 그 책 70쪽의 <대상(大象)>에서 잠시 눈을 멈추고 생각했습니다.
大象은 형상이 없어
無象이요
大音은 소리가 없어
希聲이다
자연의 모습은 볼 수가 없고
생명의 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 (70쪽)
고 하셨는데, 과연 생각할수록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眞言이었습니다.
참으로 큰 것은 밖이 없고(其大無外) 참으로 작은 것은 안이 없다(其小無內).
크고 작은 것은 물에서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닌 것으로 있는 존재의 모습, 물이 아닌 것으로 있는 존재의 모습(無物之象)을 大象이라 하고 또는 大音이라고도 한다. 큰 모습은 모습이 없고(大象無形) 큰 소리는 소리가 없다(大音希聲).
물이 아닌 존재의 모습(無物之象)....
물이 아닌지라 참모습(大象)은 모습이 없고, 참소리(大音)는 소리가 없다.
모습 없는 모습(無形之象)이요, 소리 없는 소리(無聲之音)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大象은 다름 아닌 자연의 모습을 말한 것이요, 대음은 자연의 소리를 말하는 것이다. 자연의 모습은 볼 수가 없고, 자연의 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 하늘이 그 자연이요, 땅이 그 자연이다. 해와 달은 볼 수가 있으나, 스스로 있는 하늘은 볼 수가 없고, 새소리 물소리는 들을 수 있으나, 지각을 뚫고 올라오는 생명의 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 (72~73쪽)
아무데나 그 책을 펼칠 때마다 구구절절이 저에게는 깊고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그 때마다 저는 깨닫는 기쁨을 누립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늘 감사합니다.
저의 “나누고 쪼개고 분석하여 구별하는 버릇”을 생각하다가, 그리고 선생님의 “大象”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문득 3조 僧璨의 信心銘의 “至道無難 唯嫌揀擇”이라는 첫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성철스님의 해석에 의하면, 지극한 道란 곧 無上大道를 말하는 것이고, 무상 대도는 전혀 어려운 것이 없으므로 오직 揀擇하지 말라는 말..., 이 때 간택이란 취하고 버리는 것을 말함이니,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있으면 지극한 도는 兩邊, 즉 邊見에 떨어져 마침내 중도의 바른 견해를 모른다는 것... 그래서 간택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선생님의 老子해설에 가져가면, 大象(자연, 존재)은 無物之象이므로 깊이 생각하면 처음부터 간택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道는 인간의 分別心으로는 전혀 잡히지 않는 바로 大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주 옛날에 썼던 일기를 들춰보다가 문득 선생님을 만났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한 번 옮겨보겠습니다. 선생님이 십여년 전 노자학회를 열었던 대구 계명대학에 오셨을 때 저와 만났던 장면입니다. 옛 기억의 한 페이지이니 심심破寂으로 보십시오.
2004/10/9/토
아침에 전화벨 소리, 나 송항룡이요. 어이쿠, 선생님 어디이십니까? 여기 계명대학교인데, 엊저녁에 와서 학교 안의 숙소에서 잤지요. 오늘 학회가 있는데, 뭐 발표 좀 해달라고 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꼭 가야할 결혼식이 있어서 들렸다가 오후에 갈게요, 그런데 선생님 휴대전화 있어요? 아니, 없는데..... 그럼 제 휴대폰 번호 알려 드릴게, 전화해 주세요.
성서에 있는 계대 캠퍼스에 들어서니 <道家哲學 國際學術大會場>의 안내표지가 붙어있다. 발표장에 도착하니 마침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어서 식당에 갔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한다. 장발에 키가 작고 호리호리한 선생님이 수첩을 꺼내들고 휴대폰의 번호를 찍으려고 한다. 얼른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어이, 이교수,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전화를 하려던 참인데... 휴대폰을 옆 사람에게 돌려주며 반기신다.
오후 발표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시계를 보니 한시 반, 다섯 시 서울행 기차표를 갖고 있단다. 나는 선생을 모시고 자동차를 팔공산으로 몰았다. 순환도로 가의 느티나무들이 조금씩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데 특히 벚나무 잎이 붉게 물들어 아름답다. 팔공 인터불고에서 커피를 마셨다.
선생은 25년 전에 자동차가 닿지 않는 깊은 산골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지난 여름에 찾아가 보니 울창한 나무 숲 속에 금방 무너질 듯한 낡은 시골집이었다. 마당에는 무릎까지 자란 잡초가 우거져 있고 방과 마루의 벽은 신문지로 발라져 있었다. 저녁에는 방으로 나방과 모기가 날아들고 방바닥과 벽에는 다족류의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런 산골에서 이웃도 없이 무서워서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무섭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그 아랫집 입구에 달아놓은 외등의 불빛이 밤의 어둠을 망가뜨려 놓아 언짢다는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한 밤 중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혼자 앉아 있으면 죽음의 유혹도 느낀다고 하는 분이었다. 그의 山居日記인 <맹랑선생전>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지난 봄 정년퇴직 후 더 산 속에서 더 큰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철학자, 그는 그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人生은 오늘을 살아간다. 십 년을 살아도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요, 백년을 살아도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그 오늘 하루에 悔恨도 있고 슬픔도 있고 苦惱와 기쁨과 悅樂이 있다. 오늘을 떠나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어제는 지나가 없고 내일은 오지 않아 있는 날이 아니다. 一生을 살아간다 하나 그 사는 人生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人生의 모든 것은 오늘 하루에 있다.>
4시 45분 동대구역, 선생의 뒷모습은 시골 노인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발걸음은 가벼워 보인다. 작고 깡마른 체구 탓일까? 얼핏 이런 생각이 스친다. 어쩌면 그의 학문은 철저한 고독 속에서 모든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는 연습이 아니었을까.......
일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어서 존칭도 없이 쓴 구절이 눈에 뜨입니다. 벌써 17년이 흘렀습니다. 그 일기를 보니, 2003년 여름에 경기도 가평의 선생님 댁을 지남이의 안내로 3명의 친구들이 부부 동반해서 찾아뵙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집의 벽은 모두 신문지로 도배를 했었고, 대청 벽에는 聽雨堂이라고 선생님이 직접 쓰셨다는 붓글씨 堂號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청우당 뒤쪽에는 宋志英 선생님 기념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선생님,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신 후 2년 가까이 문밖을 나가지 못하셨다니 얼마나 답답하신지요? 혹시 걷기에 장애가 되는 디스크 같은 병환이신가요? 문 밖 출입을 못하신다니 20여 년 전 제가 퍽 존경하던 목사님이 생각납니다. 머리맡에 그분이 좋아하시던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를 놓고 누워계시던.... 누구나 노년에 들면 기운이 쇠하게 되어 고생하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선생님이 편지 말미에 자주 사용하시던 말씀처럼 제가 “쓰잘데 없는” 혹은 “객쩍은 소리”로 선생님의 귀를 어지럽힌 것 같습니다. 모쪼록 선생님께서 건강을 회복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2021년 6월 17일
이 진 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