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본에서는 디지털 방송의 급속한 보급 속에서 HDTV 영상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하지만 실제로는 진정한 HDTV, 즉 1080i 품질의 영상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현재 일본 방송계에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HDTV 논란이 일고 있다.
하이비전과 HDTV
디지털 방송의 이점으로 방송 개시부터 고화질이나 쌍방향 등이 거론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실제로 시청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HDTV 고화질 영상일 것이다. 현재 디지털 방송 대응 TV는 모두 HDTV 영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기본 기능으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 HDTV를 볼 수 있다는 광고는 정확히 말하면 허위광고다. 일본에서 현재 HDTV를 총칭하는 ‘하이비전’은 NHK가 개발한 아날로그 고정밀 TV 방식으로, 디지털 방송이 상정하고 있는 HDTV와는 해상도의 정의 등에서 크게 다른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하이비전’이란 말이 익숙한 용어로 통용되어 왔다. 그래서 고정밀 영상은 하이비전이라는 상식이 지금도 통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디지털 방송에서 HDTV라고 하는 방식은 국제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HDTV 그 자체이지만, 이 하이비전은 그렇게 부를 수 없다. NHK에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시험방송을 시작한 하이비전 방식을 현재 HDTV라 인식하고 있는 데에서 디지털 방송의 HDTV가 이미 완성된 형태로 방송을 시작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방송의 HDTV 규격
HDTV 방송 방식에는 크게 나누어 1080i와 720p의 2가지가 있다. 1080i는 가로 1920픽셀, 세로 1080픽셀의 인터레이스 스캔 방식이고, 720p는 가로 1280픽셀, 세로 720픽셀의 프로그래시브 스캔 방식이다. 크게 나누면 이 2가지이지만, NTSC권과 PAL권에서는 SDTV와의 호환성 문제로 인해, 프레임 레이트가 다른 방식으로 분화되고 있다. 여기에 필름과의 친화성을 높이기 위한 24p라는 포맷도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상당히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 1080i와 720p가 혼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방송국이나 나라에 의해 방침이 다르기 때문인데, 일본에서도 한때 아사히 TV가 720p를 강력하게 추진하여 협상이 난항을 겪어 2가지 방식이 혼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향후의 연구과제로서 720p 방식을 남긴다는 방향으로 합의를 이끌어내 최종적으로 1,080i로 통일되었다.
지난 8월 파나소닉이 Full HD 해상도의 프라즈마 TV를 발표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때 ‘Full HD’라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하이비전 대응 TV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데 이제 와서 Full HD라고 해도 단순한 광고문구 이상으로 비춰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파나소닉이 Full HD라고 한 이유는 현재 하이비전 대응 기능을 갖춘 TV의 해상도가 실제로 1,080i 규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나소닉처럼 Full HD라고 기능을 강조한 TV가 아닌 이상, 거의 대부분의 TV가 1366x768의 판넬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수치는 가로 세로 대비 면에서는 16:9에 가깝지만 정확하게 이 비율을 구현했다고는 할 수 없다. 또한 1920x1080에 비하면 가로 세로가 약 71% 길이이다. 즉, 기존의 HD 대응 TV로 본 고화질 영상은 원래 영상을 71%로 축소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축소할 경우 화상이 정밀해진다고 느껴질 수는 있다. 하지만 한 영상 안에서 정밀하게 보고 싶은 부분은 괜찮지만, 후경 등 초점이 흐려지는 영상까지도 정밀도가 높아질 경우 화면의 입체감은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즉, 영화나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후경이나 피사체 간의 콘트라스트 효과를 낸 HDTV의 고화질 효과가 상당 부분 감소된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힘들게 노력해서 배경을 흐리게 찍었는데, 71% 축소된 화면으로 보면 전체가 뚜렷한 영상으로 보여 무미건조한 화면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1920x1080 사이즈여야 HDTV 기술을 사용해 제작자가 노린 효과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제작자측의 문제점
앞에서 말한 문제점은 비단 TV 수신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HDTV 디지털 신호를 전송하는 규격으로 방송사에서는 HD SDI라는 인터페이스가 사용되고 있다. VTR에서 스위처에 연결하거나, 카메라에서 VTR로 연결할 때에는 모두 이 HD SDI 인터페이스를 이용하고 있다. 1080i 규격에서는 이 인터페이스에 1920x1080 해상도의 신호가 흐르게 된다.
그런데 영상 기록장치인 VTR이 이 해상도로 녹화하고 있지 않은 것이 문제다. 현재 1080i의 HD 영상기록 VTR로는 소니 HDCAM이 프로그램 납품 기준이 되어 있는데, 이 방식은 화면 밝기를 가로 1440픽셀(색 정보는 가로 480픽셀)로 축소하여 테이프에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파나소닉 DVCPRO HD는 원래 720이 베이스이므로 밝기는 1280으로 기록하고 있다.
HDCAM의 1440이라는 숫자는 세로를 1080으로 했을 때 4:3 비율의 가로 픽셀이다. 이는 화면이 4:3인 SD 포맷에 다운 컨버트할 때 회로상의 편리를 위해 임의로 취한 조치인 것이다. 이 테이프에 기록된 영상을 VTR로부터 HD SDI로 출력할 때는 원래 1920☓1080으로 확대하고 있다. 따라서 VTR은 마치 1920x1080 영상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이다. 테이프 편집은 기본적으로 테이프 더빙을 반복하는 일인데, 축소한 영상을 확대하여 출력하고, 그것을 또 축소해서 기록하고, 또 이것을 확대해서 출력하고 하는 끝없는 반복이 이어지는 셈이다. 따라서 축소와 확대가 몇 번이고 반복되기 때문에 화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편집하는 경우 통상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제작 과정에서 적어도 4~5회는 더빙에 의한 편집이 이루어진다. 때문에 오리지널 화면과 비교하면 눈으로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화질은 저하된다.
일본에서 SDTV가 주류였던 때는 이러한 제작 프로세스에서도 영상의 화질이 크게 저하되지는 않았다. SD의 디지털 VTR인 D1나 D2, Digital βcam 등은 더빙했을 때 거의 화질 저하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감각에 익숙해진 제작현장에서는, 막상 HDTV로 변경되었을 때 화질 저하를 보고 큰 당혹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도 기존의 제작 과정의 공정이 스케줄대로 진행되어야 했기 때문에 더빙 작업을 줄일 수는 없었고, 그 때문에 화질 저하를 그대로 용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더빙 시의 화질 저하를 개선하는 포맷으로서 소니는 2003년에 HDCAM SR을 개발했다. 이것은 Full HD 화상도의 HD 신호를 MPEG-4로 기록하는 포맷이었다. 하지만 이 포맷에는 카메라와 VTR이 일체화된, 소위 말하는 캠코더가 없다. 따라서 스튜디오 워크에는 유리하지만, 현장 취재나 야외 촬영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현행 HDCAM VTR이 상당 기간 주류를 점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저하된 화질에 더해 방송 출력의 문제가 있다. 화질이 저하했다고 하더라도 HDCAM의 영상 출력은 Full HD가 되므로 약 140Mbps의 비트 레이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방송국에서는 이 영상출력은 MPEG-2 16Mbps나 25Mbps로 실시간 인코딩하고 있다. 화질이 규격 HDTV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인터 레이스 방식
1080i는 인터 레이스 방식이다. 인터 레이스란 한 장의 화상을 두 장으로 나누어 시간차로 보여주는 방법이다. 일본에서 이 방식의 화상은 현재 브라운관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액정이나 프라즈마 등 플렛 디스플레이나, LCOS나 DLP 등의 투영형 장치는 모두 프로그래시브 표시가 기본이다.
향후 디지털 방송의 보급이 진행되면 방송 자체는 1080i 인터 레이스 방식인데, 시청자는 아무도 인터 레이스로 영상을 보고 있지 않다는 현실이 도래하게 된다. 문제는 인터 레이스에서 프로그레시브의 보완, 즉 I/P 변환이 모두 각 TV 수신기 기능으로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프로그레시브형의 TV 수신기를 보유한 사람은 TV를 보고 있을 때 움직임이 빠른 부분에서 화면에 줄이 가는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고 한다. 이는 I/P 변환의 오류인데, 브라운관에서 보면 아무 문제도 없는 영상이 프로그레시브 TV에서는 노이즈가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제작자측에서도 일어난다. 지금까지 방송용 모니터는 브라운관이었는데, 소니를 시작으로 방송용 모니터 제조 메이커가 브라운관 제조를 중지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방송 포맷 자체는 인터 레이스인데, 영상 제작 현장에서조차 인터 레이스 화상을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이는 결코 사소한 문제점이 아니다. 브라운관 모니터가 없어지면 두 방식 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단이 없어진다. 실제로 위에서 말한 문제점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데, 광고 방송의 필드가 역으로 되는 일이 빈번하게 목격되고 있다고 한다.
결국, 현재 일본에서 논란이 되는 디지털 HDTV의 여러 문제점들은 제작자와 시청자 모두가 규격 HDTV 영상을 본 일이 없다는 데에서 유래하고 있다. Full HD 영상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현재 방송되는 편법이라고 할 만한 HD 영상과 비교할 수 있었을 때, 앞으로의 HDTV 화질 논란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 일본에서 HDTV 화질 논란은 아직 시작의 문턱에도 오르지 못한 것이다.
첫댓글아 일본 정말...언제나 세계의 흐름을 역행해서 반대로만 가는 이상한 섬나라라는 생각밖에는...저는 앞으로 영상분야에서 일하길 희망하고 있는데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일본의 문제가 정말 심각하군요. 일본 영화산업도 문제가 정말 많습니다. 수도인 동경에 멀티플렉스가 없습니다. 게다가 극장들이 모두 지정좌석제가 아니고 우루루 몰려가서 자기가 앉고 싶은데 앉는 쌍팔년도식 시스템입니다. 휴 정말...-,.-
첫댓글 아 일본 정말...언제나 세계의 흐름을 역행해서 반대로만 가는 이상한 섬나라라는 생각밖에는...저는 앞으로 영상분야에서 일하길 희망하고 있는데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일본의 문제가 정말 심각하군요. 일본 영화산업도 문제가 정말 많습니다. 수도인 동경에 멀티플렉스가 없습니다. 게다가 극장들이 모두 지정좌석제가 아니고 우루루 몰려가서 자기가 앉고 싶은데 앉는 쌍팔년도식 시스템입니다. 휴 정말...-,.-
그러게 처음부터 세계적인 흐름을 그대로 따랐으면 아무일 없는 것을 괜히 하이비전이라고 독자시스템으로 밀고 가다가 이제 와서 이게 뭡니까 그려...
일단 상당한 개념글입니다. 정확히 문제가 되는 부분의 꼭지를 잘 짚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와 일본(방송국레벨에서는 아마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다 그 장비가 그 장비니...)에 국한시키더라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