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화차길 168 (지번)장안리 59-1장성읍 장안마을에 망암 변이중 선생을 모시는 봉암서원 앞에 황주변씨 삼강정려가 자리하고 있다.삼강정려란? 한 집안에 충신과 열녀. 그리고 효자나 효부를 말하는데, 황주변씨 집안에 변이중의 종제인 충신 변윤중과 그의 부인 열녀 함풍성씨. 그리고 아들 변형윤의 아내 효부 장성서씨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이다. 변윤중과 그 부인, 며느리 세분을 위한 것이므로, 그 후 고종 때 당시 전남관찰사(現도지사) 조종필(한양인)이 변윤중을 충신으로, 성씨 부인을 열녀로, 그리고 며느리 서씨 부인을 효부로 함께 조정에 올려 변윤중을 이조 참의로 증직하고 삼강정려의 명을 받았다.망암 변이중 선생의 종제인 변윤중은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평소 거느린 종들과 장정 200여명을 모아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장안리에서 싸웠으나, 적의 수효가 워낙 많아 10여일 동안 수십 명을 사살하면서도 결국 패전의 쓰라림을 맛보았다. 도망간다는 것은 의롭지 않다 하여 마지막 싸움터였던 부엉 바위로 올라가 황룡강에 몸을 던져 순절하고 말았다. 그러자, 변윤중의 부인 성(成)씨도 남편이 몸을 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강물로 뛰어들어 역시 순사하였다.충신 변윤중·열여 함풍성씨·효부 장성서씨의 총·효·열 삼강정려로 1893년(고종 30) 나라에서 정표를 받아 세웠다. 변윤중의 호는 휴암, 학행으로 상의원 직장에 임명되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정유재란 때 향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휴암 아래 황룡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처인 함풍성씨와 며느리인 변형윤의 처 장성서씨도 따라 순절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내부에 각각 [忠臣(충신)贈通政大夫吏曹參議行尙衣院直長(증통정대부이조참의행상의원직장)邊允中之閭(변윤중지려)高宗癸巳命旌(고종계사명정)](1893), [변윤중(邊允中)의 처(妻) 함풍성씨(咸豊成氏)의 열녀정려(烈女旌閭),烈女(열녀)邊允中之妻(증통정대부이조참의변윤중지처)贈淑夫人咸豊成氏之閭(증숙부인함풍성씨지려)高宗癸巳命旌(고종계사명정)](1893), [변형윤(邊亨胤)의 처 장성서씨(長城徐氏)의 효부정려(孝婦旌閭)孝婦(효부)宣務郞邊公亨胤之妻(선무랑변공형윤지처)宜人長城徐氏之閭(의인장성서씨지려)高宗癸巳命旌(고종계사명정)](1893)와 당시 전남관찰사 조종필의 [삼강정려각기]등 4개의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1983년 중수하며 현판의 내용을 새긴 비 3개를 새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