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계 산기슭에서
유월 초순 목요일이다. 당뇨약을 타는 날이라 공복 상태 혈청 검사가 예정되어 아침을 굶고 내과에 들렀다. 가족력으로 오래전부터 당뇨약을 복용한다만 남보다 많이 걸으니 혈당이 조절되어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될성싶은데 의사는 이런저런 구실을 달아 피검사를 받게 하고 처방전을 끊어 약국을 찾아가게 했다. 이제 즐기는 술도 끊었으니 앞으로 약은 먹지 않아도 될 듯하다.
약국에서 약봉지를 타서 반송시장 칼국수 골목에서 김밥 한 줄과 아침을 요기하고 근교 산행을 나섰다. 동네 의원과 동네 약국의 업무가 시작하길 기다려주느라 이미 시간이 만이 지체 되어서 평소 산책이나 산책을 나설 때보다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원이대로로 나가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17번 버스를 타고 천주암과 굴현고개를 넘어간 감계 신도시 입구 새터에서 내렸다.
새터는 외감에 딸린 작은 마을로 조선 중기 학자요 정치가였던 미수 허목의 유적이 남은 동네다. 미수는 관직에 나서기 전 부친이 여러 고을 지방 수령을 역임했는지라 젊은 날부터 부친의 임지를 순례할 기회가 있었다. 요즘 회자 되는 말을 빌리면 ‘아빠 찬스’를 잘 활용해서 지역 유림과 교유하고 학문의 깊이를 더해 갔다. 미수 제자들이 북면에서 ‘달천계’를 조직해 맥을 이었다.
새터에는 미수 사후 제자들이 그를 향사하는 ‘달천정’이라는 재실을 세웠고 미수가 우물을 파서 샘물을 길어 먹었다는 ‘구천’은 지방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우물을 덮은 돌 뚜껑이 거북 형상이라고 거북 구(龜)에, 샘 천(泉)을 쓴 구천(龜泉)이다. 샘터 곁에는 미수가 심었다고 하는 한 그루 매실나무가 있기는 하나 그 시절 나무는 고사하고 대체한 후계목이 심어져 오늘에 이른 듯하다.
달천정을 둘러 온통 단감나무를 재배하는 과수원을 지나 양미재로 가는 숲길로 들었다. 내가 근교 산행에서 자주 가는 양미재인데 주로 외감에서 달천계곡 들머리 남해고속도로 창원터널에서 올랐다. 이번에는 새터에서 단감 농원 농로를 따라가니 과수원에서는 새순이 나서 핀 감꽃이 저물고 꼬투리가 달려 있었다. 새순이 세력 좋게 많이 돋은 가지는 일부는 순을 솎아내기도 했다.
숲길로 들어 양미재까지 오르질 않고 등산로를 벗어나 개척 산행을 했더니 개옻나무가 더러 보여 조심해 비켜 지났다. 나는 옻나무 알레르기가 심해 개옻나무 잎사귀에 살짝만 스쳐도 가려움을 타 약국에서 연고를 사 발라야 진정되었다. 내가 등산로가 없는 숲으로 든 까닭은 이즈음 영그는 산딸기를 따 먹기 위함인데 예상대로 잘 익은 선홍색 딸기를 만나 실컷 따 먹을 수 있었다.
오리나무와 아카시나무가 섞여 자라는 활엽수림을 지난 산기슭에 수종 갱신지구 조림지가 나왔다. 경제림으로 편백나무를 심은 지 몇 해 흘러 숲이 제법 어울려지고 있었다. 편백 조림지를 통과하니 낭떠러지가 나와 조심해서 계곡으로 내려섰다. 습지 계곡으로 내려서다가 제피나무가 보여 아직 풋열매였지만 따 모으다가 주황색 꽃잎을 다소곳이 고개 숙인 한 송이 땅나리꽃을 봤다.
내려선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물봉선이 잎줄기를 불려 자라고 있었다. 야생화 물봉선은 늦여름부터 가으내 선홍색 꽃을 피우는데 응달 물가에 잘 자랐다. 청정지역 골짜기에는 머위가 넓은 잎을 펼쳐 자랐다. 머위는 새순일 때는 잎까지 먹으나 지금은 쇠어 줄기를 잘라 껍질을 벗기면 찬거리가 될 듯해 잎은 끊어냈다. 우리 집은 머윗대가 있어 귀로에 지기에게 보낼까 싶었다,
습지 골짜기에서 산기슭을 빠져나가다가 산딸기가 보여 더 따먹었다. 산딸기는 이즈음 산중의 간식이었다. 산기슭 바깥은 역시 단감 과수원이 넓게 펼쳐졌다. 중방마을을 지나 화천리로 나가 국숫집으로 들어 콩국수를 시켜 늦은 점심을 때우고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배낭에도 채우고 손에도 든 머윗대와 제피 열매는 꽃대감에게 넘기고 일부는 건너편 아파트단지 지기에게 보냈다. 23.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