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포구에서
유월 둘째 금요일이다. 근래 연일 강가로 나가거나 산기슭을 누빈 날들이 잦았다. 들녘에서 벼농사 뒷그루 특용작물로 가꾼 당근이나 감자 이삭을 주워 왔다. 뿌리가 굵은 당근을 지기와도 나누기도 했다. 감자는 더 주워 올 수도 있었는데 아내가 보관이 버겁다고 더 주워오지 말라고 했다. 강변의 우거진 대숲에서 솟은 죽순도 채집해 꽃대감과 나누고 형제들에게는 택배로 보냈다.
내가 한 뼘 텃밭을 가꾸지 않아도 봄 한 철 근교 산자락을 누비면서 여러 가지 산나물을 마련해 와 마트에서 푸성귀는 살 일 없이 지내왔다. 산채를 묵나물로까지 해서 저장하지 않아도 머위나 곰취는 장아찌로 담아 여름 이후 때때로 식탁에 오르지 않을까 싶다. 작년 퇴직 첫해 얼떨결 텃밭 경작을 의뢰받아 작물을 가꾸느라 고생했던데 비교하면 올해는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다.
어제는 양미재로 오르는 숲길에서 산딸기를 실컷 따 먹었다. 어제뿐만 아니라 최근 산기슭을 찾아갈 때마다 선홍색으로 익은 산딸기를 즉석에서 따 먹는 호사는 누리고 있다. 제철에 익어가는 산딸기는 발품을 팔아 길을 나서면 얼마든지 따 먹는다. 연중 먹는 과일에서 총량제가 있다면 나에겐 유월에 따 먹는 산딸기만으로도 한 계절에 먹을 과일 섭취량은 충분히 초과했지 싶다.
그간 강가와 산기슭만 누벼 동선의 변화를 가져오려고 행선지를 바닷가로 정해 길을 나섰다. 반송시장 노점에서 김밥을 마련해 마산합포구청 앞으로 나가 원전 갯가로 가는 62번 농어촌버스를 탔다. 원전은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인데 차내에는 낚싯대를 준비해 가는 사내들이 몇 보였다. 태공은 사리와 조금의 물때를 가리는 듯했는데 음력 스무날은 낚시가 잘 되는 날인가 싶다.
댓거리에서 밤밤고개를 넘어간 버스는 현동 아파트단지를 지나 수정을 거쳤다. 백령고개를 앞두고 해안도로를 따라가니 바다에는 홍합 양식장의 부표가 점점이 떠 있었다. 가포에서 삼귀 합포만에 걸쳐진 마창대교 주탑과 팽팽히 당겨진 쇠줄이 드러났다. 해안선을 따라 간 버스가 옥계에 닿아 기사가 차를 되돌릴 때 내렸다. 내가 하루를 보낼 산책 기점이 될 바닷가 옥계마을이었다.
옥계 포구에는 조업을 나가지 않은 어선들이 여러 척 묶여 있었다. 오래전 폐교된 초등학교 터는 주민 복지회관으로 바뀌었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방치된 상태였다. 가톨릭 마산교구의 교육관이 자리한 봉화산 산정에서 흘러내린 산기슭의 외따로 떨어진 횟집을 지난 해안가로는 임도가 개설되어 있었다. 평소 현지인이나 외지에서 찾은 이들이 들릴 일이 없는 호젓한 길이었다.
임도 개설 당시 심어둔 황매화나 박태기나무를 비롯한 조경수들은 칡넝쿨에 엉켜 경쟁하며 자랐다. 그 틈새 산딸기나무도 섞여 자랐는데 빨갛게 익은 딸기가 보여 가던 길을 멈추고 따 먹었다. 산기슭에 산딸기가 무르익어 있어도 아무도 손을 타지 않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가 옥계 해안으로 길을 나섬은 이맘때 어디나 흔한 산딸기가 바닷가에서도 따 먹을 수 있지 싶어서였다.
거리가 제법 되는 임도 구간에서 산딸기를 상당히 따 먹었다. 임도가 끝난 곳에서는 산등선을 따라 봉화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와 갯가로 내려서는 길로 나뉘었는데 후자를 택했다. 숲에서 내가 뱀보다 더 놀라는 개옻나무가 많아 잎사귀에 닿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지났다. 여름에 피는 까치수염의 하얀 꽃도 볼 수 있었다. 숲을 빠져나가니 진해만 바깥 잔잔한 바다가 드러났다.
해안가로 내려가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워준 갯바위에서 김밥을 비웠다. 눈앞에는 커다란 군함 한 척이 서서히 움직여 난바다로 나갔다. 작은 고깃배들도 물살을 가르면서 부표가 뜬 양식장으로 오갔다. 거제섬이 에워싼 먼 곳에는 거가대교 연륙교가 해무에 아스라이 보였다. 갯바위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해안선을 따라 난포로 가서 원전을 출발해 오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왔다. 23.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