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 꼭뒤를 돌아
유월 둘째 주말을 맞은 초여름이다. 산행을 나서려고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식후 현관을 나서 엘리베이터에서 아파트 뜰로 내려섰다. 이웃 동으로 건너가는 보도 곁 언덕에는 며칠 전부터 개화가 시작되던 수국꽃이 제철을 맞아 활짝 피어나 소담스러웠다. 그 꽃밭은 내가 뵌 적 없지만 아파트 이웃 동에 사는 부지런한 분이 몇 해 전부터 소일거리로 정성 들여 가꾼 수국이라 들었다.
수국꽃은 토양이 알칼리성이면 붉은색을 띠고 산성이면 푸른색을 띈다고 하는데 거기는 붉은 수국꽃이었다. 흰 수국은 부산 영도 태종대 태종사 주변이 유명하다고 들었다. 내가 교직 말년을 보내고 온 거제 남부면 저구리 일대 수국도 대단했다. 한적한 지방도 갓길까지 온통 푸른 수국꽃이었다. 김해 대동면 수안마을에도 수국꽃을 잘 가꾸어 놓아 탐방객 발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수국꽃밭에 이어 꽃대감 꽃밭으로 가보니 아래층 할머니만 내려와 꽃밭을 돌보고 있었다. 친정이 밀양이라 내가 밀양댁이라 부르는 안 씨 할머니는 나이가 여든이 넘어도 아주 정정했다. 매일 아침 잠을 깨면 꽃밭으로 내려와 꽃을 돌보는데 호미로 김을 자주 매어 잡초는 얼씬 못하게 했다. 꽃대감은 이틀째 보이지 않았는데 고향 형님댁을 찾아 블루베리 수확 일손을 거든다고 했다.
안 씨 할머니께 하루를 잘 보내십사고 인사를 나누고 나는 원이대로로 나가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17번 버스를 탔다. 버스가 명곡교차로에서 소답동을 지나 천주암을 지날 때 내렸다. 모처럼 천주산 등산로를 따라 비탈길을 올라 천주암 경내에서 샘물을 한 바가지 받아 마셨다. 철이 바뀌어 임무가 사라져 자리가 텅 빈 산불감시원 초소를 지나 숲길로 들어 천태샘 약수터에 닿았다.
천주산 중턱의 천태샘은 천주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사랑받는 약수터였다. 해발고도가 제법 되는 곳임에도 샘물이 콸콸 쏟아졌다. 가뭄이 심할 때도 수량은 줄지 않고 일정하게 물이 솟아났다. 화강암으로 조각된 두꺼비 두상의 주둥이에서 물이 쏟아지게 한 약수터다. 아까 천주암에서 샘물을 받아 마셨다만 천태샘 샘물도 한 바가지 받아 마시고 쉼터에 앉아 한동안 시간으로 보냈다.
쉼터에서 고갯마루로 올라가니 잣나무 쉼터에는 먼저 오른 다양한 연령대의 산행객들이 쉬고 있었다. 그들은 정상에서 내려온 이도 있고 올라가려는 이들도 있는 듯했다. 나는 정상 등정은 마음을 접고 북향 산허리로 난 임도를 따라 걸어 함안 경계 고개에 이르렀다. 당국에서는 길섶의 풀을 자르는 작업이 시작되어 주말임에도 예초기를 짊어진 인부들이 땀 흘려 일을 하고 있었다.
쉼터에서 간식으로 가져간 배낭의 초코파이를 꺼내 먹고 산정마을 가는 임도로 내려섰다. 임도를 따라가다 작대산 트레킹 길로 꺾어 들었다. 이맘때 농익어 있을 산딸기를 따 먹기 위함이었는데 들머리부터 발갛게 익은 산딸기가 보여 손을 뻗쳐 따 먹었다. 구고사와 양미재로 이어진 트레킹 구간은 평소 다니는 이가 없어 묵혀진 길이라 칡넝쿨이 침범하고 가시덤불이 엉켜 자랐다.
선행주자가 없어서기도 하지만 붉게 익은 산딸기는 지천이라 못다 따먹고 남겨둔 채 지나왔다. 산정마을이 바라보인 상봉 꼭뒤는 정육면체를 이룬 커다란 바위 더미가 불거진 산허리에는 전에 없던 팔각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전망이 탁 트인 장자에 오르니 바람이 불어와 시원했다. 팔을 괴고 누웠더니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올여름 퇴직을 앞둔 대학 동기로부터 전화가 와 깼다.
정자에서 내려와 남은 트레킹 구간을 마저 걸어 구고사로 내려가지 않고 양미재에 이르렀다. 고갯마루의 까치수염은 하얀 꽃을 피우고 이삭여뀌는 잎줄기를 한창 불려갔다. 양미재에서 외감마을로 나가지 않고 중방마을로 내려섰다. 단감 과수원을 지나 화천리로 내려가 국숫집에 들어 늦은 점심을 들었다. 식당에서 나와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원이대로에 닿으니 해가 기울었다. 23.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