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시인이 화가라면, 이 시가 그림이라면, 나는 이 그림을 꼭 갖고 싶다. 돈을 모으고 낯선 화랑에 가서 ‘이 그림을 살게요’라고 말하고 싶다. 방에 걸어 두고 내 마음에 걸어 둔 듯 바라보고 싶다. 시인이 말하듯 그려 놓은 밤 산책을 나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나란히 걷는 그 시간이 나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너무 좋지 않은가. ‘얇게 포 뜬 빛이 이마에 한 점 붙어 있다’는 표현이라니. 시인의 예전 시집, 그러니까 첫 시집을 읽었을 때도 마음의 정물을 기가 막히게 표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에도 음미할 표현이 가득이다. 이런 시를 발견하면 가슴이 뛴다. ‘이게 그 말이지? 이 장면이 그런 장면 아니야? 그걸 이렇게 적은 단어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고?’ 시를 읽으면서 혼자 생각해 보고 그려 보면서 마음에 깊이 박아두게 된다.
나에게도 서로의 이마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말을 나누며, 어두운 길을 밝게 걸을 그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조금 아팠는데, 우리 다시 저렇게 걸었으면 좋겠다. 늙는 내내 저렇게 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