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콘라드 힐튼(Conrad Hilton)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아주 가난한집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곳저곳으로 떠돌아 다니는 행상인 이었기에 그도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행상의 일을 했다. 그런데 이곳저곳으로 떠돌아 다니자니 제일 힘든 일이 있었다. 저녁이 되면 힘든 일이 있었다. 저녁이 되면 잠자리가 제일 불편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낮에 장사를 잘하고 저녁이 되면 편안한 잠자리를 가질까 하는 것이 그의 염려였다. 그뿐만 아니었다. 어떤 때는 잠잘 처소를 찾지 못해 밤을 지새운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돌아가신 어머님의 생각이 간절했고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듣던 성경구절이 생각났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 그리고 생각하기를 자기처럼 떠돌아 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찾아들어가 피곤한 몸을 쉴 수 있는 호텔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호텔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그는 기도드리기 시작했다. 오직 믿음 하나만 가지고 노력한 끝에 이루어진 것이 오늘날의 힐튼 호텔인 것이다. 오늘날 힐튼 호텔 체인은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실현 불가능한 일이지만 믿음으로 기도하며 나가는 일이 있으십니까?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1. 2023년이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하루 하루의 시간을 소중히 아끼면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향하여 기도하며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새해에도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이 하나님의 은혜속에 잘 이루어지고 지경을 넓혀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목 : 위대한 삶을 만드는 믿음 성경 : 히 11:1-12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다. 믿음은 산을 옮긴다. 믿음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몰아낸다. 믿음은 죽은 자를 일으킨다. 믿음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다. 한 번 해본 말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다. 믿음이란 말을 무슨 행동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냥 믿으면 일단 된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면 신기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이 세상의 짐에 눌려 고통 하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세상을 맛보고 있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것을 보았고 경험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바른 제사를 통해서 만나 축복을 받는다. 이런 삶을 살아보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말씀을 들어 보라.
어떤 이는 사람들이 다 비웃는 가운데 용기와 끈기로 수 백 년간 엄청나게 큰 배를 만들었고 가족을 죽음에서 구원하였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어떤 이들이 아주 늙어서 옥동자를 얻는다. 어떤 이는 죽음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하나님 나라로 옮겨갔다. 비록 육체를 가지고들 살았지만 이들은 분명히 이 세상을 초월한 존재들이었다.
이들이 특별한 상태로 본래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우리와 똑같은 성정의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그러나 믿음을 통해 그들은 너무도 통쾌하고 멋진 그리고 너무도 풍성한 삶을 살았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도 이러한 삶으로 초대하고 계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의 방법과 목표를 보게 된다.
1. 믿음의 전제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그 믿음의 기본적인 전제는 이렇다. 하나님이 계심을 믿어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계시는 것도 안 믿는다면 믿음은 일어날 수 없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안 계시는 것은 천지만큼의 차이를 준다.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사람과 없다고 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다르겠는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면서도 평상시 잊고 사는 사람도 많다. 그러면 어떤 원리와 기준으로 살겠는가? 하나님을 잊은 동안은 당연히 세상적 사고로 살 것이요 자기 경험대로만 살 것이다. 이러한 삶은 마치 하나님이 없이 사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모든 기준이 다 달라진다. 그러면 신자라도 세상 사람과 하나도 다름이 없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삶을 시작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시간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 없다. 비록 하나님을 생각 안 해도 하나님 앞에 있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그 삶이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된다. 칼빈도 웨슬리도 모든 위대한 신앙인들도 다 그러했다.
친구 중 엉망인 이가 하나 있었다. 얼마나 저질인지 모두 싫어했다. 옷도 지저분하고 말도 그러했다. 함께 합창단을 했는데 늘 쓸데없는 질문을 던져서 지휘자와 싸웠다. 친구들과 말할 때도 말꼬리를 물고 늘어져 모두가 기피했다. 어느 날 새로 여성 단원이 몇 들어왔다. 이 친구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 중의 한 여학생에게 반한 것이다.
그때부터 말도 행동도 달라졌다. "저 애가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훌륭하게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몇 해를 보내자 사람이 완전히 변했다. 멋진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이처럼 달랐다. 둘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다. 하나님을 향해 이처럼 해보면 얼마나 달라지고 행복할까?
하나님은 자기가 계심을 믿고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신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여기고 낙심 않고 꾸준히 의지하는 이는 복되다.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형통하게 하신다. 말씀에 나온 대로 상을 주신다. 여기 본문에 나온 사람들이 다 그러한 삶을 살았다.
2. 믿음의 방법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떻게 할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 경험되지도 않는다. 영이시기 때문이다. 만약 보이거나 경험되면 이상한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은 자신을 믿게 하기 위해서 말씀을 주신다. 그 말씀의 내용을 잘 살펴 보라. 그러면 이상하게도 인간의 말 이상이 되어 영적인 존재가 느껴진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
하나님의 말씀도 인간의 말과 똑같이 들린다. 그래서 인간의 논리를 통해 온다. 그러니까 이렇게 설교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재미있고 논리 있게 하면 마음이 열린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영혼에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움직이고 감동할 때 그것이 영적인 말씀이면 영혼까지 움직이는 일이 일어난다.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하나가 되듯,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언어를 통해서 쓰여지고 들려진다. 예수가 인간의 몸 안에 하나님을 가져오셨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인간의 언어 안에 영적인 능력을 실어온다. 그러기에 잘 들으면 사람의 본성이 변한다. 인간적 사고나 경험은 그냥 두고 편안히 받아 보라.
그러면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러면 그 말씀대로 하나님을 마음속에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말씀을 받았을 때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도저히 애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처럼 그의 후손을 많게 하신다는 말씀이었다.
노아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불가능해 보이는 사실을 말씀대로 믿었다. 그래서 산 위에다 큰배를 만들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의 눈은 보고 있다. 마음속에 보이는 그것이 곧 증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를 보면서 계속 움직여 나갔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경험이 많을까? 그렇지 않다. 오랜 나이가 될 때까지 같은 것만 경험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은 그대로 세상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아무리 오래 살아도 마음으로 보는 것만 나타난다. 그래서 같은 경험만 반복하는 것이다. 슬픈 사람은 슬픔을 가난한 사람은 가난만을 경험한다. 마음이 좋아져야 한다.
좋은 것으로 마음을 채우라. 그리고 바라는 것을 마음으로 보라. 그러면 그것이 장차 경험될 삶의 증거이다. 성경이 증명하지 않는가. 누구나 다 그것을 바라지만 어느새 슬픔과 걱정이 들어와 있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마음에다 채워 넣어야 한다. 그래야 새 눈이 생긴다.
3. 믿음의 능력
하나님께서는 늘 믿음의 눈으로 보고 계셨다. 그것은 육신의 눈과는 다른 것이다. 마음으로 본다. 그 방법으로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 창조되기 전에 세상에는 만물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곳에 이미 있었다. 어디에? 하나님의 마음속에. 하나님은 믿음의 눈으로 마음으로 이미 보고 계셨다. 그것이 밖으로 나왔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지 않았다고 한다. 보이는 것들은 안 보이는 세상에서 나왔다. 다시 말하자면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은 믿음의 눈으로 먼저 확실하게 본 뒤에 보여진다는 말이다. 믿음으로 보는 것은 강한 힘을 가진다. 그래서 그것이 세상에 나타나도록 만든다. 물론 계속 마음으로 보고 있어야 한다.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믿음의 반응이었다. 마음속에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은 세상에 비쳐져 나타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경험하는 것을 믿는다. 세상의 한계와 결핍을 보고 마음속도 그렇게 가진다. 그러면 계속 그러한 삶이 펼쳐진다. 늘 그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싫어해도 늘 생각하면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가 물어 보라. 그것이 바로 자신이다. 사업이 도무지 안 되는가? 어떤 이는 말한다. 처음에는 저도 믿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결국 그것이 마음에 있었고 그것이 경험된 것이다. 믿음은 사랑과 같다. 끝까지 믿어야 하나님의 믿음이다. 아무리 넘어져도 계속 일어난다. 믿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끝까지 믿고 일어나라. 성경 말씀대로 스스로에게 증명하라.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죄 없이 눈처럼 흰 마음을 가졌다. 나는 의로운 사람이요 능력자이다. 나는 내 마음에서 그리는 대로 이룰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셨고 내가 그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통해 나는 믿음의 눈으로 내다본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것들은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보며 그것을 믿는다. 절대로 중단 않는다. 노아는 수모를 당하며 수 백 년 방주를 지었다. 아브라함은 25년 아들을 기다렸다. 그러면 결국 눈앞에 보이도록 펼쳐진다. 선진들이 이렇게 증거를 얻어 자기 삶을 지배하였다.
4. 믿음의 목표
신자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고 느낀다. 그의 말씀대로 될 것을 보고 미리 경험한다. 영원한 구원과 부활을 마음으로 본다. 그래서 그 힘으로 산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아름다운 삶을 미리 끌어 다녀 마음속에 창조한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간다. 자꾸 해볼수록 더 잘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믿음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겠는가? 왜 그렇게 난리를 부리는가? 세상에서 잠시 잘 살다가 끝나는 것인가? 그렇다면 세상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대통령이 언제까지인가? 단지 5년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세상에서는 짧은 동안만 된다. 그런 영광을 위해서 신앙이 필요한가?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열심인가?
아니다. 그렇게 신나는 삶이 짧은 7, 80년으로 그치고 말아야 하는가. 그럴 수 없다. 끝까지 계속 될 것을 바라지 않겠는가! 신자는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자신의 영원한 영광을.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랄 것이다. 축복 받은 아름다운 삶이 영원히 이어진다.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한 성을 예비하셨다.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다. 눈물도 아픔도 슬픔도 없다. 하나님의 축복이 무한대로 쏟아진다. 신자는 믿음으로 그 성을 지금 보고 경험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이미 영원한 천국을 맛보며 살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믿음대로 현실도 그렇게 펼쳐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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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사랑의 도구로 쓰임받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해요.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