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9억 썼는데 통행량 5%…세금 날린 '박원순 공중길'
[영상] [2023 세금낭비 STOP]
김민욱, 문희철입력 2023. 7. 12. 05:01수정 2023. 7. 12. 21:22
1000억원 이상 들여 만든 서울 세운상가 일대 공중보행로가 개통 1년 만에 철거 논란에 휩싸였다. 통행량이 적어 상권 활성화 효과가 거의 없는 데다 도시경관마저 해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국민 세금만 낭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입구. 건물 3층 좌우에 각각 공중보행로가 설치돼 있다. 1109억원을 들였으나 개통 이후 통행량이 상당히 저조하다. 문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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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된 1109억원 짜리 공중보행로
12일 서울시에 따르면 이 보행로는 종묘~세운상가~청계·대림상가~삼풍상가·PJ호텔~인현·진양상가까지 7개 건물, 1㎞를 남북으로 잇는다. 공중보행로는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때인 2016년 3월 세운상가 주변을 보존하기 위한 도시재생사업 목적으로 추진, 지난해 7월 완전히 개통했다. 기존 상가 콘크리트 데크 양옆에 철재 구조물을 덧붙이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철골조 다리로 이었다. 사업비 1109억원은 전액 서울시 예산이다.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은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 재임 시절 시작됐다. 뉴타운·재개발 해제 구역이나 노후화한 저층 주거지 등 정비가 시급한 지역을 ‘보존’이 핵심인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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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는 발길 없고…임대공간은 텅 비어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 공중보행로 설치 구간. 차준홍 기자
중앙일보 취재진은 지난 7일 오후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 공중보행로를 찾았다. 이곳은 이용자가 거의 없어 썰렁한 분위기였다. 보행로 한쪽에 청년 창업 등을 위해 만든 임대공간은 36개 중 19개가 텅 비어 있었다. 그나마 운영 중인 시설도 파리만 날렸다. ‘세운테크북라운지(북카페)’는 한 명도 없었다. ‘중구 정원지원센터’란 안내문이 붙어있는 인현문화마루 역시 3·4층 건물 전체가 을씨년스러웠다. 보행로 일부 공간은 아예 건축자재나 박스 등이 놓인 창고로 쓰고 있었다.
25년째 세운전자상가에서 일한다는 태영전자 이병권 부장은 “상권을 살린다고 공중보행로를 만든 것으로 아는데 상가 손님·매출 증대 효과는 전혀 없었다”며 “실제로 대부분 상가 권리금이 ‘0원’”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 호텔PJ 건물 양 옆으로 서울시가 조성한 공중보행로. 7일 유동인구가 드물어 한산한 모습이다. 문희철 기자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주변 여건과 발전 전망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보행로 수요예측을 한 게 요인으로 풀이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낙후한 세운상가 일대를 개발하지 않고 무리하게 보존하려다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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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량, 예측치의 5~17% 수준
서울시에 따르면 세운상가 일대 공중보행로 개통 이후 통행량이 2017년 추진 당시 예측보다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올 3월까지 통행량을 집계한 결과 인현·진양 구간은 예측치의 5%, 인근 상가와 연계되지 않은 삼풍상가·PJ호텔 구간은 6% 수준이다. 청계천, 카페·식당 등과 가까운 세운, 청계·대림상가 구간도 11~17%에 불과하다. 한 프랜차이즈 카페 직원은 “5년째 여기서 일하지만 공중보행로가 들어섰다고 손님이 늘진 않았다”며 “솔직히 아무 (정책) 효과가 없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서울 중구 진양상가 앞 공중보행로는 인적이 드물어 상인들이 마치 창고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문희철 기자
공중보행로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고 한다. PJ호텔 구간은 지상에서 보면, 공중보행로를 잇기 위한 교각이 줄줄이 박혀 있다. 왼쪽 통로 쪽엔 화장실과 공공임대 시설을 설치하다 보니 사람이 오가는 게 어려울 정도로 보도폭이 좁다. 반대편 통로엔 차가 다녀 걷기 위험하다. 이 때문에 PJ호텔을 철거하거나 이 일대 공원화가 추진되면 공중보행로가 ‘도심 속 거대 철골조 흉물’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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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사일도 만든다’던 세운상가 쇠락
세운상가 일대는 한때 전자와 인쇄·조명업체 중심지였다. 업종이 다양해 ‘미사일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 하지만 용산전자상가 개발 등으로 슬럼화됐다. 2009년 기준 8790개였던 사업체 수는 2020년 3373개로 줄었다.
공중보행로 개통 이후 쇠락 분위기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서울시는 지난해 4월 종묘와 퇴계로 일대(44만㎡) 등을 재정비해 도심 녹지비율을 4배 이상 끌어올리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했다. 세운상가 일대도 포함됐으나 공중보행로가 1㎞짜리 거대 장애물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4월 21일 종로구 세운상가 세운홀에서 녹지생태도심 재창조전략 현장 기자설명회를 갖고 세운재정비촉진지구를 바라보고 있다. 세운상가는 물론 주변 상권이 쇠락한 상태다. 뉴스1
부산에서 왔다는 이모씨는 “뭐가 있는 줄 알고 올라왔다가 아무것도 없어서 다시 내려가는 길”이라며 “(부산서) 광안대교 보다가 (서울서) 허름한 공장 건물 내려다보니 별로 감동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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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 "보행로 철거해야"…市 "용역 진행 중"
상인들 사이에서 공중보행로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진양상가에서 일하는 이원필 승리플라워 대표는 “손님도 없는데 차라리 확 (건물을) 밀어버리고 뉴욕 센트럴파크 같은 공원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중보행로 효과 검증 용역을 진행 중”이라며 “용역 결과와 시민 의견 등을 면밀히 검토해 철거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운상가 공중보행로는 시대 흐름에 맞지 않게 무리한 투자를 한 게 화근인 것 같다”라며 “도시경쟁력 제고차원에서 이 일대를 전면 리모델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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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욱·문희철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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