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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실업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6년 여름, 일본 고교야구 갑자원 대회에서 역사에 남을 명승부 끝에 우승을 차지하며 일약 국민적 히어로가 된 사이토 유키. 특히 마운드에서 작게 접은 손수건으로 얼굴에 땀을 닦아내는 모습에 언론에서는 손수건 왕자(ハンカチ王子)라는 별명을 붙여 그 유명세를 더했습니다.
2006년 갑자원 결승전에서 우승을 결정짓는 순간
프로 구단의 적극적인 관심에도 드래프트를 앞둔 9월, 자신의 진로에 대한 기자 회견을 열고 “자신은 인간으로서도 야구 선수로서도 미숙해 대학에 기꺼이 들어가면서 한층 성장하고 싶다”라며 와세다 대학 진학을 공식적 표명합니다. 와세대 대학에 입학, 도쿄 6대학 리그의 에이스로 2007년 와세다 대학 교육학부 사회과학과에 입학하면서 와세다 대학 야구부에 입단한 사이토 유키는 같은 해 6월 전 일본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준결승전과 결승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해 2승을 거두며 와세다 대학을 33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도쿄 6대학 리그 추계 리그전에서는 8시합 57 2/3이닝을 던지며 피안타45 사사구10 탈삼진52 방어율0.78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춘계 리그전에 이어 추계 리그전에서도 연속으로 베스트나인에 선정됩니다. 최우수 방어율 타이틀도 거머쥐며 대학 시절 목표가 되어야 할 모든 것을 1학년 때 이룬 것입니다. 대학 야구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2년만에 모두 이룬 사이토 유키 그 이후에도 2학년까지는 착실한 성장을 이루며 2학년 추계 리그전 9시합 7승 1패 65이닝 36피안타 16사사구 54탈삼진 방어율 0.83을 기록했습니다. 갑자원의 히어로에서 대학 야구의 슈퍼스타 그리고 장래의 프로야구 스타 후보생으로서 누구도 그의 장밋빛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큰 기대와 각오로 시작한 2009년이었지만... 하지만 2009년 3학년 춘계 리그전에서 부진을 시작으로 와세다 대학 입학 후 착실한 성장을 거듭해 온 사이토 유키에게 있어서 시련이 시작 됩니다. 사이토가 처음으로 부딪친 벽, 지금까지는 방어율 1점대나 0점대가 당연했던 그에게 있어 춘계 리그전의 방어율2.25 그리고 추계 리그전의 방어율3.08이라고 하는 숫자는 굳이 세부적인 기록까지 찾아보지 않아도 눈에 띄는 하락세였습니다. 부진 속에 유명 연예인 후카다 쿄코와 열애설에 휩싸이기도 했고 와세다 실업 고등학교 시절의 사이토의 직구는 구속 측정기의 숫자 이상으로 공 끝이 살아서 포수 미트로 빨려들어 가는 것이 특색이었습니다. 조금은 깨끗하게 들어오는 코스에서 그만큼 위력은 느껴지지 않았던 그의 공 끝이 대학 입학 후 조금씩 무거워져 그 밸런스가 절묘했던 것이 대학 1,2학년 때의 사이토의 직구였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평가입니다.
본인도 성장의 피크를 맞이했던 2학년 추계 리그전 이후에도 구종을 늘려 기존의 직구와 슬라이더 중심의 투구 스타일에서 포크, 체인지 업 같은 종적인 변화구를 자주 구사하며 직구의 구속을 높이기 위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적극적으로 실시했지만, 그 노력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섬세한 투구 스타일이나 미묘한 밸런스를 무너트려 갔던 것입니다. 명문 와세다 대학 야구부의 100대 주장 사이토 유키 슬럼프로 시련의 한해를 보낸 사이토 유키는 대학 시절의 마지막인 4학년을 앞두고 와세다 대학의 100대 주장을 맡으며 대학 시절의 라스트 이어 그리고 운명의 드래프트를 앞두고 4학년 춘계 대회에서 6시합 41이닝을 던지며 26피안타 10사사구 탈삼진 29 방어율 1.54로 회복세를 보이며 도쿄 6대학 야구 사상 6번째로 통산 30승과 300탈삼진을 기록했지만, 결국 가장 좋았던 1,2학년 때의 구위는 회복하지 못했다는 평가 속에 대학 시절을 마치고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됩니다. 2010년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사이토 유키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지바 롯데 마린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4개 구단의 경합 끝에 교섭권을 획득한 니혼햄 파이터즈와 신인 최고 대우 계약금 1억엔, 연봉 1,500만엔+인센티브 5,000만 엔으로 계약을 맺습니다.
다른 드래프트 동기들과는 달리 특별히 마련된 삿포로 돔에서의 단독 입단 기자 회견에는 평일 임에도 약 8,000여명의 팬들이 몰렸으며 처음으로 니혼햄 파이터즈의 유니폼 차림으로 마운드에 올라 나시다 마사다카 감독에게 프로 첫 1구를 던졌으며 토크쇼와 팬 싸인회까지 NHK가 생중계를 했습니다. 등번호는 일본 프로야구의 에이스 넘버를 상징하는 18번. 지금까지가 사이토 유키의 와세다 실업 고등학교 시절부터 프로 입단까지의 과정이었다면 지금부터는 과연 프로야구에서 사이토는 어떤 피칭을 보여줄 것인가 일본 언론에 보도 된 기사와 칼럼들을 바탕으로 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을 더해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먼저 사이토 유키의 투구 스타일을 보면 최고 구속 140km 후반대로 (4학년때 최고 기록은 춘계 리그전에서 기록한 149km), 평상시 140km 전후의 공 끝이 좋은 직구와 제구력을 겸비했으며 변화구는 횡으로 낙차 큰 슬라이더가 주무기로 포크볼과 체인지업 같은 종적인 변화구와 컷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도 구사하고 공의 위력 보다고 마운드 침착한 운영과 영리한 피칭이 돋보인다는 평가입니다. 같은 팀의 에이스 다르빗슈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투수죠 프로야구에서 일류 투수로 활약하기 위해선 심지체 모든 것을 완벽히 갖추어야겠지만, 지금 사이토 유키에 대한 주위의 걱정과 불안은 대학 3학년 때부터 하락한 그의 구위와 성적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스포츠나비 칼럼에서는 지난 20년간 활약한 대졸 신인 투수들의 대학 시절 성적을 바탕으로 프로야구에서의 성공 기준을 부분별로 나누어 사이토의 성공 가능성을 예상해 보았는데-
사이토 유키의 대학 4년간의 성적을 뒤돌아보면 1) 피안타율 투구회수의 70%이하- 3학년 봄가을 연속으로 이닝 수 이상의 피안타를 허용했지만 4학년 봄 대회에서는 다시 피안타율을 낮춰 조건을 만족시켰으며 2) 사사구 투구회수의 1/3이하- 원래가 낮게 깔리는 제구력으로 시합을 만들어가는 센스가 자랑인 사이토인만큼 3학년 가을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3) 탈삼진/투구회수=1.0 전후- 절대적인 결정구로 상대를 제압하는 타입이 아닌 속구와 다채로운 변화구 제구력을 조합한 타입의 투수로 많은 삼진을 빼앗는 투구 스타일은 아닌 사이토이기에 1학년부터 3학년 봄까지는 유지해왔지만, 이후 회복되지 않은 탈삼진 비율은 다소 불안함이 있다고 4) 방어율은 1점대 전후- 프로를 노린다면 대학 리그에서 1점대 정도의 방어율은 꾸준히 남겨야한다고 주장하며 8번의 대회에서 2번의 1점대, 2번의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사이토는 충분히 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3학년이 되고 방어율이 2.25 / 3.08의 부진이 신경 쓰인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언급된 부분이 있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전 대졸 신인 투수들의 대학 시절 성적을 바탕으로 프로야구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비교 예상해보자면 프로에서도 그 활약을 이어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사이토 유키의 구위 하락이나 기량보다도 프로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좌우할 부분은 사이토 자신의 마인드, 멘탈 적인 부분이 크다고 지적하는 관계자들이 많습니다. 캠프 첫날부터 수많은 보도진과 팬들에 둘러싸여져도, 사이토 유키는 피곤한 얼굴 하나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보는 그대로의 호청년 입니다” 스포니치 니혼햄 담당 기자의 인물평이자 사이토 유키를 만난 대부분 사람들의 평가입니다. 독설가로 유명한 노무라 감독도 메이저 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의 이치로조차 이미 사이토 유키의 팬이 되었다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 사이토가 마운드에 서서 ‘악의 얼굴’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칼럼이 나와 흥미롭습니다.
스프링 캠프에 사이토 유키의 피칭을 지켜 본 야구 관계자는 사이토의 프로에서의 성공 조건으로 “프로에서도 통할 수 있는지는 슛(일본에서는 흔히 슈트라고 부르는 역회전 변화구)을 배울 수 있는지에 달렸다. 그의 위닝샷은 슬라이더이지만 지금 그대로는 그 슬라이더도 프로에서 위닝샷으로 사용할만한 절대적인 구질이라 말하기 힘들다. 그 슬라이더의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슛을 배워 우타자의 내각과 좌타자의 외곽을 함께 공략해야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슛을 배워 기술을 익힌다 해도 타자의 몸 쪽으로 공을 던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타자를 맞출 수도 있는 그 ‘악의 용기’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이토가 그런 피칭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공식 180cm, 실제로는 더 작다고 알려진 작은 몸으로 메이저리그 초일류 투수로 활약한 체격이 페드로 마르티네즈. 뉴욕 양키스에서 그와 수차례 대전했던 마츠이 히데키는 그를 평가하길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진면목은 컨트롤이다. 직구의 구위도 좋지만, 최상급의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원하는 코스에 던질 수 있다.” 시애틀 매리너스 이치로의 평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볼의 컨트롤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타자의 몸 쪽, 혹은 머리 쪽의 위험한 볼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 타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자신 있는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로 잡아 갈 수 있다” 이러한 위협구를 던질 수 있는 제구력과 ‘악의 용기’가 호청년 사이토 유키에게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리고 칼럼에서는 덧붙여 지금 가지고 있던 구종 중 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좀 더 가다듬을 것을 조언합니다. 같은 세대의 라이벌로 불리는 다나카 마사히로 (라쿠텐 골든이글스), 드래프트 동기 사와무라 히로카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오이시 타츠야 (세이부 라이온스)와 같은 150km를 상회하는 직구가 없는 사이토 유키에겐 지금의 위닝샷인 슬라이더에 투심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활용한 타이밍을 뺏는 투구법을 익혀 그라운드 볼 유도 비율을 높여한다는 것입니다. 에가와 스구루와 사이토 유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V9 시대의 에이스 호리우치 츠네오 전 감독은 제구력에 대해 말하기를 “타자의 몸쪽 깊숙이 공을 찔러 던질 수 있는 특권이란 그 미묘한 컨트롤을 가지는 투수만의 것이다. 그리고 그 특권을 가지는 것은 타자를 억제하는 궁극의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으며 역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출신으로 야구 평론가로 활동 중인 에가와 스구루는 더 구체적으로 이전 세이부 라이온스의 히가시오 오사무 투수, 히로시마 카프의 키타벳부 마나부 투수의 예를 들며 모두 공의 위력이 아닌 타자 몸 쪽을 깊숙한 곳으로 공을 던질 수 있는 제구력과 주저 없이 던질 수 있는 “악의 용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200승 이상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조언했습니다. 물론 사이토만이 가지고 있는 발군의 야구 센스와 제구력을 전제로 한 조언들 입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18번 구와타 마스미 또 사이토 유키의 프로에서의 실패를 예상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176cm의 작은 체격과 150km를 상회하는 직구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는 구와타 마스미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는 훌륭한 롤모델이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그 주장은 너무도 경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구와타 마스미라고하면 이미 고교시절 명문 PL학원 소속으로 기요하라 가즈히로와 함께 갑자원을 연속 재패한 갑자원의 영웅으로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드래프트 1위로 입단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에이스로 활약하며 통산 173승을 거둔 위대한 투수지만, 구와타 역시도 174cm의 작은 체격에 상시 150km를 상회하는 직구를 뿌리는 투수는 아니었습니다. 'Smart & Clever'로 상징되는 마운드 운영과 절묘한 제구력, 낙차 큰 커브와 포크볼, 싱커, 슛 등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며 20년이 넘게 프로야구에서 최고 투수로 활약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이토 역시도 지금까지의 커리어나 그 재능은 구와타에 뒤쳐질게 없다는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일본 최고의 투수로 성장한 다나카 마사히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막 프로 세계에서 들어선 사이토 유키가 겪게 될 수많은 시련 중 아마도 가장 큰 부담은 이미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한 이른바 ‘손수건 세대’에 대한 부담감일 것입니다. 2010년 센트럴 리그 사와무라상 수상자 마에다 켄타 하지만 대학 시절 1,2학년 이미 대학 야구에서 이룰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이뤄 버린 사이토 유키에게 있어 도쿄 6대학 리그라고 하는 무대는 그를 불타게 할 요소라곤 하나 남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관계자들도 있습니다. 성실함과 겸손함으로 야구 외 인간적인 모습에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그이지만 아무래도 그 모티베이션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사이토 유키의 최대의 장점이라면 냉정한 마운드 운영과 안정된 제구력, 그리고 무엇보다 승부처에서의 발군의 힘입니다. 야구에 대한 겸허한 자세와 신중한 피칭에 승부처에서의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그 힘이있었기에 2006년 갑자원 결승전에서의 역사에 남는 열투를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이며 그의 고교시절의 활약에는 그 누구도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갑자원의 히어로 시절부터 짊어지고 온 언론의 관심과 팬들의 기대, 명문 와세다 대학 야구부 주장까지 받아 온 압력,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프로 세계까지 온 사이토에게 새로운 환경과 도전이 주어진 것입니다. 프로야구라는 새로운 환경과 도전이 새로운 에너지의 근원이 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엠엘비파크에서 퍼왔습니다. 사이토 유키라는 선수에 대한글인데 좋은글이라 퍼왔습니다. 요즘 일본은 이선수때문에 난리라더군요. 과연 올시즌 어떨지.
첫댓글 이 선수에 대해서 대부분은 회의적인 견해가 많더군요. 이곳저곳 지나가면서 보면 지금 받는 스팟라이트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하고 평범한 투수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본 것 같습니다.
그럴만도 한게 글에도 나와있듯이 직구 구위가 작년 기쿠치 유세이나 올해 오오이시 타츠야,사와무라 히로카즈 등과 비교하면 떨어집니다.고시엔때 그 직구 구위가 아니더군요.제 생각엔 이와쿠마,다르빗슈,다나카 같은 리그 탑 에이스가 될 것 같진 않은데 투구폼이 워낙 이쁘고 노력파라는 점에서 꾸준히 로테이션 지키는 2선발 정도 될 것 같습니다.같은 팀 2선발 다케다 마사루나 세이부의 기시 다카유키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네요.(하긴 저정도도 엄청 잘하는거라고 봐야겠네요.다케다는 올해 14승투수에 방어율 2위고,기시는 WBC 대표팀 최종후보에서 아깝게 탈락한 투수입니다.)
그리고 제가 스포츠 멀티미디어 게시판에 사이토 유키가 대학야구선수권에서 우리나라랑 상대했을때의 동영상을 올려놨습니다.한번 보시고 판단하시는것도 좋을듯 합니다.베스트 케이스는 제가 봐도 구와타 마스미 같은 케이스겠네요.그러고보니 구와타 마스미와 진짜 많이 닮았습니다.구와타 마스미도 대단한 학구파중 하나죠.
이선수 고시엔 결승 동영상에서는 직구구위가 끝내줬었는데..님이 올려주신 대학시절동영상에서는 직구가 별로...좋아 보이지는 않더라구요.
뭔가 불가사의한 인기죠. 이 선수때문에 다르빗슈는 관심도 못받고...ㅎ 우리나라로 치자면 유창식때문에 현진이가 쩌리 된 격이라고 할 수있을텐데 좀 걱정 될 정돕니다. 근데 중간에 나온 마쓰이,이치로의 페드로 관련 발언은 얼마전 우리나라 전문가 4인이 한,미,일리그에 점수매긴 기사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그 기사가 뭐에요? 궁금하네요
그게 위닝 오각형의 형태로 야구부분을 나눠서 평점을 한건데 한미일 리그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매기다보니 미국이 타격을 못하는것처럼 나오고... 병맛기사였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083445 이 기사입니다...
링크 고맙습니다. 좋은 병맛이네요
대학무대에서 직접 맞상대한 한국대학대표팀 감독말로는 좋은 선수지만 완성형이라 발전 가능성이 없고 잘 커야 프로에서 10승 넘는 수준이라고 했죠...;;;; 물론 손수건한테 왕창 깨졌지만.... 별거 아닌 대학선발 대결조차 중계하고 상대 한국 감독에게 평을 해달라고 할 정도로 일본언론의 호들갑이 장난아닌데... 본인이 이걸 이겨낼지도 궁금하네요...
이 선수 야구성장판 닫혔죠..포텐도 꽉꽉찼고 심지어 사람들의 기대치가 가면갈수록 떨어지는추세니..(보통 S급선수들은 처음에 거품이라고 하다가 그 거품을 없애는 형상이 되는데 이 선수는 거품과 포텐이 같은거 처럼 느껴지죠..)
우리나라 대학야구 수준이 박찬호, 구대성, 정민태 등이 활약하던 90년대 초중반 수준은 아니죠...;; 알짜들은 고교 졸업하면서 8개 구단에서 거의 다 걸러냈고... 일본같은 경우에는 저변이 크다 보니 고교 졸업 후 프로직행이라는 루트를 통해서 알짜들이 다 뽑히지는 않죠.
분명 고교때 포스는 마쓰자카와 맞먹을 정도였는데 - 물론 경기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다르빗슈가 더 나았습니다만 - 대학때의 포스는 카와카미보다 떨어지는군요. 물론 위의 글에서 구와타를 닮아가면 좋지 않겠냐..라고 하지만 일단 최근 NPB에서 S급 우완투수가 되려면 150 이상은 기본으로 필요로 하는 시대라..맘 같아선 잘 커줘서 사와무라 상 한번 받아주면 좋겠지만 글쎄요. 다르빗슈에게 많이 배우길. 개인적으론 이번 시즌 3선발로 뛰면 잘 될것 같습니다. 다르빗슈 바로 다음에 나왔다간 박살날지도;;
대학 가지 말징..
뜬금없지만 구와타 마스미를 보니 오늘은 H2나 보고 자야겠네요 후후. 히로야~~
그리운 페드로...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