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의 번트와 홈런
세이버 메트릭스는(sabermetrics) 야구기록의 수학적 연구방법을 일컫는 말로 1971년 설립된 미국 야구연구 협회의(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 SABR) 머리글자를 따서 명하였다. 컴퓨터 시물레이션과 복잡한 고등수학의 도움을 빌려 야구기록을 분석하고 전통적인 야구이론을 발전시키는 일을 하는 야구에 관한 수리통계학이다.
SABR의 회원들이 내놓은 수많은 논문과 엄청난 부피의 경이로운 야구기록집에는 공통된 기조 한가지가 깔려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타순은 클래식한 타순짜기 공식과는 무관하다. 1회를 제외하면,
모든 타자들은 테이블 세터인 동시엔 클린업 트리오의 역할을 병행하게 된다. 특별하게 1번 타자만 달리기를 잘 해야할 이유도, 2 번타자가 번트에 능통할 필요도, 타점은 중심타선에서만 올려야 할 당위성도 사실 없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모든 선수가 잘치고, 잘넘기면 그만이다. 야구의 흐름이 '타자들의 세상' 으로 넘어오면서 통계학자들의
관심이 오랜세월을 두고 타순별로 굳어진 미덕이나 임무보다는 팀
OPS(출루율+장타율)로 이전된 것이다. 1번타자의 홈런은 당연히 가치롭다.
이런 연유에서 세이버 메트리션(야구 통계학자)들이 주목한
TTO(Three True Outcome)는 야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TTO는 수비력을 배제한 타자와 투수간의 순수한
매치업의 결과로 홈런, 삼진, 볼넷이 타석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관찰한다. 야구 통계학자들이 지향하는 미래형 라인업은 타순에 관계없이 팀원들 중 누구라도 30 홈런 80 볼넷 120 삼진이 가능한 선수들로
짜여진 TTO %가 높은 팀이다.
혹자는 삼진이 왜 미래지향적 공격패턴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삼진은 종종 좋은 타자의 영역속에 들어간다. 선구안이 완성된 생산적인 타자일수록 인내심이 뛰어나고 자신의 히팅존에 들어온
공을 파워배팅 한다. 이 과정에서 인내심은 볼넷을, 풀 스윙은 삼진과
홈런을 동시에 증가시킨다. 문제는 삼진으로 인해 떨어지는 출루율이지, 삼진 그 차제가 나쁜 것은 아니란 것이다. 만일 많은 삼진을 당하면서도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는 선수가 있다면, 모든 팀들은 그를 영입하려고 기를 쓸 것이다. 이는 당연하다. 많은 삼진, 고출루율의 장타자가 삼진을 적게 당하면서 높은 출루율을 기록할 교타자 보다 홈런
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 196 홈런(전체1위)과 983 삼진(전체2위)을 기록한 뉴욕 양키스가 좋은 예다. 1일현재 ML 전체에서 팀득점
700+를 기록중인 팀은 홈런과 삼진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 양키스
타자들 뿐이다.
그러나 TTO 오펜스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역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다. ESPN의 유명 칼럼니스트 롭 네이어는 자신의 페이지를 통해
빈 카운트(Beane Count)라는 새로운 팀 랭킹을 제공하고 있다.
세이버 메트릭스의 광신도인 오클랜드의 천재단장 빌리 빈의 이름을
딴 이 기록은 타자의 홈런과 볼넷, 투수의 피홈런과 피볼넷의 랭킹을
합산한 포인트다. 1일 현재 AL 빈 카운트 랭킹은 뉴욕, 오클랜드, 보스턴, 시애틀 순이다. 모두 지구우승과 와일드카드 진출을 노리는 강팀들이다.
천재단장 빌리 빈
빈 카운트 순위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빈 카운트의 주인공
빌리빈이다. 소위 말하는 빌리빈 이론(Billy Beane's theories)의 핵심은 출루율과 아웃의 가치를 중히 여기는 데 있다. 선구안을 강조하는
오클랜드의 팜 시스템은 많은 홈런과 볼넷 삼진을 양산할수 있는 톱
프로스펙터들을 육성한다. 반면 빌리빈은 한점을 짜내는 클래식한 작전들-번트나 도루등-은 거의 무시하고 있다. 오클랜드는 올시즌 134게임에서 30개 팀 중 최소번트를(15개) 기록하고 있다. AL 빈 카운트가 높은 뉴욕과 보스턴의 번트수 역시 20번 미만이다. 사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보스턴의 존 헨리는 야구통계의 대부격인 빌제임스의 책을 즐겨 읽고, 양키스의 GM 캐시먼 역시 세이버 메트릭스의 추종자다.
현대야구에서 한 베이스를 원아웃과 바꾸는 번트는 그다지 센스있는
공격법이 못된다. 홈런 홍수 시대에 한점차 리드가 상대에게 주는 압박이 거의 없고, 상대적으로 아웃카운트 한개의 가치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Diamond Mind Baseball 의 Tom Tippett은 희생번트가
팀 득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부정적인 논지를 폈다. 희생번트는 수비측의 수고를 덜어주며, 성공여부에 관계없이 잠재득점을(potential
runs) 줄인다는 것이다. ESPN의 롭네이어 역시 8월 19일자 칼럼을
통해 희생 번트의 효율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득점권 주자가 한점을 뽑을수 있는 확률은 늘어날지언정, 아웃의 낭비로 인해서
기대할수 있는 총득점은 감소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 요지다.
최근 오클랜드의 지역신문은 A's의 진정한 에이스는 헛슨, 멀더, 지토가 아닌 빌리빈이라는 칼럼을 실었다. 현지에서 일명 지니어스(genius) 빈 또는 매직(magic) 빈 이라 불리는 이 천재는 리그 최저 수준의 셀러리를 가지고 해마다 '오클 타임' 의 마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팜의 노른자위인 특급유망주를 묶어두면서, 마이너 선수를 적절히 내주고 적시적소에 보충하는 빈의 수완에 오클랜드와 선수거래를
하는 팀은 바보가 된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린다.
동시에 빈은 가장 '통계' 에 능통한 '야구를 아는' 단장이다. 빌리 빈이
성공하면 할수록 그를 모델로 한 세이버 메트릭스는 활개를 칠 것이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오클랜드는 야구 통계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팀이었다. 이들의 전폭적인 지원에 A's 는 '배신' 없는 성적으로 화답했고, 세이버 메트리션들의 이론은 더욱 견고해졌다. 빌리
빈의 신화는 계속될 것인가? 만일 A's가 올 플레이오프에서 프랜차이즈 역사를 다시 쓴다면, 야구 통계학 역시 그들을 찬양하는 얼마간의
또 다른 이론들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미국의 야구작가들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고졸투수 회의론의 이면에 오클랜드 대졸투수들의 성공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ps. 오호! 지금 이글을 쓰는 동안 오클랜드는 17연승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