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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의 바위로부터 칸드라는 아래 분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넓고 잘 개간 된 농지는 호수와 이어진 물길로 관개 되어 있었고, 다양한 종류의 곡식 및 채소들이 싹을 내 분지를 푸른 빛으로 물들였다.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만약 그 땅을 가꾸는 사람들만 있었다면.
그렇다, 이 넓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사람의 손길을 받아 왔을 대지엔 어째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밭을 갈거나 물길의 수문을 두고 이웃과 언성 높이는 농부, 긴 사냥을 뒤로 한 채 사냥의 결실을 들고 마을로 돌아가는 사냥꾼, 산맥의 다른 곳에서 무거운 보따리를 짊어지고 어려운 걸음을 한 행상인, 아무도 이 땅에 보이지 않았다. 있는 것은 오직 침묵, 죽음 같은 고요였다.
하지만 진정 칸드라를 심란케 하는 것은 그런 광경이 아니었다. 지금 이 분지에는 무언가 평소와는 다른 것이 있었다. 파란 하늘도 푸른 땅도 평소와는 다를게 하나 없건만, 무언가 칸드라를 꾹꾹 자극했다. 칸드라의 목뒤 솜털이 빳빳히 곤두섰고 심장은 긴장감에 쿵쿵거리며 뜀박질 쳤다.
칸드라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마치 인간에 의해 내려다보여지는 개미가 드리워진 그림자에 잠기듯이, 무언가의 흔적, 존재감이 칸드라를 압도하고 있었다. 어디를 보던 그 '그림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볼 수 있는 모든 곳에 그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었다. 칸드라는 살면서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걸 상상해 본 적 없었다. 그 부분에서 칸드라는 마치 천적을 본 적 없는 새끼새와 같았다.
하지만 새끼새는 본 적 없는 천적의 그림자에 고개를 웅크린다. 비슷하게, 그 느낌 역시 칸드라를 본능적으로 위축시켰다. 거대한 것을 맞이했을 때 움츠리는건 선조부터 이어진 본능적인 생존전략이었다. 정체를 알건 모르던간에.
하지만 그 위축감은 빠르게 칸드라 안의 반발심을 자극했다.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뭐인지도 모르고 보이지도 않는 것에 단순히 전해져 오는 느낌만으로 혼자 위축되어 벌벌 떤다니? 마치 잠시나마 위축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듯이, 힘이 갑작스레 타오르며 칸드라의 안을 다시 부풀어오르게 만들었다.
칸드라는 짧게 혀를 찼다. 지금 이곳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이던간에, 이 마을을 습격했다는 자들과 이 기이한 현상이 연관되어 있으리란건 분명했다. 칸드라는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며 오두막을 나섰었다. 이 마을에 새로 자리잡은 무리를 정찰하고 더 자세히 상황을 알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하지만 여기까지 오고나니 의문이 풀리긴 커녕 오히려 새로운 의문이 생겨나기만 했다. 마을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단순 습격이나 약탈이 아니라 더 위험하고 의뭉스런 무언가였다.
여기서 멈추고 다시 돌아갈까? 아니면 좀 더 상황을 살펴볼까? 칸드라는 잠시 고민했다. 만약 이 정도에 만족하고 돌아가면, 사실상 여기까지 나온 보람이 없었다. 얻은게 없었으니. 하지만 그렇다해서 좀 더 상황을 살펴보자니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과 점점 더 얽혀 들어가는 것 같아 그건 그것대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깐의 고민 후, 칸드라는 세번째 선택지를 택했다. 더 상황을 살펴보되 마을에서 벌어니는 일과 얽히지 않는 것이었다. 방법 역시 간단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그만. 칸드라는 거대한 천체의 힘을 훔쳐 스스로를 하늘로 띄워 보냈다.
마을에 접근하기 위해 칸드라가 택한 궤도는 제법 독특했다. 우선, 칸드라는 지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고도까지 상승했다. 그 후 칸드라는 포물선을 그리며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고도를 하강시켰다. 마을 가장자리에 있을지도 모를 경비들을 지나쳐 마을 중앙 무렵에서 급격히 고도를 낮추는 형태였다.
칸드라가 높이 떠 있을 때는 단순한 점 덩어리로만 보이던 마을의 목재 건물들이 대지와 가까워질수록 그 처참함을 드러냈다. 피와 검댕이 불타 무너진 잔해 주위에 널부러져 있는 모습. 가재도구 등 잡동사니로 막은 집 사이 골목들에는 지린 오물과 잘려나간 살덩어리 등 여러 전투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이미 탈 건 다 타 버린 모습이건만 공기는 아직도 잿내에 젖어 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시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 중앙에 가까워질수록 불가해의 존재감은 더욱 짙어져 갔다. 어느 까마득한 존재의 관심이 마을 중앙에 놓여져 있고 지금껏 느껴왔던 흔적은 오직 그곳에서 새어나온 찌꺼기에 불과한듯한 느낌이었다. 칸드라는 당장이라도 다시 걸음을 돌려 돌아가고 싶었지만, 전해져 오는 존재감에 칸드라에 대한 인지는 섞여있지 않았다. 칸드라를 눈치채지도 못한 무언가의 한낱 그림자에 위축되어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한채 도망치는것은 칸드라의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하고, 곧장 나간다. 칸드라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을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곳의 광경을 볼 수 있다면 지금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내 중앙에 도착했을 때, 칸드라가 발견한 풍경은 전혀 예상한 모습이 아니었다.
마을의 중앙은 일종의 광장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었다. 마을의 유일한 석재건물인 곡물창고를 한켠에 둔 중앙의 공터에선 마을행사나 이런저런 모임, 정기 시장 등이 열리곤 했고, 가끔은 자경대원들이 모여 훈련을 하기도 했다. 무언가 일이 있을 때던 없을 때던 중앙엔 언제나 사람들이 오고 갔고 아이들은 이곳에서 온갖 장난을 치고 놀았다. 칸드라는 중앙을 언제나 삶의 생기가 넘쳐 흐르는 곳으로 기억했다.
지금은 아니었다. 머리 민 기백의 사내들이 곡물창고를 바라보며 반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쇠스랑이나 장대 같은 초라한 무기로 무장해 있었지만, 그들 중 십여 가량은 처형자의 것과 같은 거대한 양손검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손잡이를 위로한 채 양손검을 땅에 꽂고 그 뒤에 우뚝 서 있었다. 양손은 손잡이의 힐트에 놓여 있다.
그들과 곡물창고 사이의 반원형 공간에는 아무리 봐도 제단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물건이 하나 있었다. 그 제단의 위에는 주위의 오물과 검댕에 어울리지 않는 백색의 천이 씌워져 있었고 다시 그 위에 자그마한 은 조각품이 놓여져 있었다. 그 은 조각품은 제법 특이한 모양새였다. 사람이나 생물, 혹은 다른 자연의 풍경을 조각한 대신 주시하는 눈의 모습을 빚어내 놓았다. 곳곳이 다양한 보석으로 장식 된 화려한 물품이었다.
그 제단 뒤에 역시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백색의 정복을 입은 한 노인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서 양 팔을 하늘을 향해 활짝 열어 펼쳤다. 그 노인의 주위에는 왜 마을에 시체가 보이지 않았는가에 대한 해답이 널부러져 있었다. 팔다리가 묶인 채 시체처럼 쓰러진 자들과 진짜로 그냥 시체인 자들. 가릴 것 없이 모두 제단 주위에 얼기설기 내던져져 있었다.
그때, 무언가 기괴한 일이 일어났다. 주변에 널부러진 자들, 그리고 문이 꽁꽁 걸어 잠겨진 채 포위 당한 곡물창고, 그들로부터 무언가... 알 수 없는 것. 불가해의 것. 오감으론 와닿지 않으면서도 어째선지 타오르듯이 느껴지는 것이 쑤욱 뽑혀나와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들이 무엇을 빼앗긴건지 칸드라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빨린 자들은 어째선지 그러기 전보다 조금 희미해진 것 같았다. 생명, 존재감, 더 근원적인 무언가, 그런 것들이 조금 허물어졌다. 마치 사람이라는 건물을 이루는 기반을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모두 무언가 소중한 것을 상실당한채 미지의 불구가 되어 남겨졌다.
사람이 통채로 분해되고 붕괴하는 모습을 경악에 차 바라보던 칸드라의 목덜미를 문득 불어온 바람이 간질였다. 하지만 칸드라의 머리카락은 그 바람에 흩날리지 않았다. 그것은 무언가 다른 것, 단순한 공기의 흐름이 아닌 무언가였다. 갑자기 칸드라의 본능이 경종을 쳤다. 하지만 칸드라가 무언가 하기도 전에, 제단 뒤 백색 정복의 노인이 갑자기 고개를 팍 돌려 칸드라를 바라봤다.
그리고 압도적인 의지가 칸드라를 강타했다.
소리 없는 충돌은 칸드라의 뇌리를 몰아치며 생각 없는 백색으로 물들였다. 사지가 빳빳하게 굳고 의식은 아득히 멀어진다. 의식이라는 모래성이 거대한 파도를 맞이해 흩뿌려지는 것 같았다. 기본적인 사고, 자기인식조차 흩어지고 칸드라라는 사람은 잠시나마 인지가 정지한다.
그때 칸드라의 안에서 기이한 힘이 흘러 나왔다. 칸드라의 안에 있다는 것을 칸드라조차 알지 못하던 힘.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방금 사람들로부터 흘러나와 어디론가 사라진 그들의 근원과도 닮아 있었지만,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더 강하고 굳건하며 밝게 빛났다. 새벽 잿속 빠알간 깜불처럼, 겨울 폭풍 속 희미한 난로처럼, 그 힘은 칸드라를 보드랍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칸드라는 힘겹게나마 다시 의식을 차렸다.
칸드라가 애써 정신을 차렸을 때, 초점이 어긋나 흐릿한 시야는 바로 앞까지 다가온 대지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대체 뭐지? 충격에 뻑뻑해진 머리는 상황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반사적으로 힘을 일으켜 추락을 상쇄시켰다. 갑작스레 했기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뇌가 두개골과 부딪힌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칸드라는 거칠게나마 사지 멀쩡하게 바닥에 착지할 수 있었다. 제단으로부터 몸을 돌려 이제 제단과 곡물창고를 등지고 있는 하얀 노인은 그런 칸드라를 이색이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노인은 입을 열었다.
"네가 바로 이곳 사람들이 말하던 그 술사인가보구나. 세상의 끝에서까지 주문을 다루는걸 보면 뒤릉켈에 적을 두었나? 빼어난 영혼격벽이야, 우올의 입맞춤을 견뎌낸걸 보면. 뒤릉켈의 술사 답지 않게 영혼의 이해가 깊군 그래. 아다만의 아래에서 수학했나? 뒤릉켈에서 영혼을 아는 자는 그자 말고 없지."
칸드라는 울렁이는 속을 모아 바닥에 침을 퉷하고 뱉었다. 그러고나서도 여전히 속이 미친듯이 요동쳤다. 그리고 노인네의 뭔 뜻인지도 모르겠는 지껄임은 속을 진정시키는데 눈곱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뒤릉켈이라면 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일텐데,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 갑자기 왜 튀어나오는지 칸드라는 알 수 없었고, 처음 들어보는 고유명사와 용어들의 향연은 안 그래도 지끈거리는 머리를 더욱 두들기기만 했다. 이제는 무형의 창처럼 칸드라를 찔러 오는 거대한 존재감이 칸드라의 신경줄을 팽팽하게 잡아 당기기까지 하니, 칸드라는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노인의 말에는 무언가 칸드라를 자극하는 것이 있었다. 신비. 이 노인의 말에는 신비에 대한 익숙함이 자연스럽게 묻어나 있었다. 그것은 칸드라가 지금껏 만나 온 어느 사람도 지니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년전 힘을 갑작스레 깨우친 순간부터 칸드라는 신비에 대한 이해를 갈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노인과 대화를 나눠도 될까? 이 노인에게서는 무언가 아주 위험한 냄새가 났다. 어느 맹수보다도 위험하고 살벌한 기세. 그것이 고요하고 평온한 양의 거죽에 감쪽같이 감추어져 있다. 만약 이렇게 기괴하지 않은 풍경에서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뽑아내 어디론가 보내는 모습을 보지 않은채 만났다면, 칸드라는 이 자를 평범한 노인으로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일단, 노인은 대화를 원하는 것 같았다. 칸드라는 자신의 패를 내보이지 않는 선에서 그 노인의 욕구에 답했다.
"우올의 입맞춤...?"
칸드라가 말꼬리를 흐리며 그 고유명사를 되묻자 노인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우올, 위대하신 주시자께서는 참으로 자비로우시기에 이리 미천한 종에게도 그런 권능을 허락해주셨지. 자네가 하늘에 있는 것을 보니 잠깐 장난기가 돌지 뭔가."
칸드라는 눈쌀을 찌푸렸다.
"대체 내가 하늘에 있는건 어떻게 안거지?"
"아, 무지한 자에게 우올의 위대함을 알리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런 일일지니! 주시자께서는 언제나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그분의 주시하는 눈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조그마한 티끌 하나마저 없다네, 술사여! 그분께서 이 미천한 종을 위해 잠시 귓뜸을 해주셔서 나는 자네를 알아챌 수 있었네."
칸드라는 문득 그 바람을 떠올렸다. 갑작스레 불어와 산들거리며 지나갔지만 머리카락하나 흔들지 않던 모습. 칸드라는 다시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칸드라가 이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계속 이해를 벗어난 일들이 도발하듯 던져져왔다. 신비의 앞에서 칸드라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근거 없는 추측과 자기의심 밖에 없었다. 신비를 이해하기에 칸드라의 앎은 너무 부족했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이런 수상한 노인에게까지 달라 붙을 생각은 없었다.
"뒤릉켈의 아다만을 아나?"
노인은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 자는 자네의 스승이 아닌가? 스승을 말하는 것 치고는 말꼬리가 짧군 그래. 흠... 뭐 중요한건 아니지. 어찌 됬던 신사로서 자네의 질문에 답하자면, 그래, 나는 뒤릉켈의 아다만을 아네. 뒤릉켈 스쿨에서 원로랍시고 뒹굴대는 그 어리석은 멍청이들과는 달리 영혼의 힘과 중요성을 이해하는 유일한 자였지. 시적으로 말하자면 검은 백조 사이 홀로 하얀 깃털을 지녔다 할 수 있을걸세. 그 정도면 대답이 충분한가?"
칸드라는 마지막 질문을 했다.
"아다만은 어디서 만날 수 있지?"
노인은 좋은 농담을 들었다는듯 크게 웃었다.
"뒤릉켈의 아다만을 뒤릉켈말고 어디서 찾겠나! 거 참 실 없는 처자일세!"
노인은 한바탕 크게 웃고는, 입가를 한 번 훔치고 말을 이었다.
"자네가 이 마을을 신경 쓴다는건 알고 있네. 이년전에는 성지의 축복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 실패자들을 자네가 죽였다고 이곳 사람들이 그러더군. 하지만 자네, 자네는 그때 우올로부터 도둑질을 하였어. 마땅히 우올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영혼들을 대신 이 땅의 흐름으로 돌려 보냈지. 우올은 자신의 것이 도둑맞는 것을 결코 가만 바라보지 않는다네.
자네, 자네는 상상할 수 있나? 오년에 걸쳐 오직 그 실패자들만을 찾기 위해 온 땅을 뒤졌다가 결국 이미 이 년전에 죽었다는 것만 알아낸 기분을? 도둑질당한 자는 마땅히 자신의 몫을 되찾기 위해 다시 도둑의 것을 빼앗아갈 수 있는 법이야. 이 산의 영혼들은 자네가 한 도둑질의 대가로서 마땅히 받아내야 할 것이네.
물론 그 안에는 자네의 영혼도 포함 된다네. 다만, 우올의 주시는 천공으로부터 말미암으니 심지어 불신자마저 그 눈에 드는 법, 우올께서는 자비롭게도 자네에게서는 오직 영혼의 절반만 받겠다 하시네. 남은 절반은 자네가 소유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는 것이지. 어떤가, 괜찮은 제안이 아닌가?"
대화는 끝났다. 신비에 대해 역시 알고 있을지 모르는 뒤릉켄의 아마단이란 자의 이름을 들었으니, 더 이상 이 노인과 얘기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영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그것이 빨아 들여지는 모습을 보니 그걸 잃는게 그리 좋은 것 같지도 않았고. 칸드라는 가스행성의 소용돌이로부터 번개를 훔쳐 와 노인의 머리 위에 떨어트리는걸로 답을 대신했다. 번개가 허공에 막혀 미끄러지며 반구형의 투명한 형체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아래에서 노인은 껄껄 웃었다.
"유쾌한 처자로군! 정 그렇다면 답해주는게 예의겠지!"
노인은 양손을 하늘 위로 번쩍 들고 외쳤다.
"천공의 주시자시여!"
그러자 하늘로부터 십여개의 번갯줄기가 떨어졌다. 칸드라는 놀랐지만 그 번개들은 칸드라를 치긴 커녕 칸드라 근처를 후려치지도 않았다. 대신, 번갯줄기는 양손검을 땅에 꽂고 있던 십여명의 사내들에게 떨어졌다. 번개를 맞은 사내들의 눈에서 안광이 번쩍 뿜어져나왔고 입에서는 뿌연 안개가 흘러 나왔다. 근육이 우악스럽게 부풀어오른 사내들은 땅에 꽂아 둔 양손검을 뽑는다. 그 뒤의 기백명 무리 역시 쇠스랑등을 세게 움켜쥐며 광기어린 전의를 다졌다.
"신도들이여! 죽음 끝에 우올의 천당이 기다림을 알게!"
그렇게 외친 노인은 다시 제단을 향해 돌아서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게 신호인마냥 광신도들은 곧장 칸드라를 향해 달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