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산 산등성으로
유월 둘째 월요일이다. 아침을 들면서 산행에서 먹을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 놓았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밥은 보온도시락에 담지 않아도 되었다. 등산화 끈을 묶고 스틱을 챙겨 자연학교 등교를 위해 배낭을 추슬러 현관을 나섰다.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 꽃대감이 가꾸는 꽃밭으로 가보니 친구는 보이질 않았다. 주말에 이어 아직 고향 형님댁의 블루베리 수확 일손을 돕는 중이다.
팔순의 밀양댁 안 씨 할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찍부터 꽃밭으로 내려와 꼼지락꼼지락 뭔가 움직이고 있었다. 김은 매일같이 매고 있어 잡초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해 놓았고 심어둔 꽃의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순을 질러주거나 가지를 자르기도 했다. 아파트 꽃밭에 꽃대감 친구가 부재중이니 별스레 나눌 얘깃거리가 없어 짧은 시간 머물다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길을 나섰다.
집 근처 버스 정류소로 가니 등굣길 학생들이 우르르 모여 있어 나는 원이대로로 나가 자리를 비켜 주었다. 당국에서는 엊그제부터 버스 노선을 전면 개편해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지나야 할 듯하다. 원이대로에서 북면으로 가는 17번 버스를 타고 명곡교차로를 거쳐 천주암 아래를 지나 굴현고개에서 내렸다. 굴현은 우뚝할 ‘굴(崛)’에 고개 ‘(峴)’으로 우뚝한 고개를 이른 지명이다.
무학산이 천주산으로 건너와 정병산으로 뻗어간 낙남정맥이다. 그 사이 마재고개가 있고 굴현고개가 있다. 마재고개는 말 ‘두(斗)’자와 자 ‘척(尺)’자로부터 나온 설이 유력하다. 거기 두척마을이 있고 무학산의 고명이 두척산이다. 두척에는 예전 조창이 있었을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한다. 말은 곡식의 수량을 재는 도구이고 자는 곡식의 높이를 재는 도구로 조창에서는 필수 품목이다.
북면으로 넘는 굴현고개는 천주산 아래에서 쳐다보면 우뚝해 보이기에 우뚝할 굴(崛)에 고개 현(峴)이다. 예전에는 동정동에서 외감리로 넘는 고갯길에는 주막도 있고 우물도 있었다는데 세월 따라 아슴푸레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고갯마루는 감나무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근래 음식점이 몇 채 들어섰다. 이제 포장된 자동찻길에다 국도 터널까지 뚫려 예전의 고갯마루가 아니다.
천주산 일대는 봄 한 철 진달래꽃으로 유명세를 탄다. 그때는 전국의 산악회에서 남녘으로 전세 차량이 밀려와 주말은 외감 들녘 농로에도 차를 세울 곳이 비좁았다. 천주산과 인접한 구룡산은 상대적으로 산행객 발길이 뜸하지만 호젓한 길을 즐기는 이들은 찾았다. 구룡산에서 천주산 북사면에 핀 진달래를 건너다보는 경치도 볼만했다. 나는 구룡산을 가려고 굴현고개에서 내렸다.
산행 들머리에서 구룡산 등산 이정표를 지나니 숲 바닥에는 지피식물로 자라는 마삭이 무성했다. 예전에는 자주 들렀던 구룡산인데 근년에는 굴현고개에서 산등선을 탄 기회가 없었다. 대신 동읍 용전리와 남산마을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봄날 산나물을 뜯느라 매년 찾았다. 전에는 굴현고개에서도 정상으로 가는 길섶에서 참취나 고사리를 뜯기도 했었는데 찾을 겨를이 내지 못했다.
날씨가 흐려 소나기가 연방 내릴 낌새여서인지 등산로에 두꺼비 녀석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동정동 갈림길에서 산마루를 따라가니 길섶에는 우슬이 많이 자랐다. 쇠무릎이라고도 불리는 우슬은 늦가을에 뿌리를 캐서 한약방에서 건재로 썼다. 정상을 넘어 동읍 신방리로 내려갈 생각이 없어 쉬엄쉬엄 걸어 산등선 고목 벚나무 아래 쉼터에서 이른 점심으로 가져간 도시락을 비웠다.
이정표 갈림길에서 정상으로 가는 비탈로 오르질 않고 대한마을과 한수마을로 가는 길로 들었다. 운동기구가 설치된 쉼터에서 독립가옥이 있는 단감농원으로 내려서니 산딸기가 빨갛게 익어 있어 실컷 따먹었다. 산중에는 자연인처럼 사는 농부가 벌통을 살피고 있어 인사를 나누니 경계심을 풀지 않아 조심스레 지났다. 지그재그로 난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동안 걸으니 마을이 나왔다. 23.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