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라는 말은 요즘의 말이지만, 옛 말로는 남녀의 만남을 말하겠지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께서는 그 옛날 홀아비와 과부의 만남을 적극 주선하셔서
서로 외롭게 살던 사람들을 서로 의지하며 살라고 새 가정을 열심히 만들어 주셨습니다.
6.25가 끝나고 살아가기 힘든 50년대에...
난리통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부지기 수 였지요.
그래서 남편을 잃은 여인들도 많았고... 가족을 잃은 또는 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중 홀아비도 많았지요.
당시 우리는 옹기공장을 했었는데, 그곳에는 일하는 남자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오갈데가 없어 그냥 찿아와 허드렛 일을 하는 머슴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홀아비가 더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꾼들이 많으니 밥할 부인들도 필요한데, 딱히 할일이 없이 혼자사는 과수댁들이 많이 도와주었지요.
아버지께서는 우리 주변의 홀아비들과 과수댁들을 보시고는 이들에게 짝을 지워주면 서로 의지가 되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다 생각하시고는... 은연중 마음을 떠 봅니다. 여자측은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해서 둘을 만나게 하여 즉, 데이트를 주선하여 서로 대면하고 확인하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둘 모두 좋다고 하면 어느날 날을 잡아 간편 혼인식을 갖게 했는데, 사람들을 모아 놓고
오늘 누구와 누구가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노라고 아버지께서 알리고는 서로 맞절하며 부부가 됨을
널리 알렸습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공장 식구들이지만 동네 사람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자~ 그럼 사람이 모였으면 음식이 있어야 했는데... 이 음식은 모두 우리가 준비했고...
새 가정의 집기도 우리가 준비하여 동네에서 건너방 하나 얻어주며 살아가게 하였습니다.
때로는 외지에서 장사하러 온 과수댁이 괜찮아 보이면, 그들의 뜻을 물어 데이트를 주선도 해 주셨지요.
나는 어려서 이런 모습을 여러번 보았고,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여러 가정을 탄생시키셨습니다.
그 당시 홀아비와 과부가 가족도 없이 산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힘들지만 정서적으로도 힘들었겠지요.
혼자라는 외로움...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허탈감... 이럴때 짝이 있다면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겠지요. 그렇게 해서 그들도 웃는 얼굴로 지냈던 모습들이 지금도 생각이 나네요.
첫댓글 선고 어른께서는
정말 큰 어른다운 일을 하셨습니다.
세상은 정붙이고 살아야 하는데
그 일을 성사시키신 자상한 배려야말로
참 사랑, 큰 사랑입니다.
존경합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지나고 보니 처녀 총각 중매는 서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오로지 혼자 어렵게 사는 홀아비와 과수댁을 한 가정으로 만드는데 분주하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집에 최씨라는 분이 머슴으로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어렸던 나에게 어떻게 사나 가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을 갔더니, 별로 말이 없는 최씨 아저씨가 새로 얻은 마나님과 장난을 치며 즐겁게
지내는 것을 보고는 와서 그대로 말씀을 드렸지요.
아버지께서는 싱긋이 웃으시며 만족해 하시는 모습이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께서
중매를 하셨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잘 한 일이 중매라고 합니다
복 받을 일입니다
오늘도
대구는 비소식이 있습니다
기분좋은 하루 되십시요 ~^^
그 당시 떤돌아 다니며 하루벌이 사는 홀아비와 과부를 엮어 가정을 만들어 주니...
더 이상 떠돌이 생활 안하고 둘이 품팔이 하며 열심히들 살더군요.
서로가 의지도 많이 됐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외로운 자들의 만남을 주선하신 아버님.
참 훌륭하셨네요
외로운 자들애게 가정을 꾸미게하고 의지할수 있우니 참 고마운 일이지요.
우리 아버지는 부모없는 아이들 데려와서 일꾼삼고 결혼시켜 집과 땅을 줘서 자립하게 하셨기에 오빠라고 부르며 잘 지냈지요..
6.25가 끝나고 가족은 해체되고 먹고 살 일은 요원한 상태의 시기였지요.
그런시기에 시골에 있는 옹기 공장에도 일할 것을 찿아 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불우한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래서 홀아비와 과부에게 우선 의향을 묻고 만남을 주선해 혼인 하도록 하였는데
우선 서로 짝이 있다는... 가정이 있다는 뿌듯함에 열심히들 사셨었죠.
지금 생각해도 아버지께서 좋은 일을 하셨다고 보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