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리운 공장
정연홍
마산 수출자유지역으로
진주 상평공단으로
울산 석유화학단지로 떠나가고
호송이 따라 출가하고 싶었으나
자동차 하청 공장에 취직
중고차 사고 집사람 만나 살림을 시작했고
사십 넘어 운동판에 뛰어들어 머리띠 둘렀고
구호를 외치다가
빨갱이로 몰려
쫓겨나고
내게 공장은 집사람 만나게 해 준 은인
늦은 나이 대학원까지 가게 해 준 고마운 놈
빨갱이 소리까지 듣게 해 준 원수 같은 놈
공장은 자본주의 세상을 찍어내는 공장
일률적인 모양을 대량으로 생산
기계적인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공장
자본의 각진 모양을 거부하면
고문관이라 손가락질하는 공장
감시의 눈초리를 모른 척 눈감아야 했던 공장
동기들이 출근하는 정문
복직을 외쳐야 하는 공장
돌아갈 수 있으리라 꿈꾸는 공장
지긋지긋한 공장
그래도 그리운 공장
인간을 찍어내는 지구라는 공장
신이라는 공장장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공장
ㅡ 『시산맥』 (2021, 겨울호)
첫댓글 산업사회...
공장을 찾아 도시로 온 노동자
일회용품처럼 이용하다 버려지는 소모품
돌이켜보면 그래도 아침에 출근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되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