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과 기독교> 윤정란 지음/한울·3만4000원
역사학자 윤정란(케임브리지대 한국전쟁연구사업단 연구원)이 5년여에 걸친 연구 집필로 완성했다.
서북청년들의 연원을 좇는 이 책에서 주요 등장인물은 한기총 초대 회장이자 한국 개신교계의 존경받는 원로로 일컬어지는, 영락교회 설립자 한경직(1902~2000) 목사다.

월남한 서북 개신교인들은 오산학교 출신으로 서북에서 기독교사회민주당을 만들기도 했던 한경직을 중심으로 속속 결집했고 영락교회는 “월남자들의 신앙 공동체이자 반공의 전투기지”로 구실했다.
영락교회 학생회·청년회가 서북청년단의 중심이었을 만큼 이 교회 자체가 서북청년단 탄생에 깊이 연루돼 있다.
한경직 목사는 80년대 초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서북청년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기 목숨 걸고 이른바 ‘좌익 척결’의 선봉에 섰다.
미군정의 국립대학설립안에 수많은 교수·학생이 반대운동을 벌이자 서북청년단은 그 핵심을 좌파라 단정짓고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6000여명의 회원을 경성대학을 비롯한 각 학교에 편입학시켰”으며,
경성방직·동양방직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 노동조합 전국평의회(전평) 파괴에 전위로 나선 것도 서북청년단이었다.

한국전쟁은 서북 개신교인들에게 기회의 공간으로 작용했다. 그 중심도 한경직이었다.
그는 남한 개신교 장로회에서 신사참배 거부그룹과 조선신학원그룹을 밀어내고 주도권을 잡았다. 그 힘은 “미국에서 들어오던 방대한 전쟁 구호물자와 선교자금의 독점”에 있었다.



서북 출신인 그는 전쟁 전 서북지역을 관할했던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과의 밀착 관계를 활용했다.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 통역을 전담할 수 있었던 덕이다.
이승만 정권기 한때 정치적으로 배제됐던 서북 출신들은 5·16쿠데타와 함께 화려하게 부활한다.
서북청년단 회원들은 한국전쟁기 조선경비대(국군)와 조선 경비사관학교(육사)에 대거 들어갔다.


1947년 입교한 육사 5기생 중 서북 출신이 3분의 2였고, 1948년 입교한 8기에도 서북 출신이 많았다. 5기와 8기의 서북 출신 장성들은 “1961년 군사 정변의 주역”이다.
“국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원로 그룹들 상당수가 이북 출신들(국회의장·국무총리·대통령비서실장)임을 빗댄 것으로, 노스웨스트는 과거 서북청년단에서 유래한다.”




<한국전쟁과 기독교>는 한국 개신교 주류의 뿌리를 파해친 책이다. 그 뿌리라 할 서북청년단이 가담한 일 중에서 4·3 진압의 희생자는 수만명에 이른다.




그에 대한 정부의 사과는 있었으되 민간 차원의 사과는 아직 없다.




출처: http://www.hani.co.kr/ 글 요약
첫댓글 그 교회는 살인에서 출발한 개쓰레기교회지요
반공교회라고 대놓고 말하는 교회
그냥 잡쓰레기종자들
교회라는 가면을 쓴 악마집단 아닌가요?
서북 청년단 이북에서 친일파 숙청작업으로 인해서 이남으로
친일파들이 피신 그들이 살길이 반공주의 사상
이승만과 미군정과 짝짜쿵
지금 이라도 늦어지만 제주도의 피 맺힌 4.3사건을 샅샅이 파 헤쳐보자
당시에 7살 어린애을 빨갱이라고 죽이고 그런 한 많은 사례 많지요
장모와 사위을 성관계 시키고 할아버지와 손자을 서로 빰 때리게 하고
인간 말종 서북 청년단
안타까운 과거죠~
이제는 미국을 보고 사죄하라고 하고 그에 따른
미국국민 상당의 보상도 필히 받아 내야 합니다.
대형교회 목사 99%는 친일파.
아님 해방후 한국인으로 개명한 왜놈 자손이라고 봅니다.
http://cafe.daum.net/sisa-1/kToq/302
이스라엘 민족신이 된 배달국 한웅천황의 따님 여와(여호와)
http://cafe.daum.net/sisa-1/dqMu/25305
친일매국노가 아니라 일본인 본인들 정권.
이것들이 기독교인이라고? 이 무리들은 야차지 것두 인두겁을 쓴 악의 무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