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헌 조영태선생 정년퇴임 기념회(2)
내가 그 사람들을 싫어한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며, 내가 그 자리를 싫어한다면 거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네. 물론 내가 그 사람들에게 그러한 내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 또 그 감정이라는 것도, 정확하게 나타내자면, 뭐라고 할까, 적대감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며 혐오감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야. 게다가 내가 내 동료들 모두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지. 그러나 내가 그들이 마련한 그 자리에 나가기가 싫었던 것은 분명해. 사실은, 우리 학과에서는 매주 수요일에 점심을 같이하는 전통이 있는데, 나는 핑계거리만 생기면 그 자리에 빠지곤 했어. 그렇게 한 지 거의 2년이 된 것 같네.
2년 전 쯤의 일인데, 우리 학과에서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두고 의견 충돌이 일어났어. 그 때쯤 중국인 유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학위를 받기 시작했거든. 그런데, 이 학생들이 너무 쉽게 학위를 받으려고 하는 거야. 너무 짧은 기간 안에, 너무 낮은 수준의 논문으로 학위를 받으려고 한다는 말이지. 물론 그것은 내 생각이야.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교수들도 있었지. 어떤 교수는, 그 정도면 학위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고, 또 어떤 교수는 미흡하기는 하지만 (대학원의 정원 확보 등) 이러저러한 주변 사정을 고려하면 그 정도로 학위를 주는 것이 학교와 학과에 좋겠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느슨한’ 혹은 ‘너그러운’ 교수가 나같이 ‘깐깐한’ 교수보다 더 많았지. 양쪽의 교수들 사이의 대립은 그 전부터 있어왔지만, 중국 유학생들로 인해 아주 날카로와진 것이야.
나는 원래부터 깐깐한 사람으로 통했어. 나 자신도 인정했고. 자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군. 7, 8년 전에 있었던 선배 교수 두 분의 정년퇴임식장에서 나는 ‘투 프로페서즈’라는 제목을 붙인, 두 분에 대한 회고담을 읽었어. 졸업식의 송사(送辭)에 해당하는 글이지. 나는 한 분을 가리켜서,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은 높게 잡되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낮추어주는 분이라고 회고하였으며, 상담을 전공하는 또 한 분을 가리켜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아예 가지고 있지 않은 분이라고, 즉 아예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분이라고 회고하였지. 그런 말을 하는 중에 나는, 나 자신을 가리켜서는,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도 높게 잡고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도 높게 잡는 인물이 아닐까 한다고 썼어.
그러니 내가 ‘느슨한’ 교수들에게 실망한 것은 당연하지. 그리고 많은 중국 학생들에게 실망한 것도 당연하고. 그 따위 글을 한 편 쓰고는 학위를 챙겨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다니......너무 뻔뻔스럽지 않은가? 실망이 컸던 것은 기대가 컸었기 때문이겠지. 나는 4년 전의 설레는 첫 강의를 기억해. 종강하는 주에는 학생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고 같이 부르기까지 했지. 종강에 어울리는 가스펠 송이었어. 그러나 이번 학기에는 나는 중국 학생들을 위한 강의를 아예 개설하지도 않았어. 나를 지도교수로 택한 한 학생은 다른 학생들하고 좀 달랐어. 이 학생은 동기들보다 두 학기나 늦게 졸업을 하였지. 열심히 한 것이지. 한 학기쯤 더 붙들고 있으면 정말 좋은 논문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학생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못했지. 동기들은 두 학기 전에 벌써 마쳤잖아. 우울하더군.
느슨한 교수들과 뻔뻔스러운 학생들을 만나야 하는 자리야. 아니 바로 그들이 나를 위하여 만들어준 자리야. 자네 같으면 나가겠는가? 나는 어떻게 했겠나? 그야말로 깐깐한 사람이라면 절대 안 나가지. 그러나 나에게는 이름난 처세의 감각이 있잖아. 전주에는 ‘객리단길’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으로 불리는 객사(客舍)길이 있어. 한옥마을 근처야. 음식점들이 많이 있지. 거기에 ‘호남문’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있더라고. 거기에서 식사를 했지.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길을 건너 ‘비포장’이라는 이름의..... 이름의...... 뭐라고 할까? 까페도 아니고...... 레스토랑? 라이브 까페? 하여간 거기에 가면, 마른 안주에 맥주를 마실 수 있고, 또 한 구석에 기타가 몇 대 놓여있어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를 수 있어. 우리는 거기로 갔지. 우리 과에서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곳이야.
나는 그곳에 가는 것을 반대했어. 갈 때마다 든 느낌이지만, 그곳은 썰렁하거든. 넓기만 하고 손님이 없어. 그러나 전날 두 사람이 와서 답사까지 하고 예약까지 해 놓았다니,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알려져있어서 일부러 그곳을 선택했다니, 어쩔 수 없었지. 결과적으로 보면 그곳에 가길 잘 한 거야.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어쩐지 분위기가 달라져있는 듯하더라고. 피부와 코가 먼저 반응을 하였지. 따뜻하고 냄새도 좋았어. 나중에 보니 향긋한 장작 냄새였으며 장작이 타는 냄새였어. 홀 한가운데에 통나무 장작을 잔뜩 쌓아 놓았더라고. 그리고 시커먼 철제 난로에서는 장작이 타고 있더라고. 운치있지? 우리 일행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지. 우리는 난로 주변에 둘러앉아 술도 마시도 노래도 하고 잡담도 하였으며, 또 가벼운 의식도 거행하였지. 놀랍게도 공로패라고 할까, 기념패라고 할까, 하여간 상패가 꽃다발과 함께 준비되어있더라고.
저쪽에서 상패의 문귀를 읽고 나에게 건네준 후, 나에게 답사(答辭)에 해당하는 말을 요청하였을 때 나는, 오늘 저녁 이 공간이 참 좋고, 오늘 저녁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참 좋다는 요지로 짤막하게 말하였어. 공간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참 좋잖아. 정성을 다해 자리를 만든 것이잖아. 공로패도 그렇고. 공로패의 문귀는 ‘감사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되어있었어. 내가 선배교수들을 회고하는 글 — ‘투 프로페서즈’ — 을 써봐서 알지만, 공로패의 문귀를 만드는 일은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거든.
우리 일행 중 하나는 기타와 더불어 하모니카까지 가져와서 흥겹게 연주하였어. 주로 7080 노래를 불렀지. 나도 여러 곡을 불렀지만 내가 부른 노래 중에는 ‘When the stars begin to fall’도 들어있었어. 4년 전 설레는 첫 강의의 종강 때 학생들과 같이 불렀던 가스펠 송이 바로 이곡이야. 그리고 거기에는 ‘I understand’도 들어있었어. 그러고 보니 퇴임기념모임은 이해의 자리이고 화해의 자리인 것 같아.
기철이처럼 술 안먹는 젊은 교수가 나를 집에까지 태워다 주더군. 엊그제의 모헌 조영태선생 정년퇴임 기념회는 이렇게 끝났어. 나는 그 자리에서 짤막하게 답사를 하였다고 말했지만, 시간이 넉넉히 주어졌다면 그보다 길게 답사를 하였을 꺼야. 바로 이 글이 그 긴 답사에 해당하는 것이지. 그러나 내 답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할 말이 더 있는 거지. 나에게는, 이해해 줄 것이나 화해할 것이 아직 남아 있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고. 65세가 된 한 남자가 직장생활이라는 것을 완전히 마감하는 자리잖아. 자네도 그랬겠지만, 그 자리를 쉽게 일어설 수 있겠나? 아무개 정년퇴임 기념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한 편은 더 써야겠네.(계속)
첫댓글 느슨함을 아우르는 이해와 화해의 자리, 모헌 조교수의 깐깐한 글은 울 카페에서 정년퇴임이 없으므로 계속 이어가기를...
이제서야 보고 축하인지 모르지만 조영태교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깐깐한 교수로 기억되는게 좋을듯 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모헌.....ㅋㅋ모두 헌놈(년)? 전역 축하합니다!! 퇴임연이 소박하고 정겨운게 보기 좋습니다. 소생이 느낀 조교수님의 처세슬은 관인엄기(나에게는 엄격 남에게는 관대)인 것 같은데요? 앞으로 영화 비평 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ㅎㅎㅎㅎㅎ 재미진 글이야
아주 찰져, 글이
멋진 모한 교수님의 정년퇴임 이여
나이가 들어가면
말 수 줄이고 못 본척, 안들리는척
바보인 척 하며 살라고 하지만
그럴 수만은 없지,
I understand 는 나도 좋아하는 노래구만
오늘 밤 다시 들어 보며 모헌님 얼굴이나 그려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