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다른 오늘
간밤은 내가 일찍 잠든 초저녁 세찬 소나기가 한줄기 내려 철 이른 더위의 복사열을 식혀주었다. 근래 연일 근교 산행을 통해 누비는 산자락에서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따 먹으면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냈다. 자연과 교감하면서 초여름 계절이 보내온 선물이라 생각하며 혜택을 혼자만 오롯이 누려 황송했다. 날이 밝아온 아침은 동행과 함께 나설 현장 학습이 예정된 날이었다.
내가 생활 속에서 남기는 글이 본디 산문에서 올봄 들어 운문까지 늘어 두 가지다. 이 두 가지 글은 닭장의 산란계가 매일 같이 알을 낳듯 나의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과다. 섣부른 탈고와 함께 산문은 내가 속한 문학 동인 카페에 올리고 몇 그룹의 지기들 메일로 넘겨진다. 그 가운데 초등학교 한 친구는 내 글을 받는 즉시 기계음으로 변환시켜 자작나무tv의 유튜브로 올려준다.
지난 삼월 어느 날부터 1일 1수 시조 창작에 도전해 100일 넘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초등학교 한 친구가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대신해 카톡 단체방에 올리는 작품과 사진이 시초였다. 이후 그 친구는 득병을 끝내 치유 못하고 안타깝게 생의 끈을 놓았지만 나의 어설픈 시 창작은 지금도 이어간다. 이 작품은 사진과 함께 휴대폰의 카톡 문자로 넘겨진다.
새벽녘 잠을 깨 시조로 다듬은 작품은 엊그제 김해 한림 강가로 나가 봤던 일광욕을 하고 있던 덩치 큰 황소가 소재였다. “어깨에 멍에 걸칠 쟁기가 제격인데 / 구경꾼 여럿 모아 코뚜레 풀어 놓고 / 억지로 성질 돋구어 한 판 붙어 보란다 // 눈알을 부라리고 두 뿔을 겨눠 걸고 / 뒷발은 괴고 버텨 대가리 들이밀어 / 가쁜 숨 헐떡거리며 피 터지게 싸우래” ‘슬픈 황소’ 전문이다.
아침 식후 자연학교는 단조로움을 벗어난 동선이었다. 평소 가끔 교류가 있는 두 문우와 산책을 겸한 푸성귀 마련이 일과였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에서 꽃대감 친구와 밀양댁 할머니를 뵙고 인사를 나누고 나는 나대로 일정을 수행했다. 건너편 아파트단지 문우의 차에 동승해 창원역 앞으로 나가 다른 문우를 합류해 셋이 나선 동선으로 교외를 벗어나 북면에서 본포교를 건넜다.
창녕과 밀양 경계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샛강으로 흘러온 청도천에 놓인 반학교를 건너 초동연가길로 들었다. 4대강 사업 때 반월 습지는 모범적인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철 따라 꽃을 탐방하려는 외지인의 발길이 이어지는데 꽃양귀비와 금계국이 저무는 즈음이었다. 습지 공원을 거닐다가 쉼터에 앉아 커피와 간식을 들며 한 문우가 일전 다녀온 프랑스 기행 견문 후일담을 들었다.
셋은 초동 신호지 둑으로 옮겨가 이즈음 까맣게 익은 오디를 따 먹으며 우리가 근처 농장에서 접선할 이를 기다려 만났다. 그분도 같은 생활권의 문우로 반월지구 비닐하우스단지에서 한시적으로 지기 일손을 도왔다. 비닐하우스에는 수경 재배한 상추가 시세를 맞추지 못해 상품 가치가 있음에도 뽑아내고 이어 심을 대체 작물 모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상추가 엄청난 양이었다.
우리 집도 그렇지만 함께 간 문우도 댁에서 먹을 잎채소가 그리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곧 뽑혀 나갈 싱싱한 채소 앞에서는 마음이 약해져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큼직한 비닐봉지를 넉넉하게 채웠다. 짧은 반나절만 머물며 일손을 더 돕지 못하고 농장주가 선별 포장하던 가지도 덤으로 챙겨 나왔다. 귀로에 북면 온천장에서 어탕국수로 점심을 먹고 노천 온천수로 족욕 체험도 했다.
이후 오후 시간 트렁크와 빈 좌석을 가득 채운 상추 더미를 각자 연이 닿은 분들에게 나누느라 애썼다. 난 아파트단지 꽃대감을 분배 기지로 삼아 그 많은 상추는 일거에 해결했다. 저녁에는 이웃에 사는 퇴직 친구 셋이 자리를 가졌는데 3인 3색이었다. 두 친구는 문인화 화실에 나가거나 빙상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는데 나는 산천을 뚜벅뚜벅 걷는다. 나는 그새 즐기던 술도 끊었다. 23.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