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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간 |
거 리 |
출발 시간 |
소요 시간 |
비 고 |
진불암삼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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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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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 밭 재 |
1.83 |
11:42 |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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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솔 봉 |
0.33 |
12:06 |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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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골 재 |
6.42 |
15:25 |
199 |
10분 간식 |
계 |
8.58 km |
04:05 |
03:55 |
실 소요시간 |
산행기록
지도 #1
11:20
그렇게 올라왔건만 시간은 벌써 11:20입니다.
6시까지는 내려와야 한다는 대장님의 말씀이 있으셨으니 시간 준수는 대원 모두의 의무로 받아들입니다.
진불암 삼거리에서 오늘 산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지도 #1의 '가'입니다.
두륜봉과 그 좌측의 가련봉과 노승봉이 명백합니다.
11:35
뜨거운 시멘트 도로를 지나 지도 #1의 '나'의 곳에서 숲으로 듭니다.
11:42
이내 119 시설물이 있는 삼거리(지도 #1의 '다')에서 지맥길에 접속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지맥길을 시작합니다.
지맥길은 북평면과 현산면의 면계입니다.
11:44
시야가 갑자기 뻥 뚫리면서 625봉 전위봉인 암봉이 멋진 자태를 드러냅니다.
우측에서는 연화봉에서 올라오는 능선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위봉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고마도, 사후도 등이 일렬로 줄을 섰습니다.
그 우측으로는 드디어 완도가 그 모습을 보여주지만 시야가 깨끗하지는 않군요.
참 덥습니다.
두 손으로 바위와 나뭇가지를 잡고 오릅니다.
바로 조금 전 본 암봉 구간을 지나고 있다는 겁니다.
11:52
그래도 바람이 조금은 불어주니 다행이군요.
뒤로 두륜산 일대와 그 뒤의 노성봉이 보입니다.
그 우측으로는 희미하게 주작산의 끝자락이 보이고....
지난 번 구간에서도 봤지만 대흥사나 삼산면 혹은 해남읍 쪽에서 볼 때 이 산 전체가 병풍을 친 듯 보입니다.
우리나라 산 중에 '분지처럼 주변이 빙 둘러 싸다'는 뜻의 '두르/둠'에서 변형된 산 이름이 많은 게 이런 모양새와 무관치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 산이름이 屛자를 쓰고 분명 그 생김새가 병풍같이 마을 혹은 어떤 고장을 싸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적어도 고려시대 이후 그러니까 한자가 완전히 토착화 된 다음 부르기 시작한 이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 그러니까 통일신라-최근 이 이름에 대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해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전에 지어진 이름을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다른 이름들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됨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 두륜산의 한자어 표기가 頭輪이니 불교의 냄새가 물씬 나는 이름임은 지난 번에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이 아래 대흥사를 위시하여 진불암, 일지암, 표충사, 청실암, 남암, 북암, 대둔사 등 절집들이 숱하게 들어서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죠.
즉 두륜산이라는 말이 거저 생기지는 않았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는 '둠/두르'라는 어간에서 나온 '두르다'라는 말과 연관시켜야 합니다.
즉 한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 저 산이름은 산 모양을 보고 '두름뫼' 정도의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시간이 흐르다 보니 좀 변형이 생겼을 것이고.....
그 '두름뫼 - 두르뫼로 불리고 있을 때 한자가 들어왔고 그 한자로 이 산 이름을 표기하려다 보니 '존경, 존엄'의 뜻이 있는 '頭'를 차자하게 되었고 '른'은 모양새기 바퀴 모양의 輪이 절집과의 관계와도 적당하니 이들을 고려하여 '輪'을 갖다 썼을 것입니다.
그래서 두륜산頭輪山이 되었을 겁니다.
믿어지지 않으신다구요?
참고도 #1
보십시오!
이렇게 8개 봉우리가 이들 절집을 둘러싸고 있잖습니까?
노성봉, 노승봉, 가련봉, 두륜봉, 도솔봉, 연화봉, 혈망봉, 향로봉....
8이라는 것도 불가의 냄새가 솔솔 남을 느끼게 됩니다.
그 중의 중심은 아무래도 저 두륜산의 중간 봉 즉 가련봉이라는 겁니다.
가련은 '가엽고 불쌍하다'의 可憐'이 아니고 迦蓮이라는 한자를 쓰니 부처님과 연꽃의 만남 아니겠습니까?
두륜산은 그렇게 순 우리말 '두르/둠'에서 온 걸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보면 방장산, 삼신산, 두류산이라고도 불리는 지리산이 지리산이 된 과정이나 두류산이라고 부르게된 것도 여기서 연유한 것입니다.
다음 달 정도 출간 될 졸저 '현오가 걸은 백두대간(가제)'에서 관련 내용을 인용하여 보면,
(북진할 경우) 백두대간의 시작은 지리산(智異山) 천왕봉(天王峰)1915m이다. 지리산의 다른 이름은 방장산, 두류산, 삼신산 등이라고도 했다. 이들 중 두류산(頭流山)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해석해 보면 백두산(頭)에서 흘러(流)내린 산이라는 뜻이다. 즉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이 지리산까지의 이음이라는 인식이 고스란히 이 두류산이라는 이름에 스며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들 이해했다. 사실 지리산을 “이 산을 타다보면 지루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억지 얘기도 가끔은 등장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생각해 보면 ‘두류’는 우리말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에 불과하다. 즉 두류는 옛 우리말 ‘두르’였다. ‘병풍처럼 크게 둘렀다’라는 의미이다. 곧 ‘큰 산줄기’라는 말로 ‘두름/ 둠’의 형태였던 것이다. 이 ‘두르〉두류’로 된 것에 적당하고 그럴싸한 한자 頭流를 갖다 붙인 것이다. 또한 ‘지리’는 ‘두르〉드르〉드리〉디리〉지리’의 과정을 거쳐 변하게 된 것인데 마찬가지로 이 ‘지리’에 적당한 한자인 智異를 갖다 붙여 오늘날의 한자어 지리산(智異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구개음화와 전설모음화 과정을 거쳐 결국 오늘의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대둔산이 마음에 거립니다.
이 대둔산을 우리말로 풀어보면 '한듬산'인데 이때의 '듬' 역시 둠의 변형으로 보는 게 국어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니 이 '한듬'은 '큰 둠' 곧 '큰 산'의 의미이니 이 대둔산은 그저 '큰 산'이라는 뜻입니다.
참고로 위에서 頭를 '존경, 존엄, 우두머리'의 뜻이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백두산이 사시사철 눈이 덮여 있어 白頭山이라고 하는 웃지못할 말을 하는 사람을 볼 수가 있죠?
사실은 이 백두산의 '頭'가이런 뜻을 가지고 있고 白이 '신, 광명, 빛, 하늘'이니 그 白山 계열의 산들 중에서도 우두머리 산이 백두산 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참 잘 생겼습니다.
胃峰은 두륜봉이나 주작산에서 오다 바라본 투구봉 모습 같지 않고....
그러니 남진할 때 본 투구봉과 지금 여기서 본 위봉의 모습은 전혀 달라 보입니다.
따라서 위봉533m과 투구봉495.2m을 달리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11:52
드디어 암봉으로 들어섰습니다.
주상절리 비스므리합니다.
무등산의 서석대와 입석대가 대표적입니다만 그것들에 비해 아직 풍화작용이 덜 진행되었고 규모도 미미한 것 같습니다.
도솔봉 정상의 안테나 박스가 눈에 들어오고....
이건 또 무슨바위?
대둔산 정상의 통신 시설물들이 보입니다.
11:57
음...............
완도.
12:06
지도 #1의 '라'의 곳입니다.
여기서 선은단맥과 만나게 됩니다.
선은단맥은 여기서 오도치 ~ 비조산 ~ 선은산을 지나 남해 바다로 잠기는 도상거리 약 26.6km의 단맥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갈림 산줄기를 '선은지맥'이라 생각하시고 이렇게 귀중한 산패까지 부착해 주시어 지나는 지맥꾼들에게 지형의 이해를 도움을 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산줄기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산꾼들에 대한 배려.
항상 고개가 숙여집니다.
한편 선생님께서는 산패에 '지맥'이라는 계급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 이후 지맥을 '30km급 이상의 산줄기'로 보는 것이 보편적인 추세입니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선생님께서 이 줄기에 '지맥'이라는 계급을 붙여 주신 건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지맥'이라는 개념이 확고하게 정립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이죠.
어쨌든 그 지맥이라는 개념이 어느 정도 자리잡게 된 공로를 '신산경표'로 돌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공功이 있다고 하여 과過가 다 묻힐 수는 없겠죠.
신산경표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게되는 이유입니다.
정상석이 여기에 있군요.
사실 이 정상석은 기지 안 즉 673.5봉에 있어야 되는데 시설물 때문에 부득이 이곳에 세워진 것입니다.
2등급삼각점(완도21) 역시 같은 이유로 기지 안에 있기 때문에 찾기를 아예 포기합니다.
주위를 둘러볼까요?
두륜산과 노성산.
노성산 좌측으로 화원지맥의 덕음산327m....
두륜산 뒤로 주작산.
위봉....
완도.
육안으로는좌측의 숙승봉에서 백운봉을 거쳐 상황봉까지 확실하게 보이는군요.
인심 좋고 가격도 쌌던 횟집이 생각나는군요.
산행을 마치고 참돔을 거의 공짜로 먹었던 기억이....
동해저수지.
고마도, 사후도....
오리지널 대둔산을 향하여 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제일 후미로군요.
눈 깜빡하면 앞에 계시던 분들이 다 없어져버리니....
12:16
지금부터는 이 울타리만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괜히 잔머리 굴릴 것도 없습니다.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아 조금 위험하긴 합니다.
아니군요.
뒤에 한 분 더 있었군요.
윤지열씨.
대단한 뚝심입니다.
조금 우측으로 돌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파 방해를 받나요.
GPS가 교란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12:21
다시 숲으로 듭니다.
우측이 현산면 조산리.
좌측이 북평면 동해리.
앞이 416.5봉.
그리고 닭골재 너머로 달마산이 보입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백두대간의 맥이 이 줄기를 타고 땅끝으로 향하고 있는 거로 보이는데 우리 선조들은 조금 다른 눈으로 봤습니다.
즉 지금의 해남군 황산면 호동리를 지나는 것으로 보아 화원지맥에서 한라산 그리고 멀리 오키나와까지 맥이 바다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본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전의 관두리(지금의 호동리)를 지나 남해의 여러 섬을 만들었고 그 줄기는 한라산까지 이어져 오키나와까지 갔다고 본 이중환의 택리지에 그런 모습이 그려져 있다는 거죠.
12:31
바위 구간을 돌면서.....
여전히 기세를 잃고 있지 않은 해남지맥의 모습입니다.
12:43
지도 #1의 '마'의 곳입니다.
우회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지도를 보니정확한 맥입니다.
선답자들은 어떻게 이리 독도를 똑바로 하여 마루금을 그리고 후답자를 위하여 길을 만들어 놓으셨는지....
산림청에서도 이런 취지를 감안해서 등로 정비에 좀 신경을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4대강에 쓴 돈 일부만 갖다 썼어도 '산의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반겼겠습니까?
지도 #2
13:00
잡목 숲을 헤치고 나오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군요.
조망도 없으니 보이는 것도 있을 리 만무하고....
지도 #2의 '바'의 곳에서 우틀합니다.
잡목 밭에서 조릿대 군락지로 바뀌더니 조금 숨통이 트입니다.
13:11
선생님의 격려도 받으면서....
우측으로 광산이 보이고....
13:15
도솔봉도 이젠 제법 멀어졌습니다.
13:33
315.6봉을 지나 지도 #2의 '사'의 곳에 오르니 뒤로 조망이 좀 있습니다.
동해저수지....
완도...
완도대교도 선명하고....
13:34
봉우리 하나를 지나,
현삼면 조산리 부근입니다.
바로 우측으로는 광산.
14:04
그러고는 지도 #2의 '아'입니다.
선생님께서 또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산패를 보면 '준희'가 아니고 '희준'입니다.
왜 '희준'이냐고 저에게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혹시 다른 분이 아니냐는 질문까지 해주시고...
당연히 동일인이시고 나아가 '산지킴이'도 같은 선생님이십니다.
다만 먼저 가신 사모님의 함자를 앞세우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라는 스님의 말씀에 따라 일부 산패에는 사모님의 함자의 '희'자를 앞세워 '희준'이라고 쓰기도 한 것입니다.
14:09
416.5봉을 지나고....
지도 #3
14:38
299.1봉을 지나,
14:42
지도 #3의 '자'의 곳에 있는 #125 철탑을 지납니다.
완도.
숙승봉461m, 백운봉601m, 상황봉645.6m.
남해도, 안면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7번 째로 큰 섬이기는 하지만 안면도는 연육교로 인하여 이미 섬으로 인식이 되지 않은 탓인지 우리나라 6대 섬 하면 안면도 대신 완도를 넣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실상 우리나라의 지리학자들은 저 완도의 산줄기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생각난 김에 예전 완도에 대하여 쓴 제 글을 들춰봅니다.
완도의 산줄기가 해안산맥에 속해 있다? 백과사전에서 우리가 관심을 두는 지형에 관하여 살펴 보면, 완도는 소백산맥의 지맥인 해안산맥의 침강으로 나타난 섬이다. 북쪽에는 숙승봉(宿僧峰, 432m)과 백운봉(白雲峰, 462m) 등의 산지가 발달하고, 남동쪽은 저산성산지를 이루며 소규모의 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섬 중앙에는 상황봉(象皇峰, 644m)이 솟아 있고, 해안은 해식애가 발달한 암석해안을 이루고 있다. 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산맥이라는 개념에 대해 산줄기에 대한 개념이 충돌하게 된 지도 어언 35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산줄기라는 개념에 대해 산맥이라는 이름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완도의 지형 설명만 해도 너무 형식적이어서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옳을 것인지 깊게 고뇌하게 만드는군요. 도대체 완도를 무작정 소백산맥의 지맥인 해안산맥의 침강으로 나타난 섬이라고 하면 그냥 이해가 가십니까? 해안산맥이 어디 있으며, 소백산맥의 주행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이며 해안산맥은 소백산맥의 어디서부터 갈라져 나온 산맥입니까? 산맥도를 보면 소백산맥이 지리산 방향으로 가는 것이어서 이 완도에 있는 산줄기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보이고 그렇다고 해서 노령산맥과도 친해 보이질 않습니다. 참고도 #1 더군다나 우리에게 '산맥'이라는 이름을 남겨주고 홀연히 사라져 지금까지도 인문지리학에 많은 질문을 던져 주게 한 장본인인 고토분지로의 '조선의 지체구조도'를 보면 해안산맥은 중앙산맥의 우측 즉 지금의 태백산맥(태백연맥 소속) 우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참고도 #2 그럼에도 인위적으로 여기에 '해안산맥'이라는 산맥 이름을 하나 더 부여하였음은 어떻게 보면 산맥 이름 그리고 주향은 누구나(?) 마음대로 써 먹고 만들 수 있는 이름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즉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이 여기에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강력한 의심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오히려 고토의 지체구조도 즉 산맥도를 보면 완도의 섬줄기는 비흥치산맥 혹은 병영산맥과 가깝다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1903년 고토분지로가 36개의 산맥과 거기에 3개의 연맥을 만들어 놓은 지 겨우 1년이 지나 그의 제자라 할 야쓰쇼에이가 한국지리(1904년)에서 그 복잡한 산맥의 선을 14개로 정리를 하였고, 고토 이후 겨우 3년이 지난 1906년 실업실찬지리라는 교과서에서는 지금과 같이 말끔하게 한 선으로 정리가 된 것을 보면 이런 의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할 것입니다. 오히려 1930년에 발간된 '조선지리풍속'이라는 책을 보면 "조선의 산맥은 고래로 많은 삭박(削剝)을 받아왔으므로 지학적으로 나타내기는 곤란하다. 따라서 산맥은 분수계를 나타내며 지질구조선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시사해 주는 바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산맥(山脈)과 분수계(分水界) 산맥은 습곡, 단층 그리고 침식에 의하여 형성이 되는데 우리나라와 같이 5억년 이상이 된 땅이 많은 나라에서는 그 오랜 세월동안 침식, 침강 등 많은 삭박을 받아와 다른 나라에 비해 그 정도가 심하다고 볼 때, 모든 산지가 구릉성 산지로써 어디에나 그 산과 강에는 사람이 기대어 살았다는 점에서 안데스나 로키 그리고 히말라야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토나 우리나라의 지리학자들이 산맥을 지질구조선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학교때 배웠다고 주창(主唱)하던 지형학적인 의미의 산-산-산의 이음이 산맥 즉 산줄기라는 개념과는 피부로 느끼는 온도 차이가 확실한 거 같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산맥은 기본적으로 지질구조선에 따른 분류입니다. 그 말은 곧 땅 속의 일을 기준으로 땅 위의 산을 꿰어맞췄다는 말과 같습니다. 애초 mountain range를 산맥으로 번역한 고토 분지로는 맥(脈)이란 개념을 큰 의미 없이 사용했으나, 우리에게는 맥은 끊어져서는 안 된다는 풍수적 관념으로 작용해 해석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참에 산맥(mountain range)과 산줄기(mountain ridge), 두 개념을 분리해서 사용하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즉 산맥은 지표면에서 일정한 범위와 고도에 걸쳐 산봉우리들이 연속되어 나타나며, 그 산봉우리들의 연속성이 유사한 지질이나 지형형성작용을 거친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 지질학으로 집어 넣고 반면 산줄기는 지표면에서 일정한 고도를 가지면서 산지로 인식될 수 있는 지점들을 연결한 선을 표현한 것으로 규정하여 지리학의 범주에 넣는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순수한 학술의 목적이 아닌 자원 침탈이라는 목적으로 남의 땅에 들어와 지질조사를 통해 한 지질학자가 번역해 놓은 한 단어 즉 'mountain range = 산맥'이 해방이 된 지도 벌써 70년이 흘러갔건만 아직까지도 민족 정체성과 관련하여 이렇게 혼란을 주고 있으니.....
완도를 보니 예전 생각이 잠깐 났었습니다.
14:48
236.5봉은 그저 숲속일 뿐...
이때 함께 걷고 있던 윤지열씨의 폰에서 벨이 울립니다.
닭골재 ~ 달마산 구간이 악코스이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는 얘기군요.
6시가 마음에 걸려옵니다.
14:57
지도 #3의 '차'의 곳에서 우틀합니다.
윤지열씨는 앞으로 뛰어 나가고 저는 잠시 고민을 합니다.
뒤에 한 분 더 오고계셔서 그 분과 함께 닭골재에서 탈출을 할까하는 고민입니다.
15:16
지도 #3의 '카'의 곳에서 우틀함에 유의하고...
체념을 하니 발이 더 가뿐해집니다.
뒤에 오시는 분을 위해서 천천히 걷습니다.
15:20
남양 홍씨 음택을 두어 곳 지나니,
15:24
#35 철탑을 지나,
15:25
닭골재로 떨어집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시지를 않아,
일단 토끼굴을 통해,
구도로로 나갑니다.
이렇게 멀쩡한 도로를 놔두고 새로 길을 만들었으니...
차량 통행이 많기나 해야 이해를 하지....
닭골재입니다.
한자로 쓰면 鷄谷岾 정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닭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지명이 제법 보입니다.
우선 백두대간의 닭목령이나 대전둘레길의 닭재가 따오릅니다.
하지만 사실 이 '닭'은 국어학적으로 보면 '달'에서 생긴 말로 이를 한자어로 쓰다보니 비슷한 발음의 닭鷄를 차용하게 되었고 이를 다시 우리 발음으로 부르다 보니 '계족산'이라니 '계룡산'이니 하는 산이름들이 붙여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에 용이 하늘로 오르는 형태'여서 계룡산이라 했다거나 '닭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서' 계족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은 이름에 전설이나 유래를 억지로 꿰어맞춘 것에 불과합니다.
이 '달'은 '높다'라는 순 우리말입니다.
'달동네'가 지금도 남아 있는 그 형태로 '달이 가까운 동네'라는 뜻이 아니라 단순하게 '높은 곳(달)에 있는 동네'라는 뜻이나는 것이지요.
이 '달'을 우리 글자가 없던 시절에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까 達이라는 한자를 쓰게 됐고 훈을 따서 月을 쓰게 되었으며 비슷한 발음의 음을 따서 鷄를 쓰게 된 것일 뿐 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월출산도 달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이 닭골재 또한 '닭을 많이 키우던 골짜기가 있는 고개' 혹은 이와 유사한 설화는 이 고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저 완도나 바닷가에서 볼 때 그나마 좀 높아보이는 고개였기 때문에 달→닭이 되었던 곳이고 고개 옆으로 골짜기가 선명하니 골이라는 말도 붙었을 것입니다.
뒤에 오시던 선배님이 드디어 보이시고 함께 택시를 불러 미황사로 갑니다.
B팀들은 벌써 자리를 피셨고,
뒤레 땀을 내며 내려오시는 완주자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해남지맥 + 영산동지맥 일부 진행은 한 구간 남았군요.
닭고재 ~ 달마산 구간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립니다.
아무래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광주로 내려와 04:40에 출발하는 광주 ~ 해남 버스를 타고 닭골재 ~ 달마산 구간을 먼저하다 뒤에 도착하는 대원들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댓글 날 더븐데 남쪽에서의 당일 산행이 만만치 않아보이네요ㅠ 미리 완주를 추카드려요
숨이 팍팍 막힙니다. 이런 산행은 지양해야지 원. . .
거의 다 하셨네요. 날 더워서 고생이지요.
예. 월출산 땜빵은 일반산악회 따라가야겠어요.
이제 거의다 답사하셨네요~~다시보아도 좋은 두륜산과 주변 조망을 잘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