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스모에서 우승한 리키시에겐 본상인 천황배,총리대신배,우승기 말고도
외국 대사,기업,지자체 등에서 수많은 상을 수여합니다
그걸 전부 받는 것도 일이죠
과거에 존재했던 항공사 팬 아메리칸 항공(이하 팬암)도
우승 트로피를 수여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수여하던 사람의 이름은 데이비드 미프카 존스(David Mifka Jones)
1915년에 태어나 55년 팬암에 극동 지역 홍보 담당으로 입사했고
처음 본 스모에 푹 빠지게 되었다 합니다
팬암은 53년 5월부터 우승자에게 트로피를 전달했는데
그걸 맡던 사람이 퇴직하게 되자 상을 폐지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존스는 이를 반대하고 61년 5월부터 본인이 그 역할을 대신 맡기로 합니다
https://youtu.be/1LolDMBvrEU
존스는 시상식 도중 관객들이 지루해하는 걸 느꼈기에
표창장을 일부러 과장된 발음으로 읽었고 다음 장소에선 전통 의상 차림으로 도효에 올랐으며
오사카,나고야,후쿠오카에선 현지의 방언으로 표창장을 낭독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163cm이라는 작은 체구였지만 42kg의 트로피를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전달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수상식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당시 존스의 인기가 어찌나 높았는지 66년 개봉한 청춘 영화
알프스의 젊은 대장에 게스트 출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 자체가 팬암과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했죠
존스는 74년 팬암을 퇴직해 일본의 외국계 기업 상무가 되었지만
팬암의 고문 자격으로 계속 시상식에 참여했고
스모 최전성기의 한 풍경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팬암의 실적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1985년에는 결국 일본에서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상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았지만
91년 5월 존스는 결국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표창장 낭독 후 존스는 관중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냈고
스모 협회와 일본 정부는 감사장과 훈장을 수여하며 존스의 30년을 치하했습니다
그리고 동년 12월 4일,일세를 풍미했던 항공사 팬암도 결국 부도를 맞으며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존스는 일본에서 계속 살기를 원했지만 92년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미국으로 귀국했고 2005년 2월 2일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순히 기업 홍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스모를 사랑했기에
30년동안 시상식에 참여한 외국인 데이비드 존스의 삶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하와이 태생의 일본계 미국인 복싱 월드 챔피언 타케시 후지와 함께
주료로 승급한 타카미야마에게 게쇼마와시를 증정하는 존스
존스는 타카미야마의 우승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임원 회의 중이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일본으로 바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73년 1월 장소에선 수상 도중 트로피의 무게를 못 이겨 쓰러진 적도 있습니다
당시엔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일부러 쓰러진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지만
존스는 저 트로피의 뾰족한 곳에 찔리면 크게 다쳤을 것이라며 일축했습니다
첫댓글 어디 외진 곳 출신이라 발음이 저런가 했는데 미국인이었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그 트로피가 재일본 몽골인 협회 였던가? 그런 차원에서 수여되는 것인줄로 알았었는데 몽골 총리 명의로도 수여된 바가 있군요. 뭐 마쿠노우치 우승 한 번으로도 트로피가 수십개에 달하는데 수백년 스모 역사상 전인 미답의 경지인 45회 우승을 달성한 하쿠호는 보니깐 일찌감치 박물관을 차렸더군요.
창고 몇개 임대해야겠습니다ㅎㅎ
그나저나 존스라는 분은 외국인이 본격적으로 스모 우승 시상대에 오는 선구자적 인물이셨군요. 90년대 초반까지도 그 일을 하시다니요.
전생이 있다면 일본스모 선수였나봐요 정말 스모를 사랑했군요 ㅎ 좋아보이네요
스모를 사랑했던 삶이 부럽네요
관객들이 다 웃는데 근엄해야하는 우승 리키시가 안쓰럽네요 ㅎㅎ
어쩔 수 없죠ㅋ
좋은내용이군요. 이런저런 내용을 알게되니 너무좋아요
감사합니다
showmustgoon 님. 반갑습니다. 전세계 모든 투기 스포츠의 우승 선수 시상식 중에 제일 화려한게
아마 스모가 아닌가 싶네요. 씨름에서 체급별 우승한 장사 선수의 시상식을 보면서 초라해지는.. ㅠ
씨름의 인기가 꾸준히 유지되었으면 달랐을텐데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