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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승리
삼상 30:16-20
16 그가 다윗을 인도하여 내려가니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17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 그들을 치매 낙타를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 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
18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19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20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
삼상 30:16-20 / 이리하여 다윗이 그의 안내를 받아 내려가보니, 아말렉 족속은 넓은 들에 흩어져서 약탈해 온 물건들을 벌여 놓고 정신없이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17) 다윗은 그들을 다음날 새벽 동틀 때에 기습하여 이튿날 해질 때까지 모두 쳐죽였는데, 오직 낙타를 타고 도주한 젊은이 400명만을 죽이지 못하였다. 18) [다윗의 위대한 전리품 처리] 다윗은 이렇게 아말렉 족속에게 약탈당하였던 물건과 짐승과 사람을 모두 되찾았고, 그의 두 아내도 되찾았다. 19) 다윗의 부하들도 잃어버린 것 하나없이 모두 되찾았다. 여자와 어린아이들도 모두 건강하게 되돌아오고, 약탈당하였던 물건도 모두 되찾았다. 20) 다윗의 부하들은 아말렉 군대의 양 떼와 소 떼까지도 빼앗아 몰고 오면서 `이것이 다윗의 전리품이다.' 하고 외쳤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한 교제로 형통한 삶을 살게 되고 결국은 최후의 승리를 거둡니다.
다윗이 아말렉을 급습함(16-17) 다윗은 쫓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의 응답으로 듣고 아말렉을 급하게 쫓아갔습니다. 도중에 탈진한 애굽 소년을 만나고 그 소년의 회복을 위하여 시간을 허비했지만, 도리어 소년의 인도로 아말렉 사람들을 뒤좇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약탈한 것으로 난잡하게 마시고 떠들고 있었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의 천막이 이러 저리 넓게 흩어져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기습작전하기 알맞은 때에 갔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먹고 마시며 춤추는 아말렉을 쳐서 이튿날 저물 때까지 죽입니다. 날렵한 사백 명은 낙타를 타고 도망갔지만, 나머지는 전부 죽이고, 물건과 사람 전부를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니 승리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잃은 것 없이 모두 도로 찾음(18-19) 다윗은 아말렉 족속이 사로잡아간 두 아내와 사로잡힌 모든 사람과 빼앗긴 모든 것을 도로 찾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감으로 신앙이 회복되었을 때, 생활도 하나님께서 간섭해 주시므로 회복되도록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받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회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의 소유를 잃었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였을 때 그의 소유물을 되찾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함(20) 다윗은 아말렉 족속이 사로잡아간 가족들을 도로 찾아왔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 있었기 때문에 그 가족들의 생명이 원수의 손 가운데서도 안전하게 보존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받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양떼와 소떼를 되찾고, 무리가 말하기를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고 하였습니다. 며칠 전 다윗을 돌로 죽이려 했던 행동과는 대조가 됩니다(6). 사람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만 의지해야 하며, 사람을 의지하면 실망합니다.
적 용 : 취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라는 욥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고 최선을 다하여 이룬 승리의 쾌거가 있습니까?
어느 외딴 바닷가에서 파도에 밀려오는 성게를 주워 다시 바다로 던져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행인이 소년의 행동을 보고 물었습니다. “넌 왜 성게를 바다로 던지고 있는 거니?” 그리고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밀려오는 성게들이 수 천 마리도 넘을 텐데 네가 던져줘 봐야 달라질 건 없단다.” 그러자 소년이 또 한 마리를 바다에 집어 던지며 말했습니다. “제가 던져 준 한 마리라도 살 수 있으면 돼요.” 비록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일과 만나는 이에게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승리의 도착점에 서 있게 될 것 입니다.
호크마 주석
=====30:16
아말렉 족속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진행 방향에 대해 알고 있었다. 더욱이 다윗 일행은 맹추격을 한 반면, 아말렉 족속에게는 여자, 어린이, 가축 등 많은 약탈물이 딸려 있었기 때문에 진행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다윗 일행은 애굽 소년의 안내로 쉽사리 아말렉 족속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한편 애굽 소년의 이같은 인도 장면은, 이스라엘의 미래 왕 다윗에게는 장차 국내외적으로 많은 협력자들이 있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Klein). 그러나 사울에게로부터는 국내의 협력자들까지 떠나가지 않았던가(22:2) !
그들이...편만하여 - 여기의 '편만하여'(* , 나타쉬)는 무질서하게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편만하여'란 말은 당시 아말렉 족속들이 방심한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블레셋 사람의 땅과 유다 땅 - 14절에서 애굽 소년에 의하여 언급된 여러 지역들을 말한다.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유랑 민족(베드윈)에게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성공적인 약탈 행위 이후 방탕하게 베푸는 주연(酒宴)을 가리킨다. 이때에는 경계심을 푼 상태에서 모두 정신없이 먹고 마시며 취하기 때문에, 기습 공격은 그대로 주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는 소수의 병력을 지닌 다윗의 공격 작전이 주효할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이었음이 분명하다(삿 8:11).
=====30:17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치매 - 여기서 '새벽'(* , 네쉐프)은 성경의 어떤 문맥에서는 '황혼' 혹은 '밤'을 의미하기도 하나, 여기서는 분명히 '새벽'이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욥 7:4;시 119:147). 만일 이것을 성경의 다른 문맥에서 처럼(사 5:11;렘 13:16) '밤'으로 이해하게 되면, (1) 본절의 '저물 때까지'라는 말과 잘 조화되지 아니하며, (2) 간밤의 만취로 인해 완전히 저항 불능의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새벽 무렵에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전술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매우 적절치 않다. 한편 '이튿날 저물 때'(* , 하에렙 레마하라탐)는 문자적으로는 '다음 날 저녁'이란 뜻이다. 그런데 만일 이 말을 문자적으로 취한다면,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이틀간 아말렉과 싸웠다는 곤란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는, 저녁 시간부터 하루를 계산하는 히브리 사람들의 날짜 계산 방식을 이해한다면 능히 해소될 수 있다. 따라서 다윗과 아말렉 간의 접전은 새벽 무렵부터 그날 저녁 무렵까지 하루동안 진행된 것이다(F.R. Fay). 아무튼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녁까지...치매'라는 말은 다윗이 저항하는 아말렉 족속을 얼마나 철저하게 진멸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언급이라 할 수 있다. 약대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 명 - '약대'는 팔레스틴 남방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 많이 사용한 동물이었다(삿 6:5). 한편 여기 소년들은 가축 관리의 임무를 맡은 자들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약탈한 가축들에게 먹이와 물을 주기 위하여 연회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을 것이고, 그 결과 다윗의 기습 공격을 당하여 자신들의 약대를 타고 도망침으로써,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30:18
도로 찾고(* , 나찰) - '건지다', '구원하다'란 의미로서, (1) 처음처럼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삿 11:26), (2) 위급한 상황에서 구출하는 것(출 2:19;민 35:25;삼하 12:7)을 가리킨다. 구원하였고(* , 나찰) - 앞의 '도로 찾고'와 동일한 단어이다. 이는 다윗의 '완전한 회복'과 '더욱 풍성한 회복'을 강조한다. 즉 다윗의 아말렉 공격 사건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과 교훈이 깃들어 있다. (1) 이전에 탈취당했던 모든 것을 되찾았다(18, 19절). 이와 같이 신앙으로 살아가는 자는 과거에 죄악으로 상실했던 모든 것을 회복하게 된다(요 8:32;14:27;15:11). (2) 전리품을 노획했다(20절). 말하자면 다윗 군대는 시글락 사건 이전보다 더욱 풍성한 소유를 누리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오직 신앙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전화 위복(轉禍爲福)의 은총을 보게 된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께 나아오는 자를 위하여 풍성한 은총을 예비해 놓고 계신다(요 10:10;엡 3:20).
=====30:19
도로 찾아왔고(* , 하쉬브) - '돌아오다', '보답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슈브'(* )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엄밀히 말해 '돌아오게 하였고'란 뜻이다.
=====30:20
양떼와 소떼를 다 탈취하였더니 이 가축떼들은 전에 다윗이 빼앗겼던 가축들이 아니다. 그 원래의 소유자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아말렉이 다른 부족들에게서 빼앗아 자신들의 소유로 삼은 가축떼가 분명하다. 만일 다윗이 잃었던 것을 다시 찾았다면 18, 19절에서 나오는 '나찰'(* )이나 '슈브'(* )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이같은 사실은, 다윗이 이 가축들을 전리품으로서 유다 사람에게 나눠주었다는 사실(26-30절)로써도 분명해진다. 그 가축 앞에 몰고 가며 - 이것은 '그 가축을 앞에서 몰고 가며'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을 잘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자연스럽다(AV). 이는 다윗의 탈취한 것이라 - 이는 다윗의 업적과 무공(武功)을 환호하는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돌도 다윗을 쳐죽이려 했던 그들의 행동과는 매우 대조적이다(6절). 그러므로 후일 다윗은 왕이 되었을 때 이처럼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보다는, 바위나 산처럼 늘 변치 않는 하나님만을 전적 의뢰하였다.
< 설 교 >
브솔 시냇가의 사건의 교훈
성경을 읽다 보면 어떤 부분은 마치 소설 같이 재미있고 감동이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저는 오늘 다윗이 겪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때는 다윗이 아직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고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따르는 600명의 무명의 용사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적국인 블레셋 왕국의 가드왕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하고 신세지면서 시글락이라는 성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기스왕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겠다고 출전을 하자고 합니다. 그러니 다윗은 본의 아니게 조국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자니 그렇고 안가자니 그렇고 입장이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일단 출정을 합니다. 시글락 성에는 여인들과 자녀들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막상 전쟁터에 나가니 블레셋 군대의 여러 장수들이 다윗의 군대를 믿을 수 없다고 난리를 칩니다. 과거 골리앗을 죽인 경력이 있으나 어찌 그를 믿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 바람에 전쟁에 빠지게 되어 다시 시글락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윗의 군대가 시글락을 떠나 있을 때, 이스라엘과 오랜 숙적이 있었던 아말렉 군인들이 시글락을 쳐들어와 시글락성의 여자와 아이들을 다 노예로 끌려가고, 소와 양이며 모든 짐승과 물건을 남김없이 노략질 해 갔습니다.
다윗과 그를 따르는 부하들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연기와 폐허뿐이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신하들이 다윗을 원망합니다. 일차적인 책임이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돌로 쳐 죽이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괘씸한 자들입니다. 저들은 정말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들은 원래 ‘환란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 들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살집과 거처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리고 오합지졸을 일당백의 용사들이 되게 하고, 사람 구실을 하는 자들이 되게 했는데, 이제 와서 누구를 죽이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저들만 가족을 잃었습니까? 다윗도 가족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달리 반응합니다.
삼상30장 6절 /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할렐루야!
다윗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분노가 극에 달해 자신을 원망할 때, 무릎을 꿇습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을 찾아 경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사실 이 시점은 다윗에게 정말 힘든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있을 수 없어서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가 다스리는 지역에 내려와 신세지는 신세, 그것도 조국 이스라엘과 전쟁을 할 뻔 했던 때입니다. 겨우 조국과 전쟁을 피하고 돌아와 보니 시글락 성은 불타고, 가족들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지요. 거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돌을 듭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 몇 가지를 찾습니다.
1. 하나님은 항상 의지하는 백성을 돕는 분임을 교훈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구원의 산성”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피난처라고 방패라고 부르는 자를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 믿음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입니다. 동서남북이 다 막혔을 때, 아무리 찾아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결정하기 힘들 때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해법을 가지고 나옵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절망이 눈앞에 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은 친히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다윗이 눈앞이 캄캄할 때 그때 행한 것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이게 다윗의 강점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능력입니다. 다른 사람과 구별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다윗은 이때 만해도 나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으나 전쟁에는 이력이 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나름대로 대안도 생각할 수 있었고 참모들을 모아 전략을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이 뭐라 하시느냐? 하나님이 뭘 원하시느냐? 이것을 파악합니다.
다윗의 군대 600명, 그것도 어찌 보면 오합지졸입니다. 사기도 최악입니다. 이 모든 상황에서 다윗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서 우리를 보십니다. 내가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시는가를 보십니다.
여러분도 체험해 보셨습니까? 부도가 눈앞에 닥쳤습니다. 도와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은행도 안된다하고 친척도 안 된다 합니다. 그때 어떻게 행동하셨습니까? 그때 하나님을 의지하셨다면 하나님은 길을 열어주십니다. 자식이 쓸어졌습니다. 자식이 병이 났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닥쳤습니다. 그때 어찌하셨습니까? 그때도 하나님께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시편146편 3-5절 /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절대로 자신의 능력이나 자신의 백그라운드, 자신의 주변 사람을 의지하지 마세요. 헛수고입니다. 오히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물으시고 하나님의 방법을 찾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교회로 나와 엎드리세요. 우리 교회는 24시간 열려 있습니다. 누구나 언제나 와서 기도하라고 열어 놓습니다.
2. 하나님은 약자와 소자를 돕는 자를 돕는 분입니다.
다윗의 부대는 아말렉의 약탈자들을 추적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열악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폐허가 되어버린 시글락 성의 모습에 사기가 많이 꺾여 있었습니다. 더욱이 지도자 다윗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는 땅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붙들려가는 약자들,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아말렉을 추격합니다. 남쪽으로 24km쯤 내려가서 브솔 시냇가에 도착합니다. 말이 24km이지 60리를 여러분 무기를 가지고 달려야 하는 행군,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그러니 그 가운데 1/3에 해당하는 자들이 완전히 탈진해서 브솔 시냇가에 도착하여 이제 더 이상은 움직일 수 없다고 주저앉습니다.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서 더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부 나가서 싸워도 600명입니다. 그 판에 200명이 주저앉습니다.
이제 전쟁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주저앉지 않습니다. 200명을 브솔 시냇가에 남겨두고, 나머지 400명과 함께 브솔시내를 건너 아말렉을 쫓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아말렉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길가에 버려진 애굽 소년 하나를 발견합니다.
다윗은 그를 데려다가 그에게 떡도 주고 물도 주고 무화과 뭉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줍니다. 결국 그 사랑에 이 애굽 소년의 마음이 녹아버립니다. 그리고는 자진하여 길 안내자가 된다 합니다. 결국 대승을 거두는 기회가 됩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의 약자, 그리고 소자, 그들을 보살피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아말렉을 쫓아 갈 때 지치고 피곤한 약자 200명, 다윗은 그들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급하여도 길가에 버려져 죽어가는 애굽의 소자 하나를 내버리고 가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가족이 다 붙잡혀 갔습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신하들이 얼마나 난리를 쳤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길가에 버려진 애굽의 소년 하나 때문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지체 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주변의 약자와 소자를 향한 사랑은 베풀고 가는 것입니다. 아말렉 군대조차도 그 병든 소년이 짐이 된다고 해서 버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 소년을 극진히 돌보아줍니다. 소년은 3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고, 마시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그런 저에게 물과 무화과와 건포도를 주어서, 목숨을 구해줍니다. 이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런 다윗을 그냥 두실 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주변의 소자와 약자를 돌보는 것이 어찌 보면 시간 낭비 같고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 내 마음을 보십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뭔가를 하실 때 먼저 그 일에 쓰임을 받는 사람의 마음을 먼저 보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진정성’을 확인하십니다. 내속에 믿음을 확인하시고 내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은 시험합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 하십니다. 왜죠? 그의 믿음을 확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다윗에게도 가족 사랑의 진정성을 확인합니다.
“네가 네 가족 사랑 하냐?” “그럼 이 소년은 네가 어찌하나 보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소년을 통해 다윗의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결국 그 소년을 통해 가족을 다 찾게 하시는 복을 주십니다.
다윗은 낙오된 200명을 브솔 강가에 남겨두고 400명만 데리고 가서 승리하여 돌아옵니다. 그때 그 남겨두었던 200명에게도 동일하게 얻은 재물을 분배합니다. 그들도 약자입니다. 약자이지만 동등한 권리로 은혜를 받아야할 자들입니다. 그들은 한일이 없다고 차별하면 안 됩니다. 그 자세를 하나님이 귀히 보신 것입니다.
왜 다윗이 그 애굽 소년을 돌보았을까요? 제가 기도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거 다윗은 광야에 홀로 내버려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들에게 버림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체험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비록 비천한 종이었지만 저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과거 자기가 사울 왕에게 쫓길 때 혼자 버려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겪어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마음으로 애굽 소년을 섬깁니다. 그러자 그 애굽의 소년이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년으로부터 정말 중요한 정보를 얻습니다. 그 소년은 아말렉 왕의 종이었기 때문에 지금 아말렉이 어디에 있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략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군대를 그 곳으로 인도합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와 사랑을 베풀면 반드시 복으로 돌아옴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내 승리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이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족과 자식들, 물건을 취하여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22절 / 다윗과 함께 갔던 자 중에 악한 자와 비류들이 다 가로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 사람의 처자만 주어서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무슨 말입니까? 그때 그 400명중 일부가 낙오자 200명에게는 처자만 주고 떠나가게 하자고 합니다. 사실 끝까지 전쟁에 갔던 400명은 힘이 넘쳐서 아말렉을 쫓아간 것일까요? 저들도 피곤하고, 지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자신이 해야 할 몫을 다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브솔 시냇가에 남겨진 200명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낙오자 200명의 가족들은 자기 아버지가 자기들을 구하러 오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아빠는요? 우리 남편은 어디 있어요? 저기 브솔 시냇가에 쉬고 있어요. 얼마나 창피하겠습니까? 그러니 자기들을 그냥 그들이 말하는 대로 부인과 자식만 돌려주어도 감지덕지입니다. 그러나 그때 다윗이 나서서 말합니다.
23-24절 / 다윗이 가로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붙이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를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일반일찌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한마디로 아말렉과 싸워 이긴 것을 마치 우리가 싸워 이긴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400명이 고생했습니다. 죽음을 무릅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이집트의 종을 만나게 해 주시고, 하나님이 너무나 쉽게 싸워 이기게 하셨습니다. 시작도 끝마무리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받은 승리와 업적이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종종 착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했다.” “내가 교회를 섬겼다.” 물론 수고한 자들의 수고를 알아주어야 하지요. 하지만 이 주장이 태도가 자신의 입에서 나오면 안 됩니다. 그러면 착각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착각하면 큰일입니다.
하나님이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셨고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셨으니 받은 은혜를 똑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다윗의 말입니다. 400명만의 분배를 주장한 자들을 성경은 뭐라 합니까?
22절 초반을 보세요. “악한 자와 비류”라고 표현합니다. 다시 말하면 ‘악하고 야비한 자들’이라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는데 마치 자기들이 수고해서 얻은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원래 ‘환란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입니다. 내 세울 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다윗의 강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받은 은혜를 약한 자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보통은 사람들이 승리에 도취했을 때, 거만해지기 쉽습니다. 그 승리가 어디서 온 것인지를 잊고, 승리에 취해서 앉을 자리, 누울 자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러면 버림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사람은 승리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승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하고, 승리했을 때,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브솔 시냇가의 다윗은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다윗이 한일이 예수님이 하신 일과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우리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 25:40 /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어렵고 힘든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웃을 배려하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연약한 자들을 배려하는 것이 주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처럼 위기를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돌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변의 약자와 소자를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시되 거만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승리를 얻었거든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고 받은 은혜를 나누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다 되찾았더니…
삼상 30:16-20 /
할렐루야!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감사하며 사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세요.’
그럼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뭐 맨날 감사만 하라 그래. 불평도 좀 하며 살아야지.”
하지만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롬 7:25)
자기의 조건이나 환경에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하루가 여러분의 범사의 삶이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예수 믿기 때문에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기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윗 이야기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 바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실제 이스라엘을 통치하기까지 13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13년은 임금되는 것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고 뒤쫓는 사울을 피해
목숨을 걸고 도망 다녀야 했던 고난의 세월이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다윗은 사울을 피해 블레셋까지 들어갔습니다. 다윗이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크고 용맹한 장군 골리앗을 쓰러뜨리면서 부터였습니다. 그 골리앗이 바로 블레셋의 장군이었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였습니다. 사울에게 쫓기다 쫓기던 다윗은 적국인 블레셋에 가면 거기까지는 사울의 손길이 닿지 않겠지 하는 심정으로 블레셋 왕 아기스를 찾아갔습니다.
자신과 자기를 따르는 육백 명의 부하들이 머물 곳을 요청하자 아기스 왕은 시글락이라는 마을을 다윗에게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아기스 왕 휘하에서 다윗은 그술 사람, 기르스 사람, 아말렉 사람을 공격함으로서 자신에 대한 아기스 왕의 신임을 쌓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블레셋이 이번에는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을 믿었던 아기스 왕은 다윗의 조국 이스라엘과 싸우는 전장에까지 다윗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블레셋의 다른 장군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적국 이스라엘의 장군이 우리 편에 와서 자기 나라를 치려는 전쟁에 참가하겠다는데 어떤 역모를 꾸밀지 … 무슨 속임수를 쓸지 … 어떻게 알겠느냐고 다윗의 출정을 거부했습니다.
부하들의 반대가 심하자 아기스 왕은 결국 다윗을 시글락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렇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출발했다가 블레셋의 군사들이 반대해서 다시 시글락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사흘이었습니다.
부하들과 함께 사흘 만에 시글락에 돌아온 다윗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전쟁터에 나갔던 그 순간에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공격해서 성읍은 불탔고 젊은 사람부터 늙은이까지 모든 여자들을 다 잡아간 것입니다. 아말렉에 잡혀간 여인들 중에는 다윗의 두 아내 아히노암과 아비가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이 광경을 보고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고 했습니다.(삼상 30:4)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아말렉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다윗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삼상 30:8)
그 말씀에 의지하여 군사 400명을 이끌고 아말렉을 쫓아간 다윗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방심하고 있던 아말렉을 공격했고 모든 것을 다시 되찾았습니다.
성경은 다윗의 승리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 다 되찾았더니”(삼상 30:19~20)
도로 찾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아말렉의 공격을 받은 시글락을 보며 다윗은 모든 것을 잃은 허탈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상황은 절망적이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숨마저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다윗은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반드시 … 도로 찾으리라.”
다윗이 모든 것을 다시 찾으리라고 약속 받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 …” (약 1:12) 또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 (요일 2:25)고 했습니다.
죄인이지만 …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지만 …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약속을 받은 사람’처럼 / 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면 감사를 잊지 말고 삶의 태도도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 받은’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속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도와주었는데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감사하다’고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으면 ‘뭘 잘못했나, 괜히 도와주었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25년 동안 영국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목회를 했던 켄달(Robert Tillman Kendall, 1935~현재) 목사님은 매해 교회의 새해 예산을 편성하기 전에 예산 지원을 필요로 하는 기관과 단체들에게서 재정 지원 요청서를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12월이 되면 수많은 편지가 옵니다. 라면박스에 쌓아놓을 정도로 하나 가득 옵니다. 그리고 그 편지들에는 한결 같이 온라인계좌번호가 적혀 있고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습니다. 많은 편지들 가운데 어느 곳을 도와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곳에서 도움을 청하는 요청서가 오기 때문에 어디에 도움을 줄 것인지 심사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켄달 목사님에게는 간단한 기준이 있었습니다. 전에 예산을 지원했는데도 감사 편지가 오지 않은 곳부터 탈락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켄달 목사님은 도움을 주었는데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제 안 도와줘도 된다는 뜻으로 간주했습니다. <2009년 11월 8일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 설교 ‘그래도 감사하다’ 참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 구원의 기쁨을 표현하며 살아야 합니다.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감사를 표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감사하고 살라’고 강조하시다가 아예 절기까지 정하셔서 특별히‘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봄에는 맥추감사절, 가을에는 추수감사절을 정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다 되찾았더니 …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말렉 사람들을 쫓아갔던 다윗은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 (삼상 30:17) 이틀에 걸쳐 아말렉 진영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리고 “…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삼상 30:19)
다윗은 아내를 잃었지만 / 다시 찾았습니다. 수하에 있는 부하들의 가족들을 잃었지만 / 다시 찾았습니다. 양떼와 소 떼를 잃었지만 / 다시 찾았습니다. 절망에 빠지게 했던 모든 상실에서부터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합니까? ‘망했다, 끝이다’라고 포기합니까? 다윗은 그 상황에서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제라도 쫓아가면 좇을 수 있습니까?’라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절망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십니까?
미국의 심리학자인 레오 버스카글리아(Leo Buscaglia, 1924~1998)교수는 어머니에 대해서 이런 추억을 소개합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셔서 사업이 파산했다고 가족들에게 알렸습니다. 그 날 저녁 버스카글리아 교수의 어머니는 자기의 목걸이를 팔아서 가족 잔치를 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소식이 가족들에게 알려지자 친족들 가운데는 어머니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힘들었을 버스카글리아 교수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어머니는 자신의 보석보다 가족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단다. 덕분에 나는 그날 다시 용기를 갖고 내 인생에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했었단다.” <2008. 11. 9.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 설교 ‘웃음으로 감사하는 자와 눈물로 감사하는 자’ 참조>
미국에 있는 어느 식당에는 벽면에 그림과 함께 이런 글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만일 당신이 구덩이에 빠졌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더 파들어 가기를 멈추는 것이다.” (If you find yourself in a hole, the first thing to do is stop digging.)
‘미움’이라는 구덩이에 빠지면 우리는 더 깊이 파고 들어가 ‘앙심’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외로움’이라는 구덩이에 빠지면 더 깊이 파고 들어가 ‘고독’과 ‘소외’를 자초합니다.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게 되면, 자신을 ‘저주’하고 ‘심판’하기까지 구멍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려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이 땅을 살며 모든 조건에서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회복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성경 여러 곳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감사하라”/“기뻐하라”는 명령은 우리가 갇힌 구덩이에서 빠져 나올 첫 발을 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기대가 담겨있는 것입니다.<2010. 11. 21. 워싱턴 한인교회 김영봉 목사 설교 ‘감사를 명하는 이유(Ordered to give thanks)’ 참조.
여러분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습니까? 얼마나 넉넉하게 드십니까? 혹은 얼마나 부족합니까?
많이 가졌으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으시기 바랍니다.
회복을 믿는 감사
저는 TV프로그램 중에서 <동물의 왕국>을 좋아합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몰랐던 것도 많이 알게 되고 동물들의 세계를 보면 참 신기한 것이 많습니다. 큰 짐승이 먹잇감을 찾아 잡아먹는 장면이 나오면 눈을 살짝 감고 움찔하며 쳐다봅니다. 한참 먹다가 배부르면 먹던 먹잇감을 그냥 놓고 갑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짐승과 사람의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짐승은 필요 이상의 물건을 쌓아두지 않지만 사람은 지금 필요하지 않아도 쌓아두며 산다는 점입니다. 사냥을 나간 호랑이는 먹잇감을 잡아먹고 배가 부르면 그 자리를 떠납니다. 나중을 위해서 남기고 자기 곳간을 만들어 채워두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우리들의 냉장고와 옷장을 보십시오. 먹지도 않으면서 자리를 차지하는 음식들이 많습니다. 한 해가 지나도록 한 번도 입지 않았지만 옷장 안에 모셔만 두는 옷들도 많습니다.
감독취임식에 많은 분들이 오셨고, 화분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많은 화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 중에는 몇 십만원 짜리 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꽃꽂이위원들에게 화분의 가격이 얼마인지 알아보고 그 가격의 반값을 적어 가격표를 붙여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팔면 모아서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하게 될 것입니다.
다 쌓아놓고 뭐할 것입니까? 다 끌어안고 있어서 뭐하시렵니까? 나누고 베풀고 살면 행복하고 즐겁고 좋은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은 쉬운 것입니다.
오늘 오후에 우리는 찬양잔치로 모일 것입니다. 책임 맡았던 분들에게 묻습니다. 연습하러 나오라고 선교회원들에게 연락하면 잘 나옵니까? 아마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오라고 오라고 해서 연습합니다. 그 연습하는 과정, 모이는 과정, 그 시간, 정성 하나님이 다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마음과 시간과 정성을 드리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 일터에서 …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다면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아무 것 없어도 … 가지고 있던 것 마저 잃어버렸어도 … 도로 찾게 하시고 회복케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양과 감사를 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도 “아무 것도 잃은 것 없이 … 다 되찾았더라.”는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감사를 입으로 많이 내뱉고, 많이 표현하고, 많이 드리며 사는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날 구원 하신 주 감사”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을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해처럼 높으심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응답받은 것도 감사하지만 우리의 판단으로 응답되지 않은 것에 까지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닫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가시까지도 감사하며 찬양하는 복된 삶이 되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세 부류의 사람
삼상 30:16-20 / by skd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빼앗는 자, 구원하는 자, 구원받은 자 (사무엘상 30장)
세상에는 딱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던데?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사람들의 역할을 나누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의 것을 함부로 빼앗으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 위기에 처한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는 사람.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사무엘상 30장의 한 장면은 바로 이 세 부류의 사람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다윗이 아말렉에게 빼앗긴 가족과 재물을 되찾는 과정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내 배만 부르면 그만! 남의 눈물은 나 몰라라~ (빼앗는 자)
다윗을 도운 이집트 소년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 그곳에는 아말렉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성경은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땅에 편만하여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사무엘상 30:16) 라고 묘사합니다. 한마디로, 남에게서 빼앗은 것들로 흥청망청 잔치를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빼앗는 자'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눈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과 쾌락만을 추구합니다. 시글락을 침략하여 여자들과 아이들을 사로잡고 재물을 약탈한 것도 모자라, 그것들을 가지고 죄책감이나 반성 없이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빼앗긴 자들의 슬픔이나 다가올 위험에 대한 경각심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눈앞의 전리품과 순간적인 즐거움에 취해 있을 뿐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모습은 없을까요? 꼭 물질적인 약탈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시간, 감정, 기회, 평판 등을 아무렇지 않게 빼앗고 자신의 유익을 챙기는 모습 말입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이기심으로 가득 차, 결국 자신과 타인 모두를 파괴적인 길로 이끄는 사람들. 성경 속 아말렉은 바로 이러한 '빼앗는 자'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도서 및 문학
포기는 없다! 정의와 사랑으로 끝까지 달린다! (구원하는 자)
아말렉 사람들이 방심하고 잔치를 벌이는 동안,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다윗과 그의 용사들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기를 얻었고 (삼상 30:6),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지체 없이 추격을 시작했습니다 (삼상 30:8-10). 마침내 적진을 발견한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 그들을 치매" (사무엘상 30:17a)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구원하는 자'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는 복수심이나 전리품에 대한 탐욕으로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전리품도 얻었지만 (삼상 30:20), 그들의 주된 동기는 사랑하는 가족을 구하고, 불의에 맞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마음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삼상 30:8)을 붙들고 행동했습니다.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며 끝까지 싸워 목표를 이루어냅니다.
'구원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돕고,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행동합니다.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고 희생해야 할지라도, 더 큰 가치, 즉 생명과 정의, 사랑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사람들입니다. 다윗과 그의 용사들은 바로 이런 '구원하는 자'의 용기와 결단력을 보여줍니다.
휴, 살았다! 절망 끝에서 찾은 희망과 회복 (구원받은 자)
다윗의 용맹한 싸움 끝에 어떤 결과가 펼쳐졌을까요? 성경은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사무엘상 30:18-19) 라고 증언합니다. 아말렉에게 사로잡혀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던 모든 사람과 재물이 안전하게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구원받은 자'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던 이들입니다. 아말렉의 포로가 되었던 다윗의 가족들과 백성들은 죽음의 공포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고통받았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다윗과 그의 용사들의 등장은 한 줄기 빛과 같았을 것이며, 그들의 구원은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회복이었을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되찾은 기쁨,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안도감,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삶의 여정에서 때로는 '구원받은 자'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질병, 실패, 관계의 어려움, 영적인 침체 등 다양한 문제 앞에서 누군가의 도움, 혹은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를 극복하고 회복을 경험하는 순간들 말입니다. 이때 우리가 느끼는 감사와 안도감은 '구원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이 경험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동시에 다른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나의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함께 돌아봐요!
사무엘상 30장의 이야기는 우리 앞에 세 가지 삶의 모습을 펼쳐 보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을 해하는 '빼앗는 자', 정의와 사랑으로 다른 이를 구하는 '구원하는 자', 그리고 절망 속에서 도움을 받아 회복하는 '구원받은 자'.
잠시 멈추어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어떨까요? 나는 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혹시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위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삶을 살고 있는지, 혹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선 경험을 통해 감사를 배우고 있는지 말입니다.
물론 우리는 상황에 따라 여러 역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방향을 지향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말렉과 같이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다윗과 같이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어 다른 이들을 세우고 회복시키는 삶을 살 것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빼앗는 자'의 모습에서 돌이켜, 때로는 '구원하는 자'로서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고, 때로는 '구원받은 자'로서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의 삶이 다윗과 같이, 회복과 구원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채워지기를 응원합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람으로
삼상 30:16-20 / 서울산정현교회
다윗이 돌아오자.. 시글락 모두 불타고 가족들이 다 포로로 끌려갔다.
다윗의 사람들은 다윗을 돌로 치자고 말합니다. 그제서야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한다. 기도한다. 물어본다.
하나님이 다 도로 찾아낸다고 말씀하셨다. 다윗이 그들에게 걱정마라 하나님이 다 돌려주신다 하셨다.
걱정하지 말고 나와 같이 가자. 그리고 자신을 돌로치려했던 그들을 품어낸다.
지금 다윗은 이런 저런 연단과 훈련을 통해서 자아가 죽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포기와 내려놓음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 훈련과정을 거치는 사람은 나를 돌로치려했던 사람까지 품어낼 정도로 마음이 커진다.
지금것 애지중지 키워주고 먹여주고 그들의 가족들까지 지켜줬던 자신의 사람들이 주인을 향해 돌을 던지자 하는데.. 이들을 품어낸다.
이제 다윗은 그들을 데리고 아말렉 족속을 뒤쫓기 시작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이제 길을 내시는 것을 보라.
10절 같이 읽자. 추격해 가다가 브솔 시냇가에 이르자, 그런데 광야에서 죽어가는 한 애굽 소년을 만납니다. 몇일째 못먹어가지고 죽어가고 있는 한 소년인데...
지금 일분 일초가 급한 상황인데 죽어가는 한 소년... 신경쓸 겨를이 어딨나?
그냥 지나칠수도 있지만 다윗의 무리들이 이 소년을 다윗에게 데려왔다.
그런데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한다.
데려온 그가 누구냐? 13절 나는 애굽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아말렉 사람의 종이다. 지금 다윗이 아말렉을 쫒아가면서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가고 있는데..
누구보다 그 군대의 주둔지를 잘 아는 사람을 만난거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가고자 하시면, 우리 삶에도 하나님은 만남의 복을 허락하신다.
이런 사람을 만나고, 저런 사람을 만나게도 하신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계획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지금 왜 그 사람을 내 삶에 만나게 하셨을까? 우리는 물어봐야 한다.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내가 배워야 할 것,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 내가 준비되야 될 것들을 배우게 하신다. 그래서 그 사람을 내 삶에 배열해놓으셨다.
우리는 사람을 가려가면서 만난다. 내게 도움이 되겠다 , 내게 필요하겠다 싶으면 그 사람을 만나고, 또 잘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다윗일행은 길가다가 굶주림 속에 있는 죽어가는 한 소년을 지나치지 못하고 살려줬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말렉 군대로 가는 길을 아는 자였던 것이다.
만약 바쁘다고, 지금 할 일이 많다고,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그를 무시하고, 죽도록 내버렸다면..
아직도 다윗은 아말렉의 군대가 어딘지 못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이 있다.
그 사람이 때로는 내게 별로 도움이 안되보일 수도 있다. 가난한자들, 소외된 자들, 외로운 자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동일하게 대하면... 그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어떻게 새로운 길을 열어가실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 애굽소년의 인도를 받아서 주둔지로 갔더니 이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삼상30:16~17 '그가 다윗을 인도하여 내려가니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 그들을 치매 낙타를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 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
잔치가 벌어졌더. 얼마나 좋았겠어요. 먹고 마시고 춤추는 것은 당연하죠. 꽤 큰 규모의 아말렉 군사들입니다.
시글락 공동체만 습격을 해서 약탈한 게 아니에요.
아말렉은, 블레셋 마을들과 유다 남쪽 네게브 지방의 여러 마을들을 습격해서 닥치는 대로 휩쓸고 다 빼앗은 것이죠. 전리품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정신없이 그냥 자축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윗은 새벽녘부터 기습을 시작해서, 이튿날 저물 때까지 그 아말렉 족속을 진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뭐든지 일이 잘 될때가 위험한 거예요.
어려울 때는 긴장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래서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오히려 그때가 더 안전하다.
문제는 일이 잘 풀려나가면 방심하기 쉽습니다. 영적으로도 느슨해진다.
그때가 제일 무너지기 쉬울때다. 오늘 아말렉보라. 그들은 너무 자신만만했다.
다윗 일행이 전장에서 급히 돌아온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금 다윗이 자신들을 쫓아왔을것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방심이 처참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 많은 전리품을 앞에 두고 파티를 시작할 때 그들의 인생의 결말이, 이렇게 처참하게 끝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늘 겸손하게, 일이 잘풀리고, 잘될때에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고백해야 될줄 믿습니다.
반대로 다윗과 그의 무리들은 어떻습니까?
모든 것이 불에 타버린 시글락 공동체를 바라보았을 때 '이게 끝이구나' 해서 그 난리를 피웠던 것 아닙니까. 다윗을 돌로 쳐죽이려고 했었어요.
완전히 끝난 것 같았던 다윗일행이었지만 지금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무엇을 말해주나?
하나님이 끝이라고 말하시지 않으면, 아직은 끝이 아닙니다. 인생의 끝은, 사람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인생의 끝을 결정하시는 분은, 인생의 주인되신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향해 함부로 끝났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다윗 일행은 빼앗긴 것만 되찾았습니까? 자기들 것만 되찾은 게 아니에요.
아말렉이 다 빼앗아 놓은 것들이, 지금 다 다윗 무리의 수중에 전리품으로 들어왔어요.
무슨 말입니까? 최악의 상황이 최선의 상황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이신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삼상30:18~20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
재미있는 것... 다윗을 돌로 치자 했던 자들이 언제그랬냐듯이 이제는 이 승리로 이 모든 것이 다윗의 전리품이라~~~ 소리치고 흥분한다.
여러분 다윗이 얼마나 기가찼겠나? 한 입으로 두 마음으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 자들~~ 얼마나 밉겠나?
한 사람 한 사람을 속속들이 알지만, 다윗이 대단한 것은 그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다윗의 그릇이 얼마나 커졌는지 볼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앞에 두손두발 다 든 사람 광야에서 하나님이 완전하게 깨뜨린 사람 내 자아가 죽고 내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사람은.. 실제로 이 무리들을 품어낸다.
심지어 예수님의 마음으로 원수까지 사랑하게 된다.
우리도 기꺼이 그런 자들까지 품어내는 넉넉한 마음들이 생기길 바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 어디서 돌변할지 모르는 그런 자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은 돌을 들었다가 , 어느 날은 환성을 질렀다가... 사람이란 그런자들이다.
그럼에도 오늘 주신 말씀 붙들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은 지금 나를 단련하시고 훈련하신다면 이왕이면 그 훈련 잘받아서 원수까지 품어내는 사람으로 우리의 그릇을 넓혀가자.
또한 하나님이 아직 끝이아니야 라고 하신다면 끝난 것 아닌다.
다시 역전의 하나님 신뢰하면서 하나님 손붙잡고 끝까지 도전하고 달려나가는 우리들 되길 소망합니다.
은혜입니다
삼상 30:16-31 / 장석환목사
오늘 본문은 다윗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전리품을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1. 도로 찾음(은혜를 받음)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가 다윗을 인도하여 내려가니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삼상 30:16)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전투대형이 아니었습니다. 이쪽저쪽 흩어져 있었습니다.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약탈하였음으로 밀미암아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고 말합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북쪽에서 전쟁하는 것을 한껏 이용하여 남방 지역을 약탈하였습니다. 약탈한 것을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들이 술에 취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미명이 될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 그들을 치매 낙타를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 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 (삼상 30:17)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떄까지 그들을 치매'라고 말합니다. 새벽 미명에 아말렉인들을 어렴풋하게 구분할 수 있을 때 공격을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밤 술을 잔뜩 먹은 아말렉 병사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입니다. '이튿날 저물 때까지'는 해가 지면 다음날이 되는 것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그 날 저녁까지를 의미합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들을 쫓아가서 쳤던 것입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다시 다 되찾았습니다.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삼상 30:19)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라고 말합니다. 모두 빼았겼는데 잃은 것이 없이 다시 되찾은 것은 참으로 큰 기적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수 있었을까요?
모든 것을 되찾은 다윗과 그의 병사들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 (삼상 30:20)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고 말합니다. 되찾은 가족과 수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갈 때 그들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들은 분명히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이 진짜인 사람도 있고 가짜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구분될까요?
우리가 다윗처럼 잃은 것을 되찾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것입니다. 도무지 찾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되찾았습니다. 그것도 하나도 잃지 않고 다 되찾았습니다. 되찾는 정도만이 아니라 수없이 더 많은 전리품을 가져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은혜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때의 되찾음만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 되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다음의 일입니다. 다음의 일에서 실패한다면 도로 찾은 것은 자신의 기쁨이 될수는 있어도 복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고도 복이 되지 못하고 자신의 기쁨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혜를 받고도 복이 되지 못하면 그것은 즉각 불행이 됩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그것이 진정한 은혜로 복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2. 전리품 분배(은혜를 나눔)
전쟁에 승리하여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이전에 피곤하여 함께 하지 못했던 200명의 병사가 있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삼상 30:22)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라고 말합니다. 일부의 병사들이 전리품을 그들에게 나누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자신들은 싸웠고 그들은 싸우지 않았기에 전리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타당합니다. 전리품은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나누어 갖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이긴 것이 누구 때문인지를 말하였습니다.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삼상 30:23)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이라고 말합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병사들이 잘 싸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음을 말합니다. 자신들이 은혜로 전리품을 거저받았기에 싸움에 참여하지 않은 200명의 병사들에게도 은혜를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병사들이 잘한 것이면 병사들에게만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긴 것이면 병사들이 자기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 힘이 없어 함께 하지 못한 병사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함께 나누는 것이 자비입니다.
은혜받은 자가 해야 하는 것을 다윗이 정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 은혜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은혜로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나누어 주지 않으면 그것은 은혜로 받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나누어 주지 않으면 은혜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누어 주지 않으면 그것은 은혜를 망각한 것으로서 은혜를 땅에 떨어트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은혜를 더 나누었습니다.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전리품을 그의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이르되 보라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하노라 하고” (삼상 30:26) '전리품을 그의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그가 빼앗은 전리품이 이전에 아말렉이 유다 남쪽 지역에서 약탈한 것임을 알았기에 그들에게도 전리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유다 장로들이 달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먼저 은혜를 베푸는 것이 은혜 받은 자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다윗은 전리품을 나누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얻은 것임을 알았기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나눔으로 아말렉을 이긴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임을 더욱더 드러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숨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드러내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 커집니다. 은혜가 아름답게 완성됩니다. 나누지 않으면 은혜가 땅에 떨어집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로 아말렉을 추격할 수 있었고 잃었던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이후입니다. 은혜를 땅에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받은 은혜를 잘 나누어야 했습니다. 당장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200명의 병사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로 받았으니 병사들에게 은혜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인근의 유다 성읍들에게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은혜로 받았으니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은혜가 됩니다. 나누지 않으면서 은혜라 말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탐욕을 부리는 것입니다. 나누지 않으면 은혜가 아니라 탐욕입니다. 탐욕은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말로만 하지 말고 나눔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놀라운 결과가 기다립니다
구례제자교회 / 삼상30:16-20
사로잡혀 간 가족을 찾기 위해 함께하는 군사들과 함께 아말렉을 추격하기 시작한 다윗은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물었고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아말렉을 추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말렉은 일정한 주거지역 없이 떠돌아다니며 약탈을 일삼는 유랑민족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말렉을 무작정 추격하자니 막막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들에서 병들어 쓰러진 애굽 사람을 만났습니다. 지금 다윗은 아말렉을 추격하는데 한시가 급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에게 물과 음식을 주고 기력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리고 기력을 회복한 이 사람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말렉 사람이 시글락을 공격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들의 가족을 사로잡아간 아말렉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인도해 줄 사람을 만났습니다. 어느 누구하나 신경쓰지 않고 무시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통하여 다윗은 가족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은 다윗을 아말렉 사람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였습니다. 다윗의 일행들이 저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아말렉 사람들이 여러 지역에서 약탈해 온 것으로 먹고 마시며 춤을 추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새벽부터 다음날 저물 때까지 낙타를 타고 도망한 400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진멸하였습니다.
이들은 가족을 잃었을 때 슬퍼하며 절망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다윗 때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이 이제 다윗을 인정하고 사람들 앞에서 다윗을 높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삼상30:6) 어려울 때, 힘들었을 때, 위기의 순간에도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인하여 용기를 얻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위기의 순간이 닥칩니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을 힘입고 다시 일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은혜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