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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생병(久閒生病)
오랫동안 한가하면 병이 생긴다는 뜻으로, 관우가 조조에게 잡혀있을 때 출전하기 위해 한 말로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의미의 말이다.
久 : 오랠 구(丿/2)
閒 : 한가할 한(門/4)
生 : 날 생(生/0)
病 : 병 병(疒/5)
출전 : 삼국연의(三國演義) 第26回
서주(徐州) 있는 소패성(小沛城)에서 유비(劉備)의 군대는 조조(曹操)에 대패하여 유비는 원소(袁紹)에게 가 몸을 의탁했다.
하비성에서 유비의 두 부인을 보호하고 있던 관우(關羽)는 포의되어 첫째 한나라에 항복하는 것, 둘째 두 형수를 적극 보호할 것, 셋째 유비의 거처를 알면 즉시 떠난다는 3가지 조건을 걸고 항복해서 허도(許道)로 끌려갔다. 평소 관우의 무용(武勇)과 인품을 알고 있는 조조는 관우를 포로 취급하지 않고 손님처럼 잘 대우해 주었다.
백마성(白馬城)에서 원소의 대군과 싸우게 된 조조군은 원소의 안량(顔良)이라는 장수에 막혀 전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조조군에는 안량을 이길 만하 장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조는 관우에게 요청하게 되었고, 관우는 그 동안의 대우에 보답하는 의미로 기꺼이 전장에 나가 순식간에 안량을 처치한다. 안량의 복수를 하려고 나온 문추(文醜)까지 동시에 처치하였다.
이에 힘입어 조조는 원소에 대승을 거두고 돌아와 연회를 베풀어 장병을 위로하는데 갑자기 좌우가 보고를 했다. "여남(汝南)의 황건적 유벽(劉辟), 공도(龔都)가 크게 창궐하였습니다. 조홍(曹洪)이 여러 번 싸웠지만 전황이 불리합니다. 지원군을 요청합니다."
正飲宴間, 忽報: 汝南有黃巾劉辟龔都, 乞遺兵救之.
관우가 듣고 나와서 자청했다. "제가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여남의 도적을 격파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雲長聞言, 進曰: 關某願施犬馬之勞, 破汝南賊寇.
조조가 말했다. "운장은 대공을 세웠으나 아직 큰 상도 받지 못했는데 어찌 다시 도적 토벌의 수고를 하게 할 수 있겠소?"
操曰: 雲長建立大功, 未曾重酬, 豈可復勞征進.
관우가 말했다. "저는 오랫동안 한가하게 있으면 반드시 병이 생기니 다시한번 가겠습니다."
公曰: 關某久閒, 必生疾病, 願再一行.
조조는 관우를 장하게 여겨 병력 5만을 주고 우금과 악진을 부장으로 삼아 다음 날 바로 떠나게 했다.
曹操壯之, 點兵五萬, 使于禁樂進為副將, 次日便行.
여남(汝南)에서 황건적(黃巾賊)을 토벌하면서 관우는 유비(劉備)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된다.
채근담(菜根譚) 후집(後集)
117. 너무 한가하면 잡념이 생긴다.
人生이 太閑하면 則別念이 竊生하고 太忙하면 則眞性이 不現이라.
사람은 너무 한가하면 다른 생각이 슬그머니 생기고 너무 바쁘면 진실한 본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故로 士君子는 不可不抱身心之憂하고 亦不可不耽風月之趣라.
그러므로 군자는 심신의 근심을 지니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청풍명월의 맛을 즐기지 않을 수 없느니라.
■ 어째서 조조는 관우 바라기가 되었는가?
삼국지를 읽어본 이들에게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의 두터운 우애만큼 유명한 것이 조조(曹操)의 관우 짝사랑이다. 조조의 관우 짝사랑은 국경을 초월해서 정말 순수하기 짝이 없는 사랑이다. 유비의 부하임에도 불구하고, 군신으로 추앙받는 위대한 군인이며 자신의 가장 치명적인 적임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관우에게 끝없는 러브 메시지를 던진다.
여기서 한가지, 조조는 어째서 관우를 이리도 총애하는가? 분명 관우가 군주들 사이에서 예쁨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장수인건 아주 공공연한 사실이다. 중국 대륙 전체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덕망, 여포(呂布)와도 비교할 수 있는 일기당천(一騎當千)의 무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통달하고 지혜에도 밝은 장수를 수하에 두기 싫어할 군주는 없다.
하지만 조조의 그것은 조금 더 달랐다. 물론 유비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유비는 의형제로써 맺어진 두터운 신뢰가 그것이고 조조의 것은 좀 더 심리학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관우와 조조의 관계를 한번 써보고자 한다.
1. 조조(曹操)의 배경
조조는 내시(內侍) 집안 출신이며 아버지는 내시의 양자이다. 할아버지인 조등(曹騰)은 4대 황제를 섬기며 대단한 권력을 휘두르던 내시였고, 원래 본 성이 하후(夏侯)였던 조조의 아버지 숭(嵩)은 조등의 양자로 들어가 조숭(曹嵩)이 됩니다. 후에 할아버지인 조등의 어마어마한 재물을 이용하여 태위(太尉), 당시 사공(司空), 승상(丞相)과 함께 삼공(三公)이라고 불려지던 우리나라로 따지면 우의정(右議政) 정도의 벼슬을 사준다.
이쯤되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닥 깨끗한 뒷배경을 지녔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렸을 적엔 원소(袁紹), 장막(張邈)과 죽마고우(竹馬故友)로 지냈고 내시인 할아버지, 벼슬을 산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남 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물론 남 부럽지 않은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조조가 서서히 세상에 모습을 들어낼 때는 모두 알다시피 황건적(黃巾賊)의 난의 난으로 세상이 어지러져 있었다. 하지만 황건적의 난은 애초에 십상시(十常侍)들의 횡포와 무능한 황제의 무시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당시 중국 대륙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조조가 자라며 보고 자란 사람들은 대부분 더러운 짓을 일삼는 부패 정치인들에 무능한 정부를 비판하며 종교로 나타났지만 결국은 도적무리로 전락한 황건적들 등 온갖 쓰레기들을 보며 자랐다. 이렇게 자라온 조조의 마음 속엔 '멋진 남자'에 대한 로망이 싹튼 것이었다.
조조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만큼 악랄하고 권모술수(權謀術數)만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의롭고 백성을 사랑하는 인물이었다. 조조가 병력을 이끌고 논밭을 지나는데 가을 추수철이라 벼가 노랗게 자라있었다. 하지만 농부들이 병사들을 두려워하여 밖으로 나오지 못하자 조조는 '논밭을 망치는 자는 군령에 따라 사형에 처한다'고 하였다.
이때 바닥에서 새가 날아올라 조조의 말이 놀라 이리저리 뛰며 벼를 망쳐놓았다. 조조는 아연실색하여 칼을 빼들어 자신의 목을 치려고 하였다. 옆에서 장수들이 제지하자 조조는 "내가 내린 군령을 내가 어길 수는 없는 법이다"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 그러자 병사들도 아무도 군령을 어기지 아니했고 조조의 일화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것말고도 둔전제(屯田制)를 펼쳐 후한의 정치에 피폐한 백성의 마음을 달랬고 백성을 기초로 한 정치를 폈었다. 온갖 비리와 무능한 황제의 무식과 환관들의 썩은 정치로 황폐해진 한나라가 과연 그 명색을 계속 이어갔어야 했는가? 그것은 단지 유비가 걸어 올린 의라는 이름의 변명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다.
2. 관우(關羽)의 성격
관우는 흔히 오만한 성격으로 오해받기 쉬운데, 심리학적으로 그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 관우의 성격은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정말 건강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현재 이런 사람은 같이 있으면 별로 재미 없는 사람이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신뢰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사람이다. 말이 별로 없고 사람을 신뢰할 줄 알며 아랫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며 윗사람에게 자신의 할말을 할줄 아는 그런 사람이다. 오히려 이런 관우의 성격을 망친 사람은 제갈량(諸葛亮)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관우의 우직하고 선한 성격은 삼국지 중후반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의형제가 된 후 유비는 허구헌 날 술과 여자를 끼고 살며 방탕한 생활을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관우와 장비는 유비의 침실에서 조조가 동탁(董卓) 토벌의 격문을 보낸 것들 중 하나를 숨겨놓은 것을 발견한다.
장비는 노발대발해서 단숨에 유비를 찾아가서 따지려고 하자 관우가 말했다. "장비, 의제(義弟)의 노여움은 알겠으나 일단 형님에게 물어보고 형님의 뜻을 판단해도 늦지 않네." "유비 형님이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거면 어쩔거유?" "그땐 깨달을 수 있도록 해드려야지."
이러한 관우의 유비에 대한 생각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신뢰가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얘기이다. 이건 장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여포 토벌전 이후 조조에게 몸을 의탁한 유비가 백날 농사만 짓고 있자 장비가 천불이 나서 술집에서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이때도 관우는 "너 여기서 뭐하냐?" "또 술이냐?" 이런 말이 아닌, "동생의 노여움이 어떤지 한번 들어보세"라는 말을 한다.
관우가 중국에서 군신의 자리에까지 오른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싸움을 잘해서? 관우 정도의 무예는 동시대에 장비, 여포 등도 있고 초한지(楚漢志)로 가면 항우(項羽), 영포(英布) 등도 있고 전국시대에도 널리고 널렸다. 관우의 인기는 무예도 무예지만 사람을 믿고 신뢰하는 선한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밑바탕이 된 충성심이 있었다.
관우가 조조에게 귀순했을 때, 조조의 휘하에는 조조와 생사를 넘나들며 군신의 정을 초월한 장수들이 여러 있었다. 하후돈(夏侯惇), 하후연(夏侯淵), 장료(張遼), 서황(徐晃), 우금(于禁), 조인(曹仁), 악진(樂進) 등 충분히 관우를 시기하고 질투할 장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관우는 하후돈을 제외하곤 장료와도 대단한 우애를 보여줬고 서황과도 많이 친했다. 관우가 그만큼 장수들과 친화력이 나쁘지 않았고 사람 됨됨이가 좋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관우가 정말 오만한 사람이었다면 원소(袁紹)와의 전투에서 귀순한 허유(許攸)처럼 누군가에게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후에 번성전투(樊城戰鬪)에서 서황(徐晃)을 만났을 때도 이 순수한 사람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전장에서 서황을 만난 관우는 서황과 나름 인사를 나누며 반가워한다. 그러고 갑자기 서황이 돌변하였다. "누구든 관우를 잡는 자는 천금을 내리겠다!"
순수한 관우는 갑자기 돌변한 서황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며 허둥지둥 전투를 준비했다. 그만큼 관우는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이었고 이런 믿음은 절대 오만한 성격에서 나올 수 없는 특징이다. 이러한 관우의 성격은 제갈량에 의해 급격하게 변화를 맞게 된다.
관우는 절대 거짓말도 안 하고 궤변을 일삼는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직언을 하고 절대 실언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허나 형주 수비군이 된 후 관우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일을 경험한다. 애초에 형주(荊州)는 제갈량이 손권(孫權)에게 '유표(劉表)의 아들 유기의 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얻은 땅이다. 게다가 어쩔 줄 몰라하는 노숙(魯肅)에게 형주 남부 일부를 주기로 약속까지 했다. 관우에게 있어 약속은 곧 생명이었다.
젊었을 적엔 다른 이의 원수를 죽여줘서 이름을 바꾸고 숨어다니고, 헌제(獻帝)와 나간 사냥에서 조조의 오만함에 화가 난 관우는 자신의 목숨이 달렸음에도 조조를 죽이려고 했고, 유비와의 약속을 위해 천리를 달려 부인들을 잘 모셔서 결국엔 그들을 만나는 관우에게 있어 제갈량의 궤변은 그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노숙이 성도에 오자 제갈량은 '관우에게 가면 그가 형주 남부를 줄 것이다'고 알려준다. 그와 동시에 관우에게 '형주 남부를 넘겨주지 말라'는 서신도 같이 보낸다. 평소 사람에 대한 인의가 깊은 관우는 정말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이것은 후에 노숙이 관우를 암살하려고 했던 술자리에서도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노숙이 도부수(刀斧手) 100명을 정자 밑에 숨기고 관우를 초청하여 술자리를 마련한다. 관우는 호기롭게도 주창(周倉)만 대동하고 나타난다. 술자리가 진행되자 노숙이 넌지시 형주 남부에 대해서 얘기한다. "장군, 형주 남부는 언제 넘겨주시는 겁니까?" "노숙공, 그런 것은 술자리에서 할 얘기가 아닌 듯 싶소."
평생을 직언하고 대답을 회피하지 않던 관우가 대답을 회피하였다. 관우의 일종의 반항(?)은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직이 내려졌을 때도 나타난다.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후 전장군 한수정후 관우를 필두로 거기장군 서향후 장비, 진군장군 영창정후 조운, 표기장군 태향후 마초, 후장군 관내후 황충을 오호대장으로 칭하였다.
마량(馬良)이 유비의 칙령을 가지고 관우에게 오자 관우가 얘기합니다. "조운이야 공로가 꽤 많으니 그렇다치고, 마초같은 애송이와 황충 같은 늙은이가 함께하는 직함이라니 너무하지 않소?"
이 대사는 그 전에 관우가 보여준 얘기와는 상당히 모순된다. 장로(張魯) 토벌전에서 마초가 군을 이끌고 오자 관우가 형주에서 서신을 보냈다. "마초와 같은 호걸과 한번 싸워보고 싶으니 장비와 자리를 바꿀 순 없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미 관우는 마초를 인정했다.
황충은 말할 것도 없이 장사 점령전에서 힘을 겨뤄봤고 늙은 나이에도 호걸이었던 황충을 인정해 관우는 황충에게 말을 바꿔 타고 나오라고까지 했다. 장비는 유비와 함께 있지만 두 형제와 떨어져 형주에 홀로 남겨진 관우의 마음은 어땠을까? '왜 오나라와 외교를 하지 않고 번성전투를 무리하게 진행하다가 목숨을 잃었느냐?'는 질문은 어떻게 보면 멍청한 질문이다.
관우가 왜 오나라와 위나라를 둘 다 적으로 만들고 싸웠을까? 답은 이미 위에 쓴 글에 나와있다. 결국은 제갈량의 계략에 외교는 무너진 것이다. 애초에 제갈량은 오나라와는 친하고 위나라와는 적대하라고 관우에게 일러두고 성도로 떠났다. 그런데 굳이 형주 남부를 주지않고 오나라와의 외교상태를 흔든 것은 왜일까? 손권이 관우와 자신의 딸을 결혼시키려고 했다고 하나 관우의 마음은 이미 꽤나 혼란스러워져 있었다.
앞서 말했듯 관우는 그 혼란스러웠던 중국 대륙에 찾아보기 힘든 '완벽한 남자'의 전형이었다. 형주성이 함락된 후 부랴부랴 달려간 관우 부자, 강릉성에서 여몽의 계략으로 가족들을 찾아 병사들이 대열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관평이 병사들에게 호통치며 어디를 가느냐고 하지만 관우는 그저 "가족들을 찾아가니 그대로 두라"고 얘기한다. 오만하기만 한 사람이 이렇게 병사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3. 조조의 관우 사랑
조조의 관우 사랑은 이렇듯 관우의 뛰어난 인품과 남자다움에 이끌려서 시작됐다. 내시였던 할아버지, 돈으로 벼슬을 샀던 아버지, 혼란스러웠던 세상, 이런 세상에서 관우는 조조가 그토록 열망하던 멋진 남자의 전형이었을 것이다.
조조는 그토록 많은 인재를 가지고도 관우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았다. 왜일까? 그건 인재를 열망하던 조조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가장 부처에 가까운 사람을 찾고자 하는 그의 열망이었다고 생각한다.
동탁 토벌을 위해 모인 제후들. 사수관으로 병사를 이끌고 나온 화웅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제후들은 다들 꽁무니를 빼고 나몰라라 하였다. 공손찬이 나섰으나 당하고 돌아왔고 손견도 원술 때문에 병력만 잃고 돌아오고 도겸은 애초에 인성이 쓰레기인 제후이며 나머지 제후들 역시 제 밥그릇 챙기기 바빴다.
그런 상황에 꼴랑 마궁수에 불과한 남자 한명이 호기롭게 나타나 자신이 나가겠다고 한다. 수많은 제후들이 모인 자리에, 선봉 싸움에서 전군의 예기가 꺾여버릴 지도 모르는 중요한 전투에, 대장, 중장, 소장들 모여있고 제일 낮은 직급이 대령인 자리에서 병장 한명이 호기롭게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화웅을 베어 그 능력을 보여준다. 조조가 첫눈에 반할 수 밖에 없는 남자였던 것이다.
하비성에서 끌려나와 대부분의 병사를 잃고 산속에 숨어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항복을 하라고 찾아온 장료에게 관우가 세 가지 조건을 얘기한다. "첫째, 자신은 한나라에 항복하는 것이지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이 아니요, 둘째, 하비성의 유비의 두 부인에게 절대 해가 가지 않아야 하며, 셋째, 유비의 생사가 확인되면 자신은 그 직후 유비에게 떠나겠다"고 하였다.
온갖 재물과 큰 집과 미녀와 파격적인 관심에도 그것을 일체 손대지 않고 자신은 몸도 움직이기 힘든 문지기 집에서 생활하며 유비의 부인들을 주군의 예로서 보필하고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생활하는 그 모습, 어떤 사람이 봐도 반할 수 밖에 없을 것이지만 언제나 뛰어난 인재를 갈망하던, 완벽한 남자를 갈망하던 조조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관우가 빛나는 별로 보였을 것이다.
4. 마무리
율곡 이이 선생은 심리학적으로 사회에 대한 부정이 있었던 사람이다. 신사임당의 위대함은 세상에 널리 퍼져있지만 율곡 이이의 아버지에 대해선 율곡 이이의 프로필에서 한 줄도 찾아보기 힘든다. 심리학에서 흔히 아버지는 사회요, 어머니는 가정이라고 한다. 파워풀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율곡 이이는 와이프 등살에 밀려 집안서 힘도 제대로 못 썼던 아버지를 보며 자랐고 그것은 이이가 사회를 나가려 할 때 이이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이것을 이이가 어떻게 극복했느냐? 율곡 이이는 장원을 무려 9번을 한다. 별명이 구도장원공이었다. 서울대 붙어놓곤 안 가고 하버드도 써보고 스탠포드도 써보고 옥스포드도 써보고 해서 다 합격을 한것이다. 근데 안 가고 결국 9번을 채우고 벼슬 길에 오른다. 율곡 이이가 잘난척 하기 좋아하는 사디스트이냐? 그건 아니다. 이이는 이런 식으로 사회에 대한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한 것이다. 자신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자신감을 9번의 장원을 하며 극복한 것이다.
조조는 환관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벼슬을 산 사람이다. 둘 다 도덕적으로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보긴 힘든다. 거기에 조조는 외모가 볼품없었고 키도 루저에 간신 수염, 원소 같은 명가의 자식과는 확실히 비교가 됐다. 원소는 서자의 아들이었지만 그 역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잘난척으로 커버를 했고 원술은 말할 것도 없고 조조는 주위 사람들의 소문과 자신에게 쏟아지는 눈길에 열등감이 있었을 것이다.
조조의 위서무제기의 주석 위무고사에선 위와 같은 말이 나온다. "내가 처음 효렴으로 천거되었을 때, 나이는 어렸고 숨어사는 현자 또한 아니오니, 천하에 우매한 자로 알려질까 두려워하였다. 때문에 한 군의 태수로 명예를 세우고 세상에 이름을 널리 떨치고자 하였다."
인중여포라는 여포를 사로 잡아 놓고도 그냥 사형, 함진영으로 유명했던 고순도 삭제, 장료도 죽이려던 것을 관우의 천거로 등용, 진궁도 미련없이 죽이고 자신의 죽마고우 장막도 압박하여 죽음으로 내몰고 자신의 아들들에게도 냉담하게 굴었던 그 조조는 관우에게만은 빠순이가 되었다. 왜 일까?
집안도 없고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뿐인 범인이 일당만의 무예에 훌륭한 인품과 덕망, 사람에 대한 신뢰까지, 모든 것을 갖춘 관우라는 그 남자에게, 어떻게든 세상에 자신을 알리고 열등감까지 느끼던 환관의 아들이란 주홍글씨를 벗겨내고자 발악하고 발버둥치던 조조는 필연적으로 끌렸던 것은 아닐지. 그렇게 관우라는 멋진 남자에게 자신을 대입하며 만족을 느끼고 그가 걸어가는 길을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관우의 죽음 이후 따라가기라도 하듯 죽은 조조. 평생을 그토록 자신의 수하에 두고 싶어했던 장수의 목이 와있는 것을 보며 그는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자신을 버리고 천리행을 떠나는 관우를 뒤에서 바라만 보던 조조가, 마지막까지 전포(戰袍)를 주며 은혜를 베풀었던 것도, 조조의 관우에 대한 사랑이 순수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기(氣)가 안일해지면 체하게 된다
기(氣)를 수련하는 법
사람 몸은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없고 단지 노니는 기(氣)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氣 호흡의 이치를 얻는다면 온갖 병이 생기지 않을 뿐 아니라 오래 살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반면에 남녀간의 정욕이나 일에 몰두하는 것, 또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사람의 정기를 흐트러뜨린다. 따라서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부처는 면벽을 하였으며, 선가(仙家)는 자기 몸의 기를 수양하여 신기의 소모를 막고자 했다'고 했다.
氣를 수련하는 것은 호흡과 관련된다. 호흡의 대원칙은 죽은 기운을 내뱉고 산 기운을 들이마시는 것이다. 동의보감은 노자(老子)의 "현빈(玄牝; 음양의 원천)의 문은 하늘과 땅의 뿌리로서 없어지지 않으며 지치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한다. 여기서 현빈은 코와 입을 말하는 것으로, 코와 입으로 천지에 있는 음의 기운과 죽은 기운을 내뱉고, 양의 기운과 산 기운을 들이마심을 말한 것이다.
산 기운을 호흡하기 위해서, 동의보감에서는 수련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한밤중부터 낮 정오 사이는 양의 기운이 생기는 때이므로 호흡법을 시행하며, 정오 이후 한밤중 이전은 양의 기운이 죽는 때이므로 호흡법을 행하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호흡법이란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숨을 들이쉬고 오래 참다가 더 참을 수 없을 때 천천히 숨을 내쉬는 기술이다. 물론 이때는 잡념이 있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동의보감은 "귀에 들리는 것, 눈에 보이는 것,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일체 없애라"고 말한다.
호흡법은 처음에는 코와 입으로 아주 조금씩 숨을 쉬다가 나중에는 입과 코는 사용하지 않고 배꼽으로 호흡하게 되므로 태식(胎息)이라 한다. 배꼽에서 숨을 시작하고 배꼽에서 숨을 멈춘다. 이는 사람이 태 안에서 입과 코로 호흡하지 않고 오직 탯줄을 통해 어머니의 임맥(任脈)에 매달려 숨을 쉬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동의보감에서는 태식의 구체적인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음에 숨을 한 번 들이쉰 다음 숨을 쉬지 않고 배꼽으로 호흡하되 수를 세어서 81에 이르거나 120에 이르렀을 때 입으로 숨을 내쉬어 공기가 나가게 하는데, 그것을 몹시 적게 하여 숨쉴 때 기러기 털조차도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한다. 연습하여 점점 그 수를 늘려나간다. 아울러, 헤아리는 수가 1000에 이르게 한다. 그러면 늙은이도 다시 젊어 진다."
숨을 내쉬는 특수한 방법으로 오장(五臟)과 삼초(三焦)를 보양하고 그곳의 병을 치료하기도 한다. 동의보감은 여섯 자로 된 '육자기결(六字氣訣)'을 소개한다. "간의 기를 보양하기 위해서는 입으로 '후우~' 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숨을 내쉬어라. 심장의 기를 보양하기 위해서는 입으로 숨을 '푸우~' 하는 기분으로 불어 내쉬어라. 비(脾)의 기를 보양하기 위해서는 코로 숨을 내쉬어라. 폐의 기를 보양하기 위해서는 '슷~' 하는 기분으로 이 틈으로 숨을 내쉬어라. 신(腎)의 기운을 보양하기 위해서는 '호~' 하는 기분으로 입김을 바깥으로 내쉬어라. 삼초의 기운을 보양하기 위해서는 '아~' 하는 기분으로 숨을 불어 내쉬어라."
이러한 호흡법을 시행함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좌우로 도인법(導引法)을 행한 연후에 이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도인법(導引法)
첫째, 한 손으로 음경을 받들어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배꼽 좌우를 엇바꾸어 가면서 오랫동안 문질러라. 이 방법은 유정을 막을 뿐 아니라 하초의 원기도 북돋아준다. 신수혈, 앞가슴과 옆구리, 용천혈을 문지르는 방법도 좋다. 단, 명치를 문질러서는 안 된다.
둘째, 짧은 침대나 요 위에 옆으로 누워 다리를 구부리고 펴지 말라. 이렇게 하면 유정이 자연스레 낫는다.
셋째, 자시(子時; 23~1)시에 음경이 처음 발기할 때 똑바로 누워서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혀끝을 입천장에 닿게 한 후 허리를 쳐들고 왼손 가운뎃손가락으로 미려혈(尾閭穴; 꼬리뼈 끝머리에 있는 혈자리)을 누르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넷째 손가락 밑에 대고 주먹을 쥔다. 그런 후 양쪽 다리를 쭉 펴고 양쪽 발가락 10개 모두 힘 주어 세운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이 기가 미려혈에서부터 척추를 통해 뒤통수를 지나 정수리까지 갔다가 천천히 내려와 단전까지 온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 허리와 다리, 손발을 조용히 늦추어 놓는다.
이와 같이하면 음경이 쪼그라든다. 이 방법은 유정을 낫게 할 뿐 아니라 오래 계속하면 영영 병이 생기지 않는다.
기체(氣滯)
사람이 한가하면 나른해지는 병(氣滯)이 생긴다. 이는 경락이 잘 통하지 않고 혈맥이 응체되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한가한 사람은 운동을 잘 하지 않으며 배불리 먹고 앉아 있거나 잠이나 자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은 영양분 많은 음식만 먹고 잠만 잘 것이 아니라 항상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일을 해서 영위(營衛)와 혈맥이 잘 조화되도록 해야 한다. 비유컨대, '흐르는 물은 썩지 않으며, 문지도리는 좀이 슬지 않는다.'
아이러니컬한 사실이지만 사람은 분주해서 금방 쓰러질듯이 쩔쩔 맬때보다도 한가하게 되었을때 병이 나기 쉽다. 우스운 말로 눈코 뜰새없이 분주해서 병 앓을 겨를도 없다는 표현은 아닌게 아니라 사실인 것이다. 생명의 본질이 원래 '동(動)'이요, 변화이고 보면 정체하면 병이 생기게 마련이다.
동의보감의 기일즉체(氣逸卽滯), 기가 안일해지면 체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니 위 속의 음식물이 내려가지 않으면 체하듯이 전신의 원기가 순환되지 못하고 체하면 병이 된다는 것이다.
분주한 사람은 한가한 것을 갈망하며 "한거가이양지(閑居可以養志; 세상을 피하여 한가히 있음으로써 그 뜻을 길러야 한다)"로 적당한 휴식이 좋은 레크리에이션이 될 수 있음은 말할 나위없다. 레크리에이션이란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는 뜻이니 그게 바로 양지(養志)인 것이다. 현대생활은 바쁜 사람은 기계처럼 바쁜 반면에 한가한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이 지리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유한마담이니 레저 붐이니 하는 말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지리하지 않고 유쾌하게 시간을 보내느냐가 바야흐로 문명국들의 큰 문제가 된다고 하여 사람이라는 생물의 학명을 호모 사피엔스 대신 호모 루덴스라고 하자는 사람도 있다. 즐겁게 유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가하면 건강만 해칠 뿐 아니라 '소인한거위불선(小人閒居爲不善; 소인배는 한가하게 지내면 나쁜 짓을 한다)'이라, 마음마저 불건전하게 되는 것을 옛날부터 경계하고 있다.
고단하고 지치는 것은 반드시 중노동을 해서만이 아니라 뻔뻔히 놀아서도 생기는 것이다. 너무 한가로우면 질병이 생기기 쉽다. 대개 한가한 사람은 운동이 부족하고 들어앉아 포식만 하게 되니 경락이 불통하고 혈맥이 정체하게 되는 법이라. "잘 사는 사람은 겉으로 보아 볼품은 좋으나 속은 괴롭고, 고달픈 신세의 사람은 겉은 초라하나 속은 편한 법이다."
팔자 좋게 가만히 앉아 잘먹고 편히 지내면 병이 생기니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하며 기체(氣滯)가 심한 경우에는 '율피일물탕'을 쓰면 된다고 하였다. 귤껍질을 물에 넣어 끓여서 차로 마시는 처방이다 귤껍질은 새것을 청피라 하고 오래 묵은 것은 진피라고 하는데 한방 약물학에서는 육진팔신이라고 하여 오래 묵을수록 좋은 약 6종과 새것일수록 좋은 약 8종을 들고 있는 가운데 진피는 육진중의 하나이다. 귤껍질에는 정유성분, 리모넨, 헤스페리딘, 비타민등이 들어 있어 방향성건위약이 된다는 것은 현대 약물학에서도 인정되고 있다.
■ 일이 왜 중요한 것인가?
게으른 사람의 지루한 인생
과로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러나 과로로 죽는 사람보다는 이기심과 나태함, 그리고 방탕한 생활 때문에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지나치게 일을 해서 몸이 나빠졌다는 것은 실은 건강관리를 게을리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는 시간의 개념으로 측정할 수는 없다. 인간의 삶은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생각했는가’에 의해 측정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을 위해 유익한 일을 많이 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느낄수록 진정한 의미에서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게으름만 피우는 인간은 아무리 오래 살았다 해도 단순히 숨만 쉬는 존재일 뿐이다.
초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설교한 사람들은 노동의 존귀함을 실천을 통해 보여주고 노동 의욕을 북돋았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그는 다른 사람의 노동에 의해 살지 않고 손수 땅을 일구며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선교사 보니파키우스는 영국에 도착했을 때, 한 손에는 복음서를 다른 한 손에는 목수들이 쓰는 교본을 들고 있었다. 후에 영국에서 독일로 건너 갈 때는 건축 기술을 익히고 갔다. 루터 역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정원사, 목공, 선반공, 시계수리공 등 갖가지 직업에 종사하며 필요한 양식을 스스로 해결했다.
나폴레옹은 훌륭한 기계장치를 구경하러 가면 그것을 만든 장인에게 존경을 표했고, 돌아갈 때 역시 예를 다했다. 훗날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지내게 된 나폴레옹이 어느 날 한 부인과 함께 걷고 있을 때, 짐을 나르는 하인들과 맞부딪치게 되었다. 거만한 부인은 화를 내며 당장 길을 비키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나폴레옹이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마담, 저들이 짐을 나르고 있다는 것을 배려해 주시지요.” 허드렛일을 하는 비천한 일꾼도 사회의 안녕에 기여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월터 스콧(Walter Scott)은 근면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부지런하게 일했고 피로를 모르고 일하는 사람이었다. 스콧은 근면성이 사회적으로 유익하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자기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어했다. 그는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노동이란 누구를 막론하고 신께서 모든 사람에게 부과한 계약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동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소유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농부가 땀 흘리고 얻은 빵은 물론이고 권태를 달래기 위해 부자가 수렵한 사냥감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몸을 움직여서 얻은 것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다. 땅을 잘 경작하지 않으면 보리가 자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하지 않으면 지식의 씨앗도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보리는 씨를 뿌린 사람이 반드시 거두어 들인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공부로 얻은 지식은 오직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다. 노동만이 시간의 의미를 가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열심히 일해야 한다.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해야 한다.
젊을 때는 발걸음도 가뿐하고 활기가 넘치기 때문에 지식을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인생의 봄에 게으르게 보내면 여름은 의미 없이 헛되이 지나갈 것이고, 가을에 수확할 것이라고는 왕겨 밖에 없다. 인생의 겨울인 노년은 처량하고 쓸쓸해 질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격언을 즐겨 사용하는지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 스콧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역사학자 로버트슨은 겨우 열다섯 살 때 "배우지 않은 인생은 죽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좌우명으로 선택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의 좌우명은 "쉬지 말고 일하라." 프랑스의 생물학자 라세페드가 가장 좋아했던 격언은 "산다는 것은 관찰하는 것이다." 였다. 이는 플리니우스가 즐겨 쓰던 잠언이기도 하다.
▶️ 久(오랠 구)는 ❶지사문자로 乆(구)의 본자(本字)이다. 사람 인(人)에 파임 불(乀)을 합친 글자로서, 사람의 뒤 또는 엉덩이에 붙어 잡아 끄는 모양이며 잡아 끌고 오랫동안 놓지 않는다는 데서 오래다를 뜻한다. ❷지사문자로 久자는 '오래다'나 '길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久자는 측면으로 누워있는 사람의 등과 뜸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久자는 본래 ‘뜸질’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뜸은 약물을 몸의 특정 부위에서 태우거나 김을 쐐 자극을 주는 치료방법을 말한다. 뜸을 놓은 이후에는 약효가 스며들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久자는 후에 '오래다'나 '길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火(불 화)자를 더한 灸(뜸 구)자가 '뜸질'이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久(구)는 사람을 만류하다, 거기에 머물게 하여두다, 길다, 오래되다, 등의 뜻으로 ①오래다, 길다 ②오래 기다리다 ③오래 머무르다 ④가리다 ⑤막다 ⑥변(變)하지 아니하다 ⑦오랫동안 ⑧오래된, 옛날의 ⑨시간(時間), 기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미륵 미(彌), 멀 유(悠), 길 영(永), 멀 하(遐), 멀 원(遠), 길 장(長)이다. 용례로는 오래도록 평안함을 구안(久安), 일을 오래 맡김을 구임(久任), 기간이 긺을 구구(久久), 오래 끎을 구연(久延), 어떤 일에 오랫동안 힘써 옴을 구근(久勤), 오래 사귐을 구교(久交), 오랜 해를 구년(久年), 오랫동안 머무름을 구류(久留), 앓은 지 오래되어 고치기 어려운 병을 구병(久病), 끝없이 오램을 영구(永久), 연대가 길고 오램을 유구(悠久), 길고 오램을 장구(長久), 변하지 아니하고 오래 감을 항구(恒久), 꽤 오래나 한참 지남을 양구(良久), 여러 해가 지나 꽤 오래됨을 연구(年久), 그 동안이 그리 오래지 아니함을 미구(未久), 오랫동안 버티어 견딤을 지구(持久), 매우 오래를 허구(許久), 오래 견딤을 내구(耐久), 오래 걸림을 적구(積久), 앞으로 올 때가 오래지 아니함을 불구(不久), 오랜 세월을 겪어 옴을 역구(歷久), 완전하여 오래 견딜만 함을 완구(完久), 어떤 일을 오래 해낼 수 있는 힘을 지구력(持久力), 영구히 변하지 아니할 만한을 항구적(恒久的), 영구히 변하지 아니할 만한을 영구적(永久的), 오래 견디는 성질을 내구성(耐久性), 젖니가 빠진 뒤에 다시 나는 이를 영구치(永久齒), 오랫동안 서로 보지 못함을 구불견(久不見), 오래도록 공경함을 일컫는 말을 구이경지(久而敬之), 오래도록 소식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구무소식(久無消息),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를 일컫는 말을 구한감우(久旱甘雨), 세월을 헛되이 오랫동안 보낸다는 뜻으로 긴 세월을 보내고 나니 헛되이 세월만 지났다는 말 또는 그냥 긴 시간을 보냈다는 말을 광일지구(曠日持久), 하늘과 땅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물이 오래오래 계속됨을 이르는 말을 천장지구(天長地久),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무언가 바라는 마음이 세월이 갈수록 더해짐을 이르는 말을 일구월심(日久月深), 규칙이나 약속 따위를 오래오래 지키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영구준행(永久遵行), 물건이 오래 묵으면 조화를 부린다는 말을 물구즉신(物久則神), 완전하여서 영구하게 변하지 아니할 계교를 일컫는 말을 완구지계(完久之計), 사업의 오랜 계속을 도모하는 계획을 일컫는 말을 장구지계(長久之計), 좋은 법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폐단이 생김을 일컫는 말을 법구폐생(法久弊生), 궁하면 변하게 되고 변하게 되면 두루두루 통해서 오래간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궁변통구(窮變通久) 등에 쓰인다.
▶️ 閒(한가할 한, 사이 간)은 회의문자로 間(간), 閑(한)의 본자(本字)이다. 門(문)과 月(월)의 합자(合字)이다. 문짝 사이로 月光(월광)이 새어 들어오고 있음의 뜻에서 '틈, 사이'의 뜻이 되었다. 그래서 閒(한, 간)은 ①한가(閑暇)하다 ②등한(等閑)하다(무엇에 관심이 없거나 소홀하다) ③막다 ④보위(保衛)하다(보호하고 방위하다) ⑤닫다 ⑥아름답다 ⑦품위가 있다 ⑧조용하다 ⑨틈, 틈새 ⑩마구간(馬廏間) ⑪목책(木柵) 그리고 ⓐ사이(간) ⓑ때(간) ⓒ동안(간) ⓓ차별(差別)(간) ⓔ틈, 틈새(간) ⓕ간첩(間諜)(간) ⓖ혐의(간) ⓗ사사로이(간) ⓘ몰래, 비밀히(간) ⓙ간혹(간) ⓚ법(法), 법도(法度)(간) ⓛ사이에 두다, 끼이다(간) ⓜ섞이다(간) ⓝ이간하다(헐뜯어 서로 멀어지게 하다), 헐뜯다(간) ⓞ엿보다(간) ⓟ살피다(간) ⓠ틈을 타다(간) ⓡ간소하다(=簡)(간) ⓢ범하다(간) ⓣ검열하다(간) ⓤ참여하다(간) ⓥ섞이다(간) ⓦ차도(差道)가 있다(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틈 극(隙)이다. 용례로는 할 일이 없어 몸과 틈이 있음을 한가(閒暇), 한가로운 마음을 한심(閒心), 농사일이 없어 한가한 달을 한월(閒月), 직업이 없는 사람을 한민(閒民), 한가히 걸음 또는 그런 걸음을 한보(閒步), 조용한 곳 또는 한적한 곳을 한소(閒所), 한가히 생활하면서 몸을 양생함을 한양(閒養), 조용하고 느릿느릿하는 말 또는 쓸데 없는 말을 한언(閒言), 높다란 하늘에 한가히 오락가락하는 구름을 한운(閒雲), 조용히 시가를 읊음을 한음(閒吟), 한가하여 자적함을 한적(閒適), 경작하지 않은 땅을 한전(閒田), 조용한 뜰을 한정(閒庭), 한가롭고 아치가 있음 또는 경치가 조용하고 품위 있음을 한아(閒雅), 한가하고 느긋함을 한만(閒漫), 한가하고 고요함 또는 조용하고 쓸쓸함을 한적(閒寂), 한가로운 틈을 한극(閒隙), 일이 없어 한가함을 한용(閒冗), 일이 없어 한가함 또는 조용하고 쓸쓸함을 한산(閒散), 한가롭고 조용함을 한료(閒寥), 대수롭지 않게 여겨 내버려 둠을 등한(等閒), 하는 일이 없어 한가함을 공한(空閒), 평안하고 한가로움을 안한(安閒), 아무 근심 걱정이 없고 몸과 마음이 한가함을 연한(燕閒), 바쁜 가운데 틈을 얻어 냄 또는 틈을 타서 일을 함을 투한(偸閒), 농사일이 그다지 바쁘지 아니하여 겨를이 있음 또는 그 시기나 농사의 여가를 농한(農閒),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물외한인(物外閒人), 중요하지 않고 일이 많지 않아 한가로운 벼슬 자리를 이르는 말을 한사만직(閒司漫職) 등에 쓰인다.
▶️ 生(날 생)은 ❶상형문자로 풀이나 나무가 싹트는 모양에서 생기다, 태어나다의 뜻으로 만들었다. ❷상형문자로 生자는 '나다'나 '낳다', '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生자의 갑골문을 보면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生자는 본래 '나서 자라다'나 '돋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生자는 후에 '태어나다'나 '살다', '나다'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生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본래의 의미인 '나다'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姓(성 성)자는 태어남은(生)은 여자(女)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生(생)은 (1)생명(生命) (2)삶 (3)어른에게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흔히 편지에 씀 등의 뜻으로 ①나다 ②낳다 ③살다 ④기르다 ⑤서투르다 ⑥싱싱하다 ⑦만들다 ⑧백성(百姓) ⑨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⑩자기의 겸칭 ⑪사람 ⑫날(익지 않음) ⑬삶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출(出), 있을 존(存), 살 활(活), 낳을 산(産)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죽을 사(死), 죽일 살(殺)이 있다. 용례로 살아 움직임을 생동(生動), 목숨을 생명(生命), 살아 있는 동안을 생전(生前),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생존(生存),말리거나 얼리지 않은 잡은 그대로의 명태를 생태(生太), 자기가 난 집을 생가(生家),생물의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생활 상태를 생태(生態),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사로 잡음을 생포(生捕), 태어남과 죽음을 생사(生死), 먹고 살아가기 위한 직업을 생업(生業), 활발하고 생생한 기운을 생기(生氣),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생모(生母), 끓이거나 소독하지 않은 맑은 물을 생수(生水), 어떤 사건이나 사물 현상이 어느 곳 또는 세상에 생겨나거나 나타나는 것을 발생(發生), 배우는 사람으로 주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학생(學生),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先生), 사람이 태어남을 탄생(誕生),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일단 못 쓰게 된 것을 손질하여 다시 쓰게 됨 또는 죄를 뉘우치고 마음이 새로워짐을 갱생(更生), 다시 살아나는 것을 회생(回生), 아우나 손아래 누이를 동생(同生), 사람이 삶을 사는 내내의 동안을 평생(平生), 어렵고 괴로운 가난한 생활을 고생(苦生), 살림을 안정시키거나 넉넉하도록 하는 일을 후생(厚生), 사람을 산채로 땅에 묻음을 생매장(生埋葬), 생명이 있는 물체를 생명체(生命體), 이유도 없이 공연히 부리는 고집을 생고집(生固執),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세상만사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생자필멸(生者必滅), 불교에서 인간이 반드시 겪어야만 한다는 네 가지 고통 즉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의 고통을 이르는 말을 생로병사(生老病死), 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곤궁하여도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생구불망(生口不網), 학문을 닦지 않아도 태어나면서부터 안다는 뜻으로 생지生知하는 성인을 이르는 말을 생이지지(生而知之), 죽은 자를 살려 백골에 살을 붙인다는 뜻으로 큰 은혜를 베풂을 이르는 말을 생사골육(生死骨肉), 사람이 태어난 뒤 사흘 동안과 죽은 뒤 이레 동안을 부정하다고 꺼리는 기간을 이르는 말을 생삼사칠(生三死七), 몹시 곤란한 지경에 빠져 삶이 차라리 죽음만 같지 못하다는 말을 생불여사(生不如死), 기운이 꺾이지 않고 본디의 기운이 아직도 남아 생생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생동생동(生動生動),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잠깐 동안 머물러 있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죽는 것은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생기사귀(生寄死歸), 산 채로 삼키고 산 채로 껍질을 벗긴다는 뜻으로 남의 시문을 송두리째 인용함을 이르는 말을 생탄활박(生呑活剝), 나면서부터 알아 쉽게 행한다는 뜻으로 배우지 않아도 사물의 도리를 알아 쉽게 그것을 실행한다는 말을 생지안행(生知安行), 일속을 잘 알지 못하고 관계가 없는 사람을 그릇 책망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생면대책(生面大責), 태어나서 만나 본 적이 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생면부지(生面不知), 살리거나 죽이고 주거나 뺏는다는 뜻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생살여탈(生殺與奪), 거듭나서 유전한다는 뜻으로 만물이 끊이지 않고 변해 감을 이르는 말을 생생유전(生生流轉) 등에 쓰인다.
▶️ 病(병 병)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병질엄(疒; 병, 병상에 드러누운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丙(병; 분명하여지다)으로 이루어졌다. 상처, 병이 더하여지는 일을 말한다. ❷형성문자로 病자는 '질병'이나 '근심', '앓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病자는 疒(병들 녁)자와 丙(남녘 병)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病자를 보면 침대에 누워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병에 걸려 힘들어하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금문에서 부터는 땀을 흘리는 사람 대신 丙(남녘 병)자가 쓰이면서 발음역할을 하게 되었다. 고대에는 病자와 疾(병 질)자 모두 '앓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글자가 분리된 이후부터 病자는 비교적 심각한 병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고 疾은 비교적 가벼운 병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래서 病(병)은 (1)생물체의 전신(全身) 또는 일부분에 생기는 정상적인 활동이 파괴된 상태. 질병(疾病). 질환(疾患). 탈(頉) (2)잘못이나 탈을 비유하는 말 (3)병집 등의 뜻으로 ①병(病), 질병(疾病) ②근심 ③흠, 결점(缺點), 하자(瑕疵) ④성벽(性癖), 좋지 않은 버릇 ⑤손해(損害) ⑥병들다, 앓다 ⑦피로하다, 지치다 ⑧시들다, 마르다 ⑨괴로워하다 ⑩괴롭히다, 욕보이다 ⑪어려워하다, 꺼리다 ⑫헐뜯다, 책망하다 ⑬원망하다 ⑭손해를 입히다 ⑮굶주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병든 사람을 진찰이나 치료 및 예방하기 위하여 설비를 갖추어 놓은 곳을 병원(病院), 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병균(病菌), 다치거나 병이 들어 앓는 사람을 병자(病者), 병의 이름을 병명(病名), 병이나 질병으로 어른의 병의 높임말을 병환(病患), 병자가 앓아 누워 있는 자리를 병석(病席), 병으로 앓는 증세를 병증(病症), 여러 개의 병실로 된 병원 안의 한 채의 건물을 병동(病棟), 병자가 눕거나 또는 누워 있는 자리를 병상(病牀), 환자의 병의 발생이나 진행된 경과나 치료 과정을 병력(病歷), 병의 원인이나 발생이나 경과나 결과 따위에 관한 이치를 병리(病理), 병이 들어 앓는 모양과 형세를 병세(病勢), 병으로 인한 죽음을 병사(病死),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환자가 따로 거처하는 방을 병실(病室), 신체의 온갖 기능의 장애로 말미암은 병을 질병(疾病), 병이 남을 발병(發病), 앓는 사람을 찾아보고 위로함을 문병(問病), 아픈 사람의 곁에서 돌봄을 간병(看病), 계절에 따른 유행병을 시병(時病), 거짓 앓는 체하는 병을 허병(虛病), 병에 걸림을 이병(罹病), 열이 몹시 오르고 심하게 앓는 병을 열병(熱病), 병이 고황에까지 들었다는 뜻으로 병이 위중하여 치료할 수 없는 것을 이르는 말을 병입고황(病入膏肓), 바람에 병들고 더위에 상함이라는 뜻으로 고생스러운 세상살이에 쪼들림을 이르는 말을 병풍상서(病風傷暑), 병이 없는 데 스스로 뜸질을 한다는 뜻으로 불필요한 노력을 하여 정력을 낭비함을 일컫는 말을 무병자구(無病自灸), 같은 병자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말을 동병상련(同病相憐), 병 없이 오래도록 삶을 일컫는 말을 무병장수(無病長壽), 어떤 한 가지 약이 여러 가지 병에 다 효력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만병통치(萬病通治), 재주가 많은 사람은 흔히 약하고 잔병이 많다는 말을 다재다병(多才多病), 병도 아닌 데 괴로워 앓는 소리를 낸다는 뜻으로 곧 별것도 아닌 데 떠벌려 소란을 떨거나 엄살을 피움을 이르는 말을 무병신음(無病呻吟)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