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仙)마을 촌장 된 이시형 박사의 한국 사회 진단 “우울한 시대 이기려면 씹고 걷고 심호흡하라” |
‘대한민국 정신건강 전도사’를 자임하며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이시형 정신과 전문의가‘세로토닌문화운동’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을 맡고 있는 이시형 박사를 만나 엔도르핀 중독상태에 빠진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 처방책을 들어보았다. |
21세기 들어 대한민국 민심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4강 진출 드라마로 흥분의 정점에 이르렀다가 지난해 9월 이후 세계 경제위기의 파고를 넘으면서 대다수 국민은 심각한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 또 최고의 인기스타가 자살하는가 하면 급기야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까지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이런 현상에 대해 여러 전문가는 나름대로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인 진단과 함께 분석을 내놓았다. 민심이 방황하는 것은 일방통행식의 정치적 리더십과 소통의 부재 때문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그러나 뭔가 부족한 점이 있었다. 국민 ‘마음의 행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틀에서 진단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개발독재 시절 ‘배짱으로 삽시다’라는 화두로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 정신과 전문의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 박사를 7월4일 오전 11시경 그가 촌장으로 있는 ‘힐리언스(healience) 선(仙)마을’(강원 홍천군)에서 만나 진단과 해법을 들어봤다. 산자락에 7개동 44개의 객실이 아담하게 자리 잡은 이곳에서 이 박사와 점심식사를 함께한 후 인터뷰에 들어가려고 하자 이 박사가 ‘제동’을 걸었다. 낮잠을 자고 나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낮잠은 정신건강에 중요한 ‘짧은 휴식’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기자는 승효상 건축가가 친환경적으로 설계했다는 선마을 시설물을 둘러본 후 오후 2시부터 선마을 촌장실에서 인터뷰에 들어갔다. ▼ 언제부터 선마을 촌장이 됐습니까. “1년 반 됐어요. 여기 계속 머무는 것은 아니고 주중에는 서울에 있다가 주말에 들어와 강의도 하고 여기에 머무는 사람들과 산책도 하면서 대화를 나눕니다.” 선마을에서 1박 하며 관찰한 결과 촌장은 방문객들의 모든 면을 배려하는 ‘다기능’ 역할을 맡고 있었다. 새벽에는 방문객들과 함께 뒷산을 산책하면서 자연의 소리를 깨닫게 해주는 ‘도사’가 되었다가 식사 때는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이나 와인을 대접하는 ‘호스트’로 변신하고, 강의 시간에는 ‘뇌과학자’로 학생을 가르치다 밤에는 인디언식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추장 할아버지’로 변했다. ▼ 주말에 충분한 휴식을 취할 줄 알았는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활동하면 힘들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은 워낙 공기가 좋아 오히려 힘이 납니다. 그리고 평소에 10층 이하는 계단을 걸어서 오르내리기 때문에 단련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 다리를 보고 축구선수 다리 같다고 해요. 제 바이오에이지(건강 나이)는 45세입니다.” 올해 75세인 이 박사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이 박사는 미소를 머금고 바지를 걷어 올려 탄탄한 근육질의 다리를 보여줬다. 세로토닌은 행복씨앗 ▼ 선마을은 공기 좋은 곳에 조용한 쉼터를 갖췄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요가, 스트레칭 같은 프로그램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2,3일 동안 여기에 머물면서 무슨 특별한 변화가 생기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에 머물며 강의를 듣거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자신의 식생활에서 무엇이 잘못된 습관인지 깨닫게 됩니다.” ▼ 이곳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가 무엇입니까. “자연성 회복이지요. 여기에서 새소리 물소리 들으면 마음이 절로 편해지잖아요. 일상생활에서는 베란다에 꽃이 피어도 바빠서 볼 겨를이 없잖아요. 이곳에서 자연을 느낀다는 것 자체로 치유가 되고 우리 몸에서 세로토닌이 생기는 겁니다. 세로토닌의 보고(寶庫)는 자연입니다. 명상이나 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을 벽에 걸어놓는데 참 좋습니다. 마음이 편안하다는 게 바로 세로토닌 상태거든요.” 이 박사는 ‘세로토닌’이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것처럼 얘기했다. 그는 기자의 궁금한 표정을 읽었는지 다음날 오전 세로토닌 강의를 들어보길 권했다. 그는 강의에서 ‘마음’은 막연한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물질이며 에너지’라고 강조하면서 마음과 관련된 호르몬과 뇌신경전달물질 중 노르아드레날린, 엔도르핀, 세로토닌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우울한 시대 이기려면 씹고 걷고 심호흡하라”
“우울한 시대 이기려면 씹고 걷고 심호흡하라”
“우울한 시대 이기려면 씹고 걷고 심호흡하라”
|
“우울한 시대 이기려면 씹고 걷고 심호흡하라”
▼ 선마을에서의 생활은 잠시이고 결국 도시로 돌아가야 하는데 세로토닌 분비를 위해서 어떤 습관을 길러야 합니까. “첫째 잘 씹어야 합니다. 씹을 게 없으면 껌이라도 씹어야 합니다. 둘째는 걸어야 합니다. 우리 프로그램에서도 제일 인기 있는 것이 트레킹입니다. 걸으면서 2시간 동안 자연명상을 하는 겁니다. 등산할 때도 정상에 빨리 올라가려고 하지 말고 걸으면서 나무와 대화도 하고 시냇물 소리와 바람소리도 들어보세요. 셋째는 계단이나 비탈길 등을 오르내리면서 심호흡을 해야 합니다. 여기가 해발 250m의 비탈길인데 세계 장수촌의 입지조건이 이와 비슷합니다. 넷째 사랑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 대신에 미움, 질투, 시기, 싸움만 하잖아요. 다섯째 군집욕구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안심감이 생기고 세로토닌이 분비됩니다. 한국 사람에게 제일 부족한 것이 안심감입니다. 인간에게는 좋은 감정이 많습니다. 기쁨, 사랑, 즐거움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안심감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해도 함께 있으면 안심이 되잖아요. 그래서 계기만 되면 모이는 겁니다. 촛불시위문화도 그런 겁니다. 이런 군집욕구를 긍정적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거리축제문화 등을 개발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민족은 군집욕구가 무척 강한 민족인데 노마드적인 향수가 바탕에 깔려 있어요.” ▼ 요즘 명상이 유행하는데 세로토닌 분비에 도움이 됩니까. “명상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세로토닌이 분비됩니다. 복싱할 때 허리를 구부리지요. 노르아드레날린 상태로 공격 자세입니다. 그러나 한 라운드 끝나면 허리를 펴지요. 명상 자세입니다. 아이들을 차렷 시키면 주의집중이 잘 됩니다. 그런 자세를 취하면 세로토닌이 분비되는 겁니다. 군대 훈련은 노르아드레날린 상태로 만들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세로토닌 상태를 유지시켜줍니다.” ▼ 선마을 프로그램을 어떻게 마련했습니까. “객원연구원 30명이 2년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험해서 만든 겁니다. 프로그램마다 피실험자들의 평가를 받아서 5점 만점에 4.0 이상 받지 못하는 프로그램은 버렸습니다.” ▼ 종교단체의 수행 프로그램도 참고했습니까. “명상센터, 가톨릭수도원, 절 등 가보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도 모두 가봤습니다. 달라이 라마도 만났고 틱낫한 스님의 프롬 빌리지도 방문했어요. 하버드의대 출신의 세계적인 뇌과학자인 초프라 박사도 만났습니다. 인도의 명상센터도 둘러봤습니다. 한 20년 동안 돌아다녔습니다.” ▼ 선마을 프로그램은 종교적인 속성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프로그램을 만들 때 세 가지 기준을 정했어요. 과학적이고 따라 하기 쉽고 편안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종교적인 것은 없습니다. 자연성 회복을 위해 식생활 습관을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게 전부입니다. 방문객들에게 앞으로 자신의 식생활 습관을 바꾸겠다는 약속을 받고 석 달에 한 번씩 체크합니다. 잘 안되는 사람들 중에는 다시 입산하는 사람도 더러 있어요.” ▼ 선마을 운영은 잘됩니까. “운영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상근자가 27명인데 인건비가 꽤 듭니다. 수익을 창출하면서 해야 하지만 광고를 하지 않습니다. 격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집을 좀 부렸는데 경영진에서도 잘 따라와줬어요. 입소문이 나기를 기다려야 하니까 시간이 좀 걸려요.” 힐리언스 선마을은 대웅제약과 풀무원 매일유업 동아제분 등이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이 박사도 10억원 정도 투자했다고 한다. 그동안 연극인 박정자, 화가 방혜자, 우주인 이소연 등 유명인사들도 여럿 다녀갔다. 지난해 9월 설립한 후 1년반 동안 3000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발기인 1000명 모이면 세로토닌운동 출발 ▼ 촌장으로 있으면서 세로토닌운동을 지원할 동지는 많이 만났습니까. “600명이 생겼습니다. 세로토닌운동 창립회원을 1000명으로 하려고 합니다. 1000명이 모이면 세로토닌 워킹대회를 하려고 합니다. 정치인은 배제했지만 기업인은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회원들에게 회비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야 국민운동이 되지 않겠습니까. 잘사나 못사나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습니다. 물론 후원회비는 받습니다. 이럭저럭 3억원이 모였습니다.” 이 박사는 세로토닌운동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세로토닌 아트 전시회, 세로토닌 의류와 신발 개발, 세로토닌 홈 개발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세계적인 신발메이커인 화승과 세로토닌 슈즈 생산 계약을 했습니다. 베트남 현지 공장에도 다녀왔습니다. 10만원 이하로 싸게, 섹시하고 팬시하게 만들라고 했어요. 8월에 세로토닌 슈즈를 시판할 겁니다. 세로토닌 홈도 짓고 있습니다. 시멘트에서 나오는 유해물질 등 환경물질 때문에 7세 이하 어린이 4명 중 1명이 아토피에 걸려 있어요. 여자 아토피 환자 중에 상당수가 자살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피부과의사보다 더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세로토닌 하우징이라고 이름 짓고 황토에 지올라이트를 합해서 만든 겁니다. 특허를 받아 양산체제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의류나 신발이나 건자재를 만드는 기업들이 세로토닌 인증 로고를 사용하면 로열티를 받아 국민운동을 지원할 겁니다. 생활이 어려운 가정의 어린이들에게는 세로토닌 신발이나 티셔츠, 그리고 모자를 그냥 나눠주려고 합니다.” ▼ 일종의 녹색성장산업이군요. 그러나 세로토닌운동이 너무 상업적으로 흐르지는 않을까요. “그런 염려는 없습니다. 여기에 참여하는 기업들도 당장의 이익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니까 비난받을 정도로 이익 추구에만 몰두하지 않을 겁니다.” ▼ 이제 편안히 여생을 즐기실 연세인데 세로토닌운동을 후배들에게 맡기지 선두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빚꾸러기라고 생각합니다. 대구 촌놈이 이만큼 된 것도 제가 잘나서라기보다는 사회가 키워준 덕분이죠. 부족한 저를 우리 사회가 물 주고 거름 줘서 이만큼 키워줬으니까 빚을 갚고 가야 할 것 같아 나섰습니다. 무엇보다 외화를 벌어들이는 달러박스인 우리나라 40대들의 건강을 세로토닌운동을 통해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