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수필가 : 장 성호
내가 다니던 목욕탕이 폐업하여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 처음 가는 새로 개업한 목욕탕이라 내부가 복잡하여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하도 넓어 무심코 걸어 가다보니 허공에다 내 이마를 탁 부디쳤다. 얼결에 놀라 "이것이 무어야"하고 자세히 보니 벽에 큰 거울을 붙여 놓은게 아닌가.그래서 내부가 그리도 넓게 보여 벽인지도 모르고 이마로 받은 것이다.
"할아버지 안 다치셨어요?" "난 괜찮아, 벽 안 넘어간게 다행일세, 웬 그리 큰 거울을 붙여서 사람을 혼동시켜". 이마에 붉은별을 한 개 단채 번호패를 손에 쥐고 들어갔다.
카운터에 있는 아가시가 쫓아오며 급한 소리로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고 부른다 나는 뒤돌아서서 "왜".
"아니 그리 가시면 안돼요, 그쪽은 여탕이요".
"그럼 어디로 가나."
"이쪽으로요, 큰일 날 번했네"
"큰일은 무슨 큰일, 아니면 되돌아 나오면 되지."
아가시가 안내 해 주는 대로 남탕으로 갔다
온탕의 더운물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데 젊은이가 아들인 듯한 유아의 손을 잡고 들어온다. 부자유친(父子有親) 이라더니 유아와 젊은이 사이에는 친(親)함이 넘쳐 흘러 매우 다정스러워 보인다.
그 다음 그들은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아랑곳 하지않고 더운물 몇 바가지씩 몸에 퍼 붓더니 온탕으로 텀벙텀벙 뛰어든다. 온탕의 물은 파도라도 치듯이 출렁인다. 또한 신명나게 물장구를 치며 수영을 한다. 그러다가 옆에 있는 냉탕으로 뛰어 든다. 온·냉탕을 오가며 토해내는 그들의 즐거운 고성(高聲)은 욕탕 안을 메아리로 가득 채운다.
온탕에 앉아 있는 나를 물결이 흔들어 대고 튀어 오르는 물방울은 사정없이 얼굴을 두들겨 자리를 피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부자유친(父子有親) 이라 지만 부(父)의 엄(嚴)함과 보이지 않는 포근한 사랑의 정이 있어야 하는데 젊은 아버지에게는 그러한 교훈이 보이지 않고 오직 낙(樂)으로만 아이를 버릇없이 키우는 것 같다 이것이 선도(善導)인가?, 아니면 행락(行樂)만 생각하고 아이를 잘못 인도(引導) 하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상대적인 존재이니 남을 먼저 생각하며 행동해야 좋을텐데…
귀엽게만 여기고 수신(修身)은 모르며 기(氣) 살려 주기 위해 아이를 즐겁게만 해 주는 것이 뒷날 잘 못되는 길은 아닌지 모르겠다. 장미를 가꿀 때 가시도 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꽃만 보고 기르다가는 자신(自身)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것인데… 연아 다여봉(憐兒 多與棒) 하고 증아 다여식(憎兒 多與食)하라 즉 귀여운 자식에게는 훈육의 매를 많이 주고 미운 자식에게는 밥이나 많이 주라는 말이다. 자식의 훈육(訓育)에는 보이지 않는 사랑과 정이 가득 담긴 의(義)로써 엄한 양육이 옳은게 아닌가?. 세 살 때 버릇 여든 까지 간다 는데 사랑의 방법을 바꾸었으면 하다. 훈육하기 위한 벌은 체벌이 아니요 훈벌이다.
잠시후 건장한 청년 몇 명이 들어온다. 바라보니 청룡 흑룡의 그림이 몸 앞뒤로 가득 하다. 정담을 주고 받던 손님들이 조용해진다. 그 청년들은 오래 있지 않고 짧은 시간에 씻고 나갔다.그것이 좋아서 돈을 드려 하였는지 모르지만, 보기에는 그리 아름다운 것 같지 않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요 불감훼상 효지시야(不敢毁傷 孝之始也)라, 몸의 터럭 하나, 살갗의 작은 조각도 다 부모로 부터 받은 것이거늘 감히 상하지 않게 함이 효(孝)의 시초라 했거늘, 그대들의 몸을 부모가 보시고 과연 줄거워 하실까?. 부모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좋은 쪽으로 마음을 돌이켜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또 왔습니다"
"할아버지 이번에는 며칠 늦은 것 같네요?, 여탕으로 가지 마세요. 별도 그리지 마시고"
"알았습니다, 조심하지요" 하고 들어가 몸을 씻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나이 지긋 해 보이는 분의 양 겨드랑을 잘 부축하고 들어온다 그분은 풍으로 몸이 매우 불편한 것 같이 보였다.
젊은이는 그 분을 조심조심 잘 닦아 드린다. 그리고 온탕에 모시고 가서 적당히 땀을 흘려 드리고 나와서 또다시 더운물로 씻어 드린다. 다음에는 "힘드시지요?" 하며 욕탕 바닥 따듯한 곳에 뉘여 편히 쉬게 한다. 그 다음 젊은이는 나에게로 오더니 "할아버지 등 밀어 드릴가요? 노인들은 피부가 약해서 아무 수건으로나 닦으면 않되는데, 때밀이 수건으로 밀어 드릴가요, 부드러운 면수건으로 밀어 드릴가요?" 자세히 물어 정성껏 등을 밀어 준다 나는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물어보았다.
"저분이 뉘시요?."
"아버님 이십니다, 64세 이신데 지나해 풍이 와서 몸이 많이 불편하세요, 그런데 잘 모셔 드리지 못하여 늘 죄송 합니다". 34세라는 젊은이는 언행(言行)이 귀감이 되고도 남을 것 같다.
수욕정이 풍부지 (樹欲靜而 風不止)하고 자욕양이 친불대(子欲養而 親不待)란 말이 있다,즉 나무가 조용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부모를 봉양 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년에는 잘 해 드려야지 하고 미루지 말고 이 젊은이처럼 현실의 자기 처지대로 어버이의 마음만 편하게 해 드리면 되는 것이다. '선비의 집에 선비 나고 효자의 집에 효자 난다'는 말이 있다. 이 젊은이의 집에서 어린 아이들은 젊은 아버지로부터 효선(孝善)과 악행(惡行)중 어느 것을 본받겠는가?. 말로써 가르치지 않아도 보고 듣고 배우게 마련이다.그러니까 효자집에 효자가 나는 법이지…
콩 심은데 콩 나고, 꽃 가꾼데 꽃 얻는다. 우리는 심은대로 거두고 가꾼대로 얻어 푸근하고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효의 씨앗을 가정에 심어 자식의 마음속에 효의 열매가 맺게 함이 좋은 것이다. 가시의 씨앗을 아름다운 꽃씨로 잘못 알고 나도 모르게 심으면 가시덤불이 성하여 내 몸을 상하게 할 수도 있으니 늘 신중하게 처세함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