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웅동으로 나가
하지를 닷새 앞둔 유월 중순으로 한낮은 연일 무덥다. 장마가 도래하기 전이라 낮이면 불볕더위가 연상될 날씨라 한줄기 소나기나 녹음이 그리워지는 때다. 앞으로 장마가 와 물러갈 칠월 중하순까지는 자연학교 야외 활동은 기상 조건의 영향을 많이 받지 싶다. 일사병에 준하는 온열 질환을 조심해야 하고 장마철 강수에도 대비해 안전이 충분히 담보된 바깥 활동이어야 할 것이다.
어제 밀양 초동의 반월 습지와 비닐하우스에서 수경 재배를 한 상추 농장을 둘러올 일이 있었다. 풀밭에는 앉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엉덩이에 무슨 벌레가 물었는지 밤새 따끔거리고 발갛게 부어올라 가려웠다. 아침나절 시내 피부과가 열리길 기다려 내원했더니 연고를 하나 사 바르라는 처방전을 받았다. 나는 옻 알레르기가 심한데 옻이 아니라도 피부과를 찾을 일이 생기기도 했다.
병원 진료 대기로 자연학교 등교가 늦어졌는데 시내에서 진해 용원으로 가는 급행버스를 탔다. 지난 주말부터 시내버스 운행 체계가 전면 개편되어 용원으로는 새로운 노선이 생겨난 듯했다. 예전의 그 노선은 번호만 다르게 붙이고 변경 사항은 없었다. 안민터널을 지난 동진해로 나가 웅천 농협 근처 청안 해오름아파트에서 내렸다. 하루 도보 여정 기점을 거기로 삼기 위해서다.
청안 해오름아파트는 택지와 산업단지가 들어설 두동지구가 가까운 국도변이다. 영길만 해안가로는 마천공단이 조성되어 승용차보다 화물을 실은 차량 이동이 잦은 곳이었다. 찻길의 한 식당은 공단 직원 대상 뷔페를 열어 놓아 나도 그들 틈새에서 이른 점심을 해결했다. 바깥에서는 현지의 사정이 여의하지 못해 집에서 준비 못해 나가면 때가 늦어지거나 걸러야 할 경우도 생겼다.
이른 점심을 해결하고 안골포에서 제덕만으로 이어진 남파랑길 7구간을 걸었다. 남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기점 경남과 전남의 해안선을 따라 해남 땅끝에서 마치는 트레킹 구간이다. 작년 여름 퇴직한 대학 동기는 부부가 경남 구간은 완주하고 섬진강 건너 여수 어디쯤에서 멈춰 놓고 귀촌해 농사를 짓고 있다. 아마 농사철이 끝나면 남은 여정도 구간별로 잘라 뚜벅뚜벅 걷지 싶다.
마천공단을 돌아 영길만의 작은 공원으로 오르니 숲을 정비하는 인부들은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여름이라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은 적절한 휴식과 함께 더위를 식혀가면서 일해야 할 듯했다. 인부들이 선점하지 않았다면 쉼터를 겸한 정자에서 쉬었다가 갈 참이었는데 산등선을 넘어 영길마을로 내려섰다. 진해 신항 개발 여파로 영길만은 대부분 매립이 되는 상황이었다.
안골포 왜성이 바라다보이는 바다는 상당량 매립되어 예전 풍광이 아니었다. 이미자가 부른 ‘황포 돛대’ 작사자가 웅동 대장동 출신이라 영길만에 세워진 노래비도 매립공사 가림막에 가려져 볼 수 없었다. 진해 신항 조감도가 세워진 흰돌메공원에 이르니 매립을 끝내고 들어서는 웅장한 신항의 실체가 드러났다. 등나무 쉼터에 앉아 쉬다 아예 드러누워 짧은 시간 낮잠을 청했다.
평소 야외 현장에선 낮잠은 생각 못했는데 뜻밖의 풋잠으로 한가로움을 누려봤다. 쉼터에서 일어나 해안을 돌아가니 웅포해전 전적비가 세워져 있었다. 임진왜란 7년간의 초기 해전은 주로 부산과 거제와 인접한 진해만이었다. 왜군은 장기 주둔의 전진 기지를 염두에 두고 안골포와 웅천에 왜성을 쌓았는데 나는 교직 말년을 거제에서 보내면서 장목 왜성 성터를 밟아본 바도 있었다.
사도에 이르니 자연마을은 희미해졌고 남문지구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전에 없던 초등학교도 보였다. 신항만에서 외부로 통하는 해상교량으로는 산업 물동량이 쉼 없이 드나들었다. 산마루에 웅천왜성 성터가 위치한 와성 앞 바다는 매립이 되어도 마을은 섬처럼 더욱 고립된 느낌이 들었다. 남문지구 아파트단지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진해구청 앞에서 한 번 더 갈아탔다. 23.06.16